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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낭만의 관철동, 부흥의 왕십리, 그리고...
[초점] 낭만의 관철동, 부흥의 왕십리, 그리고...
2008-03-03 오후 6:55:15 입력
| [바둑칼럼] 한국기원 이전사(1) - 표류하는 내곡동 회관 건립 |
한국기원 새 회관건립 문제가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금의 홍익동(왕십리라고 하는 것이 쉽겠다. 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과 왕십리역 중간쯤이다) 회관은 전 한국기원 총재였던 김우중 회장이 1994년에 희사한 것. 김 회장은 1983년부터 2000년까지 3기를 연임했다. 김 회장부터 한국기원 총재의 임기는 6년이었다.
홍익동으로 이시오기 전까지, 한국기원은 관철동에 있었다. 종로2가 YMCA 건너편. 청계천 2가 삼일빌딩 뒤쪽 골목. 관철동이란 동명은 바둑 두는 삶들에게는 아주 친숙한 이름이지만, 일반인에게 그리 잘 알려진 이름이 아니다. 관철동은 한국기원 덕분에 바둑인들 사이에서 유명해졌다.
관철동 회관이 지어진 것은 1968년 8월이었다. 당시 한국기원 총재였던 이후락 씨의 힘이었다. 박정의 대통령 시절 서슬 퍼렇던 중앙정보장 등을 역임하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사람이다. 5공 개막과 함께 물러나 경기도 이천 부근에서 도자기를 구우며 생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이후에는 치매에 걸려 아무 것도 못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그에 대한 소식은 거기까지, 근황은 모른다. 1924년생, 살아 있다면 84세.
부정축재, 권력 남용 등 그에 대한 역사의 평가는 부정적이지만, 남북관계사를 논하는 자리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1972년 여러 차례 비밀리에 평양을 방문하면서 북한 지도자층과 접촉, 7-4 남북공동성명을 이끌어냈다. 남북화해까지는 몰라도 남북관계개선이라는 측면에서는 물꼬를 튼 것.
한국기원 관철동 회관은 대지는 100평에서도 조금 빠지고 5층밖에 안 되는 규모였지만, 건립 당시는 일대에서 눈에 띄는 아주 번듯한 건물이었다. 한국 바둑 바둑계는 4반세기를 거기에 머물렀고, 몸을 일으켰으며, 마침내 세계의 정상으로 웅비했다.
관철동 한국기원 회관은 프로기사들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었다. 1층에는 유전다방이 있었고, 3층에는 일반회원실이 있었다. 바둑꾼들은 물론 장안의 예술가, 문인, 멋쟁이들이 모여들었다. 모여서 바둑을 두고, 잡담을 나누고, 시국과 사조(思潮)를 논하고, 마셨다. 1968년부터 1994년까지의 그 4반세기를 바둑계 사람들은 ‘관철동 시대’라고 부른다. ‘관철동 시대’는 한국 현대바둑사의 대부분, 나아가 우리 현대사의 한쪽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를 담고 있는 아이콘이 되었다. 우리가 관철동 시대 때 얼마나 즐겁고 행복했는지 지금 40대 이하의 바둑팬들은 모를 것이다.
이후락 씨와 김우중 씨, 두 사람의 공과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고, 특히 이후락 씨에 공보다 과가 부각되곤 하지만, 그런 것들을 차치한다면 어쨌든 두 사람은, 바둑계를 위해서는 기여한 공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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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익동 바둑회관 전경 | ||
홍익동으로 이사 간 후, 바둑팬들은 관철동 회관은 무슨 바둑박물관이나 기념관 같은 것으로 쓰이지 않을까, 일반회원실 같은 것은 그대로 남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한국기원은 관철동 회관의 각 방과 각 층을 세놓았다.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소주방 비디오방 고시원 등이 들어왔다. 옆에 큰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점점 왜소해지고 있던 관철동 회관은 그래도 문화의 요람이라는 자부심으로 버티고 있었는데, 그것들로 인해 초라해지고 조야해졌다.
홍익동 회관은 관철동 회관에 비해 두 배는 크고 넓다. 주변과 거리의 모습이 바둑의 분위기와는 너무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은 있지만, 그거야 어쩌겠는가. 다만 이제는 여기도 좁아졌다는 것. 식구가 다시 두 배로 늘어났고 국제 행사가 빈번해졌으니까.
2001년에 한화갑 총재, 허동수 이사장 체제가 출범했다. 총재 따로 있고, 이사장 따로 있다는 건 사실 옥상옥이지만, 역할 분담이라는 면에서는 의미가 있다. 한 총재는 바둑의 체육 전환에 힘이 되어 주었다. GS그룹 계열의 회장인 허 이사장에게는 기전 규모를 키우는 것, 회관을 새로 짓는 것 등 재정적인 면에서의 지원사격을 기대했을 것이다.
회관 신축 문제가 거론될 때 이사장 쪽에서는 서초동 ‘예술의 전당’, 우면산 근처에 있는 약 1,200 평의 땅을 제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유소를 만들려던 땅인데, 서초구민들의 ‘우면산 살리기 운동’ ‘우면산 트러스트’가 그걸 허용하지 않으니, 문화단체인 한국기원에서 그걸 활용해 보라, 다만 그게 온전히 개인 소유의 땅은 아니니까 그냥은 어렵고, 실비 정도만 부담하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 시점에서의 실비는 약 10억 원이었고 한다.
우면산 트러스트는 한국기원 회관 신축도 수용하지 않았다. 자연을 그대로 보존하겠다는 것이었다. 한국기원과 서초구청 사이에서는 ‘대토(代土)’ 얘기가 오갔다. GS가, 한국기원이, 서초동 땅을 서초구에 기증하면, 서초구에서는 한국기원에 지금 거론되고 있는 내곡동 땅을 주겠다는 것, 맞바꾸자는 거였다.
말은 되는 얘기였다. 내곡동 땅도 그린벨트여서 회관 신축은 안 되고, 박물관 같은 것은 되니까, 일단 박물관 형태로 지어 놓고, 이름이야 박물관이 됐든 뭐가 됐든, 실질적으로, 회관 용도로 사용할 수는 있을 것이고 그러면 되는 것이니까. 그린벨트도 언젠가는 풀릴 테니까.
그러는 사이에 우면산 트러스트는 우면산 보존을 위한 모금운동으로 13억을 모았고, 서초구에서 17억을 보태 30억을 만들었다. GS는 30억을 받고 땅을 기증했다. 30억에 판 것인데, 당시 시세로는 42억이었다고 하니 12억 상당은 기증으로 보아 줄 수도 있겠다. 서초동 땅과 내곡동 땅을 바꿀 수는 없게 되었다.
또 한국기원은 종로회관을 팔았다. 매매가는 63억 정도, 세금 빼고 55억 정도. 그걸로 내곡동 땅을 샀다. 그렇다면 요는 한국기원이 관철동 회관을 팔아서 내곡동 땅을 샀다는 얘기다. GS 쪽, 이사장 쪽에서 도와주겠다고 해 놓고, 실제로는 도와준 것이 없어 좀 그렇기는 하지만, 어쩌겠는가.
에이,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어. 우리끼리 모금운동이라도 해야지, 뭐.
그런데 정작 문제는 그게 아닌 것.
(다음 회에 계속...)
http://www.dailyseop.com/section/article_view.aspx?at_id=75817&gb=da
윗 베너는 데일리서프라이즈의 협찬사 입니다.
윗 기사를 잘 보셨다면, 부디 관심보여주시기 바랍니다^^::
[관련기사]
바둑회관 새보금자리는 표류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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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진선 한 마디]
오..바둑계 인사들만이 알고있는 이야기를 이렇게 기사화해주시니 반갑고 고마움이 느껴집니다. 뭐 논하려면 논할 수도 있는 문제이지만, 어쩌다보니 바둑 기자들 사이에서는 한국 기원의 행정이나 재정 등에 관련된 기사는 쓸 수도 없고, 쓰지도 않습니다. (저도 썻다가 한번 되게 혼난 적이 있어서..죄송...ㅠ.ㅠ(ㅡ.ㅡ::) ) 한총장님께서는 그런 것에 구애받지않고 무어든지 적극적으로 기사화하라는 말씀이 계셨었지만, 그래도...기자들 입장에서는 쓰기가 거북스러운 것은 부인할 수가 없네요. 그런데 이광구님께서 좋은 기사를 내주셨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다음회를 기약하고 마무리 지으셨는데, 기대됩니다.
윗 기사중에 "우리가 관철동 시대 때 얼마나 즐겁고 행복했는지 지금 40대 이하의 바둑팬들은 모를 것이다.
" 하였는데, 정말 그랬습니다. 특히 1층에 유전다방은 정말 추억과 그리움의 장소입니다. 그러나 지금 누가 유전다방을 기억할까요? 그렇게 소중한 장소였건만 사진 한 장 제대로 남은 것이 없습니다. 아쉽습니다. 왕십리는 한국 바둑 부흥의 장소이기는 했지만, 낭만하고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습니다. 게다가 일반 국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어서 더욱 아쉬웠습니다. 종로통에 자리잡은 관철동 기원은 종로의 문화의 산실이었고, 바둑을 모르는 분들에게도 명소였습니다. 관철동의 장점과 왕십리의 장점을 고루 갖춘 그런 새 장소는 없을까요? 문화의 산실이면서도, 발전의 중심이 될 수 있는 장소 어디 없나요?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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