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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 "나에게
오라 너에게 가마"
최철한 병술년 최고의
대결-이창호:최철한의 국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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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수전에서의
삼세번째 격돌. 그것도 3년 연속 대결이다. 이창호와 최철한. 지금 대한민국에, 아니
전 세계바둑계에 이 두 기사의 맞대결만한 카드가 있을까.
사실 제10회 삼성화재배 결승3번기에서 두 기사의 대결이
성사되었으면 했다. 객관적인 전력상 이창호 9단(대 후야오위)과 최철한 9단(대 뤄시허)의
실력이 한수 위로 분석되었기에 이변이 없는 한 두 기사간 첫 세계대회 타이틀매치가 이루어질
걸로 예상했다. 삼성화재배 준결승3번기 직전에 벌어진 GS칼텍스배 도전5번기에서 최철한
9단이, 천하의 이창호를 상대로 믿기 어려운 '2연패 뒤 3연승' 대역전 우승을 거둔
여파가 채 가지지 않은 상태였기에, 내심 국내 타이틀매치가 아닌 세계 타이틀매치로 이어진
두 '천적간의 맞장'을 간절히 보고 싶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최철한 9단이 뤄시허 9단에게 덜미를
잡히며 2006 연초를 열 이 빅카드가 무산되고 말았다. 최철한 9단은 최철한 9단대로
이창호 9단은 이창호 9단대로 못내 아쉬웠을 것이다. 내가 두 사람의 맞대결,
그것도 세계 타이틀매치를 간절히 원했던 것은 '참을 수 없는 궁금증' 때문이었다. 뭐랄까.
일종의 거대한, 남극이나 북극의 만년설을 뒤집어쓴 거대한 빙벽이 서서히 해빙되고 있음은
분명한데, 천년 만년 녹지 않을 것 같던 이 만년빙을 야금야금 녹이고 있는 실체가 무엇인지
어느 정도의 해빙인지, 그 원인이 무엇인지 도통 분간이 안 됐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고
있는 만년빙은 말할 것도 없이 이창호 9단, 이창호시대를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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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연패 뒤
3연승에 대한 추억 |
GS칼텍스배에서의 '2연패 뒤 3연승' 드라마는 적잖은
충격이었다. 그 옛날 베를리오즈의 음악선생이 제자의 손에 이끌려 베토벤의 5번(운명)
교향곡을 듣고 난 다음 그 충격으로 자기 모자를 얹을 머리통을 찾을 수 없었다 토로한
것처럼 최철한 9단의 이 승리 앞에서 "햐∼! 정말 대단하군!"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5번기이기는 했지만 23년전(1983년) 조치훈 9단이 노장 후지사와(藤澤秀行) 기성을
상대로 3연패 뒤 4연승의 대역전극을 이끌어냈을 때의 감흥을 느꼈다고 할까.
'마무리, 끝내기의 달인'으로 통하는 이창호 9단이 먼저
2승을 올려놓고서도 마무리를 못하고 내리 3연패를 당해 타이틀을 내주었다는 사실 자체가
예삿일이 아니다. 1997년 명인전에서 스승 조훈현 9단에게 2연승 후 3연패로 분루를
삼킨 이래 8년 만에 당하는 두번째 재앙이다.
우리나라에서 2연패 뒤 3연승 드라마는 그동안 모두
12번 있었는데 이 가운데 무려 8번이나 이창호 9단이 그 현장에 서 있다. 6번은 웃음을
2번은 눈물을 흘렸다. 가장 최근의 명승부가 2001년 LG배 결승5번기에서 펼쳤던 이세돌
9단전이다.
 ▲ 이창호 9단(왼쪽)과 최철한 9단이
GS칼텍스배 결승 최종국이 끝나고 복기를 나누고 있다. 이창호 9단의 괴로운
표정이 눈길을 끈다. |
이창호 9단이 생애 처음으로 기록한 2연패 뒤 3연승의
승부는 1991년 제30기 최고위전 도전5번기였다. 한해 전 14세의 나이로 스승인 조훈현
9단의 허리춤에서 최고위전(1990년 제29기) 타이틀을 빼앗아 첫 신문기전을 취한 데
이어 모든 기사들이 선망하는 국수(國手)까지 순식간에 두개나 취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당연히 스승은 "아직은 인정할 수 없다"는 듯 1년 만에 즉각 리턴매치를 청해왔고
그때 2연패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렸다가 극적인 3연승으로 구사일생한 타이틀매치가 이
1991년 30기 최고위전이었다. 최고위전은 공교롭게도 스승인 조훈현 9단이 자기 시대의
출발을 알린 용진문(勇進門)-첫 타이틀이기도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스승의 용맹이 산천초목을 자르르 울릴
때인지라 제자가 그 위세에 대적하기에는 아직 허술한 구석이 많아 보이던 시절이었다. 해서
만약 그때 2연패 뒤 3연승이라는 뒤집기 쇼를 연출하지 못하고 최고위를 잃었다면 승부세계의
바늘은 한동안 거꾸로 움직였을지 모를 일이다. 이후 이창호 9단은 질풍노도와 같은 기세로
스승의 성을 계속 공략하여 대왕과 왕위 명인까지 가져온다. '이창호 바람'이 한때 돌풍으로
사그라지지 않고 쓰나미로 발전하여 조훈현 제국을 휩쓸어버릴 수 있었던 계기점(契機點)에
바로 2연패 뒤 3연승이 자리하고 있다.
역사는 흐른다. 그리고 때로 돌고 돌기도 한다. 내
기억에 가장 선명하게 남아있는 2연승 뒤 3연패는 18세의 나이로 일본기원선수권자인
사카다(坂田榮男) 9단에게 도전했다가 대역전패를 당한 조치훈 9단의 바둑이다. 그때 조치훈
9단은 지인들이 마련해준 위로 술자리에서 "이젠 틀렸어, 아무 것도 없다, 절망적이다,
죽고 싶다…."라는 기분으로 술을 마구 퍼마셨다고 한다. 그러나 비록 타이틀 획득에는
실패했지만 이때의 승부는 향후 조치훈시대를 예고하는 예광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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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제5회 LG배에서 초반 2연승 돌풍을
일으키며 세계를 뒤집어지게 만들었던 이세돌 9단이 이후 내리 3연패 수렁에 빠지며 다
잡았던 대어(이창호 9단)를 놓치기는 했지만 이것이 2년 뒤 그가 일으킬 '반상
혁명'의 예고탄이자 바로 이 시점부터 이창호왕국에 균열이 가게 한 시발점이었다는 사실은
천하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 제5회
LG배 세계기왕전 결승 최종국 이창호 9단(왼쪽)과 이세돌 9단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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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리통을
날려버린 최철한의 2연패 뒤
3연승 |
그렇다면 최철한 9단이 GS칼텍스배에서 거둔 2연패 뒤
3연승은 과연 바둑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후일 지니게 될까. 우선
이창호 9단은 '번기(番棋)의 제왕'으로 군림해 왔다. 3번기든 5번기든 단판이 아닌
번기에서 그를 이긴다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을 따는 일로 여길 정도였다. 사정이
이러함에 두 판을 먹고 들어가도 불안한 판국에 초반에 먼저 두 판을 내준 상태라면 그
대결은 일찌감치 '레테의 강'을 건넜다 봐야한다. 그러니 최철한 9단의 뒤집기 승부가
얼마나 대단하고 짜릿한 일이었겠는가. 80년대 초반 프로씨름이 선을 보일 당시 한라장사
최욱진 선수가 모래판 위에서 보여주던 바로 그 환상의 뒤집기 기술. 라이벌 이만기 선수도
마치 자라처럼 목을 움츠린 채 고개를 들이밀고 품 깊숙이 파고 들어와 어느 한 순간 뒤로
넘겨버리던 그 기술에 당황하던 장면이 오버랩된다.
내 기억에 따르면, 최욱진 선수는 체급의 한계 때문이었는지
천하장사는 단 한번도 차지하지 못했다. 한라급의 라이벌이자 기술씨름을 구사하던 이만기
선수가(뒤에 백두급으로 몸을 불렸지만) 씨름판을 평정한 것과는 비교되었다. 최철한 9단은
최욱진 선수처럼 팬들에게 환호를 받는 화끈하고 멋진 바둑을 구사하면서도 아직 메이저급 세계
타이틀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작년에 우승한 중환배는 그 규모나 우승상금 면에서 마이너
기전에 지나지 않는다.
 ▲ 이창호 9단을 상대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최철한 9단(왼쪽)이지만 다른 기사들에게는 그만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잉씨배 결승에서 창하오 9단과 대결을 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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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나이 어리고 한창 커가고 있는 시기에 놓인 기사니
이제까지의 활약보다는 앞으로의 활약에 더 큰 비중을 두어야 하리라. 하지만 잉씨배(대
창하오 9단)와 후지쯔배(대 이세돌 9단) 두개의 메이저 세계 타이틀매치에서 절호의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는 사실은 최철한 9단의 바둑이 아직은 뭔가 2% 부족한 구석이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구리(古力) 9단이 몇년째 중국 랭킹1위로 군림하면서도 세계대회에만
나갔다 하면 번번이 허방다리를 짚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로.
이창호 9단도 초기에 그랬다. 고소공포증이 있고 음식에
까다로워 해외대국에서 제 기량을 십분 발휘하지 못한 탓이 있었다지만 그 또한 실력과 경험이
늘어가는 단계에서는 한때 "스승 조훈현 9단을 이기는 법만 터득했다"는 소리를 들은 바
있다. 지금 최철한 9단이 그렇다. 이창호 9단을 이기는 법만 터득한 기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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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만
이기는 비법을 터득한 기사? |
이런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이창호 9단은
세계바둑을 10년 이상 호령하고 있는 일인자이고 이러한 기사에게 연전연승을 거두고 있다면
먹이사슬상 너끈히 최정점에 위치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최철한 9단은
이창호왕국의 심장부를 여러차례 들락거리며 혁혁한 전과를 올렸으면서도 결정적인 타격을 입히지
못한 채 여전히 경계선에서 대치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만큼 제왕 이창호의 실력이 녹슬었다
하기에는 여전히 역발산(力拔山)이고 이창호왕국의 영토가 워낙 드넓은 까닭에 한두 곳 성을
접수하는 걸로는 표가 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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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까지 바둑사의 승부흐름이 어디 그랬던가.
조남철 9단을 김인 9단이 물러나게 했고 다시 그 제왕의 자리를 조훈현 9단이
대신했다. 중간중간 백가쟁명(百家爭鳴), 춘추전국(春秋戰國) 시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당대의 일인자를 장닭 쫓듯 거푸 쪼아버리는 이가 출현하면
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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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이 정돈되고 그 신진 강호가 무림의 제왕으로 우뚝 서
있고는 했다. 이창호의 시대도 조훈현 9단을 연속 밀어내면서 급속히 찾아오지 않았던가.
(위 사진 왼쪽부터 김인 9단, 조훈현
9단) 그렇다면 2003년 국수전을 시작으로 네 번의 3시간짜리
도전기에서 연속 이창호의 아성을 무너뜨린 최철한 9단이라면, 적어도 예전의 패턴대로라면
지금쯤 뭔가 세대교체의 들머리에 제법 들어서 있어야 할 시점일 텐데 여전히 창공에 나부끼고
있는 깃발은 이창호 군기(軍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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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샤오춘(馬曉春) 9단도 인정하고 있는 것처럼 이창호
9단은 상대의 전력 분석에 관한 한 세계 최고의 전문가다. '이창호 킬러'로 행세하던
요다(依田紀基) 9단도 무력화시켰고 삽시간에 몰아치던 '이세돌 해일'도 확실히
잠재웠다. 2004년 7월 30일 23회 KBS바둑왕전 본선 이후
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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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연승을 거두고 있다. 섣불리 '킬러'란 별명을 달고 나섰던
중국쪽의 킬러들-저우허양(周鶴洋), 후야오위(胡耀宇) 들도 하나같이 에프킬러의 입자처럼
스러져갔다. 자신을 애먹인 기사들은 철저히 분석해 반드시 물먹이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유독 최철한 9단에게만은 본때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니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위 사진 왼쪽부터 요다 9단, 마샤오춘
9단)
본때는커녕 작년에는 금강산 국수전에서는 3:0이라는 수모를
당했으며 GS칼텍스배에서는 2연승 뒤 3연패라는 기막힌 노릇까지 겪었다. 물론 중간에
전자랜드배에서 한번 설욕은 했지만 이건 속기전이라 성에 차지도 않거니와 크게 내세울 일도
아니다. 어쨌든 천하의 이창호 9단을 무실점으로 막고 두번 졌다 세번 이겼다 흡사
제갈량처럼 칠종칠금(七縱七擒)하고 있으니 이것만으로도 입이 벌어질 사건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천신만고 끝에 거함 이창호를 격침시켰던
핵잠수함 최철한 호도 이세돌(후지쯔배 결승)이나 박영훈(기성전, 한국리그), 구리(한중
천원전), 창하오(잉씨배), 뤄시허(삼성화재배) 같은 어뢰정에 맥을 못쓰고 결정적일 때마다
좌초됨으로써 그 가치를 격감시켰다. 이세돌 9단처럼 국내기전과 국제기전에서 대비되는 성적을
보이지 않고 양쪽에서 고루 꾸준한 성적을 내기는 했으나 마지막 2%가 부족했다. "이창호를
잡는 훈련만 돼 있다"는 소리를 듣게 하는 빌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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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자만
이겨서는 일인자에 오를 수 없는
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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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흐름은 그나저나 내가 가장 궁금해하는 점,
그러니까 앞으로 한국바둑의 일인자 계보는 어떤 패턴으로 뒤바뀔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한
궁금증을 계속 유보시키고 있다. 제한시간 3시간짜리 본격기전에서 네번 연속 이창호
9단을 물먹였으면 그 주인공이 슬슬 대권에 가까워지고 있어야 함에도 그러한 기미가 별로
엿보이지 않는다는 점. 특히 GS칼텍스배 이전 세번에 걸친 대결은 그렇다 쳐도 2연패
뒤 3연승 승부가 난 GS칼텍스배의 결말을 보고 그 순간 전율했었다. 1차 세계대전을
촉발시킨 어느 일요일 사라예보의 총성처럼 뭔가 이창호에게서 최철한으로 넘어가는
세대교체의 도화선이란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창호 9단은
삼성화재배에서 보란 듯이 재기했고 최철한 9단은 기세를 살리지 못하고
추락했다. |
아항, 그러고 보니 세계대회가 많아진, 따라서 국내기사뿐
아니라 세계 일류기사들과도 수시로 접전을 벌여야하고 그 영향이 변수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21세기 바둑에서 세대교체의 패턴은 이전, 그러니까 국내기전의 경합으로 일인자의 지위를
주고받던 이전의 패턴과는 같을 수 없구나.
조훈현에서 이창호로 권좌가 이양되던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두 사제는 줄기차게, 해만 뜨면 국내기전 지분을 두고 싸웠다. 그러나 지금은 국제기전
비중과 치중도가 그때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 말은 곧 일인자 이창호 9단이 최철한
이세돌을 비롯한 국내의 도전자뿐 아니라 외국의 거센 도전자들도 물리쳐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음을 말하며, 같은 이치로 최철한 9단이 일인자의 자리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이창호
9단에게만 좋은 성적을 거두는 걸로는 부족하다는 말이다. 이창호왕국을 일직선으로 공략하기
위해서는 이창호 성문으로 통하는 협곡에 도사린 매복군을 거세해야 하듯이 동시에 다른
경쟁상대들을 확실히 제압할 때 일인자 자리를 건 사생결단이 가능한 시대인 것이다.
이창호 9단이 최철한 9단에게 일격을 맞았어도 그 직후
세계대회에 나가 기력을 회복한다든지, 아니면 세계대회에서 최철한 9단이 실족해 그 기세가
꺾인다든지 하는 식의 터울이 숨돌릴 여유를 주었고, 조훈현 9단 시절 도맡아놓고 줄기차게
도전장을 내밀었던 자신과는 달리 지금은 이세돌이나 박영훈 같은 사대천왕이 한 각을 차지하고
있어 조훈현 9단이 질리도록 자신을 맞아 꼼짝없이 사제대결을 벌여야했던 때와는 달리 거북한
최철한을 연속 대면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전열정비에 도움이 되었을 터이다. 물론
이창호왕국이 쉽게 무너지지 않은 으뜸비결이라면 이창호 9단의 견고한 실력임은 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우리가 역사에서 확인하는 승부의 굴절이 어디 실력만으로 꺾였다던가. 생각지도
않던 조그마한 불꽃에 기세라는 기름이 부어지면서 엉뚱한 방향으로 불길이 인 역사가 또
얼마인가.
그런 의미에서
GS칼텍스배 직후 국수전에서 또 마주치는 이창호 9단 : 최철한 9단의 정면대결에 촉각을
세울 수밖에 없다. 모양은 이창호 9단이 빼앗긴 국수위를 되찾겠다고 도전장을 내민
형식이지만 한국승부사의 흐름 면에서 어디까지나 도전자는 최철한 9단이다. 이번에도 최철한
9단이 포효한다면 우리가 예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빠른 흐름으로 세대교체의 급물살을 탈
것이며, 거꾸로 이창호 9단이 최철한 9단의 예봉을 무디게 만들어놓는다면 당분간 우리는
세대교체를 입에 담는 일 자체를 불경스럽게 여겨야 할 것이다. 정말 궁금한 대결이 아닐 수
없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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