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강전에서 천야오예에게 패한 이세돌.
그 이튿날 벌어진 32강전 더블 일리미네이션에서 이세돌은 중국 일인자 천야오예와 같은 조에 들었다. 물론 한 조에 든 나머지 2명의 선수가 일본 고마츠히데키 미국 에릭루이였기에 4명중 2명이 올라가는 상위라운드 진출을 기정사실이었다. 그러나 한중 대표선수끼리, 그것도 춘란배 결승에서 1-2로 패한 이세돌로서는 천야오예 전을 꼭 이기고 싶었고, 당연히 속에서 불쑥 솟는 것이 있었다.
그러나 좋은 바둑을 후반 들어서 계속 야금야금 추격을 허용했고 급기야 이세돌은 착수점을 찾지 못하다가 시간패를 당했다. 국후 기자에게 이세돌은 '계시원 문제'를 지적했으며, 타이젬 기사가 중국현지 언론을 통해 인용 보도되었고, 계시원을 교체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세돌이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결과적으로 심리전에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카리스마 그 자체였다. 결국 2승1패로 16강에 진출한 이세돌은 출국 전 중국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많이 이기진 못했지만 정예선수들이 살아남았다. 아직은 안심하긴 이르지만 (한국은) 계속 우승을 향해 전진할 것이다. 한국선수 중에서는 나만 잘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보다 우리를 강조한 실로 주장다운 발언이 아닐 수 없었다. 흔히 주장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엄밀히 말하면 개인전에서 '주장'이라는 직함은 없다. 그러나 어찌 나이만 많다고 후배들이 따를 수 있을 것인가. 이번 삼성화재배는 확실히 이세돌의 결연함 노련함이 이끌고 있다고 봐야 한다.
▲ 기어이 16강전에서 다시 만난 중국1위 천야오예를 꺾었다.
▲ 8강에 오른 면면들. 좌로부터 김지석-탕웨이싱, 이세돌-추쥔.
어제(8일)도 이세돌의 진지함은 빛났다. 어느새 자신의 천적역할을 하고 있는 천야오예에게 중반 이후 역전을 당했으나 후반 들어 재역전을 일구었다. 투혼의 반집승을 거둔 것. 한중리더끼리 맞붙은 '주장전'에서 보기 좋게 승리한 모습에서 이세돌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만약 졌다고 상상해보라. 이세돌은 천야오예 개인에게는 수습이 안 될 정도로 치욕적인 결과이며, 자신이 지금까지 토해냈던 멘트는 모두 말의 성찬으로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어제 16강전 후 8강 대진 추첨할 때 이세돌의 진지모드는 극에 달했다. 흔히 대진추첨을 마치면 선수들이 모여서 같이 악수도 하며 즐겁게 포즈를 취해주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세돌은 악수해달라는 기자들의 요청에 "뭘, 악수까지…"라면서 거절했다. 또한 8강 진출자 인터뷰마저도 '8강에 오른 것이 무슨 대수라고…' 하는 듯 정중히 거부했다.
이러한 이세돌의 결연모드는 이미 한국 선수들 전체로 퍼져있다는 느낌이다. 사실 워낙 이세돌 박정환에게 관심이 몰려있어서 그렇지 안성준이 구리를 격파한 것도 큰 업적. 그런 안성준마저도 "올해 마지막 대회인 만큼 (한국이) 꼭 우승하여 자존심을 세우겠다. 내일(10일) 인터뷰를 하겠다."며 간단한 답변만 했다.
랭킹2위 김지석도 앞서 이세돌이 중국선수와 악수를 거절하자, 자신도 탕웨이싱과 악수를 생략한 채 포즈를 취하는 등 진지모드에 동참하고 있다. 그 외에도 유성에 내려온 이후 한국 선수들의 웃음기를 본 적이 없다는 기자단의 전언이었다.

아무튼 이창호의 퇴조로 인해 자연스레 주장 완장을 찬 이세돌은 여태까지와 비교될 수 없는 진지한 자세로 후배 선수까지 이끌고 있다. 물론 프로선수들이 만큼 누구에게 지시를 받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정신적인 단일대오를 이룬 것 같아 든든하다.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한국은 최상이며 중국은 최악인데도 한중 4:4로 보합세다. 잃어버린 것의 일부라도 찾아와야 한다는 바람을 잘 알 것이다. '유성대첩'을 기대하는 맘은 팬이나 선수들이나 똑 같다. 한국 선수단 힘내시라!
10일 대전 삼성화재 유성연수원에서는 오전11시부터 2013 삼성화재배 8강전이 벌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