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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메달 감독의 믿음의 리더쉽

메달 획득 잔치의 주역 양재호 감독

2010-11-27 오전 12:55:51 입력 / 2010-11-27 오후 11:13:10 수정

“내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해도 했겠지요. 그러나 내가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바둑은 시들 수밖에 없다고 보았습니다.”

두 달 전 양재호 감독과의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참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양감독은 자신이 뱉은 말 한 구절 한 단어를 몹시 고심하는 듯했다. 기자는 그 때‘이 기사를 곧장 내보내면 안 되겠구나’ 하고 직감했다. 아닌 게 아니라 3일 동안 양감독의‘검열'을 받아야 했다. 말 한 마디, 토씨 하나까지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신신당부했기 때문.


▲ 지난 9월 한국기원에서 만난 양재호 감독.


●○…외유내강의 표본

기자는 20년간 그를 가까이서 보아왔다. 죽어도 남에게 폐를 끼치는 일은 못하는 사람이다. 남의 눈을 상당히 의식하는 사람이다. 남에게 비록 칭찬은 듣지 않는다고 해도, 비난받을 짓은 절대로 못하는 사람이다. 혹자는 그를 과학실의 가운과 비커가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양재호 감독은 맘이 여린 편이다. 아니, 오히려 외유내강의 표본이다. 기자와 광저우에서 수차례의 만남에서 대화도중에 입술이 가볍게 떨릴 정도로 소심하게 보이고 걱정이 많아 보이는 사람이다.

처음 그가 감독을 맡았을 때 이세돌, 이창호 등 일류기사들을 제어 못한다거나, 여자상비군만 싸고돈다든지, 박지은에게 시드를 주지 않았다든지 하는 주변의 쑤군거림에 굉장히 시달렸다. 그러나 그는 아시안게임이 끝난 후 “모든 책임은 자신이 진다”며 ‘사즉생’의 자세로 큰일을 도모했다.

양재호 감독은 스타선수가 즐비한 대표팀을 그 특유의 세심한 배려와 군림하지 않는 소통의 리더십으로 명장의 반열에 올라섰다. 결국 금메달 3개를 싹쓸이해 왔으니 그는 심약한 사람이 아니었음을 증명한 셈이다.


●○…지독한 용병술과 지략으로 명장 대열 합류

어차피 중요한 대국이 많으니 저절로 연습이 될 것이고, 연습은 곧 실전이라는 지론 하에 스타선수들은 충분히 풀어주었다. 그들을 너무 옥죄게 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여자바둑이 핵심이라는 생각을 했다. 1년 전 여자바둑은 전체가 의욕상실이었다. 국내에서는 루이가 강세였고, 해외시합도 거의 없었다. 여자선수들은 프로가 되고 나서 바둑공부보다는 ‘딴 생각’을 먼저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아시안게임 앞두고 면학분위기를 만들어 분발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짧은 시간동안 강도 있는 훈련으로 중국을 이길 방안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코피도 흘려가며 입단 직전 연구생시절에 하던 경험을 했다. 가장 요체가 될 수 있는 여자상비군제를 운영하며 여자선수들이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계기를 일단 만들었고, 그들 중에서 국가대표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었다. 김윤영, 이슬아는 양감독이 만든 스타였다.

그 과정에서 세계최강 박지은에게 시드를 주지 않았다고 호된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그러나 1년간 열심히 해온 선수들에게 그는 약속을 어길 수 없었다. 지금까지 열심히 해왔는데, 누군가의 특혜로 한 자리를 비게 한다면 전체의 믿음이 깨어지는 것이다.


●○…결국 믿음의 리더쉽으로 마무리

선수가 결정되자, 어느 선수를 뛰게 하느냐보다 누구와 누구를 파트너로 맞출 것인지 고심이 많았다. 호흡이 중요한 페어전의 특성상 바쁜 스케줄로 인해 훈련할 시간이 절대 부족한 이창호, 이세돌, 조한승을 배제하고 최철한, 강동윤, 박정환 중에서 과감하게 페어를 맡기기로 했다. 인재풀이 턱없이 작았던 것이다.


▲ 25일 6라운드 직전에 만난 양재호 감독. 아직 결승진출이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라 굉장히 걱정이 많아 보였다.

박정환, 최철한을 필두로 먼저 금 행진을 벌였고 남녀단체까지 시너지 효과가 번지게 하였다. 이세돌이 예선과 결승에서 두 판 모두 패했지만 한국은 더 이상 특정 선수에게 기대는 팀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보였다. 반면 조한승, 박정환, 최철한은 한판도 패하지 않는 괴력을 선보였다.

이번 대회에 처음 선보인 오더는 양재호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텝을 더욱 빛나게 했다. 특정한 선수 덕에 우승한 것이 아니라는 귀한 경험을 해주었다. 충분한 경우의 수를 머릿속에 넣어두고서 중국의 수를 한발 앞서 읽어내는 코칭스텝의 '오더신공'은 중국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또한 이창호, 이민진, 조혜연 등 노련한 선수들을 결승전에 중용한 것은 그의 배포를 보여준다. 사실 요즘 성적이 좋지않은 1번 이창호는 광저우에 도착하자마자 계속해서 배탈이 나서 컨디션까지 엉망이었다. 그러나 그의 컨디션을 조절해주며 결승전에 과감히 기용하는 등 이창호로 하여금 자존심을 스스로 세우게끔 했다.

또 대회 초반까지 상비군 내신 성적 1, 2위인 이슬아 김윤영에게 모여졌던 초점을 결승전이 다가 오자 서서히 분산시키는 노련한 용병술을 보여주었다. 이미 손이 근질근질한 한 이민진, 조혜연에게 기회를 주었다. 이민진에게 강적 루이와 맞대결을 시켜서 명실 공히 중국격파의 선봉에 서게 한 것도 양감독의 믿음의 리더쉽이었다.

TYGEM / AG 특별취재팀 진재호·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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