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9일
약속했던 오전 10시에 이세돌 국수와 이 국수의 친형인 이상훈 7단이 필자의 사무로 왔다. 내일 있을 기자회견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최소한 이 국수가 본인의 생각과는 달리 말을 실수 해 언론의 공격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한국리그 문제, 기보저작권과 시상식 불참 그리고 중국리그 참가와 중국리그 시상금 5% 납부 문제, 휴직 동기 등 많은 답변들이 산재해 있지만 이 모든 것을 그 동안 바둑만 두어왔던 이 국수가 조리 있게 말 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바쁘지만 시간을 만들어 미팅을 했다.
우선 기자회견의 진행은 필자가 맡기로 했다. 잘 해야 본전인 이 일에 끼어드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생각도 했지만 이 국수가 날카로운 언론과 잘못 대응하다가는 파국으로 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어떻게 하든지 최악의 상황으로 가는 것을 막아보고자 자청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 국수를 뒤에서 조정한다는 소리도 들려오고 해서 심기가 불편한 상태였지만 우리 바둑계가 후퇴하는 것을 팔짱만 끼고 앉아 있을 수 없어 거창하지만 거국적인 일이라 생각하고 자청했던 것이다.
기자회견을 며칠 앞두고서부터 많은 바둑계 인사들은 물론, 잘 아는 바둑 담당 기자들까지도 이 국수가 혹시라도 은퇴 발표를 하지 않나 걱정이 돼서 필자에게 전화를 했지만 명쾌한 답변을 해 줄 수 없어 그렇게 까지야 되겠냐고 반문을 답변으로 대신했다.
이 국수의 형제가 사무실에 오기 전에 필자는 어떻게 하면 이 국수의 의견을 오해 없이 기자들에게 정확히 전달할 수 있도록 자문해 주어야 하나 걱정했는데 아무래도 솔직히 모든 것을 털어 놓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아 이 국수가 오자마자 말문을 열었다.
‘나는 언제나 중립의 입장에서 서서 일을 한다. 이 국수가 내 친척이더라도 잘못된 부분을 그냥 덮고 넘어갈 수는 없다.’라는 말을 하면서 항상 정도(正道)가 기본인 방법으로 생각하고 대처하면 좋은 결과가 나온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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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식 불참 문제만 해도 그렇다. 필자는 이 국수에게 왜 시상식에 나가지 않았느냐고 항의성 질문을 던졌는데 이 국수의 답변은 의외로 피곤이 너무 겹쳐 늦잠을 잦기 때문에 일어나지 못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놀라운 사실이었다. 그 동안 신문과 인터넷에 도배가 될 정도로 기사가 뜨고 이 국수를 괴롭혀 온 사회성 문제와 도덕성 문제에 대한 일이 정작 이 국수가 늦잠을 자서 그랬다니 어이가 없는 일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문제는 사회성도 도덕성도 아닌 문제였고 어쩌면 생리적인 문제일 수도 있어서 여간 다행이지 않나 싶었다.
사회성과 도덕성이 결여된 스타 프로 기사 뒤에서 일을 봐주고 있다는 소리는 적어도 듣고 싶지 않아서였다. 어쨌든 분명히 잘못된 일이기 때문에 필자는 이 국수에게 있는 그대로 솔직히 말하고 사과를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묻자 이 국수는 서슴없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시 한 번 놀랬다. 자존심이 누구보다도 강한 이 국수의 대답이 너무나 시원스럽게 나왔기 때문이다.
최근 이 국수의 부정적인 부분만 발췌해서 시리즈 컬럼을 쓰고 있는 정용진씨 기사에 관련된 기자들의 질문에 대비해 역시 이 국수에게 정용진씨의 기사 내용이 사실이냐고 물어보자 사실과는 많이 다르다고 했다.
그래서 필자는 이 국수가 기자회견 시 쉽게 답변할 수 있도록 만든 답변지에 “많은 부분이 사실과 다르고 명예를 훼손한 부분이 있을 경우 변호사와 협의하여 형사 고소도 불사하겠다.”고 정리를 하였으나 이 국수는 답변 내용을 볼펜으로 지우면서 “사실과 다른 내용이 대부분이지만 저도 제 의견을 명확히 전달하지 못한 책임도 있는 것 같다”고 하며, “앞으로 이런 오해가 없도록 노력하겠다.”는 사과의 말도 기재하여 간략히 정리를 했다.
필자의 경솔함과 이 국수의 관용함에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얼굴이 화끈거려 스스로 창피하기까지 하다. (정용진씨는 기자회견장에까지 참석하여 이 국수에게 질문을 던졌으나 별 다른 문제없이 이 국수의 간단한 답변으로 더 이상의 문제는 없었다.)
기자회견장을 들어서기 전에 로비라운지에서 우리는 차 한 잔을 마셨다.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이런저런 말을 붙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필자는 기자들이 얼마나 올까 궁금해서 회견 20분전부터 로비라운지에서 기자회견장을 세 번이나 왔다 갔다 했다. ‘내가 왜 이러지? 수십 년 동안 수많은 행사를 치렀지만 이런 적이 없었는데 왜 이러지?’ 스스로 반문했지만 그래도 궁금해서 견딜 수 없어 기자회견 5분전까지 회견장을 오갔다.
정확하게 2시에 맞춰 이 국수와 이상훈 7단 그리고 필자가 함께 회견장을 들어갔다. 셋이 연단에 올라서자 사방에서 카메라플레시가 터졌다. 70여 명의 기자들이 참석한 회견장은 빈자리가 없었고 연단 위에서는 앞에 설치된 삼각대 위의 방송용 카메라로 인해 기자들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역대 바둑행사 중에 가장 많은 기자들이 참석했다는 것이다.
필자의 회사 직원이 회견장 상단 테이블 위에 답변 내용을 잘 정리하여 15호 크기의 글자로 인쇄된 A4 용지를 올려놓았다. 이 국수는 이제 이 답변지를 보고 기자들의 질문에 자신의 의견을 말 할 것이다. (참고로 이 답변지의 내용 중 90%는 이 국수 개인의 의견으로 작성되었으며 나머지 10% 정도는 필자와 모 프로기사의 자문에 의해 만든 것이다.)
기자회견이 시작되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세돌 국수의 지적재산권 관리를 하고 있는 주식회사 킹스필드와 국민생활체육 전국바둑연합회 대표직을 맡고 있는 차만태라고 합니다. 그 동안 저는 이세돌 국수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 이 국수를 통해 최근의 사안들을 듣고 나름대로 분석해 본 결과 상당한 부분에 있어 이 국수의 의견에 공감이 되어 자청하여 오늘 진행을 맡게 되었습니다.
오늘 기자회견은 최근 이세돌 국수의 휴직과 관련하여 국내외 바둑계가 뜨거운 논란이 일고 있는 각종 사안들과 이 국수의 심경에 대한 질문과 답변 형식으로 진행을 할 예정입니다. 질문에 앞서 이 기자회견은 외부의 압력이나 바둑계 인사들의 종용에 의해서 개최된 것이 아니라 최근 이 국수 자신의 의사와는 달리 지나치게 폄하된 기사들이 많아 이를 정확히 해명하고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먼저 질문 전에 이세돌 국수의 기조 발언을 듣겠습니다.”
약간 긴장한 탓인지 이 국수는 기조연설부터 떨리는 목소리로 그 동안 물의를 빚었던 것에 대한 사과와 함께 조목조목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먼저 그 동안 저를 아끼고 사랑해 주신 바둑팬 여러분께 잘잘못을 떠나서 심려를 끼쳐 드린 점을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또한 휴직으로 인하여 대회 진행에 물의를 끼쳐 드린 스폰서 분들께도 진심으로 사과를 드립니다. 오늘 기자회견은 그 동안 한국리그 불참 사유와 기보저작권 문제, 그리고 시상식 불참 내용은 물론 휴직할 수밖에 없었던 사유 등 전반적인 문제에 대한 제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동안 저는 바둑을 두면서 바둑 이외의 루머에는 전혀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아 일일이 대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께서 저에 대하여 오해를 하는듯하여 지나간 일들은 물론 지금의 솔직한 제 심정을 말씀드려 더 이상의 오해나 편견이 없도록 이 자리를 마련한 것입니다."
국수의 기조발언이 끝나고 진행을 맡은 필자가 질문할 기자들에게 손을 들고 소속과 성명을 말 한 후에 질문을 하라고 하자 이내 질문이 쏟아졌다. 그러나 이 국수는 준비해 간 답변서를 전혀 읽지 않고 대답을 잘 했지만 왠지 불안함을 금치 못했다. ‘저러다 실수하면 어쩌지?’
기자들의 질문이 점점 날카로워지면서 더욱 초조해졌지만 답변을 하는 이 국수는 오히려 마음의 안정을 찾아서인지 그제 서야 답변서를 넘겨 가면서 차분히 자신의 의견을 기자들에게 전달해 나갔다.
그러나 수차례의 질문과 답변이 오가면서 한 때는 한국기원의 직원과 이 국수와의 설전도 있었는데 혹시라도 감정싸움으로 이어질까봐 필자가 이상훈 사범에게 이 국수를 대신해서 기보저작권과 관련된 당시의 상황을 설명 하라고 하면서 잠시나마 숨을 돌리도록 양측을 진정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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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양측이 잘 참아주어 별 문제없이 내용 정리가 되었다.
그러나 이 국수에게는 이러한 과정들이 너무나 큰 시련과 고통의 순간인 것 같았다. 어릴 때 비금도에 계신 부모님 곁을 떠나 상경해 지금까지 정상에 오르기까지 인고의 시간을 보냈지만 막상 정상에 오르니 기쁨과 환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기 힘든 일과 전투 아닌 전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안쓰럽기까지 하다. (올 봄, 신안군 초청으로 이 국수의 고향 비금도에 있는 이세돌 기념관을 방문 할 당시 기념관 부근에 있는 이 국수의 자택에 살고 계시는 이 국수의 모친과도 만난 적이 있어 더욱 마음이 아팠다.)
진행을 맡아보면서 이 국수가 답변을 하고 있는 동안 잠시나마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무엇 때문에 우리의 천재 기사를 이토록 괴롭히고 있나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측은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했다.
이번 일로 마음의 상처를 입은 것은 비단 이 국수뿐만 아니라 한국기원이 언론과 네티즌의 뭇매를 맞고 있다. 서브프라임 후유증으로 어려운 한국리그를 개최하기 위해 시니어 기사들이 각고의 노력을 했음은 물론 기전 개최가 초읽기에 몰리자 피 말리는 하루하루를 보냈던 담당자들의 노고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모두 성공적인 한국리그를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적은 인력과 예산으로 휴일도 반납하면서 국내외를 수 없이 오가며 성공적인 여러 기전 행사를 치러내고 있음을 우리는 충분히 인지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혹간 실수가 있었다면 용서와 관용과 이해를 바라며, 이런 문제가 다시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말로만 팔백만 동호인 숫자가 아닌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뜨겁게 달굴 수 있는 동호인들의 액션이 예산 문제를 해결 해 주고 그러한 액션을 통해 우리 바둑계는 세계 최강의 실력을 계속적으로 유지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제 힘든 결정의 시간이 남아 있다. 오늘 있을 한국기원 이사회에 참석할 허동수 이사장을 비롯해 한상렬 총장과 한국기원 이사들은 그 동안의 있었던 일로 사사로운 감정을 자제하고 보다 성숙된 모습으로 신중하게 이 국수의 문제를 논의하여 우리의 천재 기사를 잃어버리는 오류를 범해서는 절대 안 되며, 바둑인의 한 사람으로써 부디 호소하오니 팔백만 우리 바둑 동호인들에게 결코 실망을 주는 결과가 나오지 않도록 애를 써 주시기 바란다.
특히 이제 곧 다가올 역사적인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 자랑스런 우리 조국에 금메달을 안기고 싶어 하는 이 국수의 회견 발언이 결코 물거품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하며 이 국수 또한 그 동안 문제가 되어 왔던 여러 가지 행동에 대한 반성은 물론 팬들에 대한 기대를 저 버리지 않는데 치중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기자회견을 통해 이 국수의 심정을 잘 알 수 있었으므로 얼마가 될지 모르지만 그가 휴식과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여 하루빨리 돌아 와 우리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 국수는 기자회견 시 마지막으로 준비한 한마디를 못해서 아쉬워했는데 그 말인즉 “이번 일을 계기로 보다 성숙한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준비한 약속만큼 그 약속을 저 버려서는 아니 될 것이다.
이 국수는 기자회견이 끝나자 빠른 걸음으로 회견장을 빠져 나가려 했다. 필자는 이 국수의 앞길을 막아서면서 기자들에게 눈도장이라도 한 번 더 찍고 가자고 했다. 이제 닫혀있는 모습의 이세돌이 아닌 열려있는 마음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스타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앞을 막았다.
필자의 의견에 동의를 했는지 이 국수가 회견장 출입구 앞에 멈추자 예상 했던 대로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와 이 국수를 에워싸면서 수고했다는 인사를 건넨다. 기자회견을 참 잘했다고 말해주는 기자들도 있었고 이 국수의 전화번호를 묻는 기자들도 있었다. 특히 이 국수가 이렇게 변할 줄은 몰랐다는 말을 하는 기자도 있었다.
기자들과 이 국수의 얼굴이 환하게 웃음을 머금고 있었으며, 옆에서 보기가 무척 흐뭇했으나 긴장이 풀려서인지 갑자기 피곤함이 밀려왔다. 생애 가장 긴 오후 시간을 보낸 것 같았다.
2009년 7월 2일
(주)킹스필드
국민생활체육 전국바둑연합회 회장 차 만 태
위 전문은 기자회견을 주최한 (주)킹스필드 차만태 회장이 타이젬 자유게시판에 직접 작성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