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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뚝이 박지연 '행복을 찾아서'

아시안게임 선발전 탈락 후 힘들었지만 다시 목표 찾아

2010-09-20 오전 1:29:09 입력


▲삼성화재배 32강전. 박지연(왼쪽)과 퉈지아시의 복기 모습.

“사실 삼성화재배 본선에 임하기 전에 마음이 많이 혼란스럽고 힘들었어요.”

지난 10일 삼성화재배 32강에서 중국랭킹 7위 퉈지아시를 꺾은 태극낭자 박지연을 기억하는가. 당시 승리한 박지연과 승자 인터뷰를 나누던 기자는 예상치 못한 (위의) 말을 듣게 된다.

짧았지만 굵었던 그날 박지연의 한 마디. 당시 박지연은 농심신라면배 예선 결승, 지지옥션배 4연승, 삼성화재배 본선진출 등 7~8월 14승 3패의 실속 있는 성적을 거두며 바둑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고 있었다. 그런 박지연이 그것도 16강 진출을 확정한 직후 한 말이기에 기자의 마음에 남았나보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온 뒤 박지연에게 다시 한 번 만남을 요청했다. 사실 이 외에도 박지연에 대해 알고 싶었던 부분이 많기도 했지만.…  
(* 기자 질문 부분 파란색 표기) 

- 큰 시합을 앞두고 무엇이 심적으로 힘들게 했나요. 많이 부담이 됐는지요.
박:바둑공부를 언제까지 이렇게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13년 동안 바둑만을 생각해왔는데 이렇게 사는 것이 맞나?’ 라는 생각도 들고요.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한국도 잠시 벗어나보고 싶고…, 그런데 마침 삼성화재배 본선이 중국에서 개막해서 8월 말부터 그 때 만을 기다렸죠.

- 첫 세계32강 진출 아니었나요? 시합에 대한 욕심도 많았을텐데요
.
박:물론 첫 세계 32강이니만큼 잘하고 싶은 마음도 많았지만 당시 저에게는 기분 전환과 앞서 말한 고민에 대한 답이 더 절실했어요.


●○…이창호와의 대결을 가슴에 품고 프로를 꿈꿨던 9살 꼬마.

- 13년 전이면 7살이네요. 그 때 부터 바둑외길인생이 시작된 건가요? 
박:7살 때 친구가 다니던 바둑교실에 놀러갔다가 바둑을 처음 알게 됐죠. 친구가 바둑알 놓는게 재미있어 보여 배우게 됐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푹 빠진 거 같아요. 당시 피아노, 수영 등 여러 학원을 다니고 있었는데 바둑을 배운지 얼마 되지 않아 바둑만 배우겠다고 부모님께 고집을 피웠다나요.

무엇이 그렇게도 자신을 바둑에 빠지게 만들었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기재가 있었던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꼬마 박지연은 2년 뒤 다니던 바둑교실을 평정해버렸으니까. 그리고 부모님께 당당하게  “더 잘 두는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옮길래요.”라며 차수권 바둑도장으로 옮긴다. 그 때 나이 9살.

-그럼 그 때부터 프로기사의 꿈을 키운 거예요?
박: 그랬던 것 같지는 않은데요. 아!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어요.

도장에 옮긴지 얼마 되지 않아 박지연은 주눅이 들었다. 매일 같이 바둑을 진 것. 전에 다니던 바둑교실에서는 왕이었지만 바둑영재들이 모인 바둑도장에서 박지연은 이제 막 기초을 뗀 초보일 뿐이었다.

박: 아. 정말 매일 졌어요. 얼마나 졌는지 도장에 나가기가 싫더라고요.(웃음) 당시 도장에서 차로 원생들을 데리러왔는데 제가 집에서 웅크리고 버텼어요.”

- 하하. 그럼 그 날 도장 안 갔겠네요?
“아니요! 제가 어머니를 참 많이 닮았는데 어머니께서 한 고집 있으시거든요. 안 가겠다는 저를 번쩍 들어서 택시에 밀어 넣으시더니 함께 도장으로 가셨어요.(웃음) 그리고 저는 차수권 사범님에게 면담을 받았죠.”

자초지종을 들은 차수권 6단은 빙그레 웃으며 박지연에게 종이를 주며 “지연이가 꿈 꾸는 미래를 그려봐라.”고 했다. 스승이 내민 백지에 박지연은 바둑을 두는 대국자들의 모습을 그린 뒤 흑-박지연, 백-이창호라고 썼다. 그리고 그 옆에 박지연 승리라고 크게 써 넣었다.

이를 본 차수권 6단은 “지연아. 이제 그걸 바둑책에 품고 열심히 공부해라.”라고 말했고. 박지연은 그 그림을 보며 입단의 꿈을 키웠다. 2002년 박지연은 여자연구생에 들어갔고, 2006년 16살에 꿈에 그리던 입단 면장을 받는다.


●○…입단 후 처음 가진 목표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박: 보통 프로기사들은 ‘입단’이라는 목표를 얻은 후 한동안 목표상실감에 시달려요. 저 또한 예외는 아니었죠.”

원하던 프로기사가 된 후에도 박지연은 왕복 3시간 거리인 한국기원 근처 충암연구실을 매일 같이 출근하며 바둑공부에 매진했다. 흥미로 시작한 중국어 공부가 유일한 취미일 정도.


▲짧은 머리가 인상적인 17세 박지연. 입단 5개월만에 지지옥션배에서 3연승을 거둬 주목을 받았다.

이 같은 노력 때문인지 2007 지지옥션배 3연승(당시 입단 5개월), 2008 세계마인드스포츠 여자단체전 은메달, 여류명인전 도전자결정전, 여류기성전 4강 등 꾸준히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 같이 바둑공부에 거의 올인했음에도 정작 뚜렷한 목표는 없었다고 한다.

박: 부끄럽게도 불과 작년 초 까지 뚜렷한 목표가 없었어요. 물론 ‘여자 타이틀을 따고 싶다’라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지만 뭐랄까…그냥 막연하게 생각만 했던 꿈 같아요.
연구생때만해도 입단이라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그것만 바라보며 매진한 것과는 차원이 달랐죠. 그래서 바둑공부를 하면서도 무언가 허전한 느낌이 계속 느껴졌습니다.”

- 그렇다면 입단 후 계속 뚜렷한 목표가 없었다는 건가요.
박: 아니요.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바둑종목이 확정되고, 여자 상비군 운영 등 구체적인 움직임이 일었잖아요. 그 때부터 광저우 아시안게임 국가대표가 목표가 됐죠


▲상비군에서 이창호 9단에게 복기를 받고 있는 박지연.

-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
박: 다른 걸 다 떠나서 명예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대회니까요. 그래서 욕심이 생겼던 것 같아요. 목표가 생기고 나니까 마음으로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요.”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7월까지 박지연은 아시안게임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여자상비군에 지원해 열심히 공부했다. 상비군 생활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박: 아침 9시부터 모여서 5시까지 1시간 대국 2판을 두고, 저녁식사 후 7시까지 그날 둔 대국 을 복기 받았죠. 집에서 양(재호)감독님이 내준 사활 숙제를 하면 하루가 마무리됐죠. 저 뿐만 아니라 처음에는 대부분의 기사들이 몸이 안 아픈 데가 없을 정도였죠. 또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승패에 대해 스트레스가 많았어요.”

하지만 내가 열심히 살고 있다는 느낌과 목표를 향해 성장하는 모습이 스스로 느껴져서 즐거웠어요. 상비군을 함께 한 여자기사들과도 친해졌고요. 무여회 아시죠? 이민진, 김혜민, 박소현 등 무서운 여자들의 모임(웃음). 정말 너무 친해졌죠.

결국 상비군(2명 선발)에서는 이슬아, 김윤영이 뽑혔는데 이상하게도 아쉬움은 없었어요. 자꾸 제 실력이 부족해보였고, ‘나보다 선발된 사람이 잘 두니까 됐겠지’라는 생각이 들었죠.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전에서 이민진과 대국 중인 박지연.

아시안게임 여자 국가대표는 총 4명. 상비군에서 자체리그를 통한 누적점수로 2명을 선발하고, 나머지 2명은 별도의 국내 선발전을 치러 선발한다.

박: 마음을 완전히 비우고 선발전에 나섰어요. 1차 선발전에서는 성적이 안 좋아서 더욱 그랬는데 2차 예선부터 운이 따르더라고요.(웃음)이민진 5단과 두는데 그 판을 이기면 선발될 수 있었어요. 그런데 그 부담을 이겨내지 못해 결국 패했죠.

마음을 완전히 비웠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완전히 기회가 사라지고 눈물이 나더군요. 많이 울었습니다. 내가 이것밖에 할 수 없다는 게, 제 바둑을 둘 수 없었던 것이 분해서 울었어요.


▲농심배 국내 선발전에서 김영삼 8단을 꺾고 예선 결승에 진출한 박지연(왼쪽),

●○…깨달음. 바둑자체가 인생이 되게 하겠다

- 이야기를 들어보니 앞서 말한 고민은 아시안게임 대표 탈락 후 목표상실감 때문에 나타난 거네요.
박:그렇죠. 이전에도 비슷한 고민을 했었지만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았으니까요.

-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탈락한 후 성적이 좋았잖아요. (농심배 예선결승 진출, 지지옥션배 4연승 등)
박: 농심배 예선 당시에는 마음이 빈 것 같다고나 할까요. 물론 승부사니 지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집중하기 힘든 상태라 기대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김영삼 8단까지 이기고 태극마크가 눈에 보이니 긴장이 되더라고요. 눈치 챈 무여회가 대국 전날 늦게까지 함께 해주며 긴장을 풀어줬지만 결국 패하고 말았죠. 박승화 3단이 저보다 더 간절했던 것 같아요.
 
성적은 좋은데 고민은 계속됐죠. 평범한 일상인데, 바둑판을 바라보는 그 시간이 아무 이유 없이 무료할 때가 있고…언제까지 이렇게 바둑공부만 할 수 있을지 현실적인 문제들도 있고, 너무 바둑만 해 와서 인지 특별히 취미로 즐기는 것도 없었고요. 생각해보니 특별히 누군가를 흠모한 기억도 없네요.”


▲궁륭산 지혜의 샘에서 김혜민과 함께 물을 받고 있는 박지연(오른쪽).

“지금은 어때요?”
박: 중국에 떠나기 전 평소 멘토 역할을 해주시는 양종호 선생님께 이런 고민을 메일로 보냈어요. 첫 대국 날 아침 메일을 확인했는데 이렇게 적혀있더군요.

‘목표에 의해 공부하지 말고, 바둑 자체가 인생이 되게 하라. 흐르는 물은 앞을 다투지 않는다.’

그  순간 마음이 편안해졌고, 바둑에 집중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퉈지아시를 이겨서 중국기사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졌고… 한국에 바로 돌아가지 않고 일부러 궁륭산배도 참관했어요. 제가 세계여자바둑대회 본선에 한 번도 참가한 적이 없는데, 각국 대표들이 명예를 걸고 대국하는 모습을 보니 욕심이 생기더군요.”

- 세계여자대회 출전이 단기 목표가 됐군요.
박: 네. 한국에 돌아온 뒤 차수권 사범님을 뵈었는데 ‘프로기사라면 바둑공부는 계속해야 되는 것인데 도중에 성적이 좋으면 큰 힘이 된다고. 그런 것에 감사하고 더 열심히 공부하라.’고 조언해 주셨어요. 더욱 마음을 잡는 계기가 됐습니다.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를 준비하면서 느꼈던 성취감, 행복 등을 다시 느끼고 싶어요. 진심으로 다시 공부를 할 겁니다.


▲타이젬 바둑팬들에게 추석인사를 적고 있는 박지연.

- 바둑팬들에게 어떤 프로기사로 기억되고 싶나요.

박:  당장은 바둑공부에 집중하겠지만 나중에 승부사의 길을 포기하면 바둑계 시장을 넓히려 노력하고 싶어요. 박지연 하면 바둑계에 많은 활력을 불어 넣은 프로기사로 기억되고 싶거든요.

현재 바둑계가 불황이라고 하잖아요. 스폰서 입장에서도 홍보가 안 되니 대회도 규모가 커지지 않잖아요. 어린이들에게 더 많은 바둑보급도 필요할 것 같고요.
현재 많은 선배기사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하고 있어요. 저도 나중에는 후배기사들이 좀 더 바둑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고 싶어요.

……………………………………………………………………………………………
중국에서의 10일 동안의 시간은 박지연에게 생애 첫 세계대회 16강 진출이라는 영광과 동시에 그녀를 따라다녔던 고민을 해결해주었다. 

가만 있어도 웃음이 나는 꽃다운 20살의 박지연. 그녀의 바둑인생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TYGEM / 김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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