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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씨배

'껄껄 철한' 한발 앞서다

1패 뒤 2연승 거두며 이창호를 막판에 몰아-4월 대만에서 4,5국 치러

2009-03-09 오전 11:48:12 입력 / 2009-03-09 오후 2:45:04 수정

최철한이 잉씨배의 운명을 좌우할 3국에서 쾌승을 거두었다. 3월 7일 싱가포르 엔터프라이즈하우스 싱가포르 바둑협회에서 벌어진 제6회 잉씨배 결승5번기 제3국에서 5회 대회 준우승자 최철한이 4회 대회 우승자 이창호를 191수만에 불계로 꺾고 우승상금 40만 달러(한화 약 6억원)의 잉씨배 우승에 한발 더 다가가게 되었다.

잉씨배 결승1~3국 시리즈 요약
잉씨배 결승 5번기 1~3국이 지난 3월 3일부터 2일 간격으로 펼쳐졌다. 이미 1,2국에서 사이좋게 1승씩을 나눠 가진 다음 이번 3국을 최철한이 이겨 유리한 고지를 일단 밟았다. 1국에서는 최철한이 유연한 바둑으로 너무 인내하다 패했고, 2국에서 이창호는 성급하게 서둘다가 거꾸로 패했다.

3일 벌어진 1국에서는 이창호가 선승을 거두었다. 비록 격차는 많이 나지 않았지만, 최철한의 공격을 침착하게 따돌린 후 거칠게 따라 붙는 와중에서도 완벽한 끝내기를 보여주었다. “특기인 공격에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우칭위엔 선생의 감상처럼 최철한이 그 답지 않게 너무 얌전하게 패한 바둑.


▲ 결승 제3국 대국 모습.

2국에서는 최철한의 인내가 돋보인 한판이었다. 7집반의 큰 덤을 의식해 공격성향의 스타일을 버리고 철저한 실리작전으로 나서 이창호의 초조함을 부추겼다. 상대의 돌발적인 취향에 흔들린 이창호는 조급한 행마를 보이다 순식간에 역전을 당했다. “이창호의 공격이 급했던 것 같다. 좌변을 지키고 유연하게 두었다면 좋은 바둑이었다.”(강동윤)

2국이 흐름을 좌우했다. 사실 최철한은 흑 바둑을 잘 둔다. 한때 ‘이창호의 천적’으로 불릴 때 그는 ‘흑번필승’을 선보였던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그런데 흑을 든 1국에서 어이없이 패함으로 해서 2국에서는 상당히 불안할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2국에서 균형을 맞춘 것이 컸다.

상승기류의 만남-10년 터울의 상극
두 사람은 여전히 수직으로 현저히 발달된 구름덩이 적란운과 같다. 공교롭게 2005년 언저리부터 두 사람은 슬럼프를 겪었다. 이창호는 1인자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물러나게 되었고, 최철한은 이창호 이세돌과 3인 ‘집단지도체제’를 영위할 찰나 그만 급전직하로 내려앉았다. 똑같이 한랭전선에 머물다 2008년 비로소 상승기류를 타고 수직으로 올라왔다.

물론 이창호의 경우는 약간 쇠퇴기에 들어설 나이이지만, ‘제2의 전성기’라고 할 만큼 근년 들어 컨디션이 좋다. 잉씨배 이외에 춘란배에서도 이미 결승에 올라 있다. 최철한도 4년 전 잉씨배 결승에서 창하오에게 패한 이후 너무나 길고 깊었던 슬럼프에서 서서히 빠져 나와 이젠 완연한 독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두 적란운이 마주치면 분명 소나기와 천둥이 내려칠 것이다. 두 기사의 상대전적은 22승22패로 더도 덜도 없는 딱 5할이다. 10여년을 일인자로 군림해 이창호와 40대국을 넘게 치르면서 5할 승률을 유지하는 이는 지구상에 최철한 뿐이다. 가장 최근 대결인 올 초 맥심커피배 준결승서도 최철한이 이겼다. 10년 터울로 전성기가 서로 다를 법한데도 말이다.

더욱이 도전기나 결승 등 번기 대결에서는 4승2패로 최철한이 월등히 앞서 있다. 04년 국수전․ 기성전․ GS칼텍스배 등 연이은 타이틀전에서 승리해 이창호에게는 큰 승부에서 강한 상대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러나 최철한은 “서로 예전과는 기풍이 많이 변하여서 천적이라는 것이 의미가 크지는 않다.”며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고 말한다.


▲ 국수전 도전기 당시의 최철한 9단(왼쪽)과 이창호 9단. 이창호 9단은 이세돌 9단을 물리치고 도전자가 되었다.

실제로 두 사람은 준비를 많이 한 느낌이었다. 최철한과 이창호의 전반적인 기류는 기다림과 도발이다. 그러나 이번시리즈를 보면 그러한 도식이 상당히 희석되어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냉온탕을 수시로 드나들었다. 수식어란 것은 과거의 행태를 나타내는 것일 뿐 현재를 나타내는 것이 절대 아니다. 따라서 두 사람은 일생일대의 비기(秘技)를 간직하고 이번 시리즈에 임했다는 뜻이다.

최철한은 표독스러움을 말하자면 세계제일이지만 그래도 많이 참고 기다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4년의 침잠기동안 득도를 한 증거이다. 이젠 수비바둑이라는 도식을 지워야 할 만큼 이창호는 더 달라져있었다. 1,2국에서는 초반부터 도발하는 등 묘수성 착점을 세 번 씩 구사하는 등 주인공이 바뀐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게 했다.


남은 두 판은 어디로?
4월21일부터 대만에서의 결승4,5국이 벌어진다고 한다. 한 달 후를 미리 전망하는 것은 분명 어리석은 일이지만 굳이 칼을 들고 무를 잘라본다면, 최철한이 조금은 유리하지 않을까 싶다. 4년전 이창호가 아니듯 4년전 최철한도 아니다. 4년 전과 달라진 것은 이창호가 쇠락하지 않았다는 것이며 최철한은 더 이상 허약하지 않다는 것이다.

다만 천하의 이창호에게 한 가지 기대를 거는 것이 있다면 그의 자정능력이다. 2000년 LG배 결승에서 이세돌에게 0:2로 지고 있다가 2개월여의 공백기 뒤에 전열을 정비하여 3:2로 역전한 기억이 있다. 이번에도 4국이 벌어질 때까지 한 달이라는 기간이 남아있다. 이창호가 충분히 컨디션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이다.

두 대국자에게 앞으로 바둑 인생에 새로운 전기를 가져올 수 있다. 이창호는 2005년 춘란배 이후 4년 동안 메이저세계대회에서 우승 맛을 못 보았다. 중환배서 겨우 한 번 우승했을 뿐 여태 준우승만 5회. 만약 다시 한 번 준우승을 차지한다면 그토록 부활의 날개 짓을 해온 정성도 허사가 되며, 눈앞에 다가온 창하오와의 춘란배 결승도 만만치 않다.

최철한의 경우는 더욱 절박하다. 아직까지 메이저 세계대회 우승경험이 없는 최철한은 그동안 잉씨배 결승전만을 정조준해서 컨디션을 조절해 왔다. 따라서 만약 준우승에 그친다면 그 상실감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것이며, 다시금 기약 없는 도전을 해야 한다.


▲ 최철한 9단.

독사대신 ‘껄껄철한’이라 불러다오
싱가포르로 떠나기 전 최철한을 만났다. 그가 맘 아플까봐서 꺼내지 않았던 4년 전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4년 전 잉씨배에서는 왜 그리 맥없이 물러났나? 그 뒤 슬럼프는 왜 오래토록 이어진 것인가?”

최철한은 웃으면서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정말 어렸어요. 당시 이(창호)국수님을 자주 이긴 것은 우연이라고 보면 정확할 거예요. 저는 성장 중이었어요. 제가 완성형이라고 착각한 것이었다고 할까, 슬럼프에 빠진 것이 아니라 그게 보통실력이었던 것입니다. 제가 발전하지 못해서 하락한 시기라고 봅니다. 요샛말로 거품이었지요. 오히려 지금이 실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성장했다고 할 수 있어요. 아무튼 지금은 4년 전보다 훨씬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최철한은 1국을 먼저 내줬음에도 불구하고 시종 해맑은 웃음으로 복기에 임해 현지 기자들이 의아해 했다는 후문이다. 싱가포르에서 기자들은 그에게 ‘껄껄 철한’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고 한다. 성장통을 겪은 그의 미소가 이번 승리의 원동력은 아니었을지 생각해본다.

TYGEM / 진재호 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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