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만루에서 터진 병살타
세계 여류바둑계를 대표하는 두 여걸이 펼친 스릴 넘치는 혈전이 일요일 오후를 멋지게 장식했다.
엎치락뒤치락하는 반전의 연속 끝에 결국 행운의 승리는 관록의 루이나이웨이(芮乃偉)에게 돌아갔지만, 세계최강 루이9단을 맞아
조금도 꿀리지 않는 자세로 당당히 맞서 싸운 장쉔(張璇)의 저력 또한 돋보이는 명승부였다.
특히 장쉔 8단은 긴박한 승부처에서 의표를 찌르는 묘수와 과감한 승부수를 잇달아 선보여 막강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그러나 '묘수 세 번 두면 바둑진다'는 속담대로랄까, 기막힌 묘수를 연발하고도 후속타 불발로 끝내 분루를 삼키고 말았다.
파란만장했던 이 바둑의 최대 승부처를 조명해본다.
○루이나이웨이(芮乃偉) 9단(한국) ●장쉔(張璇) 8단(중국)
[2003. 3. 9, 324수 끝, 백 불계승]
장면(장쉔의 묘수)
좌상귀에 뛰어든 ▲들의 삶 여부가 관건으로 떠오른 장면. 이 침입군을 깨끗이
잡을 수 있다면 백의 승리가 확실하다.
백1이 루이의 선택. 일견 이 한수로 좌상 흑말은 죽은 것처럼 보인다. 좌상에서 망외의 '포식'을 한 루이
9단은 흑2에 백3·5로 싹싹하게 물러서며 승리감을 만끽하고 있는데…, 여기서 돌연 경천동지(驚天動地)의 묘수가
터질 줄이야.
흑6이 회심의 일발! 장쉔 8단의 실력이 결코 녹록치 않음을 보여준 묘수였다. 일순 루이 9단의 얼굴이 시뻘개지고
말았다.
참고도1(백, 필승지세)
거슬러올라가 백은 1로 잡는 것이 깨끗한 정수였다. 다음 흑2에는 백3으로 그만.
이것으로 좌상 흑을 깨끗이 잡을 수 있었고, 바둑도 끝이었다.
참고도2(꽃놀이패)
흑▲의 묘수를 당한 이상 어떻게든 수가 나게 되었다. 백1로 버텨보아도 흑8까지 꽃놀이패!
참고도3(역시 백, 망함)
그렇다고 백1로 버티는 것은 흑2·4로 더욱 쉽게 수가 난다. △가 꼼짝없이 떨어지지 않는가.
실전진행1(백,
패색)
홍조를 띠며 고심하던 루이 9단은 하릴없이 백1로 물러서고 말았다. 결국 백9까지 패 발생!
그러나 백진 속에서 이처럼 꽃놀이패가 나서는 백의 패색이 완연하다. 더구나 지금 흑에게는 백의 양곤마(○와
□)를 추궁하는 팻감이 부지기수 아닌가.
그래서 이즈음 검토실은 루이 9단의 역전패를 기정사실화하고 있었다. "아! 한국의 국제대회 20연속
우승행진도 여기서 스톱이구나"라는 말까지 나돌면서….
그런데-
참고도4(놓친 수습책)
사실 ▲ 당한 다음에도 냉정하게 살펴보았으면, 아직 수습의 수단이 있기는 했다. 백1·3을
거쳐 백5·7이 피해를 최소화하는 묘수.
이렇게 처리했으면 여전히 백의 우세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루이 9단은 뜻밖의 묘수를 당한 당혹감에다 초읽기까지 몰리고 있는 긴박한 상황이라 이처럼 곡예줄타기
같은 묘수순을 찾아내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실전진행2(장쉔의 실족)
패싸움이 이어지고 있지만, 지금 상황은 백이 절망적이다. 흑에게 상하 백대마를 추궁하는
팻감이 워낙 많기 때문.
백9는 궁여지책. 애매하지만, 워낙 팻감이 딸리므로 일단 쓰고서 상대의 처분에 맡긴다는 기분이리라. 그런데,
여기서 뜻밖의 해프닝이 일어나고 마는데….
흑10이 긁어부스럼의 패착! 백11을 당하자 순간 흑의 헛손질이 드러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