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마라톤이 좋은 한 남자가
있다. 이 남자는 마라톤을 하며 자기와의 싸움을 한다. 대회 신청을 해 놓고 마지못해 연습을 하고 노력을 한 뒤에 풀 코스를
목적에 두고 질주를 하다보면 ‘내가 왜 뛰었나?’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 것도 잠시, 풀코스 완주를 하고 나면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 그만 뛰고 싶은 충동도 생기지만 ‘조금만, 조금만 더 가보지’라며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여기 바둑이 좋은 한
남자가 있다. 이 남자는 2005년 시니어 대회에서 22년만에 우승을 차지했다. 그렇지만 우승 전, 후가 다르다는 느낌은
없다. 젊은 친구들이 없는 시니어 대회에서의 우승이니 크게 의미를 두고 있지는 않다.
▲ 김동엽 9단의 9단 면장.
‘침묵의 승부사’로 불러주는 것이 고맙다. 말
주변이 없어 말을 안 하는 것이 오히려 이득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조용한 말투에 크지 않은 행동들이 뜨뜨미지근해 보이며 특징이 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남자의 가슴 속에는 누구보다 타오르는 열정이란 놈이 자리잡고 있었다. 마라톤과 바둑이 좋은, 열정이
가득한 이 남자는 얼마 전 자기와의 새로운 싸움을 시작했다. 마음을 다 잡고 늘 꿈꿔왔던 후학 양성에 나서기로 했다. 돈
때문에, 시간 때문에 얽매이기 싫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밀어내곤 했지만 늘 마음 한 켠에 담아 두었던 ‘후학양성’에 이제는 용기를 내기로
했다. 오랜 숙원이었던 남자의 이름을 간판을 내걸었다.
2010년
6월 5일. ‘김동엽 바둑도장’
2008년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고 딸 리규를 낳으며 좀 더 가정적이
되어갔고, 안정이 되어 갔다.
도장 오픈이 미래의 설계를 체계적으로 하기 위한 이유였음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24개월
된 딸 아이가 궁금하다고 하자 핸드폰에 찍어둔 아이 사진을 찾아 보여주며 옅은 미소를 짓는다.
오픈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직접 운영하는 도장이니 소소한 것에도 재미가 느껴진다.
이름 석자를 걸었다는 생각에 이런저런 고민도 하게 되지만 새로
시작한다는 것에 괜히 설레인다. 평생 직장이라는 생각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삶에 활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다른 일은
잊고 꿈의 도전에 충실하기 위해서 안양에서 남양주시 화도읍으로 터전을 옮겼다. 좋아하던 친구들과의 만남까지 마다하며 도장 아이들과
호흡을 같이 하려는 이유다. 서울까지 3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이기 때문에 보금자리를 옮기면서 장농 면허까지 꺼내들었다.
▲ 아이들과 지도대국을 두고 있는 김동엽 9단.
학생들에게 선생님과 제자의
위치를 생각하기 보다 같이 놀아주면서 자연스럽게 바둑을 익힐 수 있도록 하련다. 바둑도장에서 사범 생활을 수년간 하며 쌓아온 노하우가
있다. 가르친다는 마음보다 같이 한다는 마음가짐이라면 서로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사범과 경영자의 입장은 다르기에 자문을
구하기도 한다.
또, 승부사와 지도자의 입장에도 미묘한 차이가 있음을 잘 안다. 승부사는 자기 나름대로 실력과 자기관리
등을 철저히 해야한다. 무엇보다 이런 것들을 꾸준히 해야 한다. 지도자는 성실하게 가르치는 쪽에 매진을 다해야 한다. 승부사와
지도자는 ‘자기가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라는 공통점도 있다.
▲ 도장에서 운영하는 차량.
지금은 시작하는 단계로 30여명 정도의 바둑
꿈나무가 있다. 바둑이 좋은 아이들이라면 대환영이다. 딸 아이 또한 바둑을 두면 나쁠 이유가 없으니 가르칠 계획이다.
이 남자, 좋아하는 마라톤과 바둑의 공통점을 말한다.
“외로운 자기와의 싸움이다. 컨디션이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다. 그만 뛰고 싶은 충동이 생기기도 하지만
만족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고 나서 뒤를 돌아본다면 무엇보다 보람이 있을 것이다. 두 가지 모두 꾸준히 하다보니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
되어 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