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판 역전극 때문일까. 9시간에 걸친 열전 끝에 우승을
확정지은 조치훈의 얼굴에는 기쁨보다는 멋적음과 얼떨떨함이 묻어있었다.
그러나 인터뷰가 진행되자 이내 평정심을 찾은 듯 여유롭고
친절한 자세로 답변에 응했다. 국후 박영훈 4단과의 간단한 복기를 마친 조치훈 9단에게 우승
소감을 들었다. "한국말이 서투르다"는 세간의 억측을 불식시키듯 통역이 거의
필요없을 정도로 유창한 한국어로 소감을 밝혔다.
-먼저 우승 소감 한마디….
▶조치훈 9단=100% 진 바둑이었는데, 운이 따른 것 같습니다.
-임전소감을 통해 "이런 큰 승부는 운이 좌우한다"고
한 바 있는데, 과연 그렇게 된 셈인가요?
▶그렇습니다. 제가 오늘 다 진 바둑을 역전승한 것도 역시 운이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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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나고 나면 '운명'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검토실에서도 모두들 백(조치훈 9단)이 불리하다고 했는데, 형세를 그르친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백100,
102가 졌으면 패착입니다. 백104 자리에 곧바로 끊어야 했는데, 거기서 잘못 두어 일거에 바둑이
나빠졌지요.
-12년만에 세계정상에 복귀해서 감회가 새로울 텐데요.
▶^^ 12년이나 됐나요. 하도 오래 돼서 저는 기억도 잘 안납니다.
이번이 세계무대의 마지막 기회라 각오하고 출전했는데, 그 덕분에 결과가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실력이나 기대에 비해 세계대회에서 줄곧 부진했던 이유를 두고
궁금해하는 한국팬들이 많은데, 뭐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하나는 바둑이 약해서지요.
둘째는 그동안 줄곧 일본 내에서 타이틀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세계대회에서 꼭 이겨야 한다는 필승의 각오나 신념
같은 게 덜 했던 게 사실입니다.
-그전에 비해 소비시간이 많이 줄어든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과거에 비해 제 바둑이 좀 빨라졌지요. 그런 노력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조명인님의 바둑은 "목숨을 걸고 둔다"라는 말이
상징하듯 과거 필승의 신념으로 뭉쳐진 치열한 바둑이었는데, 최근에는 바둑관에 다소 변화가 느껴지는데요.
▶^^워낙 많이 지고 있으니까요.
-이번 우승을 계기로 다시 성적을 내실 수 있을지요.
일본 정상에 복귀할 자신이 있으십니까?
▶네, 물론 그렇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결승 파트너인 박영훈 4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정말 좋은 후배기사입니다. 바둑도 세지만, 자세나 모든 면에서 자랑스러운 후배라고 느꼈습니다.
그전에도 좋아했지만, 특히 이번에 저에게 져주어서 더욱 좋아졌습니다.^^
-요즘 한국에서는 '바둑의 스포츠화' 시책이 한창 추진되고
있는데, 바둑이 예도냐, 스포츠냐의 명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일본에 건너갈 때, 배울 때만 하더라도 바둑은 예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바둑이 세계화되는 추세에 발맞추어 스포츠적 요소가 포함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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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우승까지 가장 어려운 고비가 있었다면….
▶모든 판이 어려웠지요. 그런데 준결승에서 이겨 결승에 올라오니까 부담감이 사라져 좋았습니다.
-세계최강 이창호 9단의 뒤를 이을만한 후배를 한 명만 꼽자면….
▶이세돌 9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세돌 9단은 우선 기질적으로 강한 것 같습니다. 그 다음을 꼽자면 여기 박영훈
4단이지요.
-평생 기억에 남을 승부를 꼽는다면 어떤 바둑입니까?
▶오늘 바둑이지요.^^
-앞으로의 포부를 말씀해주십시오.
▶세계대회에서 한번 정도 더 우승했으면 좋겠습니다.
-고국의 바둑팬에게 한 말씀….
▶한국바둑이 세계최강이 된 데 대해 무척 자랑스럽고 기쁘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저도 함께 하고 싶습니다.
경산=TYGEM/김창호 gigung@tyge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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