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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증권배

외톨이의 패착을 짚어본다

제10회 동양증권배 타이젬 왕중왕전 결승1,2국 관전기

2013-07-05 오후 2:35:27 입력 / 2013-07-05 오후 8:15:45 수정

H형, 잘 지내십니까. 날씨는 덥고 비는 많이 오고 세상은 시끄럽고, 후덥지근해서 나다니기가 좀 그렇습니다. 뭔가 좀 시원한 게 있으면 좋겠는데, 그게 여의치 않은 것 같습니다. 별로 재미없는 소식을 전합니다.

엊그제 우리의 '외톨이'가 졌습니다. 상대는 중국의 저우루이양이었습다. 외톨이는 7월 2-3일 저녁 8시부터 인터넷 바둑 사이트 타이젬대국실에서 실명 아닌 아이디로 출전하는 온라인 세계바둑대회 제10회 동양증권배 결승 1-2국을 다 놓쳤습니다. 동양증권배는 모두들 아이디로 출전하고 결승에 올라간 사람에 한해 실명을 밝히기로 되어 있는 대회인데, 저우루이양은 실명시드를 받아 참가했더군요.

저우루이양은 아시지요? 강자입니다. 1991년생, 스물두 살의 청년입니다. 중국의 천년 고도 시안(西安) 출신으로 일곱 살 때 바둑을 시작해 2002년에 프로가 되었다고 하는데, 2002년이면 열한 살 아닙니까. 중국에서 프로기사가 되는 것은 우리와는 좀 다르지만, 아무려면 우리만큼 어렵기야 하겠습니까. 아무튼 기재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프로기사치고 어렸을 때 기재가 뛰어나다는 얘기를 듣지 않은 사람도 없겠지만요. "프로기사는 바둑에 관한 한 모두 천재"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저우루이양은 2006년에는 제20기 천원전에서, 이듬해에는 제19기 명인전에서 준우승하는 등 저단 시절부터 이미 주목 받았다고 합니다. 천원전에서도, 명인전에서도 상대는 모두 구리 9단이었습니다. 주목 받을 만했습니다. 아시겠지만, 명인전과 천원전은 한국에도, 일본에도 같은 이름의 기전이 있습니다. 바둑대회 타이틀로는 좋은 이름입니다.

저우루이양은 그렇게 성적을 내며 중국 내에서 자리를 잡아가다가 2010년부터는 국제무대에도 얼굴을 내밀기 시작합니다. 2010년 시즌 저우루이양은 BC카드배, LG배, 삼성화재배, 농심배 등 우리가 주최하는 세계대회에 전부 출전합니다. 그리고 올해 초 중국이 주최한 제1회 바이링배 세계대회에서 우승함으로써 마침내 꽃을 피운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중국에선 이른바 90後 세대가 득세하고 있다는데, 사실은 90前도 여전히 만만치 않고, 무엇보다 낯선 얼굴, 처음 들어보는 이름, 생소한 실력자들이 왜 그리 많은지요. 요즘은 우리나라도 청소년 프로기사들은 누가 누군지 구분하기 어렵게 됐지만, 요새 중국은 매번 새로운 강자가 나타나는 바람에 이름이나 얼굴을 익힐 겨를도 없고, 그저 인해전술이라는 옛날 말을 실감하게 됩니다. 얼굴은 둘째 치고 우선 이름이 어렵습니다. 셰허, 스웨, 퉈자시, 판팅위, 미위팅, 위즈잉, 가오싱 …. 중국어 인명 지명 표기는 지금도 논란거리지만, 저는 한자의 우리말 발음으로 표기하는 쪽에 찬성합니다.

외톨이는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약속에 따라 이름을 밝힙니다. 우리의 희망 박정환 9단입니다. 좀 쑥스럽기도 합니다. 외톨이가 누군지는 이미 아는 분들은 다 알고 계실 텐데 말입니다. 저우루이양 9단은 현재 중국 랭킹은 7~10위권인데, 실제 체감으로는 현 1-2위인 스웨, 천야오예 등과 어금버금하다는 평입니다. 그만큼 세다는 것이겠지요. 그래도 우리는 외톨이, 박정환 9단이 이길 줄 알았습니다. 늘 그렇듯이, 조훈현 9단이 녜웨이핑 9단보다, 이창호 9단이 마샤오춘 9단보다, 이세돌 9단이 구리 9단보다 세지 않겠느냐는 느낌, '팔이 안으로 굽는'는 그 느낌이 근거라면 근거겠지요. 그러나 졌습니다. 질 수도 있겠지요. 다만, 마음에 좀 걸리는 것은 "이번 동양증권배 결승 두 판은, 1국도 그렇고 2국도 그렇고 박정환이 완패"했다는 프로 고수들의 관전평입니다.

온라인 동양증권배는 제한시간 각 20분에 30초 초읽기 3회. 우승상금 5000만 원, 준우승은 1000만 원. 상금이 적지 않고, 온라인 대회치고는 장고 바둑입니다…^^ 나이가 좀 든 사람들은 보통이 10분이고 요즘은 5분이 대세이며 1분도 흔합니다. 더러는 아예 처음부터 바로 20초나 10초 초읽기로 시작하는 바둑도 있습니다. 그러니 "박정환은 스무 살, 저우루이양은 스물 두 살이니 새파란 나이인데다, 온라인 대회의 박진감을 더욱 고조시킨다는 뜻에서 아예 주어진 시간 없이 처음부터 초읽기로 두는 걸로 할 걸 그랬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웃음이 잘 나오지 않습니다. 이세돌 9단의 춘란배 실패에 씁쓸해 했던 게 불과 얼마 전이고, 박정환 9단이 TV아시아선수권전에서 이야마 유타 9단에게 패한 것에 충격을 좀 받았던 건 바로 며칠 전 아닙니까.

일본은 일본의 3대 타이틀이 세계타이틀보다 크다느니 하면서 자기들끼리만 논다, 시대 흐름에 맞지 않게 아직도 이틀바둑을 고집하고 있다, 그렇게 진지하게 두면서 왜 세계대회에서는 전혀 힘을 못 쓰는지, 장고 바둑에 길들여져 속기에는 약할 것이다, 등등 일본 바둑은 별로 인정하지 않고 있던 차에 불의의 일격을 당했다고나 할까요. 게다가 우리는 지금 많은 기전이 '시대 흐름에 맞게(?)' 속기 대회로 변해 있어서, 속기에는 익숙하고 속기에는 강한 줄 알았는데, 장고 바둑에서 지고 속기에서도 계속 지니 시쳇말로 좀 당황스럽기도 합니다.

이세돌 9단이 춘란배에서 실패했을 때, 이기든 지든 그렇지만, 바둑 사이트들에는 댓글이 많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일요신문에도 한 번 소개했던 것인데, 가령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기러기 아빠라는 게 문제일 것이다. 가화만사성이라고, 가정이 평안해야 무슨 일이든 잘되는 법인데, 아내와 딸을 외국에 보내고 혼자 지내고 있다니 심신의 컨디션이 정상일 수 없을 것이다. 결혼을 안 했다면 모를까, 결혼 하고 나서 부부가 따로 지내는 게 승부하는 사람에게 좋을 리 없다."

"바둑은 고도의 정신적 게임이다. 몰입을 해도 만만치 않거늘, 가족 문제로 아무래도 신경이 좀 분산될 텐데, 집에는 아무도 없고, 식구들은 보고 싶고… 몰입이 되겠는가."

"정보 싸움에서 우리가 밀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 유명 기사들은 지금 거의 전부가 중국리그에서 뛰고 있다. 수많은 중국 청소년 기재들에게 전력이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반면에 우리는? 예를 들어볼까? 한국기원 자료실에 들어가 보라. 최근 성적 내는 어린 중국 기사들이 도대체 몇 살이고 언제 입단했는지, 그런 것들을 좀 찾아보려고 하면 어떤 기사는 한 줄도 소개된 것이 없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우리 기사 중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은 요즘 <중국 바둑연감>을 갖고 연구한다고 한다. 중국에서든 공동 연구들을 하고, 초반에 정석이나 포석에서 새로운 연구들이 무수히 나온다고 한다. 예전에는 중국 기사들이 우리 ‘충암연구보고서’ 같은 것으로 공부했고, 그 바람에 앞으로는 그런 책을 내는 좀 삼가자는 말도 나올 정도였는데, 어느새 반대가 되었다. 그런데 중국 바둑연감이 귀하다는 것이다. 아니, 바둑계에서 사람들이 일 년이면 수십 번 중국에 왔다갔다하는데, 그건 좀 이상하지 않나? 필요하다면 개인이든, 아니면 한국기원 같은 단체든 몇십 권씩 사다 놓으면 되는 것 아닌가? 중국은 놀러만 다니나?"

"헝그리 정신이 사라진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럴 때 어울리는 말인지 모르지만, 인지상정이다. 일본 뭐라고 할 게 없다. 대만이 중국에 비해 향상이 아주 많이 더딘 것도 다 그런 이유 아닌가. 중국이 꼭 사람 숫자가 많다고 해서 강해진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세돌 9단도 이제 술 담배를 끊어야 한다. 어제 인터넷에 올라온 뉴스 보니까, 대국 도중에 밖에 나가 담배 피우는 사진이 있더라. 사진 설명도 '맛있게 담배 한 대를…'이라고 했는데, 그것 참. 요즘은 영화나 TV에서도 담배 피우는 장면은 모자이크 처리하는데, 담배 피우는 모습을 올리고 거기다 '맛있게…'라고 하다니."

"그런가? 그러나 담배는 백해무익이라고 하지만, 특히 이세돌 9단 같은 대승부가 승부를 결단할 때나 고민하면서 담배 한 대 피우는 모습은 사실 멋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떤 일본 작가가 말했다. 사나이가 담배라도 한 대 피우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있다고. 이건 내 생각인데, 가령 천하의 절경 앞에서, 자연의 위대함과 오묘함을 이루 형언할 수 없을 때, 그저 감탄사밖에 안 나올 때,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할 때… 아무튼 술 담배 갖고 뭐라고 해서는 안 된다. 담배 안 피우는 사람은 많지만, 담배도 안 피우고 술도 안 마시는 사람은 잘 없다. 담배도 그렇다. 물론 안 피우는 게 좋고, 건강을 위해 끊는 게 좋지만, 강요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것도 스트레스다. 어떤 정신과 의사 얘기 못 들었나. 끊으려고 스트레스 받는 것보다는 기분 좋게 피우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그 정신과 의사가 누구지?"
"유명한 김정일 박사다."
"윽~ 김정일? …^^ 아, 병원 간판 본 것 같다. 논현동이든가?"
"전에는 TV에도 자주 나왔고, 책도 여러 권 썼다."
"난 정신과 의사라면 정혜신 박사밖에 모르는데…"
"여자 분이지? 으이그~~"
"이시형 박사, 김병후 박사는 모르나?"
"많이 아시네. 정신과에 자주 다니시나 봐…^^"
"예전에 사카다 9단이나 후지사와 9단, 조남철 선생이나 조훈현 서봉수 9단, 어지간한 골초였다. 담배도 말하자면 트렌드다. 국가가 국민의 건강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강요하는 건 더 우습다… 만들긴 왜 만들어? 그러나… 그래도 끊는 게 낫겠지… ㅎㅎ. 나도 아직 피우지만, 옆에서 담배 연기 나면 싫거든…^^"

"이세돌 9단도 부인이랑 딸이랑 함께 지낸다면 끊었을 것이다. 술도 세다던데, 그것도 적당히 했을 것이고. 기러기 아빠는 그런 것부터가 문제다."
"그나저나 이세돌 9단마저, 누군가 말했던 것처럼, ‘무너진다’면 이제 누굴 믿어야 하나."

"박정환 김지석 최철한 박영훈 원성진 조한승 백홍석 이영구…나현 이동훈 변상일 신민준 신진서… 다들 잘 두지만, 예전에 조훈현 이창호처럼, 좌우간 이기겠지, 그렇게 신뢰가 가는 솔직히 사람이 없다.”

“조훈현 이창호 이세돌이 그동안 너무 무거운 짐을 진 것이다. 1975년생 이창호가 마지막으로 세계타이틀을 딴 것이 2005년, 이세돌은 1983년생이고 올해는 2013년. 독같은 30년이다. 에잇, 이런 엉터리 미신 같은 통계가 맞을 리 없지. 아무튼 그동안 우리 바둑계는 천재 몇 사람 덕분에 잘 먹고 잘 지내왔다. 달도 차면 기우는 법, 영원히 그런 걸 기대한다면 염치없는 일이다. 이세돌도 그만 편하게 놓아 줄 때가 된 것 아닌가.”

“시상식 자리에서 천야오예에게 웃으며 축하하는 모습이 나는 좀 걸렸다. 스포츠맨십인 것은 좋다. 다만 승부사라면, 더구나 온 바둑팬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이 9단인데 지고 나서도 그렇게 마음씨 좋게 웃는다는 건 좀 그렇다. 시상식이 며칠 후였다면 모를까, 바둑 끝나자마자였는데… 절박한 승부에서는 한 걸음 물러섰다는 마음가짐이 은연중 드러나 것은 아닌지.”

“웃으며 축하는 게 당연하지, 그러면 거기서 인상 쓰고 있으란 말인가.”
“조치훈 9단이었으면 어땠을까?”
“그때하고 지금하고 같나?”
“몇 십 억 벌어둔 게 있다고 생각해 봐. 어떻게 되는지.”

이번 동양증권배 결승 제1-2국과 4강전-8강전의 한 판씩, 모두 네 판 정도를 간단히 복기해 봅니다. 결승을 해설했던, 유창혁 9단과 관전하며 검토했던 프로-아마 고수들의 의견을 옮긴 것입니다.

결승 제1국은 박정환 9단이 흑. 초반에 흑은 모양이 좋았고 백은 실리로 달리며 집에서 앞서 나갔다고 합니다. 이후는 보신 분들은 다들 느끼셨겠지만, 불꽃 튀는 난타전이었습니다. 공격과 수비가 쉴 새 없이 바뀌었고, 수습과 타개, 패싸움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이 바둑이 얼마나 험난한 판이었는가 하는 것은 수수(手數)가 웅변하더군요. 바둑은 무려 391수에서 막을 내렸고, 백을 든 저우루이양이 2집반을 이겼습니다.

1국은 종반 패싸움 과정에서 한두 번 박정환의 판단에 이상이 있었음이 지적되었습니다. 관전하던 프로 고수들은 “평소의 박정환이 아니었다”면서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흑이 초반에 집에서 밀리긴 했지만 이후 추격에 성공해 마지막에 가서는 흑이 약간이나마 남기는 형세로 보였다. 패싸움에서 냉정을 잃지 않았다면 흑이 이겼다”는 것이었습니다. 제2국은 박정환이 백. 1국과는 영 딴판으로 불과 175수에서 흑을 든 저우루이양이 불계승을 거두었습니다. 수수가 1국에 비해 절반도 안 되는 단명국이었습니다. 초반은 백이 나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중반 입구 박정환은이 대세점 대신 실리를 선택하면서 바둑은 급전직하, 백이 일방적으로 몰리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저우루이양은 박정환의 대마를 공격하면서 중원을 순식간에 잠실 운동장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타개와 수습의 수읽기에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권위자 박정환인지라 응원군들은 백이 잠실 운동장에 뛰어 들어가 멋지게 헤집고 나올 것으로 믿었습니다. 박정환도 팬들이 무얼 바라는지 알고 있다는 듯, 적진 깊숙이 단기 돌입, 붙이고 맞끊고 돌리는 현란한 흔들기를 보여 주기 시작했습니다. 백이 대세점을 방치하고 실리를 탐할 때 “아~ 이건 좀 위험한데요”라면서 심각하게 우려하던 인터넷 해설자 유창혁 9단도 응원에 가세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박정환 9단의 흔들기가 나옵니다. 이래야 박정환 9단다운 거죠. 워낙 이런 부분은 탁월하니까요.”

그러나 저우루이양의 응수에는 공격의 시종, 단 한 번도 빈틈이 없었습니다. 박정환의 격렬한 흔들기에 반면은 마치 지진이 난 것처럼 요동쳤으나 저우루이양은 예전 전성기의 이창호 9단처럼 흔들리지 않았고, 박정환의 백 대마는 중원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함몰하고 말았습니다. 박정환의 대마가 저렇게 허망하게 잡히다니, 바둑이 끝나고도 한동안은 좀 멍한 기분이었습니다.


<1도>는 1국의 종반. 우하귀 쪽과 우상귀 쪽에 문제의 패싸움이 보입니다. 우하귀 쪽에서 흑󰁣로 패를 따낸 장면. 백은 우상귀 1로 팻감을 썼습니다. 흑이 응수하지 않으면 대마의 사활이 걸리게 되는데, 박정환은 2로 먹여쳐만 놓고 4로 패를 해소하며 우하귀 백을 잡아 버렸습니다. 우상귀 흑 대마는? 백5로 치중하면 자체로 사는 수는 없지만, 흑6 젖히고 백7 때 흑8로 집어넣는 패가 있다는 것입니다.



<2도> 백1로 따내고, 흑2로 팻감 쓰고, 4로 󰁣에 따내고, 백5로 팻감 쓰고, 7로 1에 따냈는데, 흑8이 팻감은 팻감이지만, 이게 나쁜 팻감이었다는 것입니다(백9는 흑2 자리 이음). 백11로 팻감을 쓰자, 더 이상 팻감이 없다고 본 흑은 12로 패를 해소하고 백은 13으로 흑 11점을 잡았습니다. 자체로는 비슷한 크기. 그런데 흑은 8쪽의 넉 점이 잡히는 수가 남은 것이지요.

좌하귀 쪽 흑21-23은 좋은 끝내기. 다음 24로 젖혀 패를 하는 수가 있고 이건 백의 부담이 큰 패입니다. 그런데 “상변 백23 때 이를 외면하고 즉시 24로 젖힌 것이 빨랐다”고 합니다.



<3도>
백1로 막았는데, 흑은 A에 끊지를 못했습니다. 당장은 팻감 부족이라고 본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흑󰁣 젖힘을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는 것. 흑2-4로 끝내기를 하고 백5로 따내자 거꾸로 흑이 부담스럽게 되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 흑은 󰁣를 보류하고 상변 B 자리에 막아 두는 것이 나았으며 그랬으면 흑이 약간이라도 남았다는 것입니다. 거슬러 올라가 <2도> 흑8의 팻감으로도 —


<4도> 흑1로 팻감을 써야 했다고 합니다. 백4는 어차피 못 받는 것, 그건 실전과 같고 바꿔치기로 일단락되는 것은 실전과 같은데, 요컨대 지금은 흑󰁣가 살아 있다는 것이 실전과 다르다는 겁니다.


<5도>는 2국의 초반. 흑1-3으로 상변에서 자리를 잡을 때 백4로 들여다본 것이 실수였고, 우변 백에 대해 흑5로 짚어간 것이 절호점이었다고 합니다.


<6도> 흑6까지 등이 두꺼워졌습니다. 여기서 백7로 하변을 뚫어 잡은 것에 대해서도 유창혁 9단은 지적입니다. “실책이다. 실리가 크지만, 지금은 실리를 탐할 때가 아니다. 흑8이 그야말로 통렬했다”고 지적했습니다.


<7도> 백1~9로 대마는 살았으나 흑4가 아프고, 게다가 흑6~10은 엄청납니다. 조치훈 9단의 뒤를 이을 만한 폭파전문가라는 평을 듣는 박정환은 우상귀 흑11-13, 상변 흑15-17로 여기저기 붙이고 맞끊는 폭약을 설치했는데, 그게 오늘은 불발이었습니다. <5도> 백4로는, 유창혁 9단의 해설에 따르면 —


<8도> 백1로 여기를 한 칸 뛰어 둘 자리. 또 <6도> 백7로는 —

<9도> 백1-3으로 공작한 후 5 부근에서, A-B를 맞보면서, 삭감을 시작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기분 좋은 소식을 전해드리지 못해 미안합니다. 다음에는 좋은 소식을 들려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유창혁 9단의 마무리 인사였습니다. 유창혁 9단도 요즘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느끼지 않겠습니까. 아닌 게 아니라 정말 궁급합니다. 우리가 이대로 밀리는 것인지, 이건 일시적 현상이고, 곧 회복할 것인지. 전자라고 보는 팬들이 많습니다.

“당장 확 밀려 버리지는 않겠지만, 조금씩이라도 계속, 죽 밀리고 말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게 아니다. 내리막길에 접어들 때까지는 시간이 걸리지만, 일단 접어들면, 변곡점을 돌았다 싶으면 그 다음은 일사천리로, 아주 빠른 속도로 미끄러지는 것”이라고 우려하는 소리도 있습니다. 일본을 보라는 것이지요. 일본이 최근에는 힘을 좀 내고 있기는 하지만.

H형, 세상도 바둑도 마음 같지 않습니다. 그래도 어떡합니까. 견디는 수밖에. 그래도 우리에게는 바둑이라는 희망이 있으니까요. 중국에 진다는 것? 글쎄요…지금까지는 우리가 많이 이겼는데요? 일본은 어떻겠습니까? 만날 우리만 이겨서는 재미없지 않나요? 더운데, 건승하시기를…^^
TYGEM / 이광구 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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