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장탐방
평균 16세 '뼛속 바둑 소녀들'의 수다
권갑룡바둑도장 제주하계수련회 동행 취재기
2010-09-06 오후 1:50:09 입력 / 2010-09-06 오후 4:54:24 수정
2010 권갑룡바둑도장에서 제주하계수련회가 제주도 휘트니스타운에서 6박 7일간 열렸습니다. 아래 내용은 권도장 수련회에 참가한 여자 바둑꿈나무 6명과 숙소 생활을 같이하며 취재한 내용들을 재구성한 것 입니다.
평균연령 16세, 여자 바둑꿈나무들은 어떤 대화를 하며 지낼까요.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그녀들의 대화에 퐁당 들어가 보겠습니다.
장소 : 제주도 휘트니스타운 413호 여성 숙소.
날짜 : 2010년 8월 어느 날.
배경 : 2010 권갑룡바둑도장에서 제주하계수련회.
제주도의 푸른 밤, 어디선가 들리는 속삭임들. 소근소근 소리를 따라 귀를 기울이니 루돌프, 팬더, 호랑이, 코끼리, 강아지, 사슴이 한 데 모여 숨겨놓은 이야기를 풀어 놓고 있다.

●○…인물 소개
루돌프 – 등장 인물들 중 바둑을 가장 오래 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겉 모습은 털털하고, 큰 목소리와 유머 감각으로 강한 인상을 주고 있다. 하지만 적극적인 모습과 달리 마음이 어려 눈물을 자주 흘리는 여린 소녀다.
호랑이 – 언제 어디서나 묵묵히 든든한 모습으로 다른 소녀들을 지켜봐 주는 버팀목. 이 소녀는 멀리 중국에서 왔는데 3개 국어에 능통하며 프로기사로 바둑 실력 또한 하늘을 찔러 만인의 부러 움을 사고 있다.
코끼리 – 바둑을 배운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실력이 일취월장해 천재 소리를 듣고 있다. 여기에 성실, 착실까지 몸에 베어있어 사범들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다.
강아지 – 어여쁜 강아지를 연상하게 하는 인물로 여성스러움까지 겸하고 있어 많은 남성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팬더 – 막내이지만 훌쩍 큰 키만큼이나 어른스러운 편이다. 바둑을 배운 것이 얼마 되지 않아 실력과 기재는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바둑을 좋아하는 마음은 프로급이다.
사슴 – 큰 눈이 매력적이며 중성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일본에서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의사소통에 다소 어려움이 있지만 특유의 밝은 성격으로 한국에 잘 적응하고 있다.
기린 – 바둑 꿈나무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기자.
(루돌프, 팬더, 호랑이, 코끼리, 강아지, 사슴은 이름을 밝히기 부끄러웠던 권갑룡 도장의 어린 소녀들이 자신을 표현한 동물입니다.)

▲ 413호 여성숙소 "남자숙소와 크게 다르지 않죠?"
#1. 후룩룩. 후루룩
밤 10시가 되자 바둑을 끝내고 강아지, 팬더, 사슴이 배를 움켜쥐고는 숙소로 들어온다. 먹고 뒤돌아 서면 또 배가 고플 나이여서인지 저녁을 먹고 3시간 반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서랍장에 간직해둔 컵라면이 생각났나 보다.
누가 물을 떠올까 빠르게 협의를 한 뒤 본격적으로 라면을 먹기 시작했고 얼마 되지 않아 뒤늦게 바둑이 끝난 루돌프도 합류를 하며 이야기 꽃을 피운다.
후룩룩. 후루룩.
팬더 : 아!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파. 라면 너무 맛있는 것 같아.
기린 : 저녁 많이 안 먹었나? 밤에 매일 라면 먹으면 안 좋을 텐데.
일동 : 그래도 맛있어요! 배 고픈 것 보다 좋아요.
코끼리 : (다리를 긁적이며) 조혜연 사범님이 제일 좋은 것 같아. 모기가 엄청 물려서 괴로워하니깐 그걸 보고는 아까 모기약 챙겨주셨다니까. 남자들 빼고 여자들만 특별히 준다고 하셨어. 여자 프로기사들 중에 제일 좋아! 아까도 보니까 일본에서 온 친구들한테 사범님이 출간한 사활 책 설명해 주고 있던데. 바둑도 잘 두고, 일본어도 잘하고, 잘 챙겨주기까지 하니까 최고인 것 같아.
강아지 : 이거 봐라~ 나는 저녁 먹는데 모기약 달라고 하니깐 김효곤 사범님이 모기 퇴치 팔찌 주셨는데. 이게 더 좋은 것 같은데? 어이~ 루돌프야, 부럽지?

▲ 관광에 나선 중국 선수들.
루돌프 : 아! 나도 김효곤 사범님이 준 팔찌 가지고 싶은데. 치, 나는 안 챙겨주고, 완전 차별이야. 나는 책임감 있고 착한 프로기사가 좋더라. 김효곤 사범님 처럼. 몸도 좋고 목소리도 좋잖아. 수영장에서 봤는데 몸짱이셔.
강아지 : 너는 김수용 사범님도 바둑 잘 알려줘서 좋다면서~ 좋은 사범님이 너무 많은데? (일동, 고개 끄덕인다) 나는 그런 것 보다 박승현 사범님 처럼 착한 프로기사가 좋던데.
호랑이 : 맞아, 나도 박승현 사범님 최고! 뭘 해도 편한 것 같아. 참, 박승철 사범님도 좋은데. 형제가 둘 다 좋다니까. 너희들이 모르는 박승철 사범님의 카리스마가 있어.
코끼리 : 실력이 강하지만 겸손하고, 날 뛰지 않고 자기 일에 충실한 프로기사가 최고지. 뭐, 잘 생기면 더 좋겠지만.
밤 10시가 넘어서 모기약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프로기사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고 자정이 다 되어서도 계속 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똑똑똑, 똑똑똑.
“잘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 안 자는 사람이 있나? 목소리가 들리는데?”
2010 권갑룡바둑도장에서 제주하계수련회 총 지휘를 맡은 김효곤 사범이 순찰을 돌고 있다.

▲ 관광을 하고 있는 참가자들.
#2. “뚜벅 뚜벅 뚜벅”
중국과 일본에서 온 바둑 꿈나무들을 위해 하루를 관광하는데 쏟기로 했는데 태풍이 몰려와 상황 이 여의치 않아 분위기가 아침부터 별로다. 거기에 제주도에 여러 번 왔다는 여성 바둑꿈나무도 아쉬움을 토로했다.
제주하계수련회를 진행하는 권갑룡 사범부터 김효곤, 박승철 사범 등의 얼굴에도 수심이 가득해 보인다. 그래서 제안한 것이 페어바둑 토너먼트. 프로기사와 바둑꿈나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힘 을 합해 실력을 뽐내는 시간을 만들었다.
이들 중 코끼리는 유일하게 프로기사와 짝을 이뤘다. 박승현 사범과 파트너가 되었는데 중간중간 서로의 의견을 물어보니 “너무 잘 한다”고 칭찬하기 바쁘다.

▲ 박승현 사범과 짝을 이뤄 페어대회에 나온 코끼리.
그렇게 하루가 마무리 되고 밤 10시가 되자 413호 여성 숙소에서 어김없이 쑥덕쑥덕 소리가 들린다.
사슴 : 하루 종일 비만 오고, 그래도 페어 바둑 두면서 재미있었어. 배고프다, 라면 먹자!
팬더 : 어제 다 먹지 않았나? 나도 배고파서 힘들었어.
기린 : 오늘 하루 종일 바둑만 둔 것 같은데 지루하지 않았어? 바둑이 그렇게 좋아?
코끼리 :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평생 직업으로 삼을 수 있으니까. 프로기사 만큼 매력적인 직업은 없을 것 같아. 수련회 와서 마음껏 바둑을 둘 수 있어서 좋더라. 프로기사들하고 이렇게 짝을 이뤄서 둘 기회가 흔치 않은데 오길 잘했어.
루돌프 : 좋아하는 것,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면 능률이 두 배로 오른다고 생각해. 그래서 그런 지 요즘에 내가 바둑 실력이 점점 세지는 것 같아. 두면 둘수록, 알면 알수록 재미가 있다니까. 하하하!
일동 : 에이!

▲ 페어바둑 대국 모습.
루돌프 : 입단하면 내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 사준다. 기대해도 좋아.
강아지 : 나는 뚜렷한 이유가 없어. 그냥, 이유가 없이 그냥 좋아.
팬더 : 나도, 아직 뭐라고 표현할 수 없지만 바둑을 둘 때 마냥 좋더라고.
기린 : 너희들 아직 어린데 바둑 말고 다른 것 해 보고 싶지 않아? 마냥 좋기만 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루돌프 : 예전에 부모님 중에 한 분이 심부전증으로 쓰러지셨었어. 많이 속상해서 그 때는 프로기 사 말고 의사가 되고 싶더라고. 잠깐 그런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바둑을 떠나서는 못 살 것 같아.
강아지 : 나는 바둑 말고… (한 참 생각하고, 부끄러운 듯이) 모델 어때? 잘 어울리지 않겠어? ^^
코끼리 : 초등학교 3학년 때 바둑을 시작했는데, 한 번도 다른 것 해보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 바둑 말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이 과연 있을까?
팬더 : (한 참 후에) 나는 디자이너.
호랑이 : 이과계열 공부가 적성에 맞는 것 같아. 세계 명문대에 입학을 해서 바둑을 알리고, 좋은 성적으로 졸업해 큰 사람이 싶어. 지금도 그러기 위해서 노력 중이야.

▲ 소호배 바둑대회 모습.
“뚜벅뚜벅뚜벅”
루돌프 : 조용히 해! 나는 20m 밖에서도 사범님들 발자국 소리 구분할 수 있어. 우리 밤에 잠 안자고 떠드는 것 걸리면 내일 아침 운동 힘들게 해야 할 지도 몰라.
12시가 되자 자리를 정리하고 사이 좋게 자기 침대로 돌아가 잠을 청한다. 그런데 느닷없이 노래 소리가 들린다. 최신 노래를 흥얼대는 루돌프다.
호랑이 : 지금 몇 시야? (이불을 뒤집어 쓰며)아직 12시 10분 밖에 안됐네.
코끼리: 아직 루돌프 노래할 시간 10분이나 남았어. 12시 20분 까지라고 했잖아.
루돌프는 나중에 있을 장기자랑에 대비를 하는지 잠들기 전 20분 동안 노래를 흥얼거린다. 한 방 을 쓰는 동료들에게 약속한 ‘노래하는 시간’ 20분이 지나자 곧 잠자리에 든다.
“어디서 이렇게 말 소리가 들리지? 아직도 잠을 안 자는 친구들이 있네!”
어김없이 김효곤 사범이 순찰을 돈다.

▲ 야식을 즐기고 있는 413호 여성 숙소.
#3. “우물우물우물, 쩝쩝쩝”
6박 7일간의 권갑룡바둑도장에서 제주하계수련회 마지막 날.
수련회 내내 눈에 보이는 프로기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훈련차 권도장 수련회에 와 있는 광저우 아시안게임 대표 선수들. 한국 여자 선수들 뿐 아니라 중국 여자 국가대표 선수들도 와 있어 서로 의 전력을 알아보고 있었다.
이게 다가 아니다. 권도장 연수는 중국과 일본 프로기사들도 제법 참가를 하기 때문에 바둑 꿈나무 들에게 중, 일 프로기사들과 함께 생활을 하는 기분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좋다.
얼마 전 관서 기원에서 입단을 한 윤춘호 사범이 일본 기사들을, 권갑룡 사범의 딸 권효진, 위예량 부부는 중국 기사들을 맡아 지휘를 한다. 여자국가대표 선수들과 회를 먹으러 갔다가 토너먼트 상대방이 이영구 사범이라는 것을 알고 조혜연 사범이 급하게 수련회장으로 뛰어 왔다.
“영구는 엄청 비싸서 연습 바둑도 못 두는데, 이런 행운을 일분 일초도 놓치면 안되죠.”

▲ 이영구와 바둑을 두고 있는 조혜연.
6일 동안 바둑에만 빠져 있던 바둑 꿈나무들의 마지막 저녁 스케줄은 사활 시험! 프로기사들도 어렵다는 권도장의 사활 시험을 대하는 꿈나무들은 진지한 자세로 임한다. 알고 보니 사활 문제들은 권도장 연구생들이 함께 모여 만든 것들이라고 한다.
“사범님들도 사활 문제 다 풀어요?”
“아뇨, 그걸 어떻게 다 풀어요. 너무 어려워서 못해요. 하하하.”
413호 여자 바둑꿈나무들이 사활문제와 씨름을 하는 동안 기린은 숙소에 와 짐을 싸러 방으로 돌아 왔다. 한참 지나고 나서 의리있는(?) 강아지, 코끼리, 루돌프가 피자와 치킨을 들고 함박 웃 음을 한 채 방에 들어온다. 알고 보니 몇 일전에 중, 일에서 온 친구들과 게임을 했는데 이겨서 받은 상품이란다.
“언니랑 나눠 먹으려고 가져왔어요.”
“우물우물우물, 쩝쩝쩝”
기린 : 사활 시험 어땠어? 어렵다고 하던데. 아까 보니깐 다들 졸고 있는 것 같던데.
루돌프 : 그럭저럭 괜찮았어요. 코끼리 : 저는 많이 못 풀었어요. 어렵던데요.

▲ 지금은 사활시험 중.
기린 : 너희들은 아직 어리니까 열심히 하면 훌륭한 프로기사 될 수 있을 거야.
실력도 뛰어나지 만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도 되었으면 좋겠어. 이대로 쭉쭉 성장해서 10년 후에는 어떻게 변해있으려나. 상상해 볼까?
강아지 : 프로기사 바리스타! 커피 만드는 프로기사, 좋은데. 매력있는 직업이 될 것 같아.
호랑이 : 너는 현모양처 하고 싶다고 했었잖아? 근데 바리스타도 잘 어울리겠다. 일하는데 바둑판 가져다 놓으면 자주 놀러 갈게.
코끼리 : 나는 바둑 심리 대학원생이자 프로기사가 되어있지 않을까. 바둑 두는 사람 심리 검사해 보면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
팬더 : 모르겠는데, (곰곰 생각해보더니) 아프리카 자원봉사자?
일동 : 아하하하! 엉뚱하긴, 근데 팬더 너랑 딱 어울린다.
루돌프 : 나는 재벌 집 며느리? 하하! 농담이고, 바둑 보급을 하고 싶어.
기린 : 팬더 빼고 다들 바둑과 관련된 일을 상상하고 있구나. 바둑이 그렇게 좋은 너희들한테 바둑은 뭘까.
루돌프 : 수담.
강아지 : 고진감래.
호랑이 : 인생.
팬더 : 승부.
코끼리 : 평생 친구.

▲ 소호배 바둑대회 입장사들에게 시상을 하고 있는 권갑룡.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루돌프는 느닷없이 종이 한 장을 들고 와서 세계 여러 나라의 수도 가 궁금하다며 질문 공세를 한다. 흥미가 없는 강아지, 코끼리는 음악 감상에 빠졌고 라면을 먹고 한껏 배가 부른 사슴은 이미 취침 모드에 돌입했다.
10분 정도 시간이 지나자 지루해 졌는지 이번에는 종이 한 장과 펜을 들고 와서는 한자 공부를 한단다. 엉뚱한 면이 많은 루돌프는 한, 중, 일 프로기사들의 이름을 한자로 써 보겠단다. 루돌프 는 한자를 쓰고, 한자의 의미를 잘 아는 호랑이까지 가세해 신이 났다. 팬더도 궁금하다며 턱을 괴고 가만히 이야기를 경청한다.
이야기는 흘러흘러 어느 덧 프로기사 이름 중 가장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꼽게 되었다. 김수용, 박승현, 박승철, 온소진, 이영구 사범 등 권도장 출신 사범들의 이름이 오고 가는 가운데 루돌프와 호랑이가 동시에 꼽은 사람은 원성진(元晟溱).
마지막 날의 서비스인가.
6박 7일간 바둑 속에 푹 빠져있었던 루돌프, 팬더, 호랑이, 코끼리, 강아지, 사슴에게 주어진 유일 한 자유 시간. 깊은 밤이 되었는데 오늘은 취침을 알리는 김효곤 사범의 ‘뚜벅뚜벅뚜벅’ 소리가 나지 않는다.
‘오늘도 바둑 두는 날’라는 이야기를 하면 ‘에이!’라고 말하지만 이들은 6박 7일간 주어진 자유 시간 안에서도 바둑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뼛속 바둑인.
TYGEM / 정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