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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허정무 감독, 아마 4단의 바둑 고수

[대담] 허정무 감독, 아마 4단의 바둑 고수

2008-03-03 오후 7:25:30 입력

 

[Why][인터뷰] 허정무 축구 국가대표 감독
"잘하면 진돗개, 못하면 똥개…
진돗개 되려 이 악물고 뛰었다"
"제가 무섭다고요?… 너무너무 부드러운 남자예요"

 

제가 5080승을 기록 중이군요."

그는 자신의 집 서재에 있는 컴퓨터를 켰다. 그러곤 자신의 전적이 기록된 컴퓨터 화면을 보여줬다. 거기엔 '5080승 36무 3831패, 승률 57.0%'라고 적혀 있었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사령탑을 맡고 있는
허정무 감독. 하지만 그 기록은 축구에 관한 것들이 아니다. 그가 한 인터넷 바둑 사이트에서 지난 8년간 바둑 '고수'들과 맞붙은 전적이다.

허정무 감독은 중국 충칭에서 열린 동아시아축구대회에서 우승한 뒤 지난 24일 귀국, 모처럼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서울 서초구의 한 호텔에서 만나 곰탕으로 점심 식사를 하며 인터뷰를 하던 그는 "사진 찍을 만한 장소가 없겠냐"는 사진기자의 말에 선뜻 "그럼 우리 집으로 가자"고 했다.

방배동에 있는 고급 빌라였다. 현관문을 열자 향기가 풍겼다. 여느 가정집과는 달랐다. 부인 최미나(54)씨가 향수를 공부하고 수집하는 까닭이다. 향수 수입 판매 쇼핑몰을 운영하는 최씨는 2층에 별도로 '향수의 방'을 꾸며놓았다.

최씨는 임성훈씨와 함께 TBC에서 한국 방송사상 첫 남녀 공동 MC로 나서며 인기를 끌었던 스타다. 1980년 7월 18일. 스포츠 스타 허정무와 방송 스타 최미나가 결혼했다. 당시 연예 뉴스에 인색하던 일간지들도 둘의 결혼 소식을 사회면에 보도했을 정도로 화제였다.

한국을 대표하는 축구 엘리트로 살아온 허정무 감독.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부와 명예를 쌓은 그는 "가난한 집안 사정 때문에 뒤늦게 축구를 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허 감독은 진도 출신이다. 교장선생님 댁 7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목포중을 졸업했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경제적인 형편 때문이었다. 그때 1960년대 축구 국가대표를 지낸 허윤정씨가 진도에서 열린 체육대회에서 '뜀박질 잘하는' 허 감독을 보고는 축구를 권유했다.

"축구를 하면 고등학교에 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따라나섰습니다. 그때 중동 중·고등학교에서 축구부를 지도하던 유판순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남대문에 있는 식당에서 만났는데, 그분이 '넌 너무 작아서 중학교부터 다시 해야겠다'고 했습니다. 제 키가 1m53밖에 안 됐거든요. 그래서 중동중 2학년으로 편입했습니다."

―축구를 그때 처음 제대로 시작한 것인가요?

"그렇죠. 그런데 학비 면제도 아니었어요. 학교 측에서 주전이 되면 면제해주겠다는 겁니다. '그냥 내려가자'고 하시는 아버님께 제가 6개월만 해보고 결정하겠다고 말씀드렸죠. 처음 축구부를 찾은 게 1967년 1월 17일이었습니다. 추리닝(트레이닝복) 1벌에 운동화, 이불 1개 들고 갔습니다."

―고생 좀 했겠네요.

"훈련장이 미아리 쪽에 있었습니다. 킥부터 다시 배워야 했는데, 열심히 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때 고재욱 선배가 고3이었는데 엄청 열심히 운동을 했어요. 그래서 무작정 새벽 개인훈련부터 따라다녔어요. 운동 방법도 모르니, 그냥 따라 해보자, 저 형처럼만 하면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겁니다. 그리고 밤에는 가로등 밑에 가서 혼자 볼 트래핑 같은 걸 연습했어요. 손목시계도 귀한 시절이라 그냥 훈련을 하다가 숙소로 들어올 때 괘종시계를 보면 새벽 3시, 4시를 가리킬 때가 대부분이었습니다."

허감독은 3개월 만에 주전이 됐다. 첫 공식 출전에서 골을 뽑아냈다. 유판순 감독이 영등포공고 축구부 재창단 작업을 맡으면서 허 감독도 따라 옮겼다. 그가 2학년이 되던 해 영등포공고는 전국대회 7차례 결승 진출, 3회 우승을 기록했다. 허 감독은 이영무, 조영증, 신현호, 박창선 등과 함께 청소년대표로 선발됐고, 이듬해인 1973년 아시아청소년대회에 출전해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 무렵 TV에서 해외 축구 경기를 중계해주는 걸 자주 봤습니다. 아, 나도 저렇게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동작을 그대로 따라 하는 거죠. 저는 펠레도 좋았지만, 자일징요(1963년부터 1982년 40세의 나이로 대표팀에서 물러날 때까지 A매치 82경기에서 34골을 기록한 브라질의 축구 스타)가 제 우상이었어요. 그의 돌파는 예술이었죠."

1974년 졸업과 함께 연세대에 입학한 그는 그해 열린 헤란아시안게임 직후 국가대표로 뽑혔다. 그때부터 2년 선배인 차범근과 함께 이름을 날렸다.

차범근 감독은 1953년생. 허정무 감독은 1955년생. 두 살 차이다. 하지만 허 감독은 실제로 1953년생이라고 한다. 허 감독은 "축구판에서는 운동 선후배로 따진다"며 "태어난 걸로만 따진다면 이영무 기술위원장도 친구가 될 수 있겠지만, 엄연히 선배이자 형"이라고 말했다.

―차범근 수원 삼성 감독과는 사이가 좋지 않다는 소문이 많지요? 서로 패스도 안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건 사람들이 지나치게 비약하는 겁니다. 그랬다면 당시 감독님들이 그냥 놔뒀겠습니까? 서로 어시스트해 준 게 얼마나 많은데요."

―차범근 감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선수로서 차범근 감독님은 정말 본받을 게 많았습니다. 선수의 능력으로 보면 제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람이란 게 다 장단점이 있는 거 아닙니까? 누가 나은가 하는 문제는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마라도나와 펠레 중에서 누가 더 뛰어난가 비교하는 것과 같은 거죠.

지금은 둘 다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선수 입장하고는 또 다르지요. 서로 경쟁도 해야 하고….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서 선의의 경쟁을 통해 서로 노력해야 할 위치에 함께 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둘이 라이벌이라고 해도 안 되는 거고, 주위에서 그렇게 인정해줘야 하는 거지요."

―차범근 감독이 독일로 진출한 바로 직후에 네덜란드로 떠났지요?

"차 감독님은 1978년 아시안게임 끝나고 곧바로 독일로 갔습니다. 병역 문제로 다시 귀국했다가 1979년 프랑크푸르트로 옮겼지요. 차 감독님이 독일에서 잘 뛰었기 때문에 한국 선수들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고, 제게도 초청장이 날아온 것이지요. 저 역시 '차범근 선배가 가서 뛰는데 나라고 못 할 이유가 있느냐'고 생각했죠. 저는 독일과 네덜란드 프로팀 테스트를 모두 통과했는데, 아인트호벤의 축구 인프라가 더 뛰어난 것 같아서 네덜란드를 택했습니다."

1980년 7월 23일 그는 결혼한 지 5일 된 신부를 남겨두고 혈혈단신 유럽으로 떠났다. 에이전트도 없던 시절이다. 부인 최씨는 두 달 뒤에야 아인트호벤으로 날아갔다.

"요즘 선수들 정말 행복한 겁니다. 그때랑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죠. 이것저것 다 챙겨주니 축구만 하면 되잖아요."

그는 3년 동안 15골을 기록했다. 네덜란드 팬들은 '융무 후(JUNGMU HUH)'라고 불렀고, 친한 친구들은 '융'이라고 했다. 네덜란드에서 낳은 큰딸은 네덜란드의 한자어를 그대로 따서 '화란(和蘭)'이라고 이름 지었다.

네덜란드에서 허정무가 유명해진 것은 요한 크루이프(네덜란드의 축구 영웅· '토털사커'의 창시자) 때문이었다. 허 감독은 "아약스에 있던 크루이프와 세 번을 맞붙었다"고 기억했다. 1983년 FA컵 준결승에서 허정무의 집중 마크에 시달린 36세의 베테랑 크루이프는 그의 얼굴을 팔꿈치로 가격하고 말았다. 크루이프는 나중에 "허정무는 정말 훌륭한 선수"라고 말했다. 허 감독과 세계적인 스타와의 인연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아르헨티나의 축구 신동 디에고 마라도나. 1986년 미국의 시사주간 '타임(Time)'지에 허정무와 마라도나의 모습이 함께 실렸다. 아니, 정확히 말해 허정무가 마라도나의 허벅지를 걷어차는 사진이었다. '태권도 축구'라는 제목과 함께.

"전 좀 억울합니다. 제가 '쎄게' 밀착 마크를 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정상적으로 볼을 찬 다음 동작이었습니다. 고의로 찼다면 당연히 퇴장이죠. 심판이 휘슬을 불지도 않았습니다. 그 바람에 매너가 안 좋다, 거친 플레이를 한다는 오해를 받았죠."

―진돗개라는 별명은 '물고 늘어지는 능력' 때문에 붙은 것 아닌가요?

"함흥철 감독님께서 저를 '진도야! 진도야' 이렇게 부르셨어요. 고향이 진도라고…. 그러다가 감독님이 어느 경기를 앞두고 '너 오늘 잘하면 진돗개 되지만, 못하면 똥개 된다'라고 하셨어요. 열심히 해보라는 거였죠. 이 악물고 뛰었고, 진돗개가 됐습니다."


 

요즘은 축구 선수 가운데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해내는 '멀티 플레이어'가 수두룩하다. 그 '멀티 플레이어의 원조'가 허정무 감독이다. 그는 골키퍼 빼놓고는 수비, 미드필더, 스트라이커 등 모든 포지션을 다 뛰어봤다. 좌·우·중앙까지 모두 소화했다. 프로팀이나 동네 축구에선 가능할지 몰라도 적어도 한국 국가대표팀 선수 가운데는 허정무 감독이 유일했다.

―내 자리가 있는데, 다른 포지션을 맡으라고 하면 기분 나쁘지 않았습니까?

"저도 처음엔 공격수였습니다. 그런데 수비도 재미있었어요. 상대의 공격을 어떻게 막아낼 것인가 미리 내다보고, 또 거기서 이겼을 때 성취감이 있지요. 다른 선수보다 적극적으로 수비를 하니깐, 감독님들이 저한테 수비를 시켜도 되겠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 때 오른쪽 풀백을 보던 호곤이 형(김호곤 축구협회 전무이사)이 다쳐서 그 자리에 제가 대신 들어가게 됐죠. 그 다음엔 심심하면 부상 선수, 컨디션 나쁜 선수 자리에 대신 들어가곤 했죠. 지도자가 되고 나선 그 심정을 100% 이해하겠더군요."

허 감독은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우승을 이끈 뒤 선수 생활을 접었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지도자의 길로 나서진 않았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그의 경력에 '사장님'도 있다. 그는 돈을 벌고 싶어서 사업에 손을 댔다. "경제적으로 안정이 된 다음에 지도자 생활을 하고 싶어서"라고 했다.

전화기를 비롯한 각종 가전제품에 필요한 플라스틱을 납품하는 회사였다. 하지만 1992년 공장 자재창고에 불이 났다. 또 믿었던 직원들의 파업으로 배신감을 느끼면서 결국 회사를 헐값에 넘기고 사업을 접었다.

비슷한 시기에 허 감독은 대표팀 트레이너를 맡으며 본격적으로 지도자의 길로 들어섰다. K리그 포항(1993~1995년)과 전남(1996~1998년) 감독을 거쳐 1998년 대표팀과 올림픽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대표팀 트레이너 시절인 1989년 축구협회장인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유명한 일화가 있다. 당시 한국기원 총재도 맡고 있던 김 전 회장이 우연히 협회에서 마주친 허 감독에게 바둑 한판을 두자고 했다. 김 전 회장이 두 점을 접어줬다. 허정무 감독의 승리. 김 회장은 "맞바둑으로 한 번 더 두자"고 했다. 이번에도 허 감독이 이기자, 김 전 회장은 "축구 실력보단 못하지만 대단한 기력(棋力)"이라고 칭찬했다. 주위 사람들은 허 감독에게 "좀 져 드리지, 왜 두 번 다 이겼느냐"고 타박했다.

허 감독은 "적어도 승부에 관한 한 어떤 경우라도 봐줄 수 없는 것 아니냐"며 "아무래도 사람들이 회장님께 일부러 져준 적이 많아서 그분의 바둑 실력이 실제보다 과대평가됐던 것 같다"고 했다.

허 감독은 바둑을 두면서 인생과 축구를 배운다고 했다. 바둑을 배운 것도 "축구를 시작하면서 휴식 시간에 마땅히 할 일이 없어서"라고 했다.

"바둑에는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라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안전하게 살고 그 다음에 상대를 잡으러 가라는 말이지요. 축구에서도 수비는 대충 하고 골만 넣으려고 하면 게임이 안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공피고아(攻彼顧我·적을 공격할 때는 먼저 내 능력을 살핀다)도 축구와 인생에 똑같이 적용되겠지요."

바둑을 좋아하다 보니 바둑과 관련된 헛소문도 떠돈다.
박지성을 허정무 감독이 중용했다는 것은 축구팬들에겐 잘 알려진 이야기다. 그런데 한때 '바둑 좋아하는 허 감독이 당시 명지대 감독하고 바둑을 두다가 지는 바람에 박지성을 대표팀에 받았다'는 소문도 있었다.

"지성이는 현대와 명지대가 연습 경기 하는 걸 보러 갔다가 보게 됐어요. 원래 다른 수비수를 체크하러 갔는데, 맘에 안 찼지요. 그런데 자그마한 선수가 센스도 있고, 공을 아주 쉽게 차는 겁니다. 눈에 딱 띄더군요."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등 2002 월드컵에서 맹활약한 선수들을 발굴해낸 허 감독은 정작 2000년 10월 시드니올림픽 8강 진출 실패와 아시안컵 3위라는 성적표를 받아 들고 감독에서 물러났다.

"그때 저는 월드컵을 목표로 했습니다. 순진했다고 해야 하나. 아니, 속이 없었던 거죠. 당시 올림픽대표팀에는 이동국말고는 제대로 된 프로 선수도 없었어요. 저는 다음을 준비하려고 했던 거지요. 성적도 나쁘지는 않았어요. 스페인 칠레 한국이 동률(2승1패)인데 골 득실에서 밀려서 우리가 떨어지고, 다른 두 팀은 은메달, 동메달을 땄죠. 스페인에 3 대 0으로 진 게 뼈아팠어요. 당시엔 스페인 전력에 관한 자료를 구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현지에서 연습경기를 보러 갔더니 천으로 빙 둘러 막아놓고 비공개로 하더군요. 나무 위에 기어올라가서 보기까지 했는데…."

그때 축구 관련 사이트에는 허정무 감독을 비난하는 글이 엄청나게 올라왔다. 하지만 정작 허 감독이 마음의 상처를 입었던 것은 1999년 9월 두 차례의 한일전에서 1 대 4, 0 대 1로 패했을 때다.

"그해 8월 유럽 전지훈련 도중에 아버님께서 돌아가셨어요. 잠시 들어와서 상만 치르고 팀에 합류했죠. 체코 올림픽대표팀과 평가전에서 4 대 2로 이길 정도로 잘했는데, 대학선수권 출전을 위해 선수들을 풀어줬더니 파김치가 되어 돌아왔어요. 선수들은 몸이 말을 듣지 않는 상황이었고…. 일본에 연패하니깐 인터넷 댓글에 '그러니깐 당신 아버지가 죽었지'(실제로는 더 심한 막말이었다)라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도저히 믿기질 않았어요. 어떻게 이렇게까지 말할 수 있을까. 완전히 쇼크를 받았고, 그 이후로는 인터넷 댓글은 절대 안 봅니다."

허 감독이 걸려온 전화를 받는 사이, 주방에서 꽃병에 꽂을 꽃을 손질하던 부인 최씨에게 "무섭기로 소문난 감독님인데 집에선 어떠냐"고 물었다.

"아니, 너무너무 자상하고 부드러운 사람인데, 왜 무섭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요즘은 좀 부드러운 사람이라는 얘기가 나와서 다행이긴 하지만…."

 

조정훈 기자 donju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허정무 감독 프로필

▲생년월일: 1955년 1월 13일(원래 1953년생이라고 한다)
▲출생지: 전남 진도 ▲키: 1m76 ▲체중: 82㎏
▲가족관계: 부인 최미나(54)씨와 2녀.
▲취미: 바둑(아마 4단), 당구(300점)
▲학력: 영등포공고·연세대·수원대 교육대학원
▲대표경력: 청소년대표(1973), 국가대표(1974~1986·통산 87경기 30골), 아시안게임 우승(1978·1986)

▲지도자 경력:
월드컵대표팀 트레이너(1989~1990)
국가대표팀 코치(1991·1993~1994)
포항 코치(1991~1992)
포항 감독(1993~1995)
전남 드래곤즈 감독(1996~1998)
올림픽·국가대표팀 감독(1998~2000)
국가대표팀 수석코치(2004)
전남 감독(2005~2007)
국가대표팀 감독(2007년 12월~현재)
▲통산 국가대표팀 감독 성적: 19승12무7패

[i진선 한 마디]

허정무 감독님이 바둑 고수라는 것은 바둑팬들 사이에 잘 알려진 이야기죠. 허감독님의 바둑은 얼마나 독한지, 요즘 프로기사로는 이세돌 바둑이라고 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동아시아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서 아마도 마음이 편하실 듯 싶습니다. 바둑의 전략을 축구에 접목시켜서 앞으로도 좋은 감독 성적을 이루기를 바랍니다. 바둑관련 취미생활을 눈여겨봐주시고 좋은 기사를 써주신 조정훈 기자님께 감사드립니다. 조정훈 기자님도 바둑팬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TYGEM / i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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