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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젬에 나온 길거리포차에요!
10년째 바둑행사를 같이 한 길거리포차 사장 김길준(63) 반경옥(57) 부부
2015-07-10 오전 8:57:01 입력 / 2015-08-28 오후 10:18:58 수정
▲ 10년째 바둑행사장마다 나타나는 길거리포차 사장 김길준(63) 반경옥(58) 부부.
바둑동호인들은 전국구라서, 주말마다 대구 부산 광주 등지를 옮겨 다니며 지역순방을 다닌다. 요즘은 바둑대회가 어린이부 전국최강부 여성부 지역동호인부 등 크게 네 파트로 나뉘어치러짐으로 남녀노소 모든 세대들이 바둑행사장에서 만나곤 한다. 따라서 바둑행사장엔 매번 1000명 이상의 출전선수와 학부모들이 모여드는 게 요즘 풍경이다.
타이젬에서도 아마바둑 축제현장에 취재를 자주 가는 편이라 덩달아 주말마다 바둑여행을 다닌다. 특히 기자는 지방행사에 가게 되면 개 폐막식과 함께 시상식을 비롯하여 참가자들 대국모습을 촬영하느라, 분주하게 뛰어다니다보면 식사 때를 놓치기 일쑤다.
어느 정도 일을 끝내놓고 잠시 바람 쐬러 행사장 밖으로 나가면 눈앞에 펼쳐진 군것질거리에 그만 시선을 빼앗기고 만다. 비단 기자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한판의 바둑을 마치고 나면 다음 판이 시작될 동안 잠시 휴식을 갖는 선수들도 매한가지다.
최근 메르스여파로 많은 수의 인원이 모이는 체육대회 바둑대회 등은 스스로 자제하고 있는 분위기. 그런 와중에 지난 달 27일 경북 포항에서는 영일만사랑배가 메르스 이후 첫 전국대회로 치러졌다. 참가수의 감소를 우려하던 대회는 무려 700명이 참가하는 대성황을 이뤄, 바둑에 전국이 배가 고팠음이 증명되었다.
▲ 부부는 늘 대회장에서 즐겁게 일하며 산다고. 김사장님은 타이젬 9급의 바둑동호인.
순대 어묵 떡볶이 닭꼬치 핫도그 번데기 회오리감자튀김 솜사탕 컵라면 커피….
이름만 들어도 군침이 절로 돌고 방금 식사를 하였어도 또 먹고 싶은 것들이다. 희한한 것은 이런 군것질거리는 근사한 음식점보다는 공원이나 학교주변 그리고 젊은이들이 모이는 축제현장 같은 번잡한 길거리에서 제 맛이 난다.
거의 한 달 만에 만난 반가운 얼굴들과 바깥 길거리포차에서 정겨운 인사를 하던 중 전국의 바둑동지들 사이로 길거리포차 사장님 부부가 눈에 띄었다. 낯이 익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작년 문경새재배가 열린 문경공고에서도 한번 뵈었던 분이었다. 이리하며 포차사장님 내외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사장님! 작년 문경에서 뵈었는데요?"
"…."
빙긋이 웃기만 할 뿐 말 수가 거의 없는 사장님은 목소리조차 모기만해서 대화가 끊어지기 일쑤였다. 성질 급한 기자가 갑갑함에 투덜거리고 있을 때 눈치 빠른 안사장님이 말을 거든다.
"네에. 바둑행사엔 전국 어디나 가죠."
"예? 전국 어디나? (바둑대회를 따라 다닌 지)몇 년이나 되었지요?"
"한 10년 넘었을 거에요."
"10년이라고요? 아니, 그럼 왜 저를 못 만났죠? 사장님 저 아세요?"
여태 눈을 지그시 깔고는 기자와 안사장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사장은 슬쩍 고개를 들었다.
"안면은 익네요."
▲ 길거리포차 사장님부부를 촬영하는 순간 A7 홍시범 대표가 찾아와 같이 포즈를 취했다.
바둑인들의 신의는 알아주지 않는가. 더욱이 바둑대회를 10년 넘어 같이 다녔다면 우리는 이미 동지. 하긴 기자를 100번은 마주쳤을 것이니 아무리 흘깃 보았어도 기억은 남아있을 수도 있겠다. 이미 해가 중천을 넘어간 지 오래되었다. 옆 포차에 몰리는 손님을 보며 기자가 슬슬 안달이 났다.
"아니, 이 사람들 전부 바둑인들 아닙니까. 사장님이 바둑대회를 10년이나 따라 다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저쪽으로 팔아줄 이유가 없잖아요?"
"괜찮아요. 골고루 먹고 살아야죠."
"아, 괜찮은 건 사장님 맘이고 우리가 이러면 안 되잖아요. 저기, 박사범님! 이리로 오세요! 여기 회오리감자가 좋아요. 어묵도 있네요. 핫도그는 빅사이즈네요!"
기자가 손님을 옆 포차에 빼앗기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내 손님인 듯 맘이 아팠다. 그래서 가만 보고 있을 수가 있나. 급한 맘에 호객꾼이 되어버렸다.
기자와 이런저런 실랑이를 하는데 바둑행사전문 A7 홍시범 대표가 등장한다. 그는 이미 전국 바둑행사장을 누비고 다니는 사람이다. "아이쿠! 벌써 취재하고 계시네요. 저도 행사장에 수년 째 다니지만 사장님이 저보다 선배인지 몰랐어요. 한 2년 전에 모 사범님이 사장님을 알아보시고는 저에게 얘기해 주셨어요. 워낙 말씀이 없으신 분이라서..."
묵묵히 감자만 깎고 있던 과묵한 사장님에게 힘들게 또 몇 마디 물어보았다. 그의 답변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도 타이젬 유저라는 것이다. 급수를 밝히기 힘들다고 하는데 '9급 정도'로 유추해볼 수 있었다. 시간이 없어서 많이 두지는 못하고 가끔 구경하는 편이라고 한다. 하긴 바둑인이 아니라면 바둑행사가 어디서 어떻게 벌어지는지 알기 힘든 일일 터.
▲ 문경에서 만난 후 다시 포항에서 조우하게 된 이들. 문경시바둑협회 박병호 사무국장과 김진호 감사가 합류하여 반갑게 포즈.
"사장님이 인터넷을 즐겨요. 그래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행사하는 곳을 살펴보고 일정을 짭니다. 이 장사 한 지는 40년이 되어가죠. 이런 축제장에 한번 나가면 새로 옮기는 장소마다 새로 짓고 뜯고 해야 하기 때문에, 하루 장사를 위해 3일정도 걸립니다. 3일치 장사를 하루에 다해야 하는 것이죠."
40년이라는 말에 또 한 번 놀랐다. 사장님은 63세며 안사장님은 58세란다. 어느새 결혼 한 지 34년째며 이 장사해서 자식들 모두 제 앞가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동네 구멍가게라고 생각해서는 큰 오산이었다.
"지금은 먹고 살기위해 하는 장사는 아니에요. 이렇게 이 곳 저 곳 돌아다니는 게 이 양반 적성에 맞기도 하고, 장사하는 게 건강하다는 뜻 아니겠어요?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또 이렇게 전에 봤던 사람도 만날 수 있고…. 바둑대회에 오시는 분 얼굴들은 다 알아요. 이름을 몰라서 그렇지…"
그들이 사는 곳은 서울이라는 설과 춘천이라는 설로 나뉘었다. 과연 어디에 살길래 포항 문경 등 원거리까지 다닐까. 전국의 축제장마다 이 많은 짐을 끌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인데 말이다. 이번 대회엔 메르스 탓에 인원이 적을 줄 알고 작은 화물차 두 대에 싣고 왔단다. '작은 차?' '두 대?'
"집은 4채 있어요."
'헉! 4채? 떼돈을 버셨나?'
"하하 놀라지 마세요. 한 채 기백만원 하는 집이니까요. 일종의 본부죠. 이 많은 물건들을 옮기려면 냉장고만 6대가 필요해요. 너무 힘드니까 이곳 저곳에 몸을 의탁할 집을 4채를 마련했죠. 본래 사는 곳은 서울이고 춘천 청도 고창에 집이 있어요."
그러고 보니 집은 수도권 강원권 경상권 전라권으로 4개 도시였다. 40년 장사하면서 이동네 사람 저동네 사람 다 보셨을 건데, 바둑인들은 어떤 손님인지를 물었다. 그에 대한 대답은 기다렸다는 듯이 빨랐다.
"굉장히 부드럽고 편안하고 친근감이 있어요. 예전부터 아는 사람처럼 정감도 있죠. 역시 성격이 차분하고 아이들 엄마도 까다롭지 않고 편안해요. 어떤 엄마들은 일일이 주인에게 이거 달라 저거 달라 하는데 반해, 바둑하는 엄마들은 아이들을 과보호하는 느낌은 없죠. 아이들도 심하게 보챈다든지 어리광을 부리는 적이 없죠. 딱 티가 납니다."
▲ 길거리포차도 짐이 무척 많다. 화물차에 짊을 싣고서 떠나려고 하는 찰나. 다음 대회때는 '타이젬에 기사 나온 집'이라는 간판을 달고 오겠단다.
이런 저런 얘기가 재미있게 이어질 즈음 아쉽게도 대회가 끝나간다. 사장님도 짐을 싸야 하고 기자도 이젠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사장님! 딴 집에서 드시는 분 보면 밉지도 않습니까? 다음 대회 때는 전국대회 일정표 좀 붙이고, '타이젬 9급의 집'이라고 붙여놓으면 사람들이 다들 바둑인이 장사하는 줄 알 거에요. 알면 왜 옆집에서 먹겠습니까?"
또 사장님은 빙긋 웃기만 할뿐이다. 그러자 안사장님 왈, "다음엔 '타이젬기사 나온 집'이라고 간판을 달게요. 여기는 바둑인의 집이라고요."
TYGEM / 진재호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