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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노사초 그리고 바둑

노사초배 바둑대회 열려…단체전 소풍팀 우승

2011-08-31 오후 6:28:00 입력 / 2011-08-31 오후 6:49:35 수정

▲노사초배 전경.

매년 8월 마지막 주말에는 경남 함양(咸陽)에서 노사초배 바둑대회가 열린다. 올해는 8월 27~28일이었다.

다른 대회들도 대개는 매년 비슷한 시기에 열리는 것 같은데, 노사초배와 7월 마지막 주말에 벌어지는 청풍명월 바둑축제, 개천절에 태백에서 개최되는 배달배 같은 대회들은 그 날짜가 머릿속에 각인이 되어 있다. 날짜를 못 박는 것, 날짜를 선점하는 것도 홍보효과가 된다. 사람들은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하면서 친숙해진다.

함양은 지금도 오지라는 느낌을 준다. 옛날에는 경북 안동(安東)과 함께 '좌 안동, 우 함양'으로 불리면서 선비의 고장으로 이름을 높였다고 하는데, 안동에 비해 훨씬 오지라는 느낌을 받는다. 지금은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가 나 있어, 대전에서는 불과 1시간 반, 서울에서도 3시간 반이면 닿을 수 있는 곳이지만, 느낌은 오지다. 대전-통영 고속도로 주변에, 대전에서 빠져나가 함양 톨게이트에 이를 때까지, 번화한 도시가 없어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대신 대전-통영 고속도로는 늘 한산하고, 무주와 덕유산을 안고 있는 그 경관은 아름답다. 여름보다 늦가을이나 겨울이 더 좋아, 노사초배가 단풍이 절정을 넘어가는 11월이나 흰 눈발 날리는 12월에 열려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대국을 즐기는 아마추어들.

이번 대회는 아마최강 개인전-단체전, 전국 여성부, 경남 일반부, 경남 초등부 등 5개 부문에서 모두 515명이 참가했다. 아마최강전 개인전에는 연구생 출신의 젊은 강자 40명, 5명 한 팀의 단체전에는 18개 팀 90명, 역시 5명 한 팀의 단체전으로 치러진 여성부는 24개 팀 120명, 경남 일반부 48명, 경남 초등부 224명, 이는 지난해 3회 대회 때보다 200여 명이 늘어난 숫자다.

노사초배의 인기가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징표이자 주최 측 임원이 대회 몇 달 전부터 전국을 돌면서 대회를 홍보하며 참가를 독려한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다.

하이라이트는 아마최강 단체전. 남자 시니어 주니어 1명, 시니어 2명, 여성 2명의 팀 구성을 원칙으로 하되 여성이 부족한 경우 남자 시니어로 대체할 수 있는 여지를 두었다. 노사초배보다 한 달쯤 앞서 열린 문경조령컵과 비슷한 방식이었는데, 조령컵이 대회 현장에서 예선 통과자들의 추첨으로 팀을 구성한 것에 비해 노사초배는 미리 팀을 꾸려 출전한 점이 달랐다.

단체전이 유행이다. 개인전은 상금을 혼자 받는 것이고, 단체전은 나누어 갖는 것이어서 우승권의 강자들은 개인전을 선호하기 마련이지만, 상금이 대회 참가 이유의 전부가 아니라면 선후배가 한 팀이 되어 상대 팀과 겨루어 보는 것이 축제를 지향하는 아마 대회에는 더 어울리는 면도 있다. 우선 팀을 만드는 일부터 재미있는 일이다. 좋은 선수는 서로 데리고 가려 하고, 친한 선수들은 더 친해진다.

그리고 일단 주니어 선수가 주장이지만, 주장은 주장끼리, 시니어는 시니어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두는 것이 아니라 각 팀이 대국 직전에 제출하는 오더에 따라 대국하는 방식이 일리 있었다. 주니어끼리는 매일 보는 얼굴, 그건 시니어나 여자 선수도 마찬가진데, 그것보다는 좀 색다른 상대와 두는 것이 흥미도 있고 변수도 더 생기는 것 아닌가.


▲단체전 결승전. 오른쪽이 우승을 차지한 소풍팀이다.

단체전에서는 함양A와 '소풍'이라는 이름으로 출전한 대구 팀이 결승에서 만나 소풍이 3 대 2로 이겨 우승을 차지했다. 함양A는 주니어 이화섭 선수를 주장으로 시니어 문미열 김동근 박성균, 최호철. 호화 멤버인데, 여자 선수가 없다. 여자 주니어 선수를 섭외하지 못한 탓인지 모르지만, 그것보다는 주최 측으로서 우승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으리라. 이화섭이 나이로 보아 약간 약체라는 소리가 있었다.

그러나 이화섭 선수는 함양군이 공들여 스카우트한 선수. 함양 측에서는 “무슨 말이냐. 대단한 기재다. 이화섭은 연구생 시절, 연구생 리그 전승의 대기록을 세운 선수다. 그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깨지기 어려을 것”이라면서 이화섭에 대한 두터운 신뢰를 보였다.

함양A는 주최 측 프리미엄으로 본선(8강) 시드를 받았다. 막강 멤버에 시드까지 받아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으나 주니어 우원제, 시니어 이학용 박영진 김경래, 여자 주니어 송예슬이 출전한 소풍 팀에 고배를 들고 말았다.

결승전의 에피소드. 2 대 2에서 박성균-송예슬 대국이 결승판. 관전객들이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다. 바둑판에는 한집짜리 두어 곳만 남은 상황. 마지막 초읽기. 송예슬이 두고, 시계를 눌렀다. 송예슬이 시계를 누르자마자 박성균이 두고, 시계를 눌렀다. 그 순간이 0.5초인지, 1초인지. 그런데 몇 초쯤 지났을까, 박성균의 시계가 삐~ 소리를 내며 박성규의 시간패를 알렸다.

박성균이 주위 사람들에게 황망히 말했다. “어? 눌렀는데…눌렀지?” 송예슬은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몰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고개를 흔들던 박성군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할 수 없지.” 시간패를 인정한 것. 박성균이 계가나 해 보자고 했고, 박성균과 송예슬은 바둑을 마무리했다. 백을 든 박성균이 한 집 반을 이기고 있었다. 박성균이 송예슬에게 말했다. “덤에 걸린 바둑이지?” 송예슬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심판위원장 서봉수 9단이 다가왔다. "시계를 줘 보세요." 서 9단이 흑백의 시계를 눌러 보았다. 시계는 이상이 없었다. 백의 시계를 누르자 백의 시계를 멈추었고, 흑의 시계를 누르자 백의 시계는 돌아갔다. “프로 대국에도 이런 경우가 가끔 나와요. 그럴 때는 시계를 눌러 보아 이상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는 걸로 판단할 수밖에 없어요…”

관전객들이 박성균에게 왜 즉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박성균은 "그거, 뭐…"하면서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박성균은 바보 같이 시간패를 당해 팀에 민폐를 끼치고, 금전적 손실을 입혔지만, 역시 신사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정말 흐뭇하다. 깨끗한 승복, 그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니까. 우승을 꿈꾸었던 함양 팀에서도 박성균을 흘겨보거나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송예슬도 어쩔 수 없었다. 개인전이라면 또 모를까, 단체전인데, 어쩌겠는가. 가만히 있을 수밖에.

▲개인전 결승 박창명(왼쪽)vs김남훈.

개인전에서는 주니어의 고참 김남훈과 신참 박창명이 결승에 올라 박창명이 이겼고, 여성부에서는 우승 부산A, 준우승 대전A, 3위 광주A. 4위 부산F. 부산F? 그렇다 부산에서는 여섯 팀이나 출전했다. 여성부는 출전 팀이 많은 지역에 가산점을 주는 방식이어서 부산의 우승은 예약된 것이었다. 가산점에 대해 논란이 있었으나 그것도 한 가지 방식. 120명의 아줌마 부대가 대거 출동한 데에는 가산점도 한 몫을 했을 터이다.

경남 일반부에서는 김준영 우승, 박해진 준우승. 김준영 씨는 프로기사와 이름이 같고, 박해진은 예전에 종종, 지금도 가끔 바둑 매체에 기고하며, 요즘은 주로 고건축 사진으로 자리를 잡은 박해진 시인과 이름이 같다…^^

▲함양군 바둑협회장 임창호 씨에게 백성호 9단이 아마 단증을 건넸다. 

대회가 성황을 이룬 데에는 여러 사람의 땀이 있었다. 함양군 바둑협회 임창호(59) 회장은 말론이고 강철수(52) – 이 분은 또 만화가 강철수와 동명이인이다 – 사무국장과 김종한(56) 전무도 함양군 바둑협회 자력으로는 처음 치르는 대회여서 몇 달 동안 식은땀을 흘렸다. 자원봉사로 대회를 도운 면면도 소개한다.

▲김영길(왼쪽)씨와 이정수 씨

김영길 씨(65)는 함양군 바둑계의 지주이자 막후 실력자다. 앞에 나서지는 않지만 막후 조정력을 발휘해 함양 바둑이 오늘처럼 활성화하는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이정수(63) 씨는 젊었을 때 서울을 휘젓던 한량인데, 요즘은 직접 농사를 지으며 전원생활을 즐기고 있다. 서울에서 내려가면 직접 기른 닭 오리에 직접 가꾼 감자 고구마 옥수수에 각종 산나물을 무상으로 푸짐하게 제공한다. 바둑 실력도 짱짱한 아마 5단 수준.

▲노용성(왼쪽)씨와 이종욱 씨. 

노용성(61) 씨는 영화배우 같은 외모. 남자가 나이 예순이 넘으면 외모의 평준화가 이루어진다고 하건만, 이 분 같은 예외도 있다. 술자리에서 흥을 돋우는 데에도 일가견 (본인은 전매특허라고 한다)이 있다. "누구든 아무 때는 함양에 내려오면 나를 찾아 달라"며 핸드폰 번호까지 써 달라고 부탁했다. 한번 찾아가 보시길.

이종욱(54) 씨는 거제도 지적공사에 근무하고 있는데, 고향 함양의 바둑 일이라면, 바둑 행사라면 만사를 제쳐 놓고 달려오는 사람이다. 원래 직업은 심마니. 산삼 약초 등에 조예가 깊어 서울 경동시장 한약상 등에서도 자문하는 정도. 인품이 소탈해 누구나 반기며 직접 담근 귀한 술도 아낌없이 내놓곤 한다. 재수가 좋으면 산삼을 얻을 수도 있다. 귀한, 숨은 일꾼이다.
TYGEM / 이광구 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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