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화재배
뿔은 가도 워낭은 남는다
- 원성진의 세계대회 첫 우승을 지켜보며
2011-12-09 오후 12:20:09 입력 / 2011-12-09 오후 4:16:11 수정
▲삼성화재배 우승자 원성진과 준우승자 구리
S#1. 상하이에 울려 퍼진 워낭소리
새벽 외양간에서 조용하게 울리는 누렁이의 워낭소리.
해질녘 둑길을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오는 황소의 워낭소리.
여운이 길고도 깊다.
소에 매다는 방울, 워낭은 존재의 증명이다.
주인에게는 한 없이 든든하고 믿음이 가는 소리일 터.
한 해가 저물어가는 12월 중국 상하이에서 원성진이 제16회 삼성화재 배 우승컵을 들고 돌아왔다.
상대는 두 말이 필요 없는 최강 구리.
그래서 쾌거의 여운이 한결 짙고 강렬하다.
이세돌과도 한 치 물러섬 없이 치고받으며 치열한 바둑 승부 드라마의 주역으로 활약하고 있는 구리를 원성진이 시원하게 제압한 것이다.
▲결승에 오른 후 인터뷰 하는 원성진
"지면 잊혀진다. 이겨보도록 하겠다."
원성진의 짧은 임전소감을 기억한다.
“응원해준 바둑 팬들이 너무 고맙다.”
우승 직후 전한 소감도 음미하다 보면 원성진의 마음이 보인다.
잊혀지기 싫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의 응원을 알고 있다는 것.
원성진은 바둑뉴스를 샅샅이 읽는다고 했다.
특히 프로기사들 소식은 빠트리지 않고 확인한다고 밝혔다.
바둑 팬들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 늘 주시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것이 프로의 자세로 바람직하다.
자신의 영광이나 행운, 보상보다도 바둑 팬들의 사랑이 원성진의 갈망인 것이다.
그 마음처럼 삼성화재 배 결승전을 통해 원성진은 고화질 영화처럼 우리들의 망막에 선명한 라스트 신을 선보였다.
▲원성진은 최철한, 박영훈과 함께 송아지 삼총사로 꼽혔다.
최철한, 박영훈과 함께 송아지 삼총사로 박수를 받았던 시절이 언제였던가?
입단 13년 차 원성진의 행보는 두 친구들에 비해 참으로 둔하고 더뎠다.
별명처럼 우보(牛步)라고 해도 무방했다.
그러나 느린 소의 걸음으로 천 리를 간다고 했다.
원성진은 우보천리로 13년을 묵묵히 걸어 정상에 올랐다.
이미 10대에 세계대회 타이틀을 획득한 이창호, 이세돌, 박정환.
수시로 정상을 오르내리는 동갑내기 최철한, 박영훈.
그런 천재들의 불꽃도 찬란하지만 스물일곱 원성진이 피워 올린 축포가 감동적인 이유는 바로 그 오랜 인고의 기다림이 있기 때문이리라.
▲집중하는 원성진.
S#2. 두 개의 별명
원성진의 별명은 주지하다시피 원 펀치다.
체중을 실어 던지는 주먹의 강도가 남다르다.
그 또래 동료기사들이 맞아보고 붙여준 이름이다.
세계대회 전면에서 조명을 받진 못 했어도 원성진은 오래전부터 국내 상위 랭커였다.
그 누구라도 원성진과 마주치면 가드를 바짝 올리고 턱을 방어해야 했다.
▲2008년 한중천원전에서 대결한 원성진과 구리
3년 전이던가?
한중 통합천원전에서 원성진은 구리를 2:0 스트레이트로 날려버린 적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구리는 통합천원전에서 송태곤, 최철한, 조한승을 제압하면서 다섯 번째 우승 기록을 노리고 있던 절정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등장한 원성진의 인파이팅에 휘말려 KO당한 것이다.
2011년 12월 5일 상하이 그랜드센트럴호텔 특설 링.
원성진과 구리가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타이틀을 놓고 맞붙었다.
원성진은 생애 최초의 세계 타이틀 획득을 위한 도전이었고 구리는 한중통합천원전의 패배를 설욕하기 좋은 무대였다.
▲결승 1국 모습. 원성진은 구리의 대마를 잡고 통쾌한 승리를 거둔다.
1라운드에서 원성진은 과감하게 링 중앙을 선점하면서 밀고 나갔다.
구리는 날렵한 스텝으로 맞섰다.
포인트에서 살짝 밀린다 싶자 구리가 크로스카운터를 노리며 전진했다.
그 순간부터 원성진은 좌우 훅을 휘두르며 상대를 코너까지 몰고 갔다.
그리고 난타전 끝에 다운을 이끌어냈다.
2라운드의 양상도 비슷했다.
치고 싶으면 마음껏 쳐 봐라!
구리의 베짱은 대단했다.
크게 한 번 당했으면서도 위축되지 않고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했다.
마지막 몇 초를 남기고 넉 다운 시킬 수 있는 찬스를 놓친 원성진은 점수에서 뒤져버렸다.
▲드디어 최종국. 집중하는 원성진의 눈빛이 날카롭다.
운명의 3라운드!
초반 경기운영이 당대 최고라는 구리가 날카로운 스트레이트로 점수를 얻고 쭉쭉 앞서나갔다.
중반까지 잔 펀치를 많이 허용한 원성진의 절대비세.
그러나 원성진은 포기하지 않고 한발 한발 전진하며 주먹을 던졌다.
포인트 우세를 확신한 구리가 가드를 올리고 방어 모드로 전환했다.
그 순간부터 1점씩 원성진 쪽 전광판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점수는 역전되었고 종료 공과 함께 원성진의 주먹이 하늘로 드높게 올라갔다.
타이젬에서 결승전을 해설한 목진석의 표현이 재미있었다.
"원 펀치는 옛날 별명이구요. 요즘은 원 빨대로 통합니다. 기풍이 변했어요."
대마를 때려잡는 도살자 스타일에서 실리에 민감한 쪽으로 변했다는 진단이다.
그러나 기풍이 변했다고 보긴 어렵다.
강력한 주먹을 휘두르되 무차별 스윙이 아니라 포인트를 의식한 공격법을 장착한 것이다.
반면을 명쾌하게 장악하고 리드해가는 구리에게 일발필도 핵주먹을 장착한 원성진의 스타일은 상극일 수 있다.
1국과 2국에서 과격한 인파이팅으로 명불허전 원 펀치의 진수를 보여준 원성진이 3국에서 포인트로 따라붙을 줄이야!
구리는 미처 원성진의 또 다른 별명 '원 빨대'의 악명을 몰랐을 것이다.
S#3. 그의 어머니
12월 7일 원성진이 우승하던 순간, 필자는 충암고 교장단과 여성 바둑 인들이 수담을 나누는 현장에 있었다.
바둑 두는 도중에 원성진의 쾌거가 전해지면서 모두 박수를 쳤다.
그 방에 있던 인사들 모두 원성진을 아끼는 팬들이었다.
“성진이 어머님이 참 대단하셨지요. 철한이 영훈이 어머님들과 함께 자모로서 무척 열심히 활동했습니다. 괜히 송아지 삼총사가 아닙니다. 삼총사의 뒤에 훌륭한 모성애가 있었던 거지요.”
송아지 삼총사는 충암고 동문이다.
충암고의 이홍식 이사장은 그렇게 증언했다.
그러자 여성 바둑 인들이 칭찬을 더했다.
“여성 바둑 행사가 있을 때마다 뒤에서 조용히 궂은일들을 도맡는 회원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누군가 물어보니 성진이 어머니라고 하더군요.”
원성진의 어머니 윤재경씨는 10년 전 모아회를 만든 주역이다.
모아회는 프로기사 어머니들의 모임이다.
“우리들이 프로기사의 어머니인데 최소한 돌의 사활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끼리 모여서 바둑을 배우는 게 옳다.”
그래서 최철한, 박영훈, 윤준상, 강동윤, 박정상의 어머니를 비롯해 15명이 모인 것이다.
그 모임을 통해 어머니들은 서로 격려하고 응원하면서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고 한다.
원성진이 세계대회 첫 우승을 기록하자 가장 먼저 그녀들이 축하전화를 해왔다.

윤재경 씨는 그날 펑펑 눈물을 쏟았다.
“내게도 이런 꿈같은 일이 다가오네요.”
그 동안 시커멓게 가슴이 탔을 그녀, 바둑매체에서 송아지 삼총사를 비교할 때마다 상대적으로 걸음이 느렸던 아들이 마음 상할까봐 애태웠을 어머니.
원성진보다도 오랜 세월 마음을 졸였을 어머니의 감회가 그날 어땠을까?
그 모습을 추리하면 괜히 가슴이 더워진다.
이제 원성진은 한국바둑의 간판으로 떠올랐다.
귀국하자마자 오늘 GS칼텍스 예선전을 치르고 곧이어 KBS바둑왕전과 맥심배에 출전한다.
또 군 입대도 앞두고 있어 마음이 바쁘리라.
그러나 바쁜 틈틈이 바둑사이트의 기사와 팬들의 메시지를 두루 검색해도 좋으리.
그대가 보여준 우직한 행로를 모든 이가 오래 기억하리니.
소의 뿔은 언젠가 삭아 없어져도 워낭은 오래 남아 사람들에게 길고 긴 이야기를 전해주리라.
TYGEM / 김종서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