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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바둑도장이 전주에 있다
전주 강종화바둑도장 강종화 원장(49) 이야기
2015-07-24 오후 7:03:45 입력 / 2015-07-25 오전 11:37:10 수정
▲ 참 도장을 실천하고 있는 전주 강종화바둑도장의 강종화 원장(49).
사람은 낳으면 서울로 보내라고 했다. 서울이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서 선망의 공간이며 그만큼 출세할 기회가 많다는 뜻이 있겠다. 특히 바둑은 연구생제도가 입단의 지름길로 인식되면서부터 서울 집중현상은 더욱 심하다.
그러나 최근, 타지에서 비싼 돈 들여가며 '낙타 바늘구멍 통과'에 연연하기 보다는, 집 밥 먹으며 즐겁게 공부하는 힐링으로서의 바둑이 꿈틀대고 있다. 자연스레 지역의 바둑영재들이 열병처럼 서울로 서울로 향하던 추세도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
바둑을 배우는 원래 목적을 찾을 때가 된 것이다. 바둑 속에 담겨있는 진리를 추구하면서 미래 사회인으로서 당당하게 활동하게 된다면 그 같이 좋은 일이 또 있을 것인가. 그렇다면 바둑도장의 목적도 훌륭한 인격체로서 정착할 인재를 양성하는 도량이어야 할 것이다.
전주엔 '강종화바둑도장'이 있다. 서울 경기를 제외한 전 광역시도에 지역연구생들이 있지만, 강종화도장은 지역영재입단대회 때마다 유력한 입단후보를 배출하며 유명세를 탄 곳. 따라서 언제고 전주를 꼭 방문하고 싶었던 차였다.
이곳에서 아이들을 성심 성의껏 지도하는 강종화(49) 원장을 만났다. 굳이 그의 제자를 빗대어서 소개를 한다면, 제1회 지역영재입단자 김영도(2000년생)가 강원장은 손길이 닿은 첫 입단자다. 요즘 지역연구생입단대회가 한창이어서 특정도장을 기사화하기엔 약간 머쓱하긴 하지만, 취재는 7월초에 해두었음을 미리 밝힌다.
▲ 4층 건물 전체를 강종화바둑도장이 쓴다.
4층 건물이 모두 도장으로 사용된다고 하니 꽤 큰 규모였다. 1층에 100평 정도의 공간엔 탁구대 당구대 등이 있고, 2층은 대국장과 인터넷대국실, 3층은 기숙사와 휴게실, 4층은 야외대국장 '하늘채'와 바비큐시설이 갖추어졌다. 기자가 여태 다녀본 도장 중 최고의 시설이었다. 부대시설이 굉장히 넓고 다양하다는 것이 특징.
"여기 아이들이 몇 명이나 있죠?"
"전북 아이들이 절반, 서울 경기 경상도 지역 아이들이 절반입니다. 총 13명입니다. 오늘 저녁 또 한 명이 수업하러 온다고 했으니까요."
"아니, 소수정예도 유분수지 고작 13명인데 (도장이)이렇게 넓어서 수지가 맞나요?"
우량한 시설을 훑어보고 난 후 13명의 원생들이 공부하고 있다는 말에, 생활인인 기자도 걱정이 앞섰다. 그러자 한눈에 수더분한 인상의 강원장은 걱정 말라는 투로 빙긋 웃는다.
"하나쯤은 이런 미친 사람도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하하. 그래도 지역영재입단대회에 참가할 아이들이 대부분입니다. 소수 정예부대죠."
▲ 강종화원장의 애제자들의 트레이닝 모습. 이중 4명이 이번 지역영재입단대회 본선에서 활약하게 된다.
서울의 쟁쟁한 도장들과 경쟁해서 이길 수 있다고 보았을까.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하려는 '돈키호테'가 아닐까. 그러나 강원장은 서울과의 경쟁이 아니라 차별화라고 말한다.
그도 처음엔 바둑으로 대성하려면 서울로 가야만 하는줄 알았다. 그러나 지방에서 똑똑한 아이들 90%가 서울 정착에 실패하는 모습을 보면서 맘을 고쳐먹었다. 물론 경쟁이니까 그 속에서 낙오되는 아이들도 있겠지만, 천편일률적인 메뉴얼에 따라 바둑공부를 하는 뭇 도장의 학습 분위기가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
"물론 당장은 효과가 나겠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이세돌처럼 창의적인 아이들은 나타나기 힘들겠다 싶었죠. 오히려 똑똑한 아이들이 문제아가 될 수도 있겠더군요. 그러한 '편견'을 깨기 위해 소수정예로 쾌적한 환경의 도장을 만들자고 다짐했죠."
서울에서 날고 긴다 하는 아이들도 이루기 힘든 목표를, 이렇게 '느슨하게' 교육을 시켜서 무얼 어쩌자는 것일까. 그의 교육관은 맹목적인 '방목'이라는 지적도 받았다. 그러나 그는 굴하지 않고 10여명의 아이들의 자발적인 면학분위기를 조성했다. "제가 지금 도장에 없어도 아이들끼리 뭘 해야 하는 지 왜 해야 하는 지 잘 알고 있어요. 공부는 제가 시키는 게 아니고 저들이 알아서 하는 거죠."
자기주도학습이랄까. 그의 교육방침은 저 푸른 초원위에 맘껏 뛰어놀고 싱싱한 풀을 먹는 소처럼 건강한 방목이다. 공부하는 양이 적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매우 알차게 돌아간다고 힘주어 말한다. 삶이 즐거우면 소도 싱싱한 젖을 잘도 생산하는 것과 매한가지 이치란다.
▲ 인터넷대국실에서는 서울서 머리 식히러 내려온 연구생들이 타이젬 대국에 열중하고 있다.
"보통 아이들이 막힌 공간에서 바둑을 두잖아요. 우리 아이들은 훤히 열린 데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공부를 즐겁게 합니다. 스트레스를 안 받고 열심히 하죠. 이 참에 젊은 프로들도 지역에 가서 이런 도장을 자꾸 만들어 나가면 좋겠어요."
단순히 즐겁게 공부하는 것이 목적은 아니고 입단을 시키는 것이 도장의 목적 아닐까. "절반은 맞고 절반은 아닙니다. 프로가 되든 못되든 결국은 사람과의 관계가 성공적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열심히 공부하면서 예절도 배우고 인간관계도 배우고 하는 것이죠. 그 모든 것은 '환경'이 되어야 가능하지만요."
그래도 걱정이 된다. 그 정도의 논리로 깐깐한 학부모들을 설득시킬 수 있을까? "도장을 처음 할 때는 재주가 당장 보이는 아이들만 뽑았죠. 그런데 그 와중에 탈락한 아이의 학부모가 저를 일깨웠어요. 우리 아이가 열심히 공부하고 즐겁게 공부하고 있는데 왜 그만 두게 하느냐고 볼멘 소리를 하는 것이에요. 프로가 안 되어도 훌륭한 질 좋은 지도자도 될 수도 있고, 무엇보다 흥미를 갖고있는데, 왜 아이의 적성을 함부로 재단하려고 하느냐는 것이었죠."
그때 강원장은 충격을 받았고, 아이들의 장래를 원장의 입장에서 재단하지 말아야겠다는 참된 교훈을 얻었다. 강원장은 도장의 목적은 입단이 아니라고 했다. 100명 중 98명은 바둑의 장점을 통해 대인관계도 잘하고 바둑으로 인해 올바른 인성을 접하게 된다면 그 또한 좋은 목적이란다. 도장은 그야말로 도를 닦는 장이니까.
▲ 지난 5월 제주에서 열린 소년체육대회 남자중등부 결승전 경북과 전북.
▲ 바로 자랑스런 금메달리스트 한준수 김지우 윤예성 선수와 강종화 원장.
그는 지난 5월 제주 소년체전에서 빅 히트를 쳤다. 서울 경기가 금메달을 휩쓸 것이란 예상을 깨고 남자중학생부에서 고향 전북에 소중한 금메달을 선사한 것이다. 전북 팀이라고는 하지만 모두 전주 백산중 선수들이며 모두 강종화도장에서 싱싱한 풀을 먹고 자란 친구들이었다. 그날의 쾌거는 모든 지방 연구생들에게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또 지금 한창 영재입단대회 주간이다. 총 13명의 도장 원생 중에 이번 영재입단대회엔 9명이 나갔다. 그 중 지역영재입단대회엔 김지원 김민규 한준수 윤예성 등 '전주4인방'이 본선16강에 올랐다. 들리는 얘기로는, 올해 입단도 강종화도장의 원생들 중에 유력하다고 한다.
"부친이 농기계사업을 했기에 젊었을 때부터 콤바인 이양기 트랙터를 팔았지요. 부친에게서 옳은 일로 수입을 올려야 한다는 철칙을 배웠습니다. 수입은 현실적으로는 별로 없지만, 제가 하는 일이 바둑계에서 올곧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사는 사람이 반드시 잘 살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 또한 열심히 살고 있으니까요. 하하."
▲ 아이들은 열린 곳에서 바둑을 두어야 한다는 지론을 가진 강원장. 도장의 맨꼭대기층에 작은 대회를 치르게끔 '옥탑방대국장'을 만드는 중이다.
전주 상산고 출신인 그는 27세이던 1993년 바둑교실 문을 처음 열었다. 그러다 2001년엔 건설 일을 하다가 실패를 경험한 후, 분유 값을 벌려고 9평짜리 바둑교실을 열었고 지금까지 바둑과 함께 살아왔다. 강종화바둑도장은 지난 1월 개원했고, 그 이전까지는 전주재능바둑도장, 상산바둑도장 등의 역사가 이어진다.
한창 바둑교실이 호황이었던 90년대, 남들은 집 한채를 샀다고 할 그때 그는 오히려 집 한 채를 팔았다. 후배들이 바둑교실을 도와주어서 한 달 만에 70명을 넘는 원생을 모집했다. 그러나 양보다 질을 따졌던 그의 고집으로, 지속적으로 바둑교실에서 바둑대회를 하고 상금도 내걸고 하다 보니 매번 돈을 날렸다. 까먹는 소질(?)이 지금 도장까지 이어진 것일까.
그는 무엇이든 어렸을 때부터 즐겁게 공부하고 연구해야 한다고 믿는다. 도장을 하는 지금도 그 원칙 그대로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다. 아이들이 눈치 보며 살지 말고 하고싶은 대로 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은 유난히 재주가 남들랐던 어릴 적 딱지치기 구슬치기를 통해서 배운 진리.
타이젬 8단의 실력자인 그는 도장에 사범을 쓰지 않는다. 그는 사범도 열정이 있어야 사범이라고 믿는다. 꽤 많은 연구생 1군의 실력자들이나 젊은 프로들이 그의 도장을 방문하고 힐링하며 다시 올라가곤 하지만, 늘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고용된 사범은 두지않는다고 한다.
▲ 바비큐 파티장에서 영양보충을 하는 원생들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들은 자발적인 공부의 효험을 맛보고 있다.
▲ 고만고만한 친구들이 모여서 자발적으로 바둑연구 중.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산고 동기모임 회장, 원광대기우회장 등을 도맡을 만큼 붙임성이 좋다. 그런데 3년 전 도장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잠자는 시간만 빼고는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칠 것인지 '공부'에 여념이 없단다. 그 보답이었을까. 3년 동안 초등부 중등부 최강부 등 각종 바둑대회에서 30개 대회 연속으로 우승컵을 차지하기에 이른다.
아이들이 성적을 내자 하나 둘씩 서울로 올려 보냈다. 그는 지금도 학부모들에게 아이들을 서울로 보내고 싶으면 언제든지 속병 앓지 말고 말씀하시라고 한단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하나씩 둘씩 다시 내려오는 것이에요. 편안하게 공부를 하던 버릇이 있어서 오히려 서울스타일이 맞지 않았는가 봐요. 그 아이들을 보면서 제가 도장을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가 뚜렸해졌죠."
20년 이상 고향 전주를 지키고 있는 선산지킴이 강종화 원장. 프로도 아닌 그가 도장을 경영하게 된 힘의 원천은 오로지 사명감이다. "사실 지금까지 오는 과정은 눈물 나게 힘들었어요. 미친놈이 아니고서는 이렇게 하지 못하죠. 순전히 아내가 제 열정을 이해해주니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제가 가장 행복한 사람일 것입니다.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은 분명히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입단을 목표로 맹훈련을 하는 체육관식 도장이었다면, 이제는 멀리 내다보고 인생의 참된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인재로 길러내는 참 도장이 필요한 시대다. 일도(一道) 일천도(一千道)라고, 한 가지를 터득하면 천 가지를 이해한다고 했다. 인생의 기술로서 바둑을 터득했으면 하는 것이 '강종화도장'의 모토이며 바람이다.
이런 바둑인을 만나면 바둑의 나아갈 바를 가르쳐 주는 것 같아 굉장히 기분이 좋다.
▲ 5년전 이창호배 바둑대회에서 이창호와 강원장의 부인과 딸과 함께 찰칵.
▲ 강원장은 전주바둑인을 하나로 묶는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다. 학부모들과 자녀의 진로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강원장. 오른쪽은 김영도 프로의 부친, 가운데는 '전주의 자랑' 나현 프로의 부친.
TYGEM / 진재호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