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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요절복통 호주 바둑 30년 비사(2)
[국제] 요절복통 호주 바둑 30년 비사(2)
2004-11-01 오후 8:34:08 입력
[1부에 이어 연결되는 글 입니다.]
그런데 평소 명랑하던 데이비드에게 가끔씩 슬픈 표정이 보여 나중에 물어보니 5년간
자넷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동안 생긴 슬픔의 응어리란다. 자넷과 헤어진 가장 큰 이유가
바둑이란 얘기를 듣고 나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를 바둑 중독으로 이끈
장본인이 다름 아닌 나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가정생활과 공동 행복 추구를 최우선으로 하는 서양식 가치관 앞에선
바둑광이 설 자리가 없다. 아마 그래서 대학교수 출신인 돈 포터와 톰 포인튼 등이 60이
넘도록 독신으로 사는지도 모른다. 미래에 이들과 같은 운명이 될지도 모를 호주의 젊은
바둑 중독자들을 볼 때마다 내 심정은 착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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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入神과 황제’는 ‘하늘과 땅’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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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7일 시드니 한인회관에서는 시드니 바둑축제(Sydney Baduk Festival)가 성대하게
펼쳐졌다. 호주한인바둑협회창립 20주년 기념 행사였다. 축하사절로 ‘바둑황제’ 조훈현
국수와 양재호 9단이 참석했다. 두 사람은 한국교민들을 비롯해 유럽계 호주인, 중국계
호주인 등이 참여한 다면기(多面碁) 형식의 지도대국을 가졌다.
조훈현 국수는 호주 챔피언인 신명길 아마 7단과 특별대국을 가졌고, 이를 양재호 9단이
흥미롭게 공개 해설하는 팬 서비스를 제공했다. 양재호 9단은 해설 도중 한 호주
기사로부터 “양재호 9단은 입신(入神)이고 조훈현 9단은 입신이면서 황제다. 황제와
입신의 차이는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자 “하늘과 땅 차이”라며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이에 대해 조훈현 국수는 나중에 “수졸(바둑에 막 입문한 초급자)이나 입신은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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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행사의 한 순서인 ‘조훈현, 양재호와의 대화’ 시간에는 호주 기사들과 중국계
기사들이 많은 질문을 던졌는데, 특히 데본 베일리 회장은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
중에서 한국의 인구가 가장 적은데도 한국 바둑이 오랫동안 세계 정상을 지키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고 물었다. 이에 조 국수가 “나도 잘 모르겠다. 혹시 그 이유를 안다
해도 국가기밀일 텐데 그걸 말해줄 수 있겠느냐”고 답해 청중의 폭소를 자아냈다.
필자는 다음과 같은 축시로 시드니한인바둑협회 20주년을 축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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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두는 사람들] 87
뭍이 그리워서 달려온 바다
세상번뇌와 욕망을 벗고
바다 건너온 도인(道人)의 기침소리에
깊은 밤에도 강은 흐른다
차안(此岸)과 피안(彼岸)의 경계 |
(계속)
바둑 낭만주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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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리 회장은 이날 축사를 통해 호주 한인바둑 20년을 평가하면서 “전반기 10년을
한상대 교수가 이끌었다면 후반 10년은 최해택 화백이 이끌었다. 특히 최 화백은 한국
호주 중국 일본의 바둑을 하나로 묶어냈고 ‘바둑 낭만주의’를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바둑 낭만주의’는 1991년 개원한 시드니 기원에서 출발했다. 한국에서 화가로
활동하다 호주에 온 최해택 화백이 자신의 작업실을 개조해 작업실 겸 기원으로
만들었던 것. 20평 남짓한 시드니 기원은 호주 최초의 기원이었다.
기원이 문을 열자 한국 출신 바둑 애호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동안 바둑을 두고
싶어도 마땅한 상대와 장소가 없었던 호주 사람들과 중국·일본계 사람들도
환호작약했다. 주말이면 네 나라 출신의 바둑 애호가들이 모여서 바둑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최해택 원장은 화가답게 기원을 바둑만 두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이 국적을
초월해 교제하고 술 마시며 노래하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바둑인들은 시드니
기원과 근처 ‘템테이션’이라는 이름의 카페를 오가며 항구도시의 낭만을 만끽했다.
시드니 기원에서는 한국 호주 중국 일본의 기사들이 참가하는 ‘4개국 바둑대회’가
열렸고, 한국 호주 중국의 챔피언이 참가하는 ‘3개국 슈퍼리그’도 펼쳐졌다.
‘호주·뉴질랜드 정기전’도 그곳에서 치러졌다.
그러나 최 원장 한 사람의 힘만으로 ‘바둑 낭만주의’를 계속 유지하기는 힘들었다.
그가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작하면서 기원 문을 닫았다. 그후로도 여러 사람이
기원을 운영했으나 시드니 기원의 낭만적인 무드를 이어가지는 못했다.
최 화백은 그후에도 한인바둑회장 등을 역임하며 4개국 대회와 3개국 슈퍼리그
등을 계속 열었다.
시드니 한인바둑협회 창립 2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조훈현 국수와 양재호 9단을
초청한 것도 최해택 전 회장의 제안에 서학범 현 회장과 운영위원들이 뜻을
같이함으로써 성사됐다. 문제는 조 국수의 수락 여부였는데, 뜻밖에도 그는
아무런 조건 없이 기꺼이 초청에 응했다.
조 국수의 시드니 방문은 호주 바둑계에 큰 경사가 아닐 수 없었다.
바둑을 두지 않는 한인 동포들과 호주인, 중국계에게도 큰 뉴스였다. 특히 중국계의
반응은 아주 뜨거웠다. 조 국수와 함께 방문하는 양재호 9단은 이미 세 번이나
호주를 방문한 바 있다. 호주에는 양재호를 사랑하는 모임인 ‘양사모’ 회원도 여럿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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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2勝의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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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훈현 국수의 호주 방문을 앞두고 중국계의 반응을 알아보기 위해서 고이밍(郭伊鳴)
아마 7단 등을 만났다. 그들은 필자도 미처 살피지 못했던 조 국수의 최근 정보를
줄줄이 꿰고 있었다. 그들의 얘기를 잠깐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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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세계 챔피언은 이창호 9단이다. 중국에서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하지만 그의 스승인 조훈현 9단은 중국인들에게 특별한 존경을 받고 있다.
한 번 스승은 영원한 스승이기 때문이다. 또한 최근 뉴스에 의하면 조훈현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이긴 프로기사라고 한다. 입단 이래 최근까지 1442승을 거두었다니
경이로울 뿐이다. 지금까지 2000판 이상의 대국을 가진 사람이 서봉수 9단,
린 하이펑 9단, 조훈현 9단 세 사람뿐인데, 그중에서도 조 국수는 78%의 승률을
기록하고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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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인 수치까지 들먹이는 걸 보고 어안이 벙벙해 “어떤 경로로 조훈현 국수의
최신정보를 얻었냐”고 묻자 “중국 인터넷에 들어가면 한국 바둑뉴스가 자세하게
실려 있다”고 했다. 중국 본토도 아닌 호주에 사는 아마추어 기사들이 조 국수의
이력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지만, 중국 바둑이 한국 바둑을
뛰어넘기 위해서 무척 애쓰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다.
조 국수의 호주 여행은 한마디로 ‘명랑 소년 호주방문기’였다. 그만큼 유쾌한
기분으로 시드니 일정을 즐겼다. 공식 초청된 손님 역할은 물론이고 행사장
분위기를 즐겁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는 날카로운 외모와 ‘바둑황제’라는 명성과는 달리 시종일관 장난기 넘치는
언행으로 주변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마치 구중궁궐에 갖혀 지내다 저잣거리로
뛰쳐나와 낄낄대는 ‘개구쟁이 황제’ 같았다. 필자의 이런 평가에 조 국수는 “원래는
장난치고 만화 보는 것을 무척 즐기는 쾌활한 성격이었는데, 어린 나이에 말도 통하지
않는 일본으로 건너간 뒤부터 성격이 좀 바뀐 것 같다”고 했다.
동서고금의 황제들은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무기력해지거나 타락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조 국수는 ‘영원한 현역’을 자임하면서 무섭게 성장한 후배들 틈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여러 날 함께 지내다 보니 그가 신으로부터 세 가지 큰 선물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첫째는 바둑의 천재성이고, 둘째는 정미화라는 부인, 셋째는 선천적으로 술을 마시지
못하는 체질이다. 술을 못 마시다 보니 남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바둑에 정진할 수 있는 여건을 갖게 됐다는 것. 술은 각박한 삶의 긴장을 이완시키는
역할도 하지만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데는 큰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 국수는 맹물을 가득 채운 소줏잔을 들고 다니면서 건배도 하고
“어, 취한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물을 마시고도 술 취한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흥겹게 어울리는 것을 보니 거의 주신(酒神)의 경지에 이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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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한 스승, 더 독한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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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방문에 동행한 부인 정미화 여사가 들려준 금연에 관한 에피소드에서도 조훈현
국수의 단호한 성격이 진하게 배어났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5일 만에 담배를
끊었다. 줄담배로 유명했던 조 국수가 담배를 끊기로 결심한 건 타의에 의해서였다.
해외여행 중 비행기에서 담배를 참는 것이 힘들었고, 미국에 사는 절친한 친구
차민수씨(드라마 ‘올인’의 주인공 모델)가 강하게 금연을 권유했다. 특히 차씨는
여러 날 함께 지내는 동안 집에서는 절대로 담배를 못 피우게 했다고 한다.
그러던 차에 ‘금연초’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이 집으로 찾아왔고, 조 국수는 “이게
운명이다” 싶어 금연을 결심했다는 것이다.
정작 조 국수의 금연을 미심쩍어했던 사람은 부인이었다. 그 당시 왕위전 도전기가
지방에서 열려 여행가방을 챙기면서 평소 하던 대로 담배를 넣었는데, 남편이 떠난
다음에 보니 담배가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고 한다.
정미화 여사는 금연으로 인해서 리듬이 깨진 조 국수의 성적이 나빠질 것으로 예상,
친구들에게 “한동안 굶고 살아야겠다”고 농담을 했다는데, 실제로는 금연 후의 성적이
더 좋았다. 체중이 늘어서 고생한 것말고는 금연 후유증은 없었다고 한다.
부인의 얘기를 듣고 있던 조 국수가 제자 이창호 얘기로 화제를 돌렸다. 그는
“창호는 나보다 더 지독하다”며 다음과 같은 일화를 들려주었다. 이창호가 스승이
지닌 타이틀을 하나하나 빼앗아가던 시절 얘기다.
“나는 대국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휴식을 취하면서 TV를 보거나 가벼운 마음으로
바둑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잠자리에 들기 전 창호의 방을 살펴보면
불은 켜져 있는데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에 그의 방을 열어보면
한 손엔 바둑책, 또 한 손엔 바둑알을 쥐고 쓰러져 잠들어 있었다. 담배 끊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강한 정신력이다.”
조 국수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정미화 여사의 철저한 내조가 큰 몫을 했다는 얘기가 있다.
대부분의 천재들이 그렇듯 조 국수는 세상 물정에 어둡고 현실감각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바둑말고는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다. 하물며 운전조차 부인의 몫이다.
조 국수는 “아내가 모든 일정을 관리해주는 매니저라서 편하다”면서도 “다만 좀더
쉬고 싶은데 일정을 너무 빡빡하게 잡아놓아 불만일 때가 있다”고 했다. 물론
정 여사는 “엄살떨지 말라”고 일축했지만.
정 여사는 ‘조훈현-이창호 사제대결 10년’을 회고하면서 이런 일화를 들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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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돌아보면 참으로 못할 짓이었다. 남편과 창호의 대결이라서 드러내놓고 어느
한 쪽을 응원할 수 없었지만 궁금한 건 참을 수가 없었다. 남편은 결과를 묻지 말라고
했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당시 대국 결과를 알아보기 위해 신문사나
대국장으로 전화를 가장 많이 건 사람이 나였다. 기자들이 내 목소리를 알아챌까봐
아주 난처했는데, 마침 한국기원에서 전화 자동응답 서비스를 해줘서 한숨 돌렸다.
나중에 보니 그 서비스를 가장 많이 이용한 사람도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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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문당한 소년 조훈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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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훈현 국수는 부채에다 ‘무심(無心)’이라는 글자를 써서 몇몇 호주 바둑인들에게
선물했다. 신명길 아마 7단이 부채를 받아들고 한마디했다.
“‘무심’은 조 국수님의 바둑 스타일과는 거리가 먼 것 같은데….”
조 국수는 껄껄 웃더니 소년 시절 일본에서 파문당한 얘기를 들려줬다.
“열한살에 일본으로 바둑유학을 가서 세고에 겐사쿠 선생의 문하생(內弟子)이 됐다.
세고에 선생은 70이 넘은 노인이었다. 처음엔 무척 엄하다는 생각만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사람의 경지를 뛰어넘은 분이었던 듯하다.
일본에서 내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두 분이 계신데, 한 분은 세고에 선생이고
또 한 분은 후지사와 선생이다. 그런데 두 분의 성품은 정반대였다. 겉모습도
수도승 같았던 세고에 선생의 삶은 ‘고요’ 그 자체였다. 거의 말씀 없이 지내시다가
가끔씩 한말씀하셨는데 처음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었지만 곰곰이 되새겨보면
그 뜻이 너무 깊어서 많은 것을 깨닫게 했다.
반면 후지사와 선생은 스케일이 아주 큰 분이다.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다르고
살아가는 방식도 판이하다. 주색잡기(酒色雜技), 즉 여자 술 노름 등에도 도통했다.
예술과 스포츠 분야에서에도 일가를 이뤘다.
세상 물정 모르는 내가 이런 두 분과 지내다보니 헷갈리는 것도 많았지만, 양쪽
세계를 다 배우는 행운을 얻었다. 세고에 선생은 함께 살면서, 그리고 후지사와
선생님은 바둑을 함께 두면서 나의 정신세계를 열어주셨다. 세상을 물끄러미
관조하는 깊은 강 같은 세고에 선생의 정신세계와 바람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세상과 부딪치면서 삶의 뜻을 음미해보는 후지사와 선생의 정신세계는 언뜻
생각하면 크게 다른 것 같지만 궁극적으로는 같다는 생각도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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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훈현 떠나자 자살한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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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후지사와 선생과 내기바둑을 둔 게 화근이었다.
하루는 후지사와 선생이 한 판에 100원씩 걸고 바둑을 두자고 했다. 세고에 선생이
알면 큰일날 것 같아 ‘싫다’고 했지만, 후지사와 선생이 ‘내가 책임지겠다’고 해서
내기바둑이 시작됐다.
하루는 내가 내리 6판을 이겨서 선생이 600원을 주셨다. 열세살짜리에겐 짭짤한
용돈이었다. 그 사실을 후지사와 선생이 사방에 자랑을 하고 다녔다. ‘조훈현이라는
내 제자한테 돈을 잃었다. 그놈 정말 세다’라고. 그 말을 들은 기자들이 세고에
선생님께 고자질을 했다. 선생께서 나를 불렀다. 그리고 딱 두 말씀을 했다.
‘내기바둑을 뒀느냐?’ ‘보따리 싸서 나가라.’ 파문을 당한 것이다. 한번 파문은
영원한 파문이었다. 본가에서 쫓겨난 나는 2주 동안 식당에서 심부름을 하는 등
고생깨나 하다가 선생께 싹싹 빌고 나서 겨우 용서받았다. 그때는 세고에 선생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나는 아직도 무심의 경지를 모른다. 다만 그 경지에 들고 싶어 붓으로 쓰고
마음으로 써볼 뿐이다. 세고에 선생은 아마도 그 경지에 들었을 것이다.
도인(道人)이나 선인(仙人)이었으니까….”
세고에 겐사쿠 9단은 조치훈, 하찬석, 고바야시 등 수십명의 문하생을 둔
기타니 사단과는 달리 평생 몇 안 되는 제자만 키웠다. 일본의 하시모토 9단,
중국의 오청원 9단, 그리고 조훈현 9단이 대표적인 제자들이다. 다들 동양 3국을
대표하는 프로 기사들이다.
세고에 9단은 오청원과 조훈현을 키운 뒤 “중국과 한국에 진 빚을 조금이나마
갚았다”며 아주 흡족해했는데, 조훈현이 병역을 치르기 위해 귀국하자 몹시
애통해했다고 한다. 그는 절친한 친구이던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자살하고 조훈현마저 떠나자 고독감에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유서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나 먼저 간다. 내 사랑하는 제자 조훈현이를 다시 데려다가 크게 성공하도록 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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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세계 최강은 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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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훈현 국수 일행이 시드니에 머무는 동안 줄곧 대화를 나눴다. 인터뷰도 했지만
대부분 함께 여행하면서 허물없이 주고받은 얘기들이다. 그 내용을 정리해봤다.
-현재 한국 바둑은 세계 최강이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으며, 이런 추세가 언제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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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핏속에 바둑에 적합한 기질이 숨어 있는 것 같다. 1988년 내가 운 좋게
제1기 잉창치배에서 우승하면서부터 한국세가 위력을 떨치기 시작했다. 당시엔 일본
바둑이 도저히 넘지 못할 벽처럼 느껴졌는데, 한번 고비를 넘기니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특히 1990년대에 이창호는 기적 같은 일들을 이뤄냈다.
현재 프로기사로 활동하는 사람이 일본에 400명, 한국에 200명, 중국에 100명
정도 있다. 그중에서 한국이 질적으로 단연 우위에 있다. 요즘 세계대회를 휩쓴다고
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실제로 한국이 모든 층에서 두터운 세를 형성하고 있고
실력도 발군이다. 앞날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중국이나 일본에 이창호 같은 ‘괴물’이
나타나지 않는 한 한국의 독주는 오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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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긴장과 이완의 연속이다. 조 국수는 늘 긴장하면서 대국하는가.
“프로기사들의 긴장과 불안감은 바둑돌을 놓기 전까지다. 바둑을 시작하면
몰두해야 하기 때문에 긴장감조차 잊어버린다. 바둑판밖엔 보이는 게 없다.
그러나 바둑이 끝나면 피로감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만일 매일 대국을 한다면
몸과 정신 모두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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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억에 남는 대국은?
“뭐니뭐니 해도 제1기 잉창치배 대회다. 개인적으로도 큰 전환점이었지만 한국 바둑이
융성기를 맞는 출발점이 됐다.”
-12억 인구의 중국 전체가 성원하는 녜웨이핑 9단을 꺾었을 때 조 국수는
기뻤겠지만 중국은 실망이 컸을 텐데.
“내가 우승하는 순간 대국장 분위기가 마치 초상집 같았다. 하지만 사실은 4국과 5국
내내 녜웨이핑 9단의 얼굴이 돌처럼 굳어 있어 내가 이길 수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
중국은 대국답게 정중하게 예의를 지키면서 실망감을 삭여내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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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조 국수가 바둑을 통해서 이룰 것은 다 이뤘다고 말한다. 실제로도 그러한가.
“나를 몰라서 하는 소리다. 나는 아직도 내가 가는 길의 끝을 보지 못했다. 그건 욕심이
많아서가 아니라 길을 가다 보면 또 다른 길이 계속해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도전해야
할 목표도 계속해서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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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心의 경지를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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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상대한 기사 중에서 승률이 가장 나쁜 상대는? 또한 현재 세계 최강자는
누구라고 생각하며, 본인의 세계랭킹은 어느 정도라고 보나.
“통틀어 승률이 가장 나쁜 상대는 당연히 이창호다. 그러나 지금은 이세돌 등에게도
승률에서 밀리고 있다. 세계 최강은 두말할 것도 없이 이창호다. 그는 상당히 오랫동안
정상을 지킬 것이다. 현재 나의 세계랭킹은 잘 알 수 없지만 톱10에서 벗어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바둑이 점점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만 늘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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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삶의 굴곡이 있다. 바둑이 아닌 다른 일로 좌절하여 바둑을
그르친 일은 없는가.
“왜 없겠는가. 한때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방황했다. 노는 일에 정신이
팔려서 바둑공부를 게을리한 때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대체로 운이 좋았고 평탄한
삶을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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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국수 일행이 한국으로 떠나기 전날 밤 체커스 리조트 호텔 이종원 회장이
송별만찬을 마련했다. 이 회장은 조 국수 일행이 시드니에 머무는 동안 숲속에
자리잡은 자신의 호텔에 머물도록 후원했다. 만찬이 끝난 후 “석별의 정을 노래로
나누자”는 바둑회원의 제안에 따라 교민이 운영하는 노래방으로 갔다. 조 국수는
저녁 내내 맹물 소줏잔을 기울이면서도 분위기를 한껏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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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노래점수로 ‘갑오 떼기’를 하여 상금을 주자는 특이한 제안을 해서 분위기를
후끈 달아오르게 했다. 그러나 동점이 나오면 상금은 무효가 된다. 참가자가
10여명이 넘다 보니 동점이 나오는 것은 당연지사. 자정 가까운 시각까지 결판이
나지 않자 조 국수는 “다음에 시드니에 와서 결판을 내겠다”며 상금봉투를
봉수(封守) 처리했다. 봉수는 이틀 동안 두는 일본바둑에서 첫날의 마지막
수를 적어 봉투에 넣어두는 것.
조 국수는 헤어지는 게 못내 아쉬운 듯했다. 그는 양재호 사범에게 “왜 자꾸 시드니에
가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양 사범의 대답은 항상 “가보시면 알게 됩니다”였단다.
그는 “막상 시드니에 와보니까 양 사범의 말뜻을 알겠다”면서 “꼭 시드니에 다시 와서
못다 나눈 정을 나누겠다. 부디 그때엔 ‘무심(無心)의 경지를 헤아렸으면 좋겠다”는
고별사를 남겼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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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진선 한마디] 조훈현 국수님 정말 멋진 분이시죠^^::? 이런 좋은 기사 적어주신 윤필립님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사진은 제가 호주 풍광을 적당히 편집해서 넣었습니다. 기사 읽는동안 잠시 눈 쉬시라고요^^:: 하지만 원 사진은 훨씬더 아름다운데...ㅠ.ㅜ::용량의 벽 때문에... 픽셀을 줄여서 올렸습니다...ㅠ.ㅠ:: 널리 이해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윤필립님께 좋을 글에 대하여 제가 인사 메일 한 번 보내드려야 겠네요^^:: 꾸벅 업글 중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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