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환(오른쪽)과 커제의 대결은 중국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날카로운 눈매가 인상적인 박정환과 다소 피곤해보이는 커제.
▲ 커제는 약 오전9시5분 정도부터 숙소인 그랜드 센트럴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했다. 반면 박정환은 이미 그 시간에 모든 준비를 마치고 대국장인 응씨 빌딩으로 이동한 상태.
▲ 왼쪽부터 커제 스웨 탕웨이싱. 중국 선수단은 약 오전9시부터 9시15분 정도까지 함께 모여 아침을 먹고 시합장으로 이동했다.
▲ 박정환-커제. 초반 정석 진행에서 박정환이 착수하자, 커제가 기다렸다는 듯 바로 돌을 집어들어 응수하고 있는 모습.
▲ 한국1위 박정환.
▲ 중국1위 커제. 박정환-커제 빅 매치를 중국 상하이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전하는 관전기로 첫 수부터 따라가본다.
제1보(1~32) 박정환 기분 좋은 백, 돌가리기 틀린 커제는 체념
● 커제 ○ 박정환전 세계가 기다렸던 승부가 시작됐다. 한국1위 박정환과 중국1위 커제. 어느 분야든 두 개의 태양은 존재할 수 없다. 한국과 중국 바둑을 대표하는 두 명의 일인자가 '세계일인자' 자리를 놓고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인다.
무대도 그에 걸맞다. '바둑올림픽'이라고 불리는 응씨배 8강에서 만났다. 4강전은 3번기, 결승전은 5번기로 벌어지는 데 반해, 8강까지는 단판승부. 피할 수 없는 외나무 다리 혈투다.
돌가리기에서 재밌는 일이 있었다. 박정환과 커제는 둘 다 9단이다. 따라서 입단 년도가 빠르고, 나이도 더 많은 박정환이 백 돌을 한웅큼 쥐었다. 커제는 흑 돌 한 개를 반상 위에 올렸다. 돌을 가려보니 마지막으로 남은 백 돌은 짝수.
보통의 돌가리기라면, 이 장면에서 흑과 백을 바꾼다. 커제가 맞추지 못했기 때문에 백을 잡고, 박정환은 흑이 되는 것. 하지만 응씨배는 덤이 7집반이고 돌가리기를 맞춘 쪽에게 흑백 선택권을 준다.
커제가 흑 돌 한 개를 올렸다가 틀렸으므로, 박정환이 흑을 잡을지 백을 잡을지 선택할 수 있었던 상황. 하지만 박정환이 의사를 표현하기도 전에, 커제가 체념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며 흑으로 둘 채비를 한다. 앞서 말한대로, 원래 돌가리기라면 응당 돌을 바꿔 박정환이 흑을 잡아야 하는 상황임에도 말이다.
박정환 역시 커제가 먼저 체념을 해버리자 별도의 의사표시를 하지 않았다. 이로써 박정환-커제 대결은 박정환의 백으로 시작됐다. 국가대표 최명훈 코치도 "돌가리기에서 박정환이 백을 잡은 것은 일단 기분이 좋다"는 분석.
제2보(33~55) 컨디션 좋아 보이는 박정환, 잘 두고 있다!
● 커제 ○ 박정환
커제의 흑33은 축머리. 좌상귀 부근에서 흑이 A의 곳에 내려간 후 알파벳 순으로 진행됐을 때, 백 D의 끊음에 흑 E의 곳에 단수쳐서 축으로 몰기 위해 흑33이 필요하다.
박정환은 백34,36으로 붙이고 느는 수를 선택했다. 상하이 현지 검토실에 국가대표 최명훈 코치는 좋은 감각이라는 평. 흑33을 이상한 수로 만들어 기분이 좋다는 것이다.
흑37로 붙이고 다시 39로 삼삼에 침입한 것은 상용수법이다. 여기서 잠시 생각하던 박정환은 백40으로 최강의 응수를 한다. 백52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커제는 장고에 들어간다.
패를 하지 않고는 뾰족한 대안이 없는 장면. 커제는 할 수 없다는 듯이 흑53,55로 패를 걸어간다.
참고도1 상하이 현지 검토실 - 국가대표 최명훈 코치의 참고도
▲ 참고도1.상하이 현지 검토실의 국가대표 최명훈 코치는 커제가 흑1,3으로 뒀을 때, 백4로 받아줘도 백이 큰 불만은 없다는 의견. 백16까지 진행됐을 때, 좌하귀는 백이 다소 당했지만, 하변 쪽에 흑▲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백도 충분히 둘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실전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박정환의 최강수가 통한 느낌으로, 현지 검토실에선 일찌감치 커제가 불리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다음 진행을 따라가보자.
제3보(56~70) 바꿔치기, 결과는 박정환(백) 우세
● 커제 ○ 박정환
커제가 흑57로 끼우는 팻감을 사용하자, 박정환은 시원하게 백60으로 때려내고 패를 싹싹하게 양보한다. 흑61로 패를 해소할 때, 손을 돌려 백62로 넘어가는 박정환.
상하이 현지의 최명훈 코치는 "백이 유리한 바꿔치기"라는 분석. 중국 검토실의 판단도 다르지 않았는데, 위빈 감독이 주도하고 있는 중국 선수단에서도 초반은 박정환(백)이 유리하다는 의견이다. 더구나 덤이 7집반인 응씨룰로 진행되므로, 더욱 기분 좋은 형세. 백70으로 유유히 뛰어 나가는 박정환의 손길이 가볍다.
제4보(71~85) 그림을 그리는 커제, 중앙 경영이 관건
● 커제 ○ 박정환
커제가 흑71로 들여다봤을 때, 박정환이 백72,74로 선수로 방비한 점이 좋다. '들여다 보는 데 잇지 않는 바보 없다'는 옛말. 오히려, '들여다 본다고 무턱대고 이으면 바보'라는 게 새로운 격언이 될 판이다.
최명훈 코치는 백76으로 나간 수를 다소 아쉬워했다. 흑77의 곳이 쌍방간 급소였다는 것. 박정환은 백78의 요처를 선점할 수 있어서 충분하다고 판단한 것인데, 형세가 나쁘지 않은만큼 중앙을 더 중시하고 싶다는 게 최명훈 코치의 분석이다.
커제는 흑81로 하나 눌러간 후, 다시 흑85로 중앙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아직은 아무 것도 없는 허허벌판. 이곳이 흑 집으로 탈바꿈 하느냐, 공배 상태로 머무르느냐에 이 바둑의 승패가 달렸다.
참고도2 중앙의 요처, 백1을 점령했으면 어땠을까
● 커제 ○ 박정환
최명훈 코치가 아쉬워한 장면도. 백1로 날일자를 하는 게 이 바둑의 핵심적인 급소였다. 실리로 백이 앞서있는 만큼, 중앙 요처를 선점하면 흑이 이기기가 너무 어려운 바둑이라는 분석이다. 실전은 제4보 76,82,84 등 세 수가 효율적이지 못한 곳에 놓인 반면, 흑77,81이 좋은 곳에 놓여 다소 추격을 허용하게 됐다.
제5보(86~93) 박정환의 백86-88, 일인자 다운 화려한 콤비네이션
● 커제 ○ 박정환
백86이 현지 검토실을 놀라게 한 수법. 일견 생소한 수법이다. 이런 장면에선 백90의 곳으로 붙여가는 게 일감이지만, 흑이 86으로 젖히면 실리 손실이 크다는 판단. '적의 급소는 나의 급소'이므로, 박정환은 먼저 백86으로 파고들었다.
더 이상 밀릴 수 없다고 본 커제가 흑87로 반격에 나섰을 때, 박정환이 기다렸다는 듯이 백88로 붙인 수가 멋지다. 타이젬에서 오늘 바둑을 생중계 하고 있는 김형환 해설자는 "박정환의 백86,88 수법은 역사에 길이 남을 것 같다. 이번 응씨배 하이라이트로 손색이 없는 훌륭한 수를 박정환이 찾아냈다"는 감상.
백이 92로 흑 한 점을 포획하고, 흑은 93으로 백 한 점을 제압하는 모양을 갖췄다. 그럭저럭 어울린 타협인가 싶지만, 이 형태는 애초에 커제가 흑87로 갈라쳤을 때 의도한 그림이 아니다. 박정환이 포인트를 올린 모습.
이 장면에서 오후12시30분(한국시간 오후1시30분)이 되어 점심 휴식시간이 시작됐다.
박정환과 김지석이 먼저 18층 특별대국실에서 8층 한국 선수단 휴게실로 내려왔고, 곧 이어 이세돌과 강동윤이 함께 자리했다. 휴게실에는 16강전 때와 마찬가지로 한국기원 김동기 대리가 미리 준비해 둔 햄버거가 마련되어 있다. 한국 선수들은 응씨 측이 제공한 도시락과 햄버거 중 마음에 드는 걸 선택해서 먹으면 된다.
▲ 점심을 먹고 있는 한국 선수단. 강동윤(오른쪽 하단)은 16강전에 이어 오늘도 햄버거 대신 도시락을 먹었다.
제6보(94~117) 중앙 부풀리는 커제, 맹추격 개시
● 커제 ○ 박정환
박정환은 오후 대국이 재개되자 마자 기다렸다는듯 백94로 좌변을 차지했다. 흑이 먼저 둔 것과 비교했을 때 실리로 큰 자리다. 커제는 흑97로 압박해서 백의 연결을 종용한 후, 흑103으로 중앙을 크게 부풀린다.
박정환은 백110으로 자리를 잡았고, 커제는 흑117까지 중앙의 구획을 정리한다. 흑의 중앙 형태가 커질 조짐이 보이지만, 형세는 여전히 박정환(백)이 나쁘지 않다는 게 현지 검토실의 중론.
▲ 박정환(백)-커제. 박정환이 해냈다. 한중 일인자의 격돌로 관심을 모은 건곤일척의 승부에서 한국1위 박정환이 중국1위 커제에게 응씨룰로 '백1점승'을 거뒀다. 박정환은 한한전에서 강동윤에게 승리한 이세돌과 4강전에서 맞붙는다.
제8회 응씨배 4강전 이세돌vs박정환 대결은 3번기로 치러지며 오는 6월10일(1국) 6월12일(2국) 6월14일(3일)에 벌어진다. 장소는 미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