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친구와 헤어진 후 차를 몰고 동두천으로 향했다.
소설비바람과 약속이 잡혀 있었다.
타이젬에서 마련해 준 노트북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떠난 동두천 가는 길.
가슴 한 구석이 휑하니 비어 알알했다.
암 투병으로 핼쓱해진 전우와 군 생활을 한 곳이 바로 동두천 부근이었다.
그와 감악산에서 로프 훈련을 하고 한탄강을 도하하며 정을 나눴는데.
하필이면 왜 동두천을 찾는 날 그런 문자를 받게 되었을까?
동두천이라는 지명이 쓸쓸하게 가슴으로 들어왔다.
미군이 주둔하면서 파생된 퓨전문화.
달러를 벌기 위해 모여든 여자들.
그리고 미군부대가 빠져나가면서 쇠락해진 지역경제.
거기에 설상가상 최악의 수해를 입어 비틀거리는 도시.
▲ 소설비바람.
소설비바람은 동두천 역사 앞에서 웃고 있었다.
선량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그는 필자를 차에 태우고 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신상에 관해 물었다.
용산에서 태어나 자랐고 오산고를 나와 80학번으로 서울대 공대를 들어갔는데 신군부 집권 무렵이어서 자연스럽게 운동권에 합류 하게 되었다.
2학년 때 국가보안법에 의해 수감되었고 그때 교도소를 체험하게 됐다.
사회에 나와서 삼성그룹, KBS 제작국, 제일기획, 신문사 기자를 거쳤다.
그런 경력을 통해 글쓰기 훈련은 충분히 쌓은 셈이다.
40대에 대형마트 유통업에 뛰어들면서 포천으로 이주했고 다시 동두천으로 건너왔다.
“동두천이라면 지긋지긋합니다. 이리 왜 들어왔는지 몰라요.”
그가 차창으로 개천을 응시하며 투덜거린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동두천에 왜 왔는지 정말 모를 일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소설을 쓰고 있었다니 심란했겠습니다.”
“참 타이젬은 너무 고마워요.”
그가 수해를 당하고 좌절했을 때 타이젬의 독자들이 마음의 성원을 보내주었다고 한다.
채권자들의 독촉에 시달릴 때 김포의 경화수월은 수시로 불러 위로 주를 사고 잠을 재워주었다.
호남에 사는 독자는 홍어와 말린 아구를 술 안주로 보내주었고, 부산의 독자는 성금을 보내겠노라 전화를 걸어왔다.
소설 아래에 달린 격려 댓글도 무성했다.
그때 소설비바람은 타이젬 친구들의 의리에 감읍했다.
“한때 많이 울었으나 지금 돌이켜보면 그도 전부 운명인가 봅니다. 동두천으로 돌아가서 채권자들을 차례차례 만났습니다. 그리 고 사정을 솔직히 털어 놓았죠. 그러자 그분들이 어깨를 두드려주면서 재기의 기회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들이 다시 물건을 대주겠다고 약속했다.
장마에 떠내려 간 물건을 되찾으려면 다시 마트를 열어 열심히 일하는 게 정답이었다.
그래서 소설비바람은 사람들의 의리에 힘입어 다시 재기했다.
동두천에서 연천으로 가다 보면 한탄강 유원지가 나온다.
강을 건너자마자 휴게소가 있는데 그 중심에 마트를 열었다.
규모가 제법 큰 마트다.
▲ 교도소바둑의 새로운 마트. 3월 14일 개업을 하는데 [교도소 바둑] 독자들이 찾아와도 좋다고 했다.
그 동네 부근의 어르신들을 초청해 수육과 막걸리 파티로 개업식을 준비하고 있는데 타이젬 바둑 친구들이 끼어도 괜찮을 듯싶다 .
타이젬은 이런 이들의 사연이 엉켜 돌아가는 사회다.
소설비바람은 교도소 안의 파란만장한 군상들을 스토리로 풀어내고 있지만 그 자신 또한 군상의 일부로 비바람을 맞고 있었던 것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