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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배 세계기왕전

LG배 2회전 하이라이트②

승패의 명암을 뒤바꾼 묘기 퍼레이드

2003-06-21 오후 3:38:04 입력

백대현 5단의 말대로 이번 LG배 본선2회전은 유난히 흥미진진한 판이 많았다.

낙승이 예상되던 이창호 9단 판이 막판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대마를 때려잡은 것 같았던 유창혁 9단이 되레 대마를 잡히고, 절망적이라던 송태곤 4단 판이 반집승부가 되고…, 단명국으로 끝날 것 같던 이세돌 7단 판이 미세한 계가바둑으로 어울리고….

시종 손에 땀을 쥐게 한 명승부의 하이라이트를 모아본다.


'필살의 독수'가 '자살의 독약'으로

○창하오(常昊) 9단 ●유창혁 9단
<295수 끝, 백 5집반승>


그동안 국제무대에서 자주 만나 묘한 '라이벌 의식'을 갖고 있는 유창혁과 창하오. 그래서인지 두 기사는 이날 시종 유혈 낭자한 난타전을 펼쳤다.

두 기사의 대결은 늘 초중반 유창혁 9단이 대세관과 파워로 대세를 리드해나가다 종반 창하오의 끈끈한 뒷심에 덜미를 잡히는 패턴으로 흘러왔다. 그래서 통산전적도 3승5패로 유창혁 열세. 그런데, 이날 바둑도 그 패턴은 예외가 아니었다.

유9단은 중반 이후 해머펀치로 백대마를 그로기상태까지 밀어붙였는데, 결정적 순간에 과수가 튀어나와 또다시 역전패의 아픔을 곱씹어야 했다.

장면(패착이 된 강수)

최대 승부처가 된 우상접전. 유창혁 9단은 특유의 강펀치를 휘둘러 백대마를 곤경에 몰아넣었다.

이제 마지막 고비. 과연 백대마를 송두리째 잡으러 갈 것이냐, 살려주고 이득을 취할 것이냐의 고비에서 유창혁은 결연히 '필살의 독수'를 택한다.

흑1이 그것. 일견 흑A와 B가 맞보기여서 백 곤란! 그래서 이 무렵 바둑이 끝나는 것 아니냐는 설이 유력하게 나돌았는데….

그러나 귀의 특수성에다 자충 관계까지 품고 있는 이 곳 사활은 그렇게 간단치 않았다. 결과적으로 흑1이 패착의 누명을 뒤집어썼다.

실전진행1(카운터펀치 맞은 흑)

백1~9로 파호하자 흑도 완생에 실패해 결국 수상전 돌입.
그런데, 이때부터 창하오 특유의 끈끈한 수읽기가 빛을 발한다. 백13~27이 교묘한 수 늘리기. 이렇게 되고 보니 자충 때문에 흑은 곧바로 수를 조이지 못한 채 A, B로 돌아들어가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수상전 역전!

백29에 이르니 거꾸로 흑대마가 잡힌 것이다. '필살'이 '필사'가 되고 말았다.


실전진행2(흑, 역전패)

잡으러가다 거꾸로 대마를 죽인 유9단은 분연히 흑1~5로 패를 걸어 바꿔치기를 감행했으나, 백20까지는 흑이 밑진 과.

결국 섣부른 강수가 독약이 되고 말았다.


참고도(흑의 낙승코스)

대마를 잡지 않고 이기는 코스가 있었다.

흑1로 뛰어붙여 A와 B를 맞보는 것. 백이 두 집내고 살아가는 사품에 흑B로 끊어먹었으면 흑승이었다고 양재호 9단은 아쉬워했다.



중국최강의 저력에 막힌 '송타이슨'의 힘

○송태곤 4단 ●왕레이(王磊) 8단
<297수 끝, 흑 반집승>


상종가를 치던 '송태곤주'가 중국 랭킹1위의 벽에 막혀 한풀 꺾였다.

난전과 혼전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송태곤이지만, 초반 주도권 싸움에서 크게 밀리는 바람에 힘을 써볼 기회가 없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 일국이었다.

다만, 크게 뒤진 형세에서 막판 눈물나는 맹추격으로 반집까지 따라붙었다는 점에서 송태곤의 고래심줄같은 뒷심은 위안이 되었다.

장면(송타이슨의 방향착오)

흑1로 끊자 양분된 백을 수습해야 하는 장면.

백8이 빗나간 수. 흑9의 급소 일격을 얻어맞자 불현듯 백은 가슴이 답답해졌다.



실전진행(흑, 대세제압)

백1로 타개에 나섰으나, 흑2가 중국최강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날카로운 수!

전체 수습이 막막해진 백은 몸통 일부를 떼어주고 백13가지 변신을 도모했으나, 흑14로 뭉텅 잘려나가 백은 큰 손실을 입었다.

그리고 중앙 요석을 죽인 파급효과는 생각보다 커서 이후 백이 대세에 뒤지는 주원인이 되었다.


참고도1(김수장의 대안)

정연한 행마로 유명한 김수장 9단이 제시한 대안.

백1을 아낌없이 선수한 다음 백5로 틀을 잡았으면 실전보다 한결 나았다는 진단이었다.


참고도2(흑, 소탐대실)

만약 △가 ▲가 교환되어 잇는 상황이라면 흑1때 백은 2로 손을 돌릴 수 있다. 흑3이면 백4로 깨끗이 수습.
●들이 약화되어 이 그림은 흑도 별무신통이다. 그런데, 실전에서는 백△를 선수하지 못한 것이 너무 아까운 나머지 ○들을 선선히 버리지 못한 채 무겁게 끌고 나가다 키워 죽였으니, 실로 큰 차이.

'하수는 선수(先手)를 함부로 해치우다 지고, 고수는 선수를 너무 아끼다 진다'는 속담이 있는데, 결국 송4단은 절대선수인 △를 아끼다 대세를 그르친 결과가 되었다고 할까.

TYGEM/김창호 gigung@tyge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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