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청원배
'바둑전설' 오청원 선생을 기억하며
고향 푸저우에서 제1회 오청원배 기념행사 열려
2018-04-29 오후 10:00:19 입력 / 2018-04-29 오후 11:01:09 수정
4월29일 제1회 오청원배를 기념하기 위해 선수단과 관계자들이 푸저우 삼산인류기념공원(Fuzhou Three Hills Humanity Memorial Park)과 오청원 바둑회관을 찾았다.
푸저우 삼산인류기념공원에는 오청원 선생 뿐만 아니라 푸저우를 대표하는 인물들을 기리고 있다.
오청원 선생은 1914년 음력 5월 19일(양력으로는 1914년 6월 12일) 중국 푸젠성 푸저우에서 태어나 바둑을 좋아하는 부친의 영향으로 일곱 살 때 바둑을 배웠고, 1928년 일본의 세고에 겐사쿠(瀬越憲作․1889∼1972) 문하에 들어가며 본격적인 바둑 수업을 시작했다.
1933년 기타니 미노루(木谷實․1909∼1975) 5단(당시)과 함께 ‘신포석(新布石)’을 발표했고, ‘흉내 바둑’, ‘3-三․화점․천원 착점’ 등 반상에서 끊임없이 실험을 거듭하며 현대바둑의 기틀을 마련한 창시자로 존경받고 있다.
특히 1939년부터 시작된 기타니 미노루 7단(당시)과의 치수고치기 십번기에서 승리하며 일본 바둑계 1인자에 올라섰고, 이후 1956년까지 이어진 가리가네 준이치(雁金準一), 후지사와 구라노스케(藤澤庫之助), 하시모토 우타로(橋本宇太郞), 이와모토 가오루(岩本薰) 등과의 치수 고치기 십번기에서도 잇달아 승리하며 일본 바둑계를 평정했다. 11차례 이어진 10번기 총 전적은 10승 1무 1패를 기록했다.
오청원 선생은 1984년 기사직을 은퇴했으며, 문하에 린하이펑(林海峰)․루이나이웨이(芮乃偉) 9단을 두고 있다. 바둑 기성(棋聖)’으로 추앙받던 우칭위안(吳淸源) 선생은 2014년 11월30일 오전1시 11분 노환으로 타계했다. 향년 100세.
푸저우 삼산인류공원에서 진행된 행사와 오청원 바둑회관을 사진으로 소개한다.
▲푸저우 삼산인류기념공원은 오청원배가 열리는 호텔에서 약30분 가량 떨어져있다.

▲오청원배 출전선수 헤이자자(앞)와 셰이민이 방명록에 이름을 남기고 있다.
▲오청원배 시드를 받은 장쉬안의 남편 창하오도 행사에 참여해 기념부채에 사인을 하고 있다.
▲삼산인류기념공원에 도착한 뒤 비가 와 행사 관계자가 마련해 둔 우산을 쓰고 있는 선수들. (왼쪽부터) 중국 위즈잉, 일본 셰이민, 대만 헤이자자.
▲오청원 선생 문하였던 루이나이웨이도 참석. 오청원선생의 사진을 감상하고 있다.
▲행사장 전경.
▲창하오가 오청원 선생에 대한 일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오청원 선생 문하였던 린하이펑(가운데)와 루이나이웨이가 대표로 인사를 올리고 있다.

▲삼산인류기념공원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오청원 바둑회관. 2011년 춘란배 준결승전 '이세돌-구링이' 대국도 이곳에서 열린 바 있다.
▲오청원 선생이 남긴 기보들을 전시한 공간.
▲바둑회관 벽 곳곳에는 기보들이 있다.
▲바둑회관 관람을 끝내고 오청원배에 출전한 선수들이 바둑판에 사인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