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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화재배

인터뷰/ 조치훈 “있는 힘 다해 두고 결과는 운명에”

삼성화재배 결승 진출한 조치훈 9단 인터뷰

2003-11-06 오전 11:56:22 입력

조치훈은 아름다웠다.
인터뷰를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조치훈 9단은 모처럼 세계대회 결승전에 진출한 기쁨 때문인지 기자의 인터뷰 요청에 흔쾌히 동의, 자신과 바둑에 관한 이런 저런 속얘기를 허물없이 털어놓았다. 그동안 조치훈 9단에 관한 인터뷰가 거의 없어 그에 대해 이런저런 추측들이 난무했는데, 이번 인터뷰는 그런 의혹들을 말끔히 씻어주었다.
특히 근래의 부진에 대해 "몸만 좋으면 언젠가는 다시 기회가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점은 그의 바둑에 대한 놀라운 집념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었다. 조훈현 9단, 박영훈 4단에 대한 평가 역시 조치훈 9단다웠다. 자신이 일본 대표인 점보다는 한국인인 점을 더 의식하며 대국에 임했던 조치훈 9단의 얘기를 들어본다.

-모처럼 세계대회 결승에 진출했는데, 소감 한 마디.
생각지도 않았는데, 운좋게 결승까지 오르게 되었다. 오랜만에 결승에 올라와서 기분 좋다. 다른 대회에서는 대체로 마지막에 반집을 지곤 하는데, 뜻밖에도 반집을 이기게 되었다.

-이번 제8회 삼성화재배 본선 대국 중 가장 힘들었던 판은?
모든 판이 다 나빴다. 특히 원성진 5단과 둔 16강전은 매우 운이 좋았다. 하변이 죽은 줄 알았는데, 바둑을 두다보니까 어떻게 사는 수가 보였다. 삼성화재배 본선 대국 내내 좋은 운이 따랐다.

-8강전에서 '숙명의 라이벌' 조훈현 9단을 이기고 올라왔는데…
책임감을 많이 갖게 되었다. (한국선수 중에) 박영훈 4단이 준결승전에 진출하긴 했지만, 그래도 우승후보인 조훈현 9단을 이긴만큼 잘 두어야겠다는 책임감이 들었다.

-준결승전 두판 모두 초반부터 장고를 거듭해 초읽기에 일찍 몰렸었는데?
그래도 내 입장에서는 빨리 둔다고 둔 것이다.(웃음)

-이번 준결승전에서 초반에 신수를 구사했는데, 특별한 연구라도 있었는가?
전혀 없었다. 바둑판 앞에 앉으니까 그 수가 두고 싶어졌다. 하지만 다시는 두어서는 안 될 수 같다(웃음). 결과적으로 후수가 되어서 나빴다.

조훈현 9단 이기고 난 뒤 책임감 생겨
원성진 판 묘수, 대국 중 우연히 발견

-삼성화재배 본선 대국 때문에 한국에 자주 오는데, 기분이 어떤가?
고국에 자주 오니까 여러면에서 좋은 점이 많다. 특히 한국말을 많이 배우게 되어서 좋다. (실제 조치훈 9단은 예전에 비해 한국어가 많이 는 것으로 보였다)

-이번에 삼성화재배 본선에서 한국에 최강 신예기사는 물론, 조훈현 9단, 후야오위 7단 등 강자를 연거푸 이기고 결승까지 오르게 되었는데….
상대가 강자니까 마음을 비우고 욕심없이 둘 수 있었다.

-요즘 컨디션이 매우 좋아보인다.
바둑(성적)이 나빠지니까 몸이라도 좋아져야지(웃음). 몸만 건강하면 언젠가는 다시 한번 기회가 찾아올 거라고 생각했다.

-건강 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나?
술을 안 마실려고 노력한다. 술을 잘 마시지는 못하지만 함께 어울리는 것이 재미있어 술을 자꾸 마시게 되는데, 술자리를 줄인 뒤부터 체력이 좋아진 것 같다.

-이번에 영남대에 도착한 뒤 온천에 두번이나 갔다 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가?
술을 안 마시려고 온천에 갔었다(웃음).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있으면 술을 자꾸 마시게 되니까.

-얼마전까지 일본 내 기전에서 매우 부진했었는데, 슬럼프였는가?
성적이야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이번에 일본에서 기성전 도전자 결정전을 치르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일본으로 다시 넘어가면 곧 두게 된다.

-조치훈 9단은 그동안 일본에서 수많은 기록을 세웠다. 그중에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기록은?
사카다 선생보다 타이틀을 더 많이 딴 것을 꼽고 싶다. 최다 타이틀 기록이 하나가 더 많은데(2002년 7월 기록, 총 65회 우승) 그 뒤에 너무 부진해서 그것으로 끝나는 줄 알았다. 자격도 없고 실력도 없는 나에게 너무 과분한 기록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삼성화재배도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출전했다.

-일본은 아직 자국내 기전만큼 세계대회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은데?

나는 세계대회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아직 이틀 바둑이 제일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세계 바둑이 변하고 있다. 제한시간이 줄어들고 있는 건 세계적인 추세이다. 바둑팬들도 이틀 동안 두는 바둑보다는 하루만에 끝나는 바둑을 보고 싶어한다.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이틀바둑을 두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그것이 편하긴 하지만, 제한시간은 짧아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조9단은 자신이 인터넷, 휴대폰을 처음 접했을 때 느낌을 밝히면서 시대의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고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렇다면 조치훈 9단은 개인적으로 제한시간이 얼마인 바둑을 선호하는가?

나는 딱 3시간짜리 바둑이 좋다.

조훈현, 운명적인 사람?
박영훈, 사랑스러운 사람?


-이번에 꺾은 후야오위 7단은 중국의 대표적인 신예기사이다. 중국 신예기사의 실력은 어느 정도로 여겨지는가?

상당한 실력이다. 준결승전 제2국 때에 종반에 아무리 계가를 해봐도 내가 반집을 이긴 것 같은데, 이를 믿을 수가 없었다. (신예기사들에게는) 보통 내가 반집을 지곤 하는데….

-조훈현 9단과 '숙명의 라이벌'로 불리는데, 조훈현 9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존경한다. 조훈현 9단이 한국에 와서 한국 1인자가 되었기 때문에 한국바둑이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었다. 조훈현 9단이 일본에 계속 머물렀으면 한국이 이렇게 성장하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운명인 것 같다.

-결승전에서 만나는 박영훈 4단에 대해서는?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바둑 뿐만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어느 누구에게라도 자랑할 수 있는 후배라고 생각한다.

-결승전에 임하는 포부는?
즐거운 마음으로 둘 것이다. 한국선수인 박영훈 4단이 결승에 올라온 만큼 꼭 이겨야 된다는 부담감을 버리고 편안하고 둘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힘들게 올라온 세계대회 결승전인만큼 우승은 꼭 하고 싶을 것 같은데, 자신 있는가?
꼭 우승해야겠다는 생각은 없다. 그냥 있는 힘을 다해서 바둑을 두고 운이 따르면 이기고 운이 따르지 않으면 질 뿐이다. 평소 중요한 대국에서 질 때도 실력 때문이라기 보다는 운이 없어서 졌다고 여기는 편이다. 이길 때도 마찬가지다. 즐거운 마음으로 두겠다.

TYGEM/최철용 a4g@tyge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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