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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기타

칭진에 다녀와서(3)

작은 지도에는 나와 있지도 않은 시골 소도시, 그리고 바둑

2011-09-05 오후 10:03:24 입력 / 2011-09-05 오후 10:36:36 수정


▲황과수폭포.

황과수폭포는 명불허전이었다. 장대한 폭포였다. 중국의 과장법은 정평이 있지만, 황과수가 세계 4대폭포의 하나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그런데—

독자 분들 사이에서도 종종 논란이 벌어지고 있듯 표기법이란 게 문제긴 문제다. 황과수는 '黃果樹'다. 중국 발음으로는 '황과수이'로 들릴 때도 있었고, '황과쉬'로 들릴 때도 있었다. '황'과 '과'는 우리 독음과 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

물론 중국말은 성조가 있어 중국 사람이 발음하는 '황'과 우리가 발음하는 '황'은 다르겠지만, 그걸 우리말로 표기할 때는 그 차이를 표현할 길이 없다. '황'이라고 쓰고 그 글자 위나 옆에 가령 '황^’이라든지 '과*'라든지 식으로 무슨 기호를 덧붙여 차이를 나타낼 수는 있겠다.

그러나 그건 더 우습고 이상하다. 말글은 간단할수록 좋은 건데, 그걸 정확하게 하려면 할수록 일은 복잡해지고 절차가 길어지며 자꾸 군더더기가 붙는다. 뜻한 바와는 달리 점점 어려워지고 불명료해진다.

황과수폭포가 맞는지, 황과쉬포푸가 좋은지. 아니 또 폭포는 일반명사니 황과쉬폭포라고 해야 할는지. 황과쉬(黃果樹)폭포라고 하는 것도 있다. 전편에서 백화호를 빠이허후라고 했듯 황과쉬포푸라고 해야 하는 건데, 이건 또 발음상 빠이허후는 괜찮은 것 같은데, 황과쉬포푸는 어색한 느낌이 든다.

나는 ‘황과쉬(黃果樹)폭포’로 하는 게 좋다는 생각이다. 인명이나 지명은 더 그렇다. 발음도 비슷하게나마 좀 배우고 뜻도 좀 알고, 그래서다. 영어도 그렇다. 철자를 알고 뜻을 알면 이해가 좀 더 깊어지고, 친숙해지기도 하는 것 아닐까.

다만 ‘황과쉬(黃果樹)폭포’ 대로라면 전편에서도 ‘빠이허후’가 아니라 ‘빠이허(白花)호’라고 해야 일관성이 있는 건데, 쓰면서 빠이허후, 빠이후허, 혼자 중얼중얼 하면서 이건 빠이허호보다 그냥 빠이허후로 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그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실수를 했다.

아무튼 외국어 표기법은 골치 아픈 문제. 정리가 어렵고, 정리되었다 하더라도 헷갈리고, 그러다 보면 국어학자들이 원망스러워진다. 문제를 꼬이게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와 카와 까, 도와 토와 또, 부와 푸와 뿌, 스와 쓰와 즈와 츠와 쯔, 크와 흐, 도대체 어느 게 맞는 건지. 아래아, 순경음, 반치음, 그런 것들은 왜 버렸는지. 콩지에, 쿵제? 사카다, 사까다, 사카타? 벌캄프, 버캄프, 버어캠프? 토스토예프스키, 또스또옙스키? 게다가 띄어쓰기는 또? 어느 선배가 그랬다. 추울 때는 붙여 쓰고, 더울 때는 띄어 쓰라고. 
 
황과수폭포는 칭전에서 2시간 거리. 선수들이 유 단장, 신 국장과 나에게 “우리는 이제 페이스를 찾았으니 마음 놓고 관광도 좀 하시라”고 거꾸로 위로를 했다. 사실 그렇다. 바둑대회에 가보면, 두는 사람도 피곤하지만, 이 바둑 저 바둑 구경하러 다니는 사람도 피곤하다. 차라리 두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아침에 길을 나섰다. 신 국장은 손 안에 들어오는 디지털 카메라, 같은 디지털 카메라지만 주둥이가 튀어나와 꽤 비싼 캐논 카메라, 스마트폰의 카메라, 쌍권총에 장총까지 둘러멘 중무장이었다. 달리는 차 안에서도 신 국장은 장총을 쏘아대고 쌍권총을 난사했다.


▲황과수폭포 앞에서. 필자(오른쪽)와 유건재.

넓은 주차장이 있는 건물에서 입장권을 사는데, 60세 이상은 할인. 유 단장이 “나이 육십 넘었다고 대접 받기는 처음”이라면서 웃었다. 건물 입구에서 얇은 비닐 비옷을 샀다. 폭포에 가까이 가면 물방울이 엄청 튀어 옷이 다 젖는다는 것이다. 하나에 2원이다.

표를 산 데에서 다시 차를 타고 10분쯤 더 들어갔다. 아하~ 이래서서 건물 주차장에 택시들이 늘어서 있었구나. 우리는 구경하고 나가는 사람들을 태우는 택시인 줄 알았다. 차에서 내렸는데, 여전히 평지다. 신 국장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분경원장원의 잉어

"폭포는 산 속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이건 무슨 그냥 유원지 같은데."
'황과수 분경원(盆景園)'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분경원은 분재원(盆栽園)이었다. 정원은 물론 짐작했던 것보다 넓었고, 분재의 숫자는 수만을 헤아렸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키우는 그 정도 크기의 분재가 아니었다. 작은 것이 베란다의 그것에 대여섯 배, 큰 것은 나무 한 그루 자체였다. 가다보니 정자와 연못. 연못에는 물 반 고기 반, 사람이 다가가면 팔뚝만한 잉어 수십 마리가 몰려왔다.

또 가다보니 ‘황과수폭포→ 계단을 내려가시오’라는 안내판이 나온다. 아하~ 여기가 지대가 높은 곳이고, 이제 계곡으로 내려가는 것이로구나. 폭포는 아직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올라가지 않고 내려가니 다행이다 싶었는데. 내려가면서 슬슬 공포가 밀려온다. 계단 몇 백 개를 내려갔는데도 (천 개가 넘었는지도 모른다) 폭포는 보이지 않으니 앞으로 얼마나 더 내려가야 하는지. 내려가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올라올 때는?


▲황과수폭포의 무지개.

물소리가 들렸다. 소리 나는 쪽, 작은 산들과 숲 건너 몇 백 미터 전방 저쪽에 희고 굵은 물줄기 몇 가닥이 보인다. 폭포의 꼭대기 부분이다. 폭포를 밑에서부터가 아니라 머리부터 본다는 것에, 나는 지금 실제 폭포가 아니라 그림을 보고 있는 것 아닐까, 잠깐 비현실감에 빠진다.

지금 저 장면은 스냅의 잘려진 부분 한 쪽이 바람에 날리다가 멈춘 것은 아닐까. 폭포는 지금 여기서는 보이지 않는 저 아래로 백 미터 이상 떨어져 내리면서 굉음을 낼 것이고, 바닥은 깊은 동굴과 웅덩이를 이루고 있을 것이며 동굴과 웅덩이 사이에는 물보라가 만드는 무지개가 반원의 다리처럼 걸려 있을 터였다. 종군 사진기자처럼 무장한 신 국장이 황과수폭포에서 열심히 찍어온 사진 몇 장을 보여드린다.

황과수폭포 다음 예정은 또 하나의 절경지 ‘롱궁(龍宮)’이다. 인터넷 여행정보는 “롱궁도 필수 코스”라고 강추하고 있는데, 시간이 부족했다. 절반을 보고, 절반은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우리 생전에 이곳에 다시 올 수 있을지는 몰라도.

돌아오자 선수들이 물었다.
“구경 잘 하셨어요?”
유 단장이 대답했다.
“우리 용궁 갔다 왔어.”
선수들이 웃었다.
“고생하신 모양이네요.”
우리도 웃었다.
“응.”


▲대국하는 김동섭 선수.


▲관전하는 유 단장과 신국장.

성적은 궤도에 올라 있었다. 입상권을 바라볼 수 있겠다, 없겠다, 계산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11국을 마친 결과 우리 승률은 70% 정도. 얘들을 상대로 싸운 초반의 부진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선전분투였다. 입상권에는 들지 못했지만, 외국 팀 중에서는 최우수임상 감이었다. 대회가 끝난 날 저녁에 대회 심판단이 우리에게 ‘한국 고양팀 : 심판진’의 6 대 6 대항전을 제시했다. 거기도 단급은 타이젬이 기준이었다. 심판진은 타이젬 7단 수준들이었다. 두 판씩을 두어 우리는 12전 전승으로 본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한 분풀이를 했다…^^.


▲선수단과 심판진의 대항전.

▲심야파티.

대항전 후에도 몇 판씩 더 두었는데, 속기파 곽웅구 선수는 다섯 판이나 두었다. 대항전이라고 했으니 그냥 둘 수는 없었다. 진 팀이 우리가 어제, 그제 밤의 흥취를 달랬던 호텔 밖 구멍가게 주점에서 술을 사는 것이었다. 우리는 구름 사이로 달이 들락거리는 깊은 산 호숫가에서 거나하게 어울렸다. 심판 팀은 우리에게 또 오시라고 했고, 자매결연을 맺자고 했고, 우리는 또 오겠다고 했다. 또 만날 수 있다면 좋은 일인데, 글쎄, 과연 그럴 날이 올 것인지.

떠나기 전 날은 참가자 전체 관광. 버스는 출발 후 다섯 시간 만에 어딘지 모르는 시골길에 일행을 내려놓았고, 일행은 한 시간 가까이, 무협지의 배경이 이런 곳이겠구나 생각이 드는, 길 양쪽은 절벽인, 협곡의 돌길을 걸었다. 도착한 곳은 최근에 개발된, 우리나라 영월의 동강 같은 래프팅 유원지였다. 김동섭 곽웅구 신길수, 셋이 구명조끼를 입었고, 우리는 다시 네 시간 후에 다른 곳에서 만나 합류했다.

▲래프팅 후 몸을 말리는 선수들.

이곳 지명은 복천(福泉)시 선교향(仙橋鄕) 대화수촌(大花水村). 래프팅 코스는 동강과 비슷했지만 길이가 무려 장관의 10여 킬로. 물살은 빠르고 지형이 울퉁불퉁해 사실은 대단히 위험했으나 대신 경관은 더할 나위 없었다고 했다. 김 선수와 곽 선수가 함께 타고, 빠이허 호숫가 밭두렁에 빠졌었던 신 국장은 이번에는 짝이 맞지 않아 혼자 보트를 탔다가 보트가 뒤집어지는 바람에 여기서도 물에 한 번 잠겼다 나왔다고 했다. 길수, 길할 길(吉), 물가 수(洙), 물가에 가면 길하다더니, 정말 그러네.

떠나는 날, 우단이 이번에도 꾸이양공항까지 동행했다. 그동안 수고 많았다, 고맙다면서 봉투 하나를 건네려하자, 황과수폭포에 갈 때 우리를 태우 준 기사양반이 끝까지 거절하다가 우리가 주머니에 찔러 넣자 그제야 부끄러워하며 "셰셰"를 연발했다.


▲한국선수단과 우단.

칭전에서 우연히 만난 중국 사람들이 점심을 같이 먹고 우리가 돈을 내려 하자 “손님이 왜 이러냐”면서 결국 우리 것까지 계산했던 것처럼, 어제 저녁 때 대화마을에서 만나 맥주를 함께 마셨던 사천성 선수들이, 유 단장이 계산을 하려고 하자, “여러분은 멀리서 오신 손님이시다. 우리가 벌써 다 냈다”고 웃었던 것처럼, 손사래를 치고 도망을 가며 한사코 받지 않는다.

신 국장이 “너무 적어서 그러냐”고 짐짓 화를 내는 표정을 지으며 쫓아가 우단의 가방 속에 봉투를 찔러 넣었다. 우단이 눈물을 글썽였다. 우리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닝보도 그렇고 청진도 그렇고 바둑을 많이들 두었다. 며칠 동안 11판을 두었으니 말이다. 닝보의 대학생 선수들고 그랬고 꾸이양의 고양 팀 선수들도 그랬다. 처음에는 이게 뭐야 하는 표정들이었지만, 나중에는 재미있어 했고, 불평이 없었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우리도 이런 대회가 한두 개는 있으면 좋겠다. 하루 이틀에 후다닥 두고 끝내는 그런 대회 말고 말이다.

닝보는 상하이와 겨룰 정도인 무역과 상업의 큰 도시, 칭전은 작은 지도에는 나와 있지도 않은 시골 소도시. 한 달 동안 일주일 간격으로 두 곳을 즐겁게 여행했다. 장소를 돌아다닌 것이 아니라 시간을 돌아다닌 것 같기도 하다.


닝보의 얘기를, 타이밍을 놓쳐 제대로 소개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전 대학바둑연맹 회장이고 현재는 고문인 김원태 단장, 대학바둑연맹 부회장인 박애영 부단장, 감독으로 따라간 프로기사 이홍열 9단, 부산바둑강사회장인 김향희 코치, 통역과 안내를 맡았던, 조선오 선수,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김진환 코치, 그리고 서울대 3명(물리학과 2, 기게공학과 1), 명지대 바둑학과 4명, 대불대 바둑전공 4명이었던 우리 선수들에게 우리 얘기가 타이젬에 나올 것이라고 자랑했는데, 다른 지면에는 소개했지만, 타이젬에 나올 거라는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미안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언젠가 소개할 기회를 있을 것이다.
 
 
TYGEM / 이광구 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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