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9단(왼쪽 두번째)과 권효진 3단(맨 오른쪽)이 제1회 정관장배 제2국에서
각각 승리, 한국팀의 '자매대결' 가능성이 높아졌다. [사진제공=중국 체단주보/송청운 기자]
어느덧 세계최강에 오른 세계 한국 여류바둑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하루였다. 한국의 자매콤비가 중국 최강 여류 투톱을 나란히 꺾었다.
루이나이웨이 9단
2월 18일 중국 베이징(北京) 화룬호텔에서 열린 제1회 정관장배 세계여자바둑선수권대회 준결승 3번기 제2국에서 루이나이웨이(芮乃偉) 9단이 화쉐밍(華學明) 7단을 꺾고 종합전적 2대0으로 결승에 진출했다(252수 끝, 백 불계승). 또 권효진 3단은 장쉔(張璇) 8단을 누르고 1대1을 기록, 승부를 원점으로 되돌려놓았다(294수 백 반집승).
이로써 제1회 정관장배 세계여자바둑선수권대회 결승전이 루이나이웨이 9단대 권효진 3단간의 한국팀 ‘자매대결’이 될 가능성이 열렸다. 권3단은 전날 열린 제1국에서 고전 끝에 패해 결승 진출이 어려워 보였으나, 이날 대국에서 강인한 집념으로 대역전극을 일구어내는 저력을 발휘했다.
루이9단대 화쉐밍 7단의 대국은 1국과 마찬가지로 치열한 전투가 계속됐다. 초반부터 접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루이9단은
중반 우중앙 전투에서 강력한 파워로 흑을 밀어붙여 승기를 잡았다. 화쉐밍 7단은 1국의 패배를 염두에 둔 듯 기세에서
밀리지 않으려고 맞받아쳤으나
루이9단의 괴력을 넘기에는 부족했다.
권효진 3단대 장쉔 8단의 대국은 중반까지만 해도 권3단의 패색이 짙어 결승 진출이 좌절되는 분위기였다. 권3단은 중앙 대세력 작전에 차질이 빚어지며 고전에 빠졌으나, 중반 이후 맹추격을 벌인 끝에 행운의 반집승을 거뒀다.
이날 대국에서 권효진 3단이 장쉔 8단과 동점을 만들며 승부를 제3국으로 이끌고 감에 따라 한국 대표로 나온
루이9단과 권3단간의 ‘자매대결’ 가능성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국은 가장 최근에 있었던 여류대회인 제1회
호작배 세계여자바둑선수권대회에서도 박지은3단과 윤영선 2단이 자매대결을 벌인 끝에 윤2단이 타이틀을 획득한
바 있다.
권효진 3단이 2국을 이긴 기세를 이어가 루이9단과 ‘자매대결’을 벌일지, 장쉔 8단이 중국의 자존심을 걸고 ‘한·중대결’로 만들지 그 결과는 오는 20일 같은 장소에서 속개될 최종국에서 결정난다.
'무서운 잠재력'을 인정받아왔던 권효진이 드디어 큰 일을 내려나.
자타가 공인하는 중국 여류최강 장쉔(張璇)을 꺾고 생애 첫 세계결승무대 진출을 눈앞에 둔 것. 특히 막판의 벼랑에서, 그것도 중반 한때 절망적이었던 형세를 딛고 이뤄낸 집념의 승리라서 더욱 값지게 보인다.
'반집 승부'라는 것이 늘 그러하듯, 이날 바둑은 토끼의 방심과 거북이의 혼신의 추격이 잘 어우러져 빚어낸 역전드라마였다. 희비가 교차한 역전의 순간을 살펴본다.
제1회 정관장배 세계여자선수권대회 준결승 2국
○권효진 3단(한국) ●장쉔(張璇) 8단(중국)<2003. 2. 18, 294수 끝, 백 반집승>
장면(역전패의 시발)
우중앙 흑대마를 쫓던 백이 극심한 공격실패의 후유증을 앓고 있다. 흑이 홰를 치고 안정해버리자 오히려 곳곳에서백의 엷음이 노출된 것. 그래서 이때만 해도 모두들 장쉔의 2대0 완봉승을 예견하고 있었는데….
정수대로라면 당연히 곤경에 처한 백대마(○)를 보살펴야하는 장면. 그러나 비세를 절감한 권효진 3단은 백1로 임시방편한 후 과감히 손을 빼 백3~11로 실리를 취하고 본다.
일단 집의 균형을 맞춘 다음 대마는 운명에 맡기겠다는 승부수! 그런데, 넉넉한 형세에 마음이 풀어졌을까, 상대의 독기에 질려서일까, 지금까지 강인한 운석을 펼쳐오던 장쉔 8단이 갑자기 여유를 부린다.
흑14, 자체로는 반상최대의 요소가 틀림없지만, 꺼져가는 백의 숨통을 열어준 수이자, 역전패의 시발점이 된 완착이었다.
참고도1(백, 곤경)
흑1이 대세의 급소!. 이로써 백대마(○) 전체가 휘청거리는 반면, 흑은 △를 확실히 제압하며 중앙에 상당한 실리를 확보할 수 있지 않은가.
백대마는 이미 이 자체로 생사가 위험천만인데다 설령 대마가 산다 하더라도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 같다. 이곳을 공격하다 적당한 시점에 선수를 뽑아 흑A로 손을 돌려도 늦지 않았던 것이다.
실전진행1(흑, 잇달은 완착)
▲와 흑2로 상변에 큼지막한 흑집이 형성됐다. 장쉔 8단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판단했을까. 또다시 완착을 범하는데….
흑4도 방향착오. 일견 기분좋은 급소 같지만, 백5·7이 놓이고 나자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빈사지경의 백대마가 상당한 집까지 만들며 안정하게 되지 않았는가. 특히 백7은 뼈아픈 급소였다. 어느덧 역전의 분위기가 감돈다.
참고도2(또다시 놓친 급소)
뒤늦게라도 흑1이 급소.
백2에는 흑3으로 자연스럽게 귀를 지킨다. 백대마는 아직 가일수가 필요한 모습이어서 또다시 선수는 흑에게 돌아온다.
말하자면, 흑은 필승의 급소를 두 번 연달아 놓친 셈이다.
실전진행2(마침내 역전)
흑1로 굴복하는 흑의 심정이 쓰라리다. 이후는 거의 백의 독무대. 흑10과 14를 기분좋게 선수하고 백16에 선착하는 백의 손길이 리드미컬하다. 백20~24는 신명나는 손바람!
백26~30으로 중앙에 뜻하지 않던 큰집이 생겨서는 어느새 형세가 역전되고 말았다.
이후 백의 실수로 다시 승부가 좁혀지기는 했지만, 권3단은 끝내 반집의 우세를 지켜냈다.
참고도3(흑의 최선)
A에 지킨 수로도 흑1이 좀더 나았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랬으면 실전에서처럼 중앙에 토실토실한 백집이 생기는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