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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증권배

아가야, 고마워!

- 홍성지 8단의 눈물겨운 이야기

2012-06-29 오전 9:55:20 입력 / 2012-06-29 오전 11:33:52 수정


S#1. 희비쌍곡선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6월 28일(목) 타이젬 홈페이지에 홍성지 8단의 기사 두 개가 나란히 떴다.
제9회 동양증권배 우승과 모친상.
중국의 라이트와 벌인 결승전 3번 기를 통해 울아가(P) 홍성지는 타이젬의 스타로 떠올랐다.
세계 최고의 온라인 기전에서 무수한 고수들을 연파하며 극적으로 트로피를 움켜쥔 울아가의 정체는 우승한 직후 공개됐다.
홍성지는 타이젬 회원들의 열렬한 응원에 감사 인사를 전하며 환하게 웃었다.
그 맑은 미소는 오래 가지 않았다.
우승한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아 어머니 이흥순(57) 여사가 영원히 눈을 감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2년 전부터 혈액 암 판정을 받아 시한부 삶을 견뎌오고 있었다.
동양증권배 결승전이 벌어지던 시간에 그녀는 의식을 잃고 병원에 누워 있었다.
심장 박동 그래프는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아들이 동양증권배 타이틀을 차지한 직후 그래프의 곡선은 직선으로 바뀌며 멈춰 섰다.
안타깝지만 한편으로 놀라운 순간이었다.
오랜 시간 고통스러웠겠지만 어머니는 최후의 순간에 통증을 잊으셨으리라.
그리고 착한 아들 성지에게 이런 말을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울 아가 고마워!”

▲ 울아가는 어머니의 영정사진을 바라보다 눈을 꾹 감았다.

어머니와 아들 사이에 지난 2년의 시간은 길고 긴 어둠의 터널이었다.
어머니는 너무 아팠고, 지켜보는 아들은 뭘 어찌 할 수 없었다.
1987년생인 홍성지는 2001년 입단했다.
2006년 전자랜드배 청룡부 우승, 2007년 마스터스 준우승, 2008년에는 당대 최고 이세돌과 승부를 벌여 물가정보배 우승을 차지한 기대주였다.
쭉쭉 뻗어가던 홍성지는 2010년 들어 부진에 빠졌다.
그가 왜 슬럼프에 빠졌는지 아무도 몰랐다.
지금 와서 추리해보니 어머니의 투병생활과 일치한다.
그렇게 번민하던 홍성지는 울아가(P)라는 이름으로 타이젬에서 혼신을 다해 바둑을 두었다.
그리고 우승을 차지해 어머님의 가슴에 안겨드렸다.
생각할수록 모성본능을 자극하는 아이디, 울아가.
이게 그냥 지어진 이름이 아닌 듯싶다.

▲ 지난 27일, 동양증권배 최종국을 두고 있는 울아가.

S#2. 빛나는 스물여섯

동양증권배 결승전 세 판은 타이젬에서 편파방송중계를 했다.
필자는 울아가 응원단장이었다.
첫판을 내줬을 때 기분이 편치 않았다.
스튜디오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김지명의 전화를 받았다.
“홍성지하고 같이 있는데 커피 한 잔 하시죠.”
그들은 나보다 먼저 우리 동네에 와 있었다.
늦은 시각이었다.
홍성지는 집이 용인 수지 쪽이어서 귀가하기 어려웠다.
이튿날 또 대국이 있기 때문에 타이젬 근처에서 머물기로 했다.
1패를 당했는데도 홍성지는 표정이 밝았다.
“좋은 바둑이었는데 중반부터 이상하게 집중이 안되더라고요. 내일은 이길 겁니다. 자신있어요.”
많은 기사들을 만나봤지만 큰 바둑을 앞두고 이처럼 당찬 표현을 만난 것은 처음이다.
2국에서 승리하고 그날 밤에도 홍성지를 만났다.

▲ 울아가(오른쪽)와 필자.

홍대 앞 카페 에틱.
홍성지와 하이파이브를 나누었다.
“잘 했어!”
“내일 꼭 이길 겁니다. 응원 고마웠어요.”
“오늘도 서울에서 잘 건가?”
“아뇨. 집으로 갈게요.”
“멀잖아? 내일 결승전인데 모텔에서 시원한 에어컨 쐬면서 컨디션 조절해야지. 이 늦은 시각에 수지까지 가려면 피곤하지 않을까?”
홍성지는 씩 웃기만 했다.
정말 몰랐다.
그 시간에 그의 어머니가 사경을 헤매고 계셨던 것을.
나중에 홍성지가 밝혔다.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어머님이 자신의 투병 소식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당부하셨거든요.”
다시 돌아보면, 동양증권배 결승이 치러진 사흘은 홍성지에게 참으로 감당하기 벅찬 시간으로 여겨진다.
어머니와의 끈도 쥐어야 했고, 피 말리는 승부도 펼쳐야 했을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의연하게 큰 성취를 이뤄낸 청년 홍성지의 침착한 행마에 경탄한다.
우연일지라도 아들이 동양증권배 우승을 차지할 때까지 견뎌주신 어머님의 최후가 눈물겹다.


▲ 故 이흥순 여사의 영정사진.

울아가, 큰 효도를 했다.
이제 어머님은 좋은 곳에서 편히 쉬실 수 있으리라.
이제 긴 터널의 끝에 햇살이 보일 것이다.
어머님을 가슴에 깊이 묻고 다시 19로의 나침반을 살피자.
그대는 스물여섯, 빛나는 청춘이다.
TYGEM / 김종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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