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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아의 미생, 조훈현 그리고 바둑
스포츠한국 미녀와 스포츠-미녀기사 오정아 인터뷰
2015-05-25 오후 12:20:55 입력 / 2015-08-20 오후 1:38:12 수정
▲ 오정아 (사진=이혜영 기자)
고요하다. 숨이 막히는 두뇌싸움 속 미동은 없고 그저 딸그락하는 알 부딪치는 소리만 들린다. 그 속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한수를 둔다. 4000여 년 전부터 시작됐다는 바둑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같은 게임이 없다. 그런 바둑을 혹자는 말한다. '그래봤자 바둑이라고'. 그러나 또 다른 이는 ‘그래도 바둑’이라고 한다.
바둑계는 최근 젊은 세대들이 빠져나가고 고령화되면서 고민이 많다. 다행히 최근 드라마 '미생', 영화 '스톤', '신의 한수' 같은 바둑을 매개로해 대중들에게 조금씩 알려지며 친근해지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런 바둑계에 오정아(22 서귀포칠십리)는 보물같은 존재다. 수수하면서도 참한 외모에 눈길이 가는데 실력까지 갖췄다. 서귀포칠십리의 주장을 맡고 있는 것은 물론 중국에서 열렸던 황룡사쌍등배에서 중국선수들을 상대로 5연승을 거둘 정도. 오정아와 만나 바둑기사로서의 삶과 프로기사로서의 목표를 들어봤다.
오정아가 바둑을 시작한 것은 7살. 아버지의 권유로 억지로 시작했던 바둑에 재능이 보이자 10살에 바둑을 위해 제주도에서 상경을 결심하게 된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객지생활과 만만치 않은 뒷바라지는 본인과 가족에게 쉽지 않았다.
"사실 어렸을 때는 기원에 가면 담배 냄새나고 아저씨들이 많아서 싫었죠. 그래도 서울 와서부터 프로에 대한 욕심이 생겨 자발적으로 열심히 했죠. 사실 절 후원해주시던 김기혁 씨가 아니었다면 바둑을 이어나가기 힘들었을 거예요. 그분은 그저 절 경제적으로 후원해주시며 바둑에만 집중하게 해주셨어요. 참 감사한 분이죠. 물론 고향 제주도에서 지켜보고 계실 부모님, 절 후원해주시던 분의 기대를 어깨에 짊어지고 있기에 중요한 대회면 항상 '꼭 이겨서 그분들을 기쁘게 해드려야 하는데'라는 중압감이 절 누르기도 했죠."
5대1 이상의 경쟁률을 뚫고 바둑연구생이 된다고 하더라도 약 12대1 이상의 경쟁이 또 기다리고 있다. 매년 프로가 될 수 있는 연구생은 단 2명뿐이고 여기서 낙마하고 성인이 되면 드라마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처럼 냉혹한 사회의 현실에 마주칠 수밖에 없다.
"학창시절을 기원과 기숙사에서 보내면서 저희들은 오직 바둑만 공부하죠. 그리고 나와 가장 친한 연구생을 눌러야만 프로에 입단할 수 있는 시스템이에요. 프로기사들은 냉철한 시스템 속에서 이기적으로 커온 것일지도 모르죠. 그리고 바둑은 운과 심리전이 좌지우지하죠. 저보다 실력이 더 좋은 연구생들도 많았지만 그들 모두 프로가 될 순 없었죠. 냉정한 세계고 이 냉정한 세계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남들보다 학창시절 일반 공부를 더 안했기에 생활이 쉽지가 않죠."
바늘구멍 속에 또 구멍을 뚫고 프로에 입단하고 나면 도리어 부담이 풀리는게 일반적이라고 한다. 마치 고3이 끝나고 대학교에 들어가는 순간 우리가 자유를 만끽하는 것처럼, 프로기사들 역시 어린 시절 오로지 ‘한 가지 목표’로만 생각했던 프로에 들어온 순간 해방감을 맛봐 느슨해지는 경우가 있다는 것.
"연구생 때 가장 마지막 목표가 입단이었지, 그 이후를 보진 않았죠. 그래서 목표를 이루고 나서 허탈감과 해방감이 찾아오죠. 현재 프로기사들은 고정적인 수입을 얻는 건 힘들어요. 바둑도 물론 구단제로 나아가려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미미한 수준이에요. 그래서 대회를 나가 이겨야만 대전료를 받아 생활할 수 있고, 그 대전료도 넉넉지는 않아요. 그래서 많은 프로기사들이 바둑 관련행사에 참여한다거나 해설, 과외 등을 통해 살아가고 있는 실정이죠."
그럼에도 오정아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특히 최근 드라마 '미생'들을 통해 바둑이 알려진 것에 안도감을 느꼈다고 한다.
"저뿐만 아니라 바둑계가 '미생'에 고마워하고 있죠. 바둑에 대한 인식이 없던 사람도 관심을 가지고 있고 바둑 한다고 말하면 '아 미생!'이라고 얘기할 정도니까요. 현재 바둑은 고령화되고 있는데 이제 바둑계도 그 현실을 깨닫고 유치원, 방과 후 수업에 바둑을 보급화 시키면서 알리려고 노력 중이예요. 물론 다소 어려울 순 있지만 바둑이 올림픽 등에 들어갈 수 있게 바둑계와 프로기사들이 풀어갈 숙제죠."
`국수(國手)'. '나라의 손'이라고 할 정도로 바둑계 최고의 거장에게 붙는 말이다. 조훈현(62)은 이 호칭에 전혀 어색함이 없는 일인자다. 그런 조훈현 국수와 오정아는 지난해 8월 2014 국수산맥 국제바둑대회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조훈현 국수님은 바둑 역사에 남는 분이잖아요. 그런 분과 함께하는 것 자체로 긴장되고 함께 둘 때 자세가 흐트러질까봐 끝까지 긴장했어요. 페어바둑을 둘 때 제가 만약 다르게 두면 옆에서 한숨을 쉬실 때 제 어깨는 한없이 쪼그라들었죠(웃음). 끝나고 격려도 해주시고 훈수도 해주시는데 그 자체로 영광이었죠. 어릴 때 조국수님의 기보를 보면서 자라왔고 그렇게 함께 했기에 제 이름을 기억하실 테니 정말 좋았어요."
바둑하면 수많은 명언이 탄생한 근원지이기도 하다. 바둑판 자체가 인생의 축소판이기에 수없이 많은 명대사가 오갔다. 조훈현 국수의 '그래봤자 바둑, 그래도 바둑'이라는 말이나 '노력을 이기는 재능은 없고 노력을 외면하는 결과도 없다'는 이창호의 명언도 있다.
"사실 바둑은 고작 게임일 뿐이거든요? 근데 그 바둑을 통해 인간적으로 성숙해져요. 나이, 직업, 지위에 상관없이 바둑을 통해 소통하고 모두를 엮어주잖아요. 또한 영원히 같은 게임이 나오지 않는 신비로움도 있죠. 결국 그래도 바둑인 셈이죠."
▲ 작년 국수산맥배 개막식에서 영웅 조훈현과 함께 한 오정아
'미녀바둑기사'로 관심이 쏟아지며 올해 처음으로 열린 여자바둑리그에서 '베스트드레서상'까지 받은 것에 대해 오정아는 손사래를 치며 "그저 제가 인간관계가 둥글다보니 기자님들이 좋게 보셔 투표해주신 모양"이라며 설명했다.
"외모보다 역시 바둑으로 주목 받는 것이 좋죠. 물론 전 외모에 대한 관심도 왜 가져주시는지 모르지만 기쁘네요(웃음). 바둑계에 저보다 몸매도 좋고 예쁜 언니들도 많거든요. 그런 언니들이 주목을 받아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 TV를 보시다가 남성 팬들이 채널을 멈추지 않을까요? 그렇게 해서라도 주목을 받아 바둑이 알려지면 좋겠네요."
무엇이 그녀를 바둑판에 계속 앉게 하는 것일까. 바둑의 재미란 대체 무엇일까.
"프로지만 경기에 지거나 연습 때 계속해서 지면 초조해지고 슬럼프도 와요. 다른 직업을 찾고 싶을 정도니까요. 아직은 바둑을 하면서 즐기지 못해요. 지금도 이기면 기쁘고 지면 슬프죠. 즐기고 싶지만 쉽지 않아요. 아직도 이기는 재미가 크죠. 매일 새롭고 끝없이 배울 수 있는 바둑이 좋아요. 그리고 바둑은 한 땀 한 땀 이기는 재미예요. 고민해서 반 집 득보는 것을 생각해내고, 생각해내는 것을 반복해서 이겨요. 한 순간의 실수나 결정으로 이길 수 없다. 축구에서 골을 넣어서 이기는 것 보다 처절하다. 짜릿하기 보다는 처절하게 이기는게 바로 바둑이죠."
어느덧 프로 4년차가 된 오정아. 페어바둑에서는 국내 최강자의 입지를 다지고 있지만 개인전에서 뚜렷한 성적이 없기에 초조할 만도 할 터. 목표를 물었다.
"바둑을 통해서 제 이름을 알릴 수 있고 세상에 드러낼 수 있어요. 제 이름을 알려서 바둑을 통해 뭔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어요. 바둑계를 위한 일, 보급 등 결코 가볍지 않은 무언가를 이뤄내고 싶네요."
위 기사는 5/24일자 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가 쓴 [미녀와 스포츠⑩] 오정아 2단이 말하는 미생, 조훈현, 그래도 바둑을 그대로 옯겼습니다. 
TYGEM / 스포츠한국, 편집 이영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