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달은 역전극이 낳은 신예들의 화려한 반란 제7회 LG배 세계기왕전 8강전은 잇달은 역전극이 해운대의
밤하늘을 수놓은 명승부 열전이었다.
신예들의 화려한 반란! 그 역전의 현장을 하이라이트로 조명해본다.
○이세돌 3단 ●박영훈 3단
이세돌의 역전 KO펀치
후지쯔배 우승으로 세계정상급의 반열에 올라선 이세돌과 최근 농심배의 히어로로 떠오른 박영훈의
대결은 '가장 잘나가는 최강신예'의 맞대결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그런데, 승부는 정작 이상한 곳에서 갈렸다.
초반부터 착실한 실리작전으로 국면을 리드하던 박영훈이 어이없는 착각 끝에 불의의 일격을 맞고 KO패한 것.
장면도
(어이없는 박영훈의 실족)
사방의 흑 실리가 돋보이는 가운데 우변에서 흘러나온 백대마가 몰리는 상황이라서
누가보아도 '흑 우세'의 국면. 박영훈은 흑1의 성동격서 작전에 이은 패싸움으로 손바람을 내는데, 이 패에
집착한 나머지 그만 어이없는 패착을 범한다.
백24때 불청한 흑25가 패착! 백26으로 잡으며, 이세돌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데…, 박영훈은 흑27을 두는 순간까지도 곧 닥쳐올 비극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이내 떨어진
백28이 필살의 일격! 이 한방으로 흑대마(●)는 숨 한번 못쉰 채 절명하고 말았다. 이 모두 중앙 요석(▲)이
잡힌 후유증이었다.
실전진행
(흑대마 횡사)
백△를 당한 이상 흑대마는 살 길이 없다(백A와 B가 맞보기).
불의의 일격을 당한 박영훈 3단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다 흑11로 좌변을 움직이는
승부수를 던졌으나, 이미 승부는 기울어버린 상황.
결국 좌변을 살리고도 다시 하변 흑진에서 크게 수가 나자 박3단은 돌을 거두었다.
<174수
끝, 백 불계승>
.
참고도
(흑 유망한 형세)
백1의 용패(用覇)에 무조건 흑2로 받아야 했다.
이로써 흑대마 전체의 삶이 보장될 뿐더러 A, B의 수단이 남아 중앙 백이 매우 엷은 모습 아닌가.
게다가 좌변 백진에는 C를 비롯한 흑의 팻감이 즐비해 패싸움도 버틸
수 있었다.
이랬으면 흑이 유망한 형세.
○이창호 9단 ●유창혁
9단
'이창호+두터움'의 명국
이창호를 표현하는 대명사는 뭐니뭐니해도 '두터움'일 것이다.
이 바둑은 이창호의 두텁고도 안전한 반면운영이 유창혁의 예리한 칼끝을 무디게 한 명국으로 꼽힌다.
그 대표적인 장면을 하나 뽑아본다.
장면도
(두터운 팻감)
백이 약간 재미있어 보이는 중반인데, 흑1로 따내자 갑자기 백도 바빠졌다.
이 패를 지는 날이면 우하 흑말이 안정함과 동시에 우변 백진이 엷어진다. 그렇다고 치사하게 백A 따위로 지키는
것은 생각할 수 없고….
고민스러운 장면에서 이창호 9단은 백2로 공격의 포문을 열었는데…,
이 수가 절호의 팻감인 동시에 백 전체를 두텁고 안전하게 만드는 승리의 견인차가 되었다.
실전진행
(백, 우세확립)
밖으로 나가기 힘들게 된 흑은 9까지 자체 삶을 구할 수밖에
없는데, 이 대마가 여전히 미생마라서 흑으로선 더이상 우하 패싸움을 버틸 수 없다. 게다가 우변 백진 침투는
언감생심!
결국 하변 흑대마의 삶을 위협하며 백은 자연스럽게 우변 백진을 굳히고
선수까지 뽑아 대망의 백26에 선착해 우세를 확립했다
<285수
끝, 백 3집반승>
참고도
(백, 엷은 팻감)
백2처럼 근거와 실리를 도려내며 내쫓는 팻감을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부분만 생각하는 단견. 흑3으로 나가고 나면 오히려 백의 엷음이 일시에 노출되어 형세도 크게 흔들리게
된다.
이곳에서는 더 이상의 팻감도 나오지 않는다.
○원성진 4단 ●저우허양(周鶴洋) 9단
꽃놀이패로 되레 망한 저우허양의 자멸극
한국의 4강 싹쓸이를 막을 중국의 마지막 보루 저우허양(周鶴洋) 9단은 지난해 국제무대에서 이창호
9단을 연파하며 한때 중국랭킹 1위(현재 2위)까지 올랐던 맹장.
이날도 뛰어난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완승의 국면을 이끌었는데, 막판 중대한 형세오판으로 통한의 역전패를 당한다.
장면도
(화를 부른 꽃놀이패)
이 바둑은 중반까지 흑의 낙승무드. 그래서 모두들 흑의 승리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는데,
종반들어 흑의 완착이 거듭된 끝에 가랑비에 옷 젖듯 차이가 좁혀진다.
이제 심상치 않음을 느꼈을까, 저우허양은 돌연 흑3으로 패를 걸어 승부를 보자고 대든다. 사실 이런 패는 보통
흑의 꽃놀이패여서 백의 역부족처럼 보였으나, 실은 그게 아니었다.
'패는 팻감많은 사람이 이긴다'는 속담이 있듯 팻감이 백에게 넘쳐나는 걸 어쩌랴.
백14로 나가자
A의 약점이 노출되면서 이곳이 백의 팻감공장으로 변했다.
그리고 어느덧 중앙 흑대마와의 수상전 양상이 된 것도 흑의 부담거리.
실전진행
(흑, 참패)
흑은 한사코 패를 버텼으나, 우변 백의 팻감공장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결국 흑43으로 해소하고 보았으나, 백44로 중앙 흑대마가 잡혀서는
흑의 참패.
<258수 끝, 백 불계승>
참고도
(아직도 형세불명)
그냥 흑3으로 이었으면 극미하나마 아직도 흑에게 희망이 있는 바둑이었다.
○조한승 5단 ●조훈현 9단
'반집의 부메랑'을 맞은 조훈현
승부의 부메랑이라고 할까.
얼마전 삼성화재배 8강전에서 뤄시허(羅洗河)에게 기적같은 반집 역전드라마를 연출했던 조훈현이 이번에는 '리틀 조' 조한승에게
통한의 반집 역전패를 당했다.
울산에서 뤄시허 9단이 그런 것처럼, 이 바둑에서 조훈현 9단은 막판까지도 이길 수 있는 숱한 코스를 외면한 채 지는 길로만
가다가 딴 '반집'을 지고 말았다.
막판 역전장면을 슬로우비디오로 살펴보자.
장면도 (역전극의 도화선)
초장부터 줄곧 비세에 허덕이던 조한승 5단은 조훈현 9단의
낙관을 틈타 종반 맹추격을 벌였으나, 아직도 한참 부족하다. 그래서 우상귀 패를 한사코 버텼는데, 그 과정에서 조훈현
9단은 완착을 연발한다.
우선 백2때 흑3이 역전패의 시발점. 우상패를 해소했으면 흑의 낙승이었다.
조9단은 흑7을 믿고 있었으나, 백8의 맥점에 이어 중앙 백의 연결망에는 이상이 없다.
더욱 문제는 이 수를 당하자 조9단은 뜻밖이라는
듯 당황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끝내 역전극의 도화선이 되었다.
실전진행
(끝내 역전)
백의 미끼를 잡아먹은 흑3이 경솔한 악수. 백6까지 흑이
손해를 입어 형세가 극미해졌다.
그리고 흑27이 최후의 패착. 백28이 '지하의 반집'을 끌어올린 회심의 역전타!
결국 백30까지 마침내 백의 반집승이 확정되었다.
흑27로 30자리에 막았으면 흑의 반집승이었다.
<318수
끝, 백 반집승>
참고도
(흑의 낙승코스)
흑1로 안에서 받았으면 실상 백의 끼움수는 별게 아니었다.
흑5로 차단하면 백은 목숨을 구걸하며 살아가야 하는데, 그 사품에
흑13까지 이득을 취하고 흑15로 손을 돌렸으면 흑이 반면 10집 이상 남는 바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