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사쿠 - 1645년 출생.
슈사쿠 - 1829년 출생.
우칭웬 - 1914년 출생.
이창호 - 1975년 출생.
비록 도사쿠와 슈사쿠의 출생 사이에는
180여 년에 걸치는 시차가 있지만, 일찍이 일본에서
바둑 천재의 출현에 100년 주기설이 제기된 적이 있었다. 만일 바둑 천재가
일정한 주기 하
에 출현하고 있다면 그 시대는 바둑 발전이 거의 답보상태에 가까운 계기적
발전과정에 있음
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과연 오늘 한국바둑을 통해 보여지고 있는 역동성은 어떻게
해석돼야 할
것인가. 한 시대를 통해 이창호 국수의 출현이라는 패러다임의
변화인(變化因)과
또 조훈현, 유창혁, 이세돌, 최철한 9단 등과 같은 변증법적
변화인이 동시에 작용하
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이런 변화인들이 함께 작용한다면, 오늘의
물리학계와 마찬가
지로 바둑계에서도 새로운 천재가 출현하는 주기는 점점
짧아져야 한다.
이와 같은 현실인식은 우칭웬 기성과 이창호 국수간의 상대적 비교를 위한 가장 큰 전제가
된다.
우칭웬 기성의 전성기를 1939년
기타니(木谷實)와의 십번기를 그 시발점으로 잡아보기로
하자. 그리고 1956년 다카가와 명인과의 십번기를 거쳐 1962년 제1회 일본
명인전을 그
종점으로 간주하겠다. 그렇게 보면 우칭웬
기성의 전성기는 무려 23년에 걸치게 된다.
반면 이창호 국수의 전성기는
린하이펑을 상대로 제3회 동양증권배를 쟁패했던 1992년을
시점으로 잡겠다. 여기서 이창호 국수의 활동은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에서 현 시점을
통하여
전성기가 어디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가장
보수적이고도 비관적인 관점
에서 이제 갓 서른을 넘어 선 이창호 국수의 바둑이, 근래 거듭되고 있는 부진
가운데 현 시
점에서 권불십년(權不十年)으로 딱 멈춰 섰다고 가정을 해보자.
그렇다면
2004년을 기준으로 이창호 국수의 전성기는 12년에 머물게 된다.
설혹 그렇다고 해도 이창호 국수가
바둑계에 몰고 온 패러다임의 변화에는 그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다시 말하자면, 우칭웬
기성과 이창호 국수간에 전성기라는 기간개념에서의 비교는 무의미
하다는 것이다. 기간은 단지 개인의 활동환경에 결부된 문제이며 그런 의미에서
바둑계 전체
를
통해서는 그 기간이 짧아지면 짧아질수록 오히려 바람직스러운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바둑이라는
게임이 갖는 논리적 측면을 강조한다면, 바둑에서의 패러다임의 변화는
미로찾기 식의 전투바둑에서보다는 분명 계산바둑 쪽에서
비롯되고 있다. 그런 의미
에서 나는 전투바둑의 한계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촉진시키는 변증법적
변화단계에
머무는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전투바둑을 통해 계산바둑을 극복했다고
해도 결국 전
투바둑의 안정성은 계산으로 귀결되고 승부를 통해 그 효과가 증명될
수밖에 없기 때
문이다.
얼핏 이런 나의 주장은 닭이 먼저냐 아니면 계란이 먼저냐는 식의 무의미한 순환논리로
비춰
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순환논리가 아니다. 계산바둑과 전투바둑이 명백히
인과성을 갖
는 선.후행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그 근거는 바둑에서 결국 사석으로 귀결되는 전투라는 개념이 생겨나기 전에 이미
집이라는
개념이 선행논리로써 자리잡고 있었다는 의미에서이다. 즉 전투 또한 변에서의
일립이전, 이
립삼전과 같이, 사석을 통해 집을 만들어 가는 한 가지 방법이며 수단이라는 것이다.
바둑에서의 전투는 두 가지 양상에서
나타난다.
전술적 측면으로는 현재의 국면에서 대국자 상호간에 현재 인정하고
있는 집의 불균
형에서 비롯된다.
또 전략적 측면에서는 앞서 말한 이세돌, 최철한 9단의 경우처럼,
과거의 경험칙(經
驗則)들을 교란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써 나타나지기도
한다.
따라서 바둑의 전투는 전술적 측면에서는 유격전 형태의 국지전의
양상으로 전개되
고 전략적 측면에서는 처음부터 전면전의 양상을 띄게
된다.
과거 두터움을 바탕으로
한 이창호 국수의 치밀한 계산력은 바둑에 패러다임의 변화를 불러
왔다.
그렇다면 가능성이라는 면에서, 이창호 국수의 미래의 지향점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비교적
대답은 간단히 나올 수 있다. 이번엔 전투까지를 포함하는 계산력으로 또 다른
새로운 패러
다임을 불러 올 수뿐이 없다. 내가 이창호 국수에게 있어 미래의 지향점이 곧
재귀점으로 귀
착될 수뿐이 없다는 이유이다.
계기적 변화는 그 모순율에 의해 변증법적 변화를 야기시키고 변증법적 변화는 그
승수효과
(乘數效果)로 인해 급기야 패러다임의 변화를 몰고 온다.
이 모든 가능성들에 초점을 맞춰보면 이창호 국수는 분명 축복 받은 시대의
행운아이기도
하다.
한국 바둑사를 통하여 조남철 선생님과 김인, 조훈현 국수는 한국바둑의 계기적
발전단계에
드리운 커다란 징검다리였다. 여기에 변증법적 변화의 물꼬를 튼 위대한 기사가
서봉수 명인
이었다. 김재구 8단이 그 어떤 숙명론 가운데 일찌감치 승부를 체념해 갔고,
김수영 7단이 군
사부일체라는 삼강오륜의 덕목 속에서 주춤하고, 강철민 사범은 안정된 생활을 찾아
외도에
나섰고, 그 와중에 정창현 8단이 아까운 나이에 요절을 해 갔으며, 김희중
기왕조차 속기를
통해 보여 온 스스로의 천재성에 자족하고 있을 때, 서봉수 명인만은 조훈현
국수에게 끝까
지 승부로 맞서갔다.
전 번 글에서도 암시했듯, 최소한 한국바둑은 서봉수 명인의 출현을
기점으로 이미 우칭웬
기성의 '기본적인 골격'을 벗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창호 국수를 통해
나타난 패러다임의 변화는 같은 시대에 걸친 조훈현 국수의 계기
적 변화와 거기에 끊임없이 부딪쳐 갔던 서봉수 명인이 불러 온
변증법적 변화의 상
승효과였다. 한편 이창호 국수가 불러 온 패러다임의 변화가 최명훈
9단, 안조영 8단
등에 의해 계기적 변화로 수용되기도 전, 오늘 또 다른 세대에
속하는 이세돌, 최철
한 9단 등에 의해 변증법적 변화를
불러왔다.
이창호 국수에게 또 다시
새로운 패러다임을 기대해 볼 수 있는 근거 또한 이와 같은 한국바
둑의 역동성 가운데 있다. 이 끝없는 가능성 가운데 이창호 국수가 위치하고 있다는
점. 바로
이런 점에서 이창호
국수는 타고난 시대의 행운아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창호 국수에게는 여전히 우리에게
규명되지 않은 두 가지 점이 있다. 왜 규명될 수 없었는
가. 그 두 가지 점이 바로 우리에게 계기적 단절을 불러 온 패러다임의 변화였기
때문이다.
그 하나는 이창호 국수가 알고 있으며 현재도 두고 있으면서 말할 수 없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현재 두고 있으면서 스스로 알고 있지 못할지도 모를 어떤 것이다.
이 점에서 나는 후일 이창호 국수가 승부의 세계를 벗어나게 되었을 때, 한국바둑의 보다
큰 발전을 위해 방송해설 쪽보다는 학계로 진출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언젠가도 말했듯, 패러다임 속에는 수많은
패러독스가 내포돼 있다.
패러다임의 변화를 그 변화의 중심에서 인식하는 우리의 안목 또한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현재 눈앞에서 보여지고 있는 패러다임의 변화조차 패러다임의 변화로써 인식하지 못한다.
다만 그 변화가 계기적 시간 속에 수용된 연후에야 비로소 지난 시간의 일들을 패러다임의
변화로써
어렴풋이 인식하게 될 뿐이다.
선지자가 자신의 고향 땅에서, 심지어 자기 시대를 통해서도 대접받지 못하는
이유이다.
따라서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언제나 주인 떠난 빈 관을 놓고 치루어 내는
성대한 예식이 되기 일쑤이며 더러는 영혼조차 깃들 수 없는 위패 앞에 헛 제사 밥만 잔뜩 차
려놓고 고작 내 배만 채워가게 되는
무위(無爲)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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