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기타
비로소 '산꾼'이 되다
차수권 6단의 두타산, 청옥산 산행기
2009-10-15 오후 4:17:32 입력 / 2009-10-15 오후 7:21:36 수정
산을 좋아하는 내가 그 전부터 꼭 가고 싶었던 산이 있었는데 바로 두타산과 청옥산이다. 산행할 마땅한 때를 찾지 못하던 중 지난 10월 9일부터 11일까지 드디어 가게 되었다. 10월 9일 (금) 막영과 장엄한 능선종주의 그리움을 내내 견디지 못하다가 비로소 두타산, 청옥산을 만나러 길을 나섰다. 산으로 가는 길을 나섬은 항시 설레지만 이번은 그 어느 때 보다 기대되었고, 한편 긴장되었다. 높고 깊은 산으로서, 총 29.1 km의 능선의 길이가(포항 셀파산악회의 실측자료) 숙영의 배낭무게를 버티게 해줄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교통편을 수없이 견주다가 강릉~댓재 간의 하루 3회의 버스편, 백복령에서의 불확실한 버스 노선 등을 감안하여 자가운전으로 결심을 굳혔다. 강릉의 두 친구에게 연락을 미리 취한 다음 배낭을 꾸려서 10시에 길을 나섰다. 기본 장비 이외의 식량은 최소한으로 꾸렸으나 언제나 그렇듯이 먹을거리의 갈등은 산행 내내 이어질 것이다. 150g 짜리 김치로는 겨우 두 끼만을 보장하지만 그런다고 500g 짜리를 챙길 용기도 없고 라면도 하나 더 넣고 싶었지만 그만큼 김치와 식수 걱정이 앞서서 포기해버렸다. 과일에다 오이까지는 호사가 아닐지…. 밀감 10 개로 마감하였고, 삼겹살은 아예 갈등의 대상에서 제외시켜 버렸다. 점심은 빵과 우유로 대신하기로 마음먹고 배낭을 매니 언제나 그렇듯 난감한 무게였다. 이혼한 여자의 등짐은 무거울수록 좋지만, 여흥에 들뜬 나그네의 등짐은 그렇지 않구나. 아무려면, 산과 친구를 찾아나서는 마음이 그리 무겁기만 하랴…. 참으로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경포대 바다를 목전에 두고, 회와 소주로 그간의 정을 나누어 마셨다. 며칠 후의 암 수술도 마다않고 전장의 병사처럼 몸을 사리지 않는 친구를 애걸복걸하여 귀가시킨 후, 남은 둘은 늦은 시간까지 끊어진 우정을 되찾느라 몸부림쳤다. 10월 10일 (토) 오전 6시 하장면으로 향하는 도증의 성산, 석병산과 닭목령을 갈라놓는 삽당령, 백두대간의 중추이며 미래의 땅이란 슬로건을 내세운 임계를 지나면서 비로소 산의 정취가 가까이 다가왔고, 안개와 는개가 오락가락하며 산 어귀에 가을 옷으로 갈아입은 나무들이 형형색색을 뽐내면서 나 또한 가을 나그네가 되고 있었다. 숙암 삼거리에서 잠깐 태백으로 잘못 진행하기는 했으나, 지나는 촌로에게 정중히 길을 물어 이내 방향을 틀어서 9시를 조금 넘겨 댓재 마루에 올라 설 수 있었다. 댓재 정상에는 ‘두타산 6.1km’ 의 커다란 안내 표지판이 다듬어 놓은 주차장을 지키고 있었다. 오전 9시30분 휴게소 주인장에게 하산 후의 차량을 약속한 다음, 신발 끈을 동여매고 설레는 첫 발자국을 내디뎠다. 두타산과 청옥산으로 향하는 일반적인 등로는 무릉계곡 방면이다. 해발180m에서 1200m의 표고차를 극복해야만 정상에 올라서지만, 원점회귀 산행의 적격지이며, 특히 여름의 무릉계곡은 중국의 무릉도원과 견줄 만큼 절경을 이루며, 또한, 용추폭포는 무릉계 최고의 걸작이다. 그러나 북으로 힘차게 뻗어나가는 고적대 방향으로 산행의 욕심을 부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길다는 단점이 있다. 능선 종주를 위한 산꾼들은 해발 800m가 넘는 댓재에서 500m만 오르면 두타산 정상에 닿기에 이 코스를 주로 이용한다. 동고서저의 전형적인 한반도 지형을 이룬 댓재~백복령 구간의 동사면은 절벽이나 다름없는 급경사를 이루어 그 안쪽으로 무릉계를 품고 있는 형세이다. 능선 또한 어떠한 산보다도 월등하며, 능선 전체가 백두대간 코스이므로 길이 유난히 잘 나 있어서 체력이 받침이 된다면 길을 잃을 염려는 전혀 없다. 오전 9시 47분 햇댓등 통과 배낭을 다시 메는 수고를 마다않고, 사이사이 카메라를 들이대었다. 통골목이부터 정상 못 미처 30분 이상은 평소의 체력을 시험하는 된비알이다. 이후 완급을 조절하는 능선길을 올라서 12시 20분쯤 두타산 정상에(1352.7m) 도착했다. 땀을 흘리고 배낭의 무게를 애써 인내하여 고행 뒤의 쾌감을 얻었다.
아하! 장쾌하도다. 동으로 동해바다가 하늘 금에 닿았고, 북으로 청옥산으로 향하는 능선이 부잣집 마나님의 살 오른 둔부처럼 곡선을 그린다. 멀리 남으로 끝없는 산군들이 파도처럼 넘실대며, 태백산, 가리왕산, 오대산등 강원 내륙의 고봉준령이 그 속에 묻혀서 두타산의 나그네를 손짓하고 있었다. [오후 12시 50분] 청옥산 (1403.7m)으로 출발 1시간 정도 지나 문바위재(청옥산1.1km, 두타산 2.5km 이정표)에서 물 한 모금 마시고 오후 2시 30분에 정상에 도착하였다. 청옥산의 정상은 온통 숲으로 가려져 도통 풍광을 즐길 수가 없었다. 한참을 쉬다가 정상 바로 밑의 샘터에서 라면을 끓여 먹고서야 비로소 여유를 찾을 수가 있었다.
시간상으로는 갈미봉을 향할 듯도 했으나, 식수의 정보가 없어서 오늘은 여기서 숙영하기로 마음먹고 이르게 텐트를 쳤다. 이내 닥친 다른 팀과 인사를 나누고 불고기까지 얻어먹는 신세를 지고, 불편한 조망 안에 안개속으로 지는 해를 한참이나 구경하다가 이른 잠자리에 들었다. 습관이 되지 않은 이른 잠자리에서 한참이나 뒤척이다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하였다. 전파가 제대로 잡히지 않는지 라디오는 주파수가 제멋대로 뒤엉켜져 잡음만 요란하고, 명상을 한답시고 앉았으나 그놈의 화두는 어디로 갔는지. 화두? 말머리? 말대가리? 아! 사람들아, 말대가리 때문에 신세 망친 자 누구인가!
10월 11일 (일) 오전 6시 기상 정상을 망경대라고도 하는데, 인조 원년의 재상 이식(택당)이 중봉산 단교암으로 은퇴했을 때 이곳에 올라 서울을 사모하여 망경한 곳이라 전해진다. 능선길이 갑자기 가팔라지며 급경사 바윗길을 300m 정도 오르니 고적대(1353.9m)이다. [오전 9시 10분] 고적대 도착
고적대는 동해, 삼척, 정선의 분수령을 이루는 산으로서, 기암절벽이 솟구쳐 이 봉우리를 탄생시켰으며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가 이 곳에 올라 수행하였다고 전해진다. 두타, 청옥, 고적대를 해동삼봉이라 부르며, 신선이 산다는 무릉계곡의 시발점이 되는 명산으로 높고 험준하여 넘나 드는 사람들의 애환이 서린 곳이다. [오전 9시 35분] 고적대 출발 [오전 10시 50분] 갈미봉(1260m)도착
잠깐 주단 카펫을 밟고 지나쳤다. 단풍 군락지의 낙엽이 변색의 새도 없이 붉은 비단길을 만들어 놓았다. 끝없는 참나무 군락 사이로 소나무들이 장수처럼 나타나기 시작한다. 종주자를 배려하여 비치된 벤치에서 물 한 모금 마시고, 빵과 우유로 점심을 먹었다. 단풍이 멈추고 소나무의 기상으로만 이어지는 능선을 지나서 이기령에 도착했다.
150m를 돌아나간 임도옆의 대나무 대롱에서 맑은 산수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청옥산에서 내쳐 와서 이 곳 임도에서 숙영을 했더라면 오늘 수고의 반을 줄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이 식수의 의미의 반은 새로운 기운을 얻음이요, 나머지 반은 짐을 진 자의 수고이다. [오후 1시 40분] 상월산 도착 진종일 부지런한 걸음 중에 유일하게 만난 산꾼들을 보니 살가움이 더 해졌다. 도시의 산에서 본체만체 지나쳤던 부끄러움이 기억날 찰나, 씩씩한 인사들을 건네받았고 나 또한 크게 대답해 주었다. [오후 2시 45분] [오후4시] 백복령5.0km, 원방재 2.09km 이정표 도착 두어 번 호흡을 가다듬고 백복령 구간의 마지막 이정표(백복령3.5km, 원방재 3.59km)에 도착하여 어둠이 찾아드는 깊은 산의 운치를 한참이나 느꼈다. 형기를 채우고 문을 나서는 죄수처럼 오히려 숲의 바깥이 두려워졌다. 이틀간 산과 숲의 어두움에 길들여진 탓이리라. 산의 사위는 진한 어두움으로 물들고, 의장병처럼 내내 나를 호위하던 소나무 군락과도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안개가 짙어지며, 땀과 습기가 온 몸에서 쉰내로 변하여 겉만 태연한, 내상을 입은 전상자이다. 멀리서 차 소리가 들리고, 백복령의 꼬불꼬불 이어진 산 길이 숲 사이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20여 분 쉬었더니 댓재 휴게소의 주인장이 먼 길을 마중 나왔다. 그 집 특유의 된장국으로 저녁 식사를 마치고, 피곤함 보다는 산의 기운으로 오히려 명징해진 몸과 마음으로 사북, 제천을 거쳐 일산으로 돌아왔다. 11월의 대회를 위해서 날마다 10km씩 뛰었으나, 산행의 기대는 실천되지 않았고, 벼르고 별러서 이번 산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그 어느 때 보다 충만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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