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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세돌'에 대하여 논함

[칼럼] '이세돌'에 대하여 논함

2004-08-05 오후 9:01:26 입력

 

 [i진선 바둑 칼럼]

 

-이세돌에 대하여 논함-

 

 

 이세돌 9단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린다. 그의 특이한 언행은 바둑계에서

 드믄 일이었다.  이세돌은 팬만큼 이나 안티도 많았다. 이번 왕위전

4번국에서 이세돌은 대 이창호 대국에서 84수만에 돌을 던졌다. 오후에 

모처럼의 이창호 이세돌 대국을 감상 하려했던 바둑팬들은 실망을 금치 못했고,

  게시판에는 비판의 글들이 올라왔다.  

 

과연 그는 비판 받아야 마땅했나?

 

바둑을 道와 禮의 입장에서 본다면, 반면을 그르쳐서 더 이상 둘 수 없는 바둑을

억지로 여기저기 찔러보다가 상대방의 실수나 완착을 유도하여 자그만한 승리의

기회라도 만들어 보는 행위는 분명히 옳지가 않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일본 바둑이다. 일본은 바둑을 예도(藝道 또는 禮道)라고

하였으며, 바둑 두는 자체가 자기 수양의 근본이요, 그의 인간성을 나타내 주는

것으로 보기도 할 정도였다.

 

그들은 자신의 수가 도(道)와 예(藝) 심지어 미학적인 측면을 벗어났다고 해서

돌을 던지 경우는 무척 많았다. 바둑의 근본 정신(藝道)를 벗어나면서 까지 

억지 승리를 얻는 것은 바둑 기사의 도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요즘 젊은 일본

기사들은 안 그런 면도 많습니다만^-^::)

 

그에 반하여 중국 바둑은 근대 이 후 스포츠(體育)로 발전을 해왔다. 그렇기에

정말 완전히 맛이 간 판도 최선을 다해서 끝까지 두는(일종의 스포츠 정신)

것이 옳다고 생각하여, 중국 기사들은 정말 완전히 진 바둑도 잘 돌을 안 던진다.

 

당신은 어느 입장인가?   안 되어 보이는 바둑을 그만 둔 이세돌은 비판을 받아야

할 이유가 있는 것 일까? 스스로 판단하기에 도저히 이길수 없는 바둑 을 자기를

보러온 팬들을 위하여 질질 끌면서 끝까지 두는 것이 옳을까?

 

이세돌은 멋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누가 알아주던 말던.

 

이세돌은 멋을 부린다. 반상의 멋쟁이다. 화려하고 깔끔하다.

일본 바둑의 "藝道"가 아닌, 이세돌 특유의 '자기의 멋'을 추구한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 멋을 고집한다. 그것이 그의 개성이다.

 

그렇기에 지는 것은 참을 수 있어도, 멋이 없는 것은 참을 수 없다.

자기가 판단하기에 도저히 끌고 나갈 가치가 없는 바둑은 패국은

선언할지언정, 단 한 수라도 멋대가리 없이 버티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

추하기 때문에. 

 

그는 팬들에게 추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고, 추하고 멋없는 기보를

후세에 남기기 싫은 것이다.

 

밑의 다양한 참고 자료는 이세돌은 이창호와는 다른 방식으로 한국 바둑계를

새롭게 발전 시키는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의 눈에 가치가 없어 보이는 승단 대회를 거부하고, 신라면배에서  와일드

카드가 불공평해 보여서 거부하고, 감기들고 몸이 피곤하여 다른 기사의 

기전에 영향을 끼치는 대국에 빠지는 이세돌.

 

 마효춘, 오청원, 섭위평 바둑을 공부해 본 적이 없다고, 중국 기자에게 당당히

말하는 이세돌.

 

이세돌 같은 스타가 한국 바둑계에 한 두 명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동안 조용하고 엄숙하기만한 한국 바둑계에 소녀팬까지 동원 할 수 있는

스타 기사 이젠 수용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은가?

 

젊잖은 이창호와 너무 달라서, 미워만 할 것이 아니라, 이창호와는

다르니까 좋아할 수도 있지 않을가?

 

그는 이창호가 아니고 이세돌이다. 모든 기사들이 이창호와 같다면

얼마나 재미없을 것인가! 

 

"너 왜 이창호 처럼 그렇게 무게 있게 못하니? 너 그렇게 말 함부로 하고 까불

까불 할꺼야? 니가 세계 최고라니 겸손하지 못해!" 라고 자꾸 비판한다면

과거에 바둑 도장에서 그랫듯이 어느날 우리 곁을 훌쩍 떠나 버릴지도 모른다.   

 

중국에서는 이세돌과 같은 스타를 가진 한국을 무척 부러워 한다고 한다.

바둑 팬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스타는 자기 시대가 가도 한참 간  오청원,

섭위평, 마효춘같은 중 늙은이 밖에 없다고.

 

거기에 비하면, 우리 이세돌은 아직 씽씽하다.

 

 

 

[i진선 한 마디]

 

밑에는 모두 이세돌 관련 글 들 입니다. 물론 거의 저의 논지를 강화 시키는 글로만

골랐지요^-^:: 처음에는 참고자료에서 발췌 요약된 것만을 올렸었으나 원문이

궁금하시다는 말씀들이 있어서 원문을 모두 실었습니다. 

참고자료 안에 제가 전달하고 싶은 내용은굵은 글씨체로 표시하였습니다.

 

꾸벅

 

 

[참고 자료 1.]

 

묘목을 거목으로 '盤上의 조련사'

 

 

서초구 반포동 경남쇼핑센터 3층의 ‘권갑용 바둑도장’. 긴 복도 벽에 꽤총명해 보이는

10대들의 얼굴이 줄지어 걸려 있다. 이 도장 출신 프로기사들.7일 일본의 ‘후지쓰배

세계선수권대회’ 2연 패로 ‘LG배 세계기왕전’에이어 금년 2관왕이 되며 7단에서 9단으로

뛰어 오른 이세돌이 턱을 괸 심각한 표정이고, 최철한 김주호는 입단의 기쁨을 가득 담은

 밝은 얼굴이다. 대만출신 진시연의 사진도 있다. 권효진은 이 도장 운영자이자 사범인

권갑용(權甲龍46) 7단의   딸이고, 박승문은 손아래 처남이다. 박승철과 박승현은 형제간.

모두 32명이다.

 

무서운 스무살 이세돌등 제자 32명 프로입문 '기염'

.
"이해ㆍ지구력 접목 맹훈련 입단 문 좁아져 안타까워"

 

2002년 김대용 김형환 강동윤,2001년 이영구 백홍석 윤준상 , 2000년 진시연 최민식 박승현,

 99년 김효곤 김주호 옥득진 김찬우, 98년박승철 장정평 윤혁 이용수 원성진 등 거의 한해

3명 이상씩 입단했다. 한국기원이 뽑는 입단자가 매년 6명이니 절반 이상이 이 곳에서 배출

되고있는 셈.12세에 입단한 김민희 하호정 이세돌 최철한 을 비롯 대부분이 12~16세에 입단

했고 박성수는 36세에 프로의 꿈을 이룬 늦깎이이다.

.

이밖에도 권갑용 문하생은 일본기원에서 입단한 류시훈과 김수준이 있고,대만에서도

장리오등 7~8명이 활약중이다.이세돌의 승단으로 ‘권갑용 도장’ 출신 프로기사 32명의

단수는 모두 88단으로 늘었다. 도장은 100단 돌파 기념으로 ‘신천룡도 1. 2권’과 사활문제를

 담은 ‘끝내기’등 교본 5권을 출판키로 하고 준비중이다. 80평 도장에서는 60명의 원생들이

 훈련하고 있다. 비슷한 수준의 상대끼리마주 앉아 대국에 열중하는가 하면 혼자 교본을

들고 골똘히 연구하는 모습도 많다.

.

하루 12시간씩 훈련하는 고급자들은 입단 후에도 찾아 오는 프로들과 섞여 팽팽한 리그전을

 벌인다.제자중 15명은 권사범과 함께 기거한다. 권사범은 ‘우리 가족끼리 살아보는 게

소원’이라는 딸들의 뜻에 따라 단독주택에서 최근 아파트로 이사, 바로 옆집에 기숙사를

마련했지만 결국 5명은 자기 집에 데리고 있게 됐다.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생각해 교습비나

 하숙비도 없이 데리고 있는 제자도 적지 않다.이세돌도 6년간 그의 집에서 숙식을 같이

하면서 세계 최고기사의 꿈을 키웠다.

.

최고의 작품 이세돌

이세돌(20)은 권사범이 “이창호를 깰 새로운 천재기사를 탄생시키겠다”며 집중훈

련 시킨 끝에 만든 최고 작품이다. 전남 목포에서 배로 두 시간 거리인 비금도가

고향인 이세돌은 아버지에게서 바둑을 배우다 초등학교 3학년때 권갑용사범의 문하에 들어 와 본격적 훈련을 시작했다.

.

“1학년때부터 아버지의 손을 잡고 대회에 나왔다가 우리 도장의 제자들에게 져 울

고 내려 가는 세돌이를 유심히 보았죠. 상당히 탁월한 아이였습니다. 나는 무엇보

다 수 읽기를 중요시 하는 데 아버지 밑에서 기초를 탄탄하게 닦아 처음부터 속도

가 붙었어요.”권사범은 섬에서 혼자 훈련하던 이세돌이 도장에 들어오자 마치 ‘물

만난고기’ 같이 활기를 보였다고 회상한다. 1주일에 한번 실시하는 ‘사활문제’ 시

험에서 항상 1등이었다.

.

 

가끔 이창호가 도장에 놀러 오면 옆에서 멍하니 얼굴만 쳐다보고 있을 정도로 좋

아해 권사범이 특별히 대국을 부탁했을 정도인데, 2001년 LG배에서 비록 준우승

에 그쳤지만 이창호를 두판 내리 이기며 정상급으로 올라섰다. 누구에게나 귀여움

을 받는 밝은 성격이지만 중요 바둑에서 지고 나면 혼자 몇 시간 씩 사라져 산이나

한강 고수부지에 앉았다가 울 정도로 상처를 잘받아 비위를 맞추고 기를 살려 주

는 게 권사범의 큰 일이었다.

.

 

이세돌의 라이벌로 키운 게 최철한 5단(18). 이세돌이 ‘번쩍이는 창’이라면 최철한

은 ‘물을 빨아 들이는 스폰지’처럼 적응력과 흡인력이 뛰어나다. 일곱살때 문하에

들어와 97년 5년만에 입단한 최철한은 2000년 농심배 세계바둑최강전서 혼자 3승

을 따며 기염을 토했고 금년 프로기사 191명중 승률 1위를 기록중이다 .

 

.

입단 4년째인 김주호 3단(19)도 유망주. 올해들어 서능욱 9단을 꺾는 등강세를 보여승률

상위권을 달리고 있다. 지나칠 정도로 오락을 좋아 하지만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놓아

두고 기를 살려줘야 빛을 내는 성격에다격렬한 싸움보다 밸런스를 잡아가는 스타일.

권오민 3단(23)은 상식의 허를 찌르는 사활문제의 대가. 시도 잘 쓰고 상상력이 풍부해

문제를 풀다가 스스로 문제를 만들어 내 사범을 당황케 했다. “문제를 만드는데 빠지면

 일류기사가 될 수 없다”고 제지해도 몰래숨어서 만들어 내 권사범도 이제 포기하고 문제를

 검증해 줄 정도. 그가만든 사활문제는 300개에 이르고 책도 2권을 냈다. 대부분의 문제가

 아기자기 하고 바둑만의 묘미를 느끼게 하는 감탄할 만한 작품들이다.

.

이토록 많은 스타를 만들어 낸 권사범 본인의 실력은 어느 정도인가. 그는 현재 7단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큰 형에게 바둑을 배운 후 동네 골목에서 아저씨들과 맞붙으며 독학했다.

관악구 봉천동에는 적수가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관악산에 갔다 내려오는 길에 절

마루에 놓인 멋진 바둑판을 어루만지다 한판 벌인 게 바둑을직업으로 삼는 계기가 됐다.

동자승인 줄 알았던 상대는 나중에 알고 보니 입단 후 절에 공부하러 들어와 있던 장두진 7단.

 4점을 놓고 두 번이나 진 후‘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걸 깨닫고는 청계천을 뒤지며 헌 책들을

사 독파하기 시작했다.

.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가 재혼하면서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고아 아닌 고아가 됐던

그는 공장 출판사 직공과 껌장사 구두닦이를 거쳐 봉천동인근 기원들의 일을 도우며 숙식을

해결하다 한국기원 연구생으로 들어가75년 입단했다.

 .

그리고 처음 가르친 게 유창혁. 입대 전 방까지 얻어주며 초등학생 아들을맡기는 유창혁

아버지의 부탁에 3년간 돌보아 주었다.현 바둑도장의 전신은 83년 제대후 생계를 위해

잠실에 연 바둑교실. 열정적으로 지도한 점도 있지만 바둑이 평생 유익한 취미인데다

머리도 좋아져공부에 도움이 된다는 소문에 학생들이 몰려 들었고 제자들은 대회들을

휩쓸었다. 일본에서 활동중인 류시훈 9단은 이 때의 제자이다. 그 바람에 전국적으로

바둑교실이 우후죽순 처럼 생겨났다.권사범은 이해력과 지구력을 접목한 훈련을 받다

보면 학교공부에서도 분명히 차이가 난다고 한다. 그가 4년 동안 지도한 명지대교수

남치형(28)은프로가 된 후 공부해 서울대에 입학했다.

.

92년에는 반포로 옮겨 중.고급자 대상의 전문도장을 차렸다.남을 가르치는 일이 힘 들었지만

보람을 느꼈고, 일류기사가 못 될 바에야제자들을 통해 꿈을 이뤄보자는 생각에서 였다.

큰 어려움의 하나가 원대한 꿈을 갖고 찾아 온 프로 지망생들을 포기 시키는 것. 중요시기에

공부를 그만두고 바둑에만 매달렸다가 실패하면 서로가불행한 일이기 때문에 1주일 내에

재능과 본인의 의지, 인성, 환경 등을종합적으로 평가해 문하생으로 받아 들일지 말지를

결정한다.

.

바둑의 기술뿐 아니라 심리까지 조련해야 하므로 성격이 지나치게 편협하거나 개인주의

적이면, 또 부모가 조바심을 하면 험하고 먼 길을 함께 갈수 없어 정중히 사절한다. 당장

재능은 처지더라도 대기만성형이든가 바둑에 미쳐 있다면 높은 점수를 준다.평균적인

코스는 바둑을 초등학교 입학 전에 시작해 3,4학년때 진로를 판단하고, 6학년때는 기본기를

끝내고 고2때 프로가 되는 것이다.

.

권사범은 요즘 프로입문의 길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고 안타까워 한다. 갈수록 적체가 심하기

때문이다.“지금은 천재라고 해도 6개월만 느슨해 지면 망가집니다. 우리 도장의 제자 35명을

포함한 한국기원 연구생 120명의 실력이 팽팽하기 때문입니다. 과거 연구생 1,2조면 프로

입문을 보장했지만 지금은 여차하면 5조로 떨어질 수 있을 만큼 치열합니다.”

.

자기 도장에서도 누가 다음 입단 후보인지섣불리 말할 수 없을 정도라는 것.권사범은 전에는

이세돌 같은 승부사를 키우는데 주력했으나 지금은 공부도 중요하다는 생각에 갈등을 하고

있다. 바둑에만 인생을 걸다 보면 기본적인 지식과 소양 부족, 가족. 교우와의 관계 결여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

한국기원 연구생은 특기생이 돼 학교수업을 빠지는 현 제도를 고쳐 기원측에서 수업참가를

의무화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권사범은 프로기사중 골프의 최고수로 이름 나 있다. 워낙

운동을 좋아해 바둑인 축구단 ‘비마’를 창단시켰으나 지금은 6년전 시작한 골프에매료돼

핸디 7의 실력을 갖추고, 프로기사를 준비하던 둘째 딸도 프로 골퍼 지망생으로 변신시켰다.

프로기사들이 대부분 게으른 편인데 골프를 하다 보니 부지런해 진 게 눈에 띄게 좋은 점이라

며 바둑과 골프의 공통점으로 ‘자기와 싸우는 멘탈게임이다’ ‘예민한 경기이다’ ‘빠지면 헤어

나지 못한다’ ‘평생할 수있다’ ‘사교에 더할 수 없이 좋다’ ‘무리하면 스스로 무너진다’ ‘상대에

따라 심리적 압박감이 다르다’는 점을 들었다.

한국일보 유석근 편집위원

 

권갑용 도장 출신 프로기사

박승문(5단) 남치형(초단) 김민희(2단) 윤영선(3단) 하호정(2단) 강승희(2단) 이정원(2단) 이세돌(9단) 김강근(4단) 권오민(3단) 권효진(4단) 홍꽃노을(2단) 박성수(3단) 최철한(5단) 원성진(5단) 이용수(3단) 윤혁(3단) 장정평(초단.대만) 박승철(3단) 김찬우(3단) 옥득진(2단) 김주호(3단) 김효곤(2단) 박승현(3단) 최원용(2단) 진시연(2단.대만) 이영구(2단) 백홍석(2단) 강동윤(2단) 윤준상(초단) 김대용(초단) 김형환(초단)

 

 

 

 

[참고자료 2]

돌 던진 이세돌 왜?… 38기 왕위전 도전 4국

 

“어, 왜 돌을 걷지.”

4일 오후 2시5분. 서울 성동구 홍익동 한국기원 4층 검토실. 이창호 9단과 이세돌

 9단의 제38기 왕위전 도전 4국을 폐쇄회로 모니터로 지켜보던 기사들은 의아함

을 감추지 못했다. 점심시간을 마치고 막 오후 대국이 시작돼 아직 한 수도 두지

않은 시점이었다.

곧이어 “이세돌 9단이 돌을 던졌다”는 얘기가 들려오자 기사들은 어안이 벙벙한

듯 서로를 쳐다봤다. 기사들은 대국실로 몰려갔다. 무슨 사고가 난 것일까.

이세돌 9단과 이창호 9단은 벌써 복기를 하고 있었다. 백 84수 끝 이창호 9단의

불계승. 이로써 도전기는 2 대 2 동률이 됐고 17일 최종국을 두게 됐다.

인터넷 해설을 맡은 안조영 8단은 “흑이 불리해 돌을 던질 수도 있지만…” 하고

말끝을 흐렸다.

두 기사의 복기는 1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이창호 9단은 “흑이 불리했지만 나 같으면 돌을 던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마 하변에서 백이 쌍립을 선 수의 타이밍이 워낙 좋아 이세돌 9단이 기

분 나빴던 것 같다”며 조심스럽게 돌을 던진 이유를 분석했다.

장면도를 보자.

좌상귀 정석 선택의 잘못으로 일찌감치 백이 실리로 앞서는 장면. 흑은 1로 하변에 특공대를 침투시켰다. 이곳을 깨야 실리의 균형을 맞출 수 있다. 백 2, 흑 3은 예정된 수순인데 백 4로 둔 수가 기막힌 타이밍. 이세돌 9단은 이 수를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백 4의 효과는 참고도에서 볼 수 있다.

한 프로기사는 “이세돌 9단이 이창호 9단을 상대로 악전고투하며 역전을 바라느니 차라리 5국을 대비하자는 쪽으로 마음을 정리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세돌 9단은 “어차피 질 것 같은데 계속 두는 것은 괴로울 뿐이다”라고 동료기사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세돌 9단은 비슷한 전과(?)를 한번 갖고 있다. 2002년 한중 신인왕전에서 펑취안 4단(당시)과의 2국에서 점심시간 직후 돌을 던졌다. 당시 인터넷 해설에선 이 9단이 유리하다고 한 시점이어서 파문이 더욱 컸었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참고자료 3]

 

이세돌의 천재성과 스타성


저우 쥔신 9단이 스테로이드 복용한 거 아닌가요? 이세돌 9단, 또 이 바둑 지면 욕 바가지로

먹겠습니다. 욕도 최고 많이 먹고, 반대로 칭찬도 최고 많이 듣는 기사죠. - 김성룡 8단

2004년 4월 12일 열린 제17회 후지쯔배 16강전에서 해설자 김성룡 8단이 이세돌 9단에 대해 한 말이다. 이 대결은 이세돌 9단이 이겨줄 것이라는 한국 팬들의 희망이 강했던 한 판인데, 팬들의 바람과는 아랑곳없이 대만의 저우쥔쉰 9단이 너무 잘 뒀다. 결과는 초반에 무리했던 이세돌 9단의 불계패. 그리고 김성룡 8단의 말처럼 이세돌 9단에게 비난의 화살이 집중됐다. 다른 한국 기사의 패배와는 사뭇 다른 현상이다.

이세돌 9단은 유명해지기 시작할 때부터 싫어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이 좀 극명하게 나뉘어 졌다. 다른 유명 기사들에게는 찾아보기 힘든 현상인데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은 이세돌 9단의 '천재성과 스타성' 때문인 것 같다. - (이세돌의 스타성!, 구체적인 조사와 과학적인 방법에 의해 찾아낸 원인은 아니다. 직관적인 추측이 그렇다는 것이지).

이세돌 9단의 기질은 국내 타이틀을 획득하면서부터 일반에게도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종합해보면 '좋고 싫음이 아주 뚜렷하며 내 승부는 나만이 책임진다는 태도, 내 승부와 내 마음에 꺼리김이 없다면 남의 시선은 다소 신경쓰지 않는 경향, 간섭은 거부하지만 때로 마음이 맞는 곳이라면 얼마든지

적극적일 수 있는 자세' 등. 이땅의 많은 젊은이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이런 취향에

더해 이세돌 9단은 호리호리한 체구와 작은 얼굴, 거부할 수 없을 정도의 귀여운 웃음을

가지고 있다. 잠재적인 스타성이 충분했던 것이다. 여기에 바둑의 천재성이 더해지자 이세돌

9단은 바둑계 뉴스의 집중적인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

이창호 9단과의 승부, 세계대회 3회 우승, 공식대회의 기권. 과감한 멘트(한국 바둑계로만

치면), 풍부한 표정과 약간의 쇼맨십(?)으로 상징되는 이세돌 9단의 반상외 행마는 팬들의

인식 형성에도 큰 몫을 차지했다. '지나치게 돌출적이고 불안정하다는' 부정적 반응과

'항상 새롭고 천재적이다, 귀여운데다 그냥 좋다. 상쾌하다'라는 종류의 긍정적 반응들이

 혼재 된 것.

각국의 바둑관련 기자들은 이러한 이세돌 9단의 모습에 전반적으로 만족(?)했던 것 같다.

이세돌 개인을 좋아하고 싫어하고를 떠나 뉴스가 되었기 때문이다. 가령 한가지 예를 들면,

"KO로 화끈하게 이기고 싶다(8회 LG배 8강전 임전소감)", "마샤오춘은 빼달라(존경하는

기사 명단에서) "는 멘트와 이세돌 9단의 얼굴 사진은 역시 좋고 싫음의 판단여부를 떠나

독자들을 끌어당긴다. '독자의 관심' 이건 정말 중요하다. 역시나 사건을 찾아야 하는 기자들

 입장에서는 이세돌 9단은 일단 관심의 대상일 수 밖에 없었다.

이 9단을 좋아한 것은 한국의 바둑TV PD들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이유는 역시 이 9단의

스타성이 한 몫 하고 있다. 관련자들 말로는 "이세돌 9단이 해설을 하거나 방송을 할 때

이9단의 소녀팬들이 바둑 해설을 알아듣기 위해 애를 쓴다"는 것이다. 물론 여타 대중

스타들에 비하면 팬들의 규모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다. 중요한 것은 이 소녀팬들 대부분이

 바둑을 모르면서도 이 9단의 말을 알아듣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이다. 글쎄..?. 한국의 바둑

스타나 바둑영웅으로 대우 받는 프로기사들중에 바둑을 전혀 모르는 소녀팬들을 확보한

경우는 이세돌 9단이 유일무이한 것 아닌가?.

바둑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바둑용어를 이해하는 고통은 아주 크다. 바둑룰을 이해하고

직접 돌을 쥐게 되는데 일정한 시간이 필요함은 물론이고.

한사람의 바둑계 스타가 팬들로 하여금 그러한 고통의 시간을 투자할 수 있게끔 할 수

있다면 개인의 호불호(好不好)를 떠나, 바둑계 자체로서는 큰 득이자 선(善)이 아닐까?

 적어도 이세돌 9단은 그 정도의 매력을 발산했던 것 같다.

사무실의 웹 디자이너도 바둑을 모르지만 이세돌 9단을 좋아한다. 바둑을 전혀 모르지만

이세돌 9단으로 인해 바둑이 어르신들만의 따분한 오락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고 이야기

한다. 구경 한번 못해본 이세돌의 존재가 그녀 마음에 존재하던 바둑의 고정관념을 고쳐

놓은 것이다. 디자이너가 아쉬워 하는 것은 요 근래 이 9단이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던 것,

많은 사진을 수집해 놓고 이 9단이 메인타이틀로 등장하기를 바랬지만 이상하게도 그때

부터 이세돌 9단의 세계대회 성적은 하향세였다. 이 때문에 뉴스에서도 좀 멀어지고,

사건(?)도 줄어들고.

실제로 2003년 10월부터 이세돌 9단은 세계대회에서 판맛을 보지 못하고 있다. 구체적인

패배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로인해 승부의 중심에서 약간 비켜선 것과

동시에, 이세돌 9단에게 쏟아지던 무수한 칭찬과 논란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일종의

비판만이 덩그러니 남게 됐다.

따끔한 훈계와 비판도 좋다. 지나친 자만심과 돌출행동은 본인과 주위에 모두 상처를

입히기 마련이므로. 그러나 이세돌 9단이 가진 빛나는 스타성이 바둑계에서 일찌감치

사라진다는 것은 대략 곤란한 듯 하다. 가령 이세돌 9단이 다시금 큰 성적을 낸다

하더라도, "열심히 하겠습니다"하는 앵무새 멘트만 날린다면, 그 이상의 '이세돌 효과'는

 전혀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비판은 거의 사라지고 철들었다는 반응이

주류를 이루겠지만서도.

이세돌 9단. 나이가 들어가면서 '톡톡튀는 맛'은 거의 사라지게 되어있기 마련이라

미리부터 '스타성'과 동반하는 개성을 꼭꼭 눌러 버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스타성과

실력을 고루 갖춘 기사가 최소 한명쯤은 존재해야 하고 또 우리가 그런 기사를 더욱

키워내야 하지 않을까? 그런 기사가 한명 이상 존재한다는 것은 한국 바둑계의 행운일

것이며, 그러한 기사의 스타성이 그냥 스르르 자연도태되는 현상이 나타난다면 크게 반길

일은 아닐 듯 싶다.

이미지는 '메트릭스 리로디드(Reloaded)'편에 나온 포스터와 이세돌 9단을 합성한 것.

영화의 내용과는 관련은 없지만 글자 그대로 재충전(Reloaded)된 이세돌 9단의 모습이

팬들에게 크게 소개되었으면 좋겠다.

지난 2003년 12월, 12년만에 세계대회 우승(8회 삼성화재배)을 차지한 조치훈 9단의

인터뷰가 생생하다.


- 세계 최강 이창호 9단의 뒤를 이을만한 후배를 한명 꼽는다면?


"하하 당연히 이세돌 9단입니다. 기질적으로 강해요."


[C군]

[참고자료5]

 

'돌부처' 무너뜨린 공격 바둑

 

이선재 문화부 차장 sjlee@imbc.com

바둑계에는 요즘 LG배 세계기왕전 결승에서 이창호 9단을 연파한 이세돌 3단이 단연 화제의 인물입니다. 이세돌 3단은 지난해 2개의 타이틀을 따내고 세계대회 4강에 오르면서 바둑담당 기자단 투표에서 이창호 9단을 제치고 최고기사에 선정됐습니다. 그렇지만 과연 이창호 9단을 제치고 최고기사가 될 만큼 실력이 있는 것일까 하는 데는 논란이 있었습니다. 이세돌 3단이 지난해 따낸 타이틀이 국내 1인자이자 세계 1인자인 이창호 9단을 상대로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 3단은 지난해 박카스배 천원전에서는 유재형 4단을 눌렀고 배달왕 도전기에서는 유창혁 9단에게 3승 2패로 이겨 타이틀을 따냈습니다.

결승 상대가 이창호 9단이었다면 이세돌 3단이 첫 도전기에서 그렇게 쉽게(?) 타이틀을 따낼 수 있었을까요? 프로바둑기사들이 이창호 9단에게 일단의 공포와 경외심을 가지고 있는 현실에서 바둑담당기자들은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바둑 담당 기자들의 의심과 결정은 LG배 세계기왕전 준결승에서 이세돌 3단과 이창호 9단이 나란히 결승에 진출함으로써 일찌감치 심판의 날을 맞았습니다.

▶이세돌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이윽고 지난 2월 26일, 서울 인터콘티넨탈호텔 신관에서 LG배 세계 기왕전 결승 5번기가 시작됐습니다. 바둑관계자들은 이창호 9단의 6대 4 우세를 점쳤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제 1국에서 이세돌 3단이 백을 잡고 126수만에 이창호 9단의 흑대마를 잡고 불계승. 다음날 27일 벌어진 제 2국에서도 흑을 잡은 이세돌 3단은 155수만에 불계승하면서 이 9단을 막판에 몰아넣었습니다. 바둑관계자들 어느 누구도 이러한 결과를 예상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제 바둑관계자들은 이세돌 3단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고 그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 지를 분석하는데 분주합니다. 바둑관계자들은 먼저 무엇보다도 이세돌 3단이 운이 좋다고 얘기합니다. 지난해 이세돌 3단이 바둑대회 결승에서 만난 상대가 이창호 9단이 아니어서 상대적으로 쉽게 타이틀을 따냄으로써 자신감을 가지고 됐다는 분석입니다. 그리고 이창호 9단이 최근 자신이 원하던 응창치배를 손에 넣음으로써 목표 성취에 따른 포만감, 혹은 꿈의 상실에 따른 허탈감에 사로잡혀 있는 때에 LG배 세계기왕전 결승에서 만나 손쉽게 승리를 거뒀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특히 해외에서 대국할 때도 호텔 방에서 바둑만 두고 지금까지 여자친구를 사귄적 없이 바둑 외길만 걸어온 26살의 이창호 9단이 지금 바둑 이외의 길을 바라보고 있는 때에 이세돌 3단이 이창호 9단과 만났다고 얘기합니다. 최근 이창호 9단은 대국이 없는 날은 언제나 테니스에 열중하고 있고 또 최근 모 여자 프로바둑기사의 생일날에 꽃을 선물했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왕위전 관전필자 박치문 아마 7단은 이세돌 3단이 겁이 없는 고수로서 이창호 9단에게 주눅들지 않고 자기 바둑을 둘 수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내놓고 있습니다. 프로기사들이 이창호 9단에게 일종의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지만 이세돌 3단은 그렇지 않고 또 공격과 타개, 특히 수읽기에 능하다는 분석입니다.


 

▶겁없는 10代의 자유분방함이 최대 강점

다른 말로 하자면 오히려 뚜렷한 특징없이 18살 젊은이다운 자기 멋대로의 바둑이 강점이 라는 분석입니다. 이세돌 3단은 요즘 젊은 세대처럼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고 만화를 즐겨보며 여자를 사귄적 있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얘기합니다. 이창호 9단의 진중함이 조훈현 9단의 속력행마를 멈추게 했다면 이세돌 3단의 그러한 자유분방함이 이창호 9단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해석입니다.

필자는 LG배 세계기왕전 결승 1, 2국 이후에 이세돌 3단을 만나서 자신의 바둑을 스스로 어떻게 평가하는지 물었습니다. 이세돌 3단은 잘 모르겠다고 답하며 단지 자신은 공격 바둑이니까 계속 공격 바둑을 두겠고 조금 모자란 형세판단을 보강하도록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창호 9단이 요즘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것 같으며 특히 처음으로 나이 어린 후배 기사와 결승에서 만난 것이 부담이 된 것 같다고 얘기했습니다. 또 연승은 했지만 이제서야 LG배 기왕전에서 우승할 확률이 반반이 됐다며 겸손의 말을 빼놓지 않았습니다.

바둑계는 이세돌 3단이 LG배 세계 기왕전을 따낸다면 이창호 9단과 함께 2강 체제를 이끌고 그 뒤에서 여러 군웅이 할거하는 시대로 들어설 것으로 예견합니다. 바둑 세계최강국의 자리를 15년 넘게 차지하고 있는 우리 바둑계는 이창호보다 8살 어린 이세돌 3단이 뒤를 받침으로써 그 자리를 더욱 굳건히 지켜갈 수 있게 됐습니다.

 

[참고자료 6]

 

이창호 해법을 제시한 이세돌

 

최철한 7단의 승전보를 분석하려면 먼저 이세돌 9단이 뿌린 씨앗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걸음 앞서 이창호 9단을 '금가게' 한 폭풍의 사나이였기 때문이다. 천년요새 같기만 하던 이창호의 아성 일각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최철한 7단 이전에 이세돌 9단에서부터 찾아야 한다. 다음 음악 얘기 한토막으로 이세돌 바둑을 설명하는 편이 빠를지 모르겠다.
    
'악성(樂聖)' 베토벤의 음악도 빈 음악계에 처음 선보였을 때는 제법 센세이셔널 했던 모양이다. 그 시대 음악정서에 비추어 상당히 모던한 요소를 담은 베토벤의 음악에 젊은이들은 열광했지만 기성세대들은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듯하다.
베를리오즈의 스승이면서 프랑스의 저명한 음악교수인 르쥐외르(Lesueur)는 학생들 사이에 굉장한 인기를 누리고 있던 베토벤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베토벤 음악세계에 매료된 제자 베를리오즈의 성화에 못이겨 르쥐외르는 베토벤의 C단조 교향곡이 연주되는 음악회에 가게 되었는데(우리에게 '운명'으로 알려진 그 유명한 5번 교향곡 말이다), 연주가 끝난 뒤 감상을 묻는 제자의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선 바람을 좀 쐬야겠어. 굉장하군. 모자를 쓰려고 했을 때 내 머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였어. 지금은 아무 말도 할 게 없네. 다음에 얘기하세."


베를리오즈의 회상록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이세돌 9단의 바둑을 이 정도라고 말한다면 과장일까? 고개를 갸우뚱 하는 분들에게는 그렇다면 대신 '엽기 바둑해설자'로 유명한 김성룡 8단의 말을 여과 없이 적어 드린다.
"한마디로 말해 이세돌의 바둑은 현대바둑 기술의 집산체라 할 수 있습니다. 초반 포석, 중반 전투, 종반 끝내기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출중한 실력을 가진 존재지요. 조훈현, 유창혁, 그리고 심지어 이창호의 장점을 모두 아우른, 구체적으로 말해 승부욕에 있어서는 전신(戰神) 조훈현을, 파괴력에 있어서는 유창혁을, 끝내기에 있어서는 신산(神算) 이창호에 버금간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기력만 가지고 얘기하자면 바둑사에 참으로 대단했던 기사들은 많다. 여기에 성취한 업적까지 보태면 아직 이세돌 9단은 찬란한 금자탑을 쌓은 이창호 9단이나 조훈현 9단보다 훨씬 아랫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세돌 9단을 '대단하다'고 말하는 까닭은 이렇다. 이창호 9단보다 선배대열인 조훈현 9단이나 유창혁 9단 딱 두명을 제외하고는(그러나 이 두 사람은 궁극적으로 이창호와의 백년전쟁에서 참패를 했다고 봐야 한다) 동년배나 후배기사 대열에서는 그 누구도 감히 열 엄두를 못냈던 '이창호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거침없이 열어젖힌 첫 번째 주자였기 때문이다. 이창호를 향해 떠난 숱한 도전자들이 하나같이 함흥차사일 때 '이창호라의 실타래'를 쾌도난마(快刀亂麻)처럼 풀어젖히고 살아돌아온 유일한 생존자였기 때문이다.


바둑사에서 이창호와 이세돌을 거론할 때 2001년과 2003년, 두 번에 걸쳐 펼쳐진 LG배 세계기왕전 타이틀 매치 얘기로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다. '창세기', 이창호의 첫 이름자 창(昌)과 이세돌의 세(世)를 따 '창세기(昌世棋)'란 신조어까지 탄생시켰던 2001년과 2003년의 LG배 결승5번기. 2001년 시절의 바둑계는 지금보다 더 이창호라는 서슬 퍼런 칼날에 부들부들 떨고 있을 때였다. 이때만 해도 이세돌은 다크호스 정도였지 선입마 대열에 선뜻 끼어줄 만큼 인정받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미완의 대기였다고 할까.

그런데 예상을 뒤엎고 LG배 결승1·2국에서 이창호 9단을 연파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한 판 이기기도 어려운 이창호에게 두 판을 내리 이겼으니 난리가 나는 것도 당연했다. 그러나 한달 뒤 재개된 결승3·4·5국에서 이세돌은 내리 세 판을 지며 뼈아픈 대역전패를 당했다.


 

 

그렇지만 이때 이세돌은 그나름 이창호에 대한 해법을 찾은 듯하다. 그것은 먼저 실리를 확보해놓은 뒤 이창호의 두터움을 치열한 전투로 격파하는 전략이었다.
이창호 바둑, 하면 강태공을 떠올리게 하는 기다림, 느긋함의 바둑이다. 슈퍼컴을 방불케 하는 정밀한 형세판단과 계산력으로 초중반보다는 후반 끝내기로 승부하는 바둑이다. 그렇기에 초중반에 눈에 띄는 우세를 잡지 않으면 따라잡히기 일쑤다. 세계 일인자인 만큼 모든 부분이 골고루 강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상대적으로 포석과 전투에 약한 면을 보인다. 바로 이 점을 집중공략한 것이다. 싸움이라면 '천부적인 파이터' 소리를 듣는 이세돌이었고 번개처럼 빠른 수읽기는 이미 소문이 좌-하던 터수였다.

 


(이 글은 [신동아] 4월호에 실린 글에서 발췌한 것 입니다.)


 

[참고자료 7]

 

이세돌론

 

 

이세돌은 우선 호전적이다. 화전(和戰) 양면의 갈림길이라면 그는 망설임없이 싸움을

택한다. 많이 이기고 있을 경우 대부분의 기사들은 되도록 분쟁을 피한 채 철수하지만

(이를 바둑계에선 ‘추위를 탄다’고 한다) 이세돌의 사전에 백 스텝이란 여간해선 없다.


지난 3월 제7회 LG배 세계 기왕전 결승전이 좋은 예다. 이세돌이 3대1의 스코어로

이겨 대망의 우승을 차지한 것은 이미 구문이 됐거니와, 그 과정이 ‘양보없는’ 도발의

연속이었다.

그는 끊임없이 싸움을 걸었고 전투를 통해 승기(勝機)를 잡아갔다. “앞으로, 앞으로”

만 외치다가 자칫했으면 역전당할 뻔도 했건만 그는 다음 판에서도 똑같은 길을

답습했다. 우승이 결정된 뒤 열린 회견에서 누군가가 이를 지적하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그래도 수가 보이는 걸 어떻게 합니까?”


수읽기가 전광석화 처럼 빠른 것, 발상이 자유 분방한 것도 이세돌의 매력이다.

천재형 기사들이 대부분 그렇듯 이세돌의 운석(運石)은 고정 관념에서 멀지감치

떨어져있다. 빠르고 새롭고 정확한데 더 무얼 바라랴. 현란한 검광(劒光)을 흩뿌리며

 국제 대회 2관왕(LG배, 후지쓰배), 국내 2관왕(LG정유배, KTF배)에다 주니어

1관왕(신예 10걸전) 등 타이틀을 주렁주렁 달기 시작했으니 팬들이 열광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여기에 이세돌의 ‘튀는 언행’이 또한 무시 못할 폭발력을 갖고있다.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실력으론 내가 1인자”란 말을 공공연히 하고 다녔다. 선후배

간 위계 질서가 엄격한 실력 사회에서 이것은 사실 금기 사항이다. 실적으로

증명하지 못하면 자체로 망신이고, 증명하더라도 “건방지다”는 손가락질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뜻 밖에도 이세돌을 ‘철없는 망나니’로 비방하는 사람은 없었다. 많은

선배들은 이 뛰어난 후배의 재주와 외향적 기질을 두루 감안하면서, 그의 호언을

일종의 자기 최면 수단 정도로 인정해 준 것이다. 반대로 팬들에겐 이런 건방진(?)

언행은 더 없이 즐겁다. 이세돌 아닌 다른 기사였다면 물론 통하지 않을 얘기다.

외국 헤비급 복서들이 경기 전 낙승을 장담하는 것은 마케팅을 감안한 쇼 적 색채가

강한데,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세돌은 무례한 철부지라기 보다는 흥행 감각이

뛰어난 승부사인지도 모른다.


스타가 속 마음을 고스란히 내비칠 수록 그 뒤의 결과는 더욱 주목을 끄는 법.

이 과정에서 또 재미있는 해프닝이 속출하게 마련이다. 제7회 LG배 시상식 때

있었던 일. 물경 2억 5천만원 짜리 상금 보드(board)를 받아든 그는 한창 기분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어느 방송 기자가 마이크를 내밀고 소감을 묻자 이세돌은

이렇게 말해버렸다.

 

“앞으론 한 판도 안 져 올해를 전승으로 마감하고 싶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기세가 한창 충천하던 때였으니까, 이세돌이 아니라 누구라도 속으론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입 밖으로 내 놓을 말은 아니지 않겠는가.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즐비한데, 우승을 독점하겠다는 정도도 아니고 아예 모든 판을 이겨버리겠다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선배들은 이번에도 직접 대꾸는 안했지만 아연한 표정들이었고, 매스컴은 신이 나서 그의 발언을 고자질(?)해 댔다.


그랬는데 그 직후부터 이세돌은 연패에 빠져들었다. KT배 2국에서 유창혁에게, 명인전서

윤현석에게 패하더니 일본 오키나와로 건너가 치른 아시아컵에선 일본과 대만 기사에게

잇달아 무릎을 꿇었다. 귀국 직후 유창혁과 치른 KT배 최종국서 다시 져 준우승에 그쳤고,

그 전날 열릴 예정이었던 안조영과의 왕위전 리그는 불참해 기권패 처리됐다. 9일엔 패왕전

준결서 윤성현에게 졌다. 약 20일 사이 3승 7패란 참담한 성적표를 손에 쥔 것이다.

 

 

이번엔 이세돌의 기권패가 바둑 동네의 엄청난 화제로 떠올랐다. 이세돌의 일거수

일투족이 팬들에게 모조리 관심꺼리임은 앞서 지적한 대로다. 안조영에게

기권패하기 전에 이세돌은 왕위전 리그에서 3연승을 마크 중이었다. 유일한

전승자였으니 도전권도 유력했다. 그처럼 중요한 바둑을 포기했다니 팬들이

들끓은 것도 당연했다. 왕위전 리그는 선두권에 대 혼선이 빚어졌다.

 

이세돌 측은 “진짜 감기 몸살이 심했다. 도저히 출전할 형편이 못돼 당일 아침

불참을 통고했다”고 했다. 그 직전의 아시아컵 때 보여준 전적을 보더라도 이세돌의

컨디션이 나빴다는 건 충분히 짐작된다. 하지만 일각에선 “바로 다음 날 KT배

결승에 대비, 체력을 비축하기 위한 전략”이라느니, “중요 대국 하루 앞에 또 다른

중요 대국을 배정한 한국기원에 대한 항의성 시위”니 하는 추측이 잇따랐다.


대국 수가 워낙 많은 이세돌이 기원 측과 종종 트라블을 보여 온 것은 사실이다.

체력 때문이건 전략적 차원이건, 이세돌이 대국을 포기하는 경우는 심심치않게

발생한다. 그의 왕위전 불참의 정확한 사유는 본인과 측근들 밖에 모른다. 여러

추론들이 복합된 결과일 수도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 모든 과정이 팬들에겐

재밋거리를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 기권패에 대해 “사유야 어떻든

기사는 무조건 대국에 임해야한다”는 지사(志士)형, “국보적 프로를 보호해야 할

기원의 직무 유기”란 행정가형, “체력도 중요한 실력의 일부이므로 본인의 책임”

이라는 검사형까지 네티즌들의 반응도 다양하다. 이세돌의 대국 불참 ‘습관’을

살펴보자. 그는 승단 대회를 3년이나 외면, 눈부신 활동이 무색하게 三단으로

만 4년간을 머물렀다. “실익은 전혀 없이 시간만 빼앗는다”는 게 그가 승단 대회를

외면한 이유였다. 과거 승단 방식이 많은 모순과 불합리를 안고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숱한 선배들이 거쳐간 관문을 이렇게 정면으로 박살 낸 기사는 그가

처음이었다.승단 방식은 2003년 초에 전면적으로 개편됐다. 별도의 승단 대회를

없애고 국내외 기전 성적으로 대체키로 한 것이다. 꼭 이세돌 때문 만이라곤 할 수

없었지만, 이 혁신적 변화에 그가 큰 동기를 부여한 것도 사실이다. 승단 대회

불참 이력과 관련해서도 말들이 많았었다. “이세돌의 분명한 의사 표시와 행동이

없었다면 혁신도 미뤄졌을 것”이란 옹호론, “혼자 중뿔나게 튀는 언행의 연장이었

을 뿐”이란 비판이 지금껏 양립해 있다.

 

하지만 三단에서 불과 40일이 채 못돼 七단으로 네 계단을 뛰어 올랐으니 누가 뭐래도 이세돌

은 뉴스 메이커다. 과정이야 어찌됐건, 이세돌이 한번 움직일 때마다 화제가 우수수하고 떨어

진다해서 과언이 아니다. 그의 사고(思考)와 가치관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이세돌 어록(語

錄)’을 뒤적여보는 것으로 이번 얘기를 마무리한다.


“어떤 각오로 대국을 시작하느냐고요? 무조건 이긴다고 생각하지요.”

 

“아, 싸울만 해서 싸워요. 수가 보이는데 어쩌란 말이에요.”

 

“큰 누나가 빨리 시집을 가야 할텐데? 보낸다고 가나요? 자기가 알아서 가야지.”

 

“나도 여자 친구가 없는 걸 보면 인기가 없나봐요. 큰일이에요.”

 

“비금도(이세돌의 고향) 인구 수 잘 몰라요. 내가 뭐 면장도 아니고.”

 

“히카루의 바둑에 나오는 그 바둑 귀신이요? 에이, 그거 별 거 아니더라구요.

그 때는 초읽기도 없었는데, 얼마든지 이길 수 있어요.”

 


 

이홍렬 기자님의 글 입니다.




 

 

[i진선 한 마디]

 

여름이 덥다고, 불평할 일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여름은 여름다워야 하고, 겨울은 겨울다워야 합니다.

 

여름이 여름같지 않고, 겨울이 겨울 같지 않다면,

 

재미없어서 우째 살겠습니까^^::?

 

이만 줄입니다.

 

꾸벅  

TYGEM / i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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