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타
한국으로 갈 독일 선수 3명 결정
한상대 교수에게 듣는 유럽 바둑 소식3
2006-04-26 오후 2:30:58 입력
| 유럽 각지에 한국 바둑을 보급하기 위해 힘 쓰는 한상대 교수. 한 교수는 "해외에 나가 보면 바둑보급에 우리나라가 얼마나 소홀히 해 왔는지 누구나 금방 느낄 수 있다. 늦은 감이 있으나 지금이라도 시작할 수 있어 다행이다."고 말한다. 그는 올해도 어김없이 바둑 보급을 위해 유럽행을 택했다. 3월 25일부터 4월 10일까지 한국 대사배 바둑대회가 열리는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에 방문한 것(관련기사보기). 그는 3월 24일 한국에서 바둑의 열기가 식지 않는 독일을 향해 떠났다. 그와 함께 한해원 2단과 이하진 2단도 동행했다. 약 15일간 유럽 각지를 돌며 있었던 일들을 기록했다. 한국 대사배 바둑대회가 열리고 있는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소식을 한상대 교수에게 듣는다.
2006년 3월 26일 대회 이틀 째 오후. 5라운드를 끝으로 드디어 한국으로 갈 입상자 3명이 결정 됐다. 1위에 펠릭스(Felix von Arnim, 6단, 함부르크), 벤(Bernd Schutze, 5단, 베를린) 데이빗(David Ongaro, 4단, 함부르크)이다. 작년에 한국에 왔던 마르코 5단은 분전을 했으나 아깝게 4위를 했다. 우승자 펠릭스에게 하진이와 두점 특별대국을 제안했다. 하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피한다. 두점이란 말에 자존심이 상한 것일까. 두 점 대국이면 나는 하진이에게 걸겠다.
나에게 숙소를 제공 해 준 벤이 2위를 해서 내가 축하해 주었더니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그는 5단으로 승단도 했다. 시종 싱글벙글 기쁨을 감추지 못 한다. 대사관의 한공사가 우리 세 명과 룽거씨, 인성이를 한국 식당으로 초청하여 환담을 나누었다. 벤은 그날 혼자 단골 펍(Pub)에 가서 자축 파티를 열고 밤에 아주 늦게 귀가했다. 이 날 벤은 술에 취해 나와 바둑을 두지 못 했지만 화기애애한 가운데서 대화를 나누었다. 저녁엔 룽거 씨 안내로 베를린 시내를 걸어 다녔다. 룽거씨는 컴퓨터 박사로 아마2단인데 그의 꿈은 한국에 직장을 얻어 3년 만에 아마 5단으로 금의환향하는 것이다. 그런 뒤에 수퍼그룹에서 바둑을 두는 일이다. 그는 한국을 “드림 랜드(Dream Land)” 라고 부른다. 그의 부인인 소설가 마누엘라는 남편의 이런 계획을 까맣게 모르고 있다. 그는 바둑 얘기를 부인이 없는 곳에서만 하기 때문이다. 룽거 씨가 3년 전에 나에게 베를린에 사범을 한 명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바둑도 세고 영어도 잘 하는 내 학생 중 한 명을 골라 달라고 한다. 그런데 막상 마땅한 인물을 찾기가 어려웠다. 바둑 강자 중 영어 강자는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연구생 출신인 조석빈 아마7단이 친구의 도움으로 먼저 베를린의 라이벌 도시인 함부르크에 가서 바둑 보급을 하자 룽거 씨가 날마다 이메일, 전화 등으로 나를 독촉했다. 할 수 없어 당시 청아모 회장으로 내 바둑 영어 교실에서 공부하고 있던 황인성 아마 7단을 베를린에 보냈다. 조건은 숙식제공, 영어, 독일어 수업 협조, 바둑을 둘 때마다 2~30 유로 정도의 지도비를 받는 것이다. 계약 기간은 1년으로 했다. 서로 만족하면 연장하는 조건이었다. 언어능력이 좋아지면 학교 동아리 학생들도 지도하고 태권도 사범들처럼 자리를 잡을 수 있으리라는 것이 내 계산이다. 인성이가 영어도 많이 늘고 바둑인들 사이에 인기도 있고 이 곳 생활을 만족해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안도했다. 1970년대에는 우리나라가 태권도 사범 7천여 명을 전 세계에 내 보냈다. 태권도는 몸으로 하는 운동이라 유창한 언어가 필요 없지만 바둑은 많은 설명이 필요하므로 다르다. 7천명의 태권도 사범의 대부분이 초기 고생을 딛고 지금은 현지에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태권도가 일본 가라데를 누르고 동양 무술의 대명사가 되고 올림픽 경기 종목으로 되는 데까지 많은 사범들을 해외로 내 보낸 것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바둑도 태권도 처럼 전 세계에 퍼지는 것이 내 꿈이다. (한상대 교수의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한국 대사배 바둑대회 소식은 계속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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