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이젬게임

이기자의 시선집중

커제는 정말 흑을 '선택' 했을까?

제20회 LG배 8강전 돌가리기 미스터리 집중해부

2015-12-07 오후 12:59:50 입력 / 2022-07-28 오전 10:21:48 수정

▲ 강동윤(승)-커제. LG배 8강전 대국 장면.

지난 11월16일 강원도 인제 스피디움에서 벌어졌던 제20회 LG배 8강전은 바둑계에 두 가지 큰 화젯거리를 던졌다.

첫 번째는 2015년 한 해 동안 메이저 세계대회 개인전 무패행진을 벌이던 중국1위 커제를 한국4위 강동윤이 제압한 것. 두 번째는 현존 세계대회 중 유일하게 돌가리기 후 맞춘 쪽에게 '흑백 선택권'을 주는 LG배에서 홀짝을 맞춘 커제가 흑으로 대국을 했다는 사실이다.

첫 번째 화제는 이미 충분하게 소비가 되었다. 자타공인 중국최강 커제를 격파한 강동윤은 기세를 몰아 중국2위 스웨 마저 무찌르고 2년 연속 LG배 ' 형제 결승 대결'을 성사시켰다(다른 쪽에선 박영훈이 일본 위정치, 중국 퉈자시를 연파하고 결승에 올랐다).

강동윤의 승리가 커제의 무적행진을 종식시킴과 동시에 자칫 빈손으로 2015년을 마무리할 뻔 했던 한국바둑에 세계대회 우승트로피를 안기는 귀중한 승점이 되었다는 사실을 많은 매체에서 앞다퉈 보도했다.

하지만 두 번째 화제에 대해서는 근거가 빈약한 추측성 기사와 일반인의 견해가 난무할 뿐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백번필승' 커제가 돌가리기에서 흑 돌 한 개를 반상 위에 올려놓았고, 강동윤이 쥔 백 돌은 홀 수였다. 흑백 선택권은 커제가 갖게 된 상황. 왜 커제는 일 년 내내 한 판도 지지 않았던 백을 고르지 않고 흑으로 대국을 시작했을까? 미스터리를 풀기에 앞서 기자가 LG배 8강 현장에서 직접 찍은 동영상 화면을 먼저 보도록 하자.



일부 매체에선 커제가 돌가리기 직후 '흑으로 대국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기 위해 돌 통을 톡톡 치는 동작을 보였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동영상을 보면, 커제는 흑 돌 한 개를 통에 넣은 후 손을 펴서 잠시 돌 통을 감싸는 동작을 취했을 뿐 '흑으로 두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전달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일반적인 경우엔 돌가리기 후 흑백 선택권을 갖게 된 쪽은 상대와 눈을 마주치며 의사를 표현한다. 선택권이 없는 쪽은 자신의 흑백이 상대방의 선택에 따라 결정되므로 자연히 상대를 쳐다볼 수밖에 없고, 선택권을 가진 쪽이 자신의 돌 통과 상대의 돌 통을 교환하려 한다면 자연스레 돌을 바꾸게 된다(강동윤과 스웨의 LG배 4강전 돌가리기 장면이 여기에 해당한다).


▲ 강동윤(승)-스웨 4강전 돌가리기 동영상. 스웨가 홀짝을 맞추지 못해 선택권은 강동윤에게 넘어왔고, 강동윤이 백 돌 통을 판 위에 올리고 흑 돌 통을 가져가려는 제스처를 취하자, 스웨가 고개를 끄덕이며 흑백을 교환하고 있다. 이것이 일반적인 흑백 선택권 사용 사례.

만약 선택권을 가진 쪽이 현재의 상태로 대국을 시작하고자 한다면, 돌 통을 톡톡 치는 행위 정도로는 다소 부족하다. 적어도 상대와 '눈빛 교환'이라도 해야 선택권이 없는 입장에서 '아, 돌을 바꾸지 않겠다는 의미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동윤과 커제의 돌가리기 직후 장면은, 아무리 영상을 다시 돌려서 확인해도 서로의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이 없다. 심지어 양 쪽 모두 상대의 얼굴 조차 쳐다보지 않았다. 마치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는 대다수 세계대회의 일반적인 돌가리기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기자 뿐일까.

8강전 대국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커제가 백을 선택하지 않고 흑으로 대국을 시작했다는 점은 검토실에서도 큰 화제가 되었다. 중국선수단을 인솔한 왕레이 단장 또한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커제가 흑으로 대국을 시작한 것을 두고 바둑 팬들의 의견도 분분했는데, 일각에선 '백으로 이기는 법을 터득한 커제가 일부러 흑을 선택해 흑으로도 무적이 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는 허무맹랑한 글도 등장했다. 하지만, 단언컨대 그럴 리는 없다.

돌가리기 후 흑백 선택권을 갖게 되는 바둑시합을 두는 경우는 일 년 동안 손에 꼽을 정도. 커제와 같은 탑클래스 프로들은 한 해 동안 수 많은 바둑을 두게 되며, 대다수의 경우 '강제'로 홀짝에 의해 흑과 백이 정해진다.

오죽하면 커제가 중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추쥔에게 백으로는 진 적이 없지만, 흑으로는 올해 3판이나 연속해서 졌다. 물론 3판을 졌기 때문에 실력이라는 점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추쥔이 돌을 가릴 때마다 항상 백 돌을 굉장히 많이 올려놓는데, 어떨 때는 홀을 해보고 어떨 때는 짝을 해봤지만 이상하게도 매번 홀짝을 맞추게 되어 늘 흑을 잡았다"고 볼멘소리를 했을까.

가만히 있어도 반강제적으로 흑으로 대국할 기회가 지천에 널린 상황에서, 굳이 선택권이 있는 세계대회, 그것도 8강전에서 일부러 흑을 잡고 '실험'을 한다는 것은 지극히 아마추어적인 견해일 뿐이다.

강동윤이 흑을 선호한다는 점, LG배는 공제가 6집반이기 때문에 커제의 지난 인터뷰처럼 '규정에 이상이 있'을 정도로 공제가 크지 않다는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흑으로 두고 싶었다고 하면 오히려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다.

커제가 다소 강한 어조로 백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밝히긴 했지만, 6집반이라면 흑과 백 어느 쪽으로도 자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8강전이 끝난 후, 한중일 선수단과 관계자 및 기자들은 저녁식사를 함께했다. 이날, 동석했던 한 명의 기자가 중국 통역을 통해 커제에게 흑으로 대국한 이유를 물었고, 커제는 "(흑백 선택권이 있다는 사실을)몰랐다"는 깜짝 놀랄만한 답변을 내놓았다고 한다.

당시 분위기는 '이미 32강전과 16강에서 흑백 선택권이 적용된 대국을 했고, 더구나 중국에선 해당 시합 전에 대국규정 등을 확인하고 선수들에게 주지시키므로 몰랐을 리가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커제의 답변에 신빙성이 없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그러나 기자의 의견은 조금 다르다. 몰랐을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세계대회 역사상 가장 빠른 대국시작 시간(오전9시 개시)을 자랑하는 LG배 시합에 맞춰 오전 8시50분(중국과의 시차를 감안한다면, 오전7시50분에 해당)에 졸린듯한 표정으로 대국장에 입장한 커제가 '잠시 깜빡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본다. 동영상에 보인 커제의 태도 또한 흑백 선택권이 없는 일반적인 세계대회의 돌가리기의 모습과 거의 같았다.

대국개시 현장의 당시 상황을 전달하면, 간단한 대국개시 선언은 있었으나 '흑백 선택권'에 관한 안내는 없었다. 몇몇 사람들의 주장처럼 32강전과 16강전 대국을 거친 선수들이므로 설명을 생략해도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일부러 그랬는지 그것은 알 수 없지만, 대국 당일 재차 설명을 하고 이를 중국어 통역으로 전달하지 않았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대국개시 선언을 하는 장소와 거리 상으로 가까운 곳에 위치해있던 원성진-퉈자시 대국의 경우, 돌가리기 직후 관계자가 중국어 통역을 통해 흑백 선택권이 있음을 개별적으로 고지했다).

진실은 오직 커제 본인만 알고 있겠지만, 백으로 대국한 강동윤이 커제를 꺾고 '형제 결승'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한국 팬들에겐 나쁠 이유가 없는 전개였다.

이제 바둑 팬들의 이목은 내일(8일)부터 10일까지 3일 연속으로 벌어지는 2015 삼성화재배 결승 3번기, 커제vs스웨 신구 중국1위 대결에 집중된다. 커제가 '백번필승'을 이어간다면, 삼성화재배 우승트로피 또한 커제의 품에 안길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커제가 지난 11월25일 몽백합배 결승5번기에 진출한 직후, 중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세돌이 나를 이길 확률은 5%"라고 밝혔다는 소식이 전해져 한국 바둑 팬들의 마음이 심란한 이 시점. 언젠가는 반드시 깨지게 될 커제의 백번필승이 적어도 몽백합배 결승5번기 직전까진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 커제의 백번필승이 이세돌에 의해 깨질 수 있도록.

관련기사

☞ LG배 8강전 속보뉴스 바로가기

☞ LG배 4강전 관전기 바로가기

☞ 몽백합배 4강전 3번기 최종국 관전기 바로가기
TYGEM / 이영재

관련기사

SNS 간편로그인

(주)컴투스타이젬    대표이사:이승기    사업자등록번호:211-86-95324    사업자정보확인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 315 파이낸셜뉴스빌딩 4층

제호: 타이젬    등록번호: 서울 아04168    등록(발행) 일자: 2016.10.4

발행인: 이승기    편집인: 정연주    청소년보호책임자: 장성계

전화: 1661-9699 (상담시간:10:00-18:00)    FAX : 070-7159-2001    이메일보내기

COPYRIGHTⓒ Com2uS TYGEM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

  • 타이젬 일본
  • 타이젬 중국
  • 타이젬 미국
  • 타이젬 대만

2019 인공지능대상 수상

등급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