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기사는 2009년 4월 10일자 주간바둑신문에 보도된 내용입니다 -
광저우아시안게임 바둑부문 담당자는 요즘 골치가 아프다. 아시안게임이 이제 1년 반 남짓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각 종목별로 구체적인 메달 수 및 경기 방식이나 규정 등을 아시아 올림픽 평의회(OCA)나 아시안게임조직위 측과 논의해야 하는데 바둑은 아시아 지역을 관장하는 국제적 기구가 마땅치 않기 때문에 사실상 거의 손을 놓고 있는 형편이다.
현재 남자단체전, 여자단체전, 페어의 3개 부문으로 치러지는 것으로 잠정 결정했지만 룰은 어느 방식을 채택할 것인지, 프로가 출전할 것인지 아마가 출전할 것인지 등 세부적인 사항은 하나도 명확히 결정된 것이 없다.
하지만 아시아 바둑을 주도하는 연맹단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도 우리나라가 앞장서 만든 국제바둑 기구가 버젓이 존재하고 있다. 대한바둑협회(회장 조건호)는 2005년 창립 이후 바둑의 세계화 추진을 위해서는 국제적인 바둑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해 우선 아시아바둑연맹AGF)을 창설했다.
 |
그래서 2006년 10월 전주에서열린 제1회 세계아마바둑선수권대회 기간 중 대한바둑협회의 주도하에 일본과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13개국 대표들이 참가한가운데 AGF 발기인 총회 및 창립총회를 개최했고 2008년 5월에는 한국이 회장국으로, 태국과 싱가포르가 부회장국으로 각각 선출됐다. 그리고 아시아 지역에 바둑보급 확대 및 지원 방안 등을 논의했다. 여기까지는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AGF 창립 초기에는 함께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등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던 중국과 일본이 연맹이 점차 한국 주도로 구체화되어가자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기 시작한데서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세계 바둑은 한국과 중국, 일본을 중심으로 발전해왔기 때문에 한국기원과 중국기원, 일본기원의 주도로 성장을 거듭해왔다. 때문에 이 세 기관은 상호 협조가 긴밀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 대한바둑협회라는 단체가 설립되고 대한바둑협회가 AGF를 주도하면서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한국과는 달리 아마추어 업무도 함께 주관하고 있는 중국기원과 일본기원이 대한바둑협회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외면하고 모든 업무를 여전히 한국기원과 조율하다보니 아시아바둑연맹은 유명무실한 단체로 전락해버렸고 결국 고사 위기로 몰린 것이다.
현재 AGF에는 한국을 비롯, 태국·대만·홍콩·마카오·싱가포르·몽골·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필리핀·브루나이·베트남·인도 등 아시아 13개국이 참여하고 있으나 바둑 강국인일본과 중국이 빠져 있어 사실상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대한바둑협회는 한국기원과 대한바둑협회, 일본기원과 관서기원, 중국기원과 상해기원이 복수로 AGF에 참여해서 한·중·일 3국은 2표를 행사토록 하자는 절충안을 냈지만,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런데 한·중·일 3국을 대표하는 기원들과 대한바둑협회가주도하는 AGF 사이의 이런 갈등이 실은 한국기원과 대한바둑협회의 정치적 힘겨루기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심지어는 중국이나 일본조차 한국이 한 목소리를 내주길 원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최근 한 중앙 일간지에 명지대학교 남치형 교수가 올린 기고문은 이런 첨예한 갈등에 불을 지폈다.
[남치형 기고문]
‘유명무실’ 아시아바둑연맹 한국 바둑계가 매듭 풀어야
광저우 아시안게임이 60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개최국인 중국은 새로운 경기장과 숙소를 건설하고 자원봉사자단을 꾸리고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 참가한 경험이 있는 선수와 임원들을 초청해 조언을 듣는 등 준비에 한창이다.
이는 처음으로 아시안게임의 종목으로 채택된 바둑에서도 마찬가지다. 중국기원은 체스·바둑과 같은 보드게임 종목을 위한 전용 경기장을 100억원 이상을 들여 새로 짓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준비가 모두 순조로운 것은 아니다. 아직까지 대회를 주관할 아시아 차원의 국제 바둑기구가 없다는 것은 중국기원의 큰 고민거리 중 하나다.
사실 아시아권의 국제 바둑기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2007년 대한바둑협회(KABA)가 설립한 아시아바둑연맹(AGF)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 단체는 아시안게임을 주관하는 데에는 중대한 결격사유가 있다. 일본과 중국이 연맹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바둑협회가 연맹을 설립할 당시 한국기원이 배제되고, 중국기원이나 일본기원과 충분한 협의를 하지 않은 채 양 기원이 가입을 유보하고 있는 상황에서 설립을 강행했던 것이 그 이유다.
결과적으로 아시아바둑연맹은 한국기원, 일본기원 및 중국기원이 모두 빠진 채 설립 후 이렇다 할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 때문에 중국기원은 지난 1월 일본기원, 한국기원, 그리고 국제바둑연맹의 관계자를 초청해 이 문제를 논의했다. 아시아바둑연맹의 설립 때부터 내재해 있던 문제가 아시안게임의 개최를 맞이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회의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결정됐다. 새로운 아시아바둑협회의 설립을 논의하기에 앞서 아시아바둑연맹을 한국기원의 주도 하에 재정비할 것,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새로운 단체 설립해 한·중·일이 함께 운영해 나갈 것, 이를 포함한 국제적인 문제들을 논의할 3국 기원의 상설 협의체를 구성할 것 등이다.
이 중 한국기원이 아시아연맹을 재정비하는 문제는 다음 단계를 논의하는 전제로서 가장 시급한 것으로, 4월에 있을 2차 회의 때 그 구체적인 진행 상황을 보고할 예정이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을 개최해야 하는 우리로서도 마냥 미루고 있을 수만은 없는 시급한 사안이다.
조금 늦더라도 한·중·일 3국의 협의를 통해 원만히 설립될 수 있었던 아시아 차원의 국제 바둑기구가 지금과 같은 불완전한 체제를 갖추게 된 것은 아무리 좋게 보아도 조급증에 걸린 한국 바둑계의 책임일 수밖에 없다. 사실 국제 바둑계의 이번 요구는 일종의 국제 문제를 일으킨 한국이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한 뒤 국제 무대에 나오라는 비난의 완곡어법에 불과하다. 문제는 재정비의 역할을 맡은 한국기원도, 그 당사자인 대한바둑협회도 이 상황에 대해 별다른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시아바둑연맹의 문제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인 한국기원과 대한바둑협회의 통합 논의와 맞물려 정치적 힘겨루기 양상까지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만일 이번 기회에 우리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당장 아시안게임을 치러야 하는 중국의 주도 하에 새로운 아시아 차원의 국제기구가 생길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미 일본의 동의 하에 중국이 그런 의사를 내비쳤으며, 우리 역시 명분이나 실리 어느 쪽으로도 그 단체를 거부할 수 없다. 물론 그렇게 된다면 아시아바둑연맹이나 한국기원과 대한바둑협회의 통합 등의 문제들은 더 이상 문젯거리가 아닐 것이다. 이미 남들이 다른 해결책을 찾았으니 말이다.
남치형 교수
|
남 교수는 기고문에서 "아시아바둑연맹(AGF)은 아시안게임을 주관하는 데 중대한 결격사유가 있다. 일본과 중국이 연맹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밝히며 "대한바둑협회가연맹을 설립할 당시 한국기원이 배제되고, 중국기원이나 일본기원과 충분한 협의를 하지 않은 채 양 기원이 가입을 유보하고 있는 상황에서 설립을 강행했던 것이 그 이유다."라고 말했다.
"또 지난 1월 중국기원이 한국기원, 일본기원, 그리고 국제바둑 연맹의 관계자를 초청해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새로운 아시아바둑협회의 설립을 논의하기에 앞서 아시아바둑연맹을 한국기원의 주도 하에 재정비할 것,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새로운 단체를 설립해 한·중·일이 함께 운영해 나갈 것, 이를 포함한 국제적인 문제들을 논의할 3국 기원의 상설 협의체를 구성할 것 등이 결정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한바둑협회의 주장은 조금 다르다. 대한바둑협회 관계자는 "우리가 확인해본 결과 당시 회의에서 그런 논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기원과 일본기원은 한국기원과 대한바둑협회가 하나의 목소리만 낸다면 새로 연맹을 만들 필요 없이 AGF 가입도 무방하다는 것이 주요 요지"라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을 방문한 시게노 유키 IGF 사무국장은 주간바둑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국제 연맹이 생기기는 어려운 일"이라며 "AGF설립이 급작스럽게 추진되는 바람에 일본과 중국이 선뜻 가입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현 AGF가 프로와 아마를 포괄하는 단체가 되기만 한다면 중국과 일본의 가입은 시간문제다. 중요한 것은 한국이 빨리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밝혔다.
 | 또 본지가 입수한 IGF 내 3개국 기원 정상회담 회의록에 따르면 한상렬 사무총장은 "한국의 대한바둑협회가 설립한 아시아바둑협회가 있지만 중국이 선도하여 프로가 주도하는 권위 있는 아시아 바둑연맹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이 이미 주도하고 있는 국제기구를 버리고 중국의 주도하에 새 단체를 만들어줄 것을 주문한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때문에 대한바둑협회의 관계자는 "설령 협의하고 통합해가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더라도 이는 협회 간 대화를 통해 풀어야지, 국내 문제를 국제 회의 석상에서 언급하며 외국에 이해를 구하고 오히려 새로운 단체를 만들어달 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분개했다.
|
스포츠로 방향을 튼 한국바둑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우선 차갑게 식어가는 국내 바둑 열기를 되살려내야 하며, 태권도처럼 전 세계에 한국바둑의 위상을 알려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스포츠 문화 컨텐츠로 만드는 작업도 시급하다.
다행히 한국기원 이사회와 조건호 대한바둑협회 회장은 한국기원과 대한바둑협회의 통합에 원 칙적으로 찬성하고 내년까지 통합하는 작업에 착수했다고 한다. 모쪼록 좋은 결과가 나오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