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
태극낭자, 세계바둑계를 주도하다
2000~2011 여자바둑계 정리 및 2012년 프로여자바둑계 전망
2012-01-23 오전 11:12:49 입력 / 2012-01-24 오후 5:34:03 수정
2000~2004 세계무대에서 자신감을 얻은 한국 낭자들
1990년대가 아마여류기전의 활성화, 여류프로입단제도 부활, 제도의 구분 및 정립 등 든든한 기둥을 마련한 시기였다면, 2000~2011년에는 한국여자바둑이 세계여자바둑을 주도하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사실 1990년대까지 세계여자바둑을 주도했던 것은 중국이었다. 1992년 잉씨배에서 여자기사 최초로 본선 4강에 모습을 비춘 루이나이웨이가 건제했고, 펑윈과 장쉔, 화쉐밍 등이 그 뒤를 든든히 받혀줘 1990년대 간신히 터를 잡기 시작한 한국여자바둑기사들은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아직 세계무대에서는 중국과 일본에 비해 그 층이 얇고, 실력적으로도 부족했다. 그러나 2000년대 초부터 한국여자바둑은 세계무대에서 우뚝 설 수 있는 변화의 점과 함께 조혜연, 박지은 등 일찍이 입단한 유망주들이 쑥쑥 커 나가며 흐름이 한국으로 넘어온다.
▲대국에 임하는 루이나이웨이.
먼저 꼽을 수 있는 변화의 시작점은 바로 여제 루이나이웨이의 한국 활동 개시다. 1999년 한국에서 객원기사 신분으로 활동을 시작한 루이나이웨이는 활동을 시작하자마자 '여류최강'의 명성에 걸맞는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특히 객원기사 활동을 시작한 이듬해인 2000년 상징성이 큰 ‘국수’타이틀을 쟁취해 한국바둑계 뿐만 아니라 세계바둑계를 놀라게 했다.
이는 세계여자바둑 역사상 본격기전 첫 우승이라는 기록을 이뤄낸 것이고, 아직까지 그에 맞는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 이후 루이는 2011년 12월 고향 중국으로 돌아가기까지, 여류기전에서 22회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하기도 했다.
여제 루이의 이 같은 행마가 자극이 되었는지, 2000년 당시 조혜연이 14세의 어린 나이에 지금은 사라진 흥창배 결승에 올랐고, 이듬해에는 박지은이 그 자리를 잇는 등 세계대회에서 소녀돌풍이 거세게 일어났다. 두 기사 모두 우승까지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10대 기사들이 결승에 올랐다는 자체만으로도 이슈였고, 이 무대를 시작으로 한국 여자기사들의 기세가 무섭게 일어난다.

▲윤영선.
먼저 폭발한 이는 것은 왕언니 윤영선이다. 2002년 호작배 결승에서 윤영선은 후배 박지은을 누르고 생애 첫 세계여자대회 우승을 차지한다. 그 뒤를 박지은이 2003년 당시 개인전이었던 정관장배에서 우승하며 이어받는다.
한편, 아마여자바둑계에는 2002년 여자연구생 제도가 신설된다. 1970년대 이전 20명 내외로 시작한 연구생 제도는 1986년 이창호-김원 등 남자연구생 1호 입단자를 배출하는 등 프로지망생들의 필수 관문으로 자리 잡았다. 여자연구생 제도가 생기기 이전까지 연구생이라는 울타리 안에 입단지망생들의 성별을 가리지 않고, 함께 운영, 경쟁했었다. 그러던 중 2002년 여자연구생 제도와 이와 함께 여자연구생 내신 입단제도 개설은 여자입단지망생들을 위한 보다 적극적인 지원 제도가 마련된 것이다.

▲ 5회 정관장배 2차전 마지막 대국에서 일본 가토게이코를 꺾은 이민진(오른쪽).당시 그 승리는 이후 한국여자바둑이 단체전에서 강한 모습을 보이게 된 시작점이었다.
2005~2011 중국에서 한국으로 완연한 흐름을 끌어오다
2005년부터 2011년까지는 자신감을 실질적으로 수확으로 거둬들였다고 볼 수 있다. 우선 3회대회 부터 단체전으로 변모한 정관장배에서 한국은 2년 연속 중국에 우승컵을 내주며, 아직 전체적으로 중국의 두터운 허리를 감당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그와 같은 흐름은 2007년 5회 정관장배에서 반전된다. 5회 대회에서 한국 주장으로 나선 이민진이 무려 5연승을 거두며 한국에 우승을 안긴 것. 이민진은 이듬해 6회 대회에서도 막판 3연승으로 주장 박지은의 부담을 덜어주며 다시 한 번 한국에 우승을 선물한다.
이후 한국은 7회 중국의 송롱후이와 리허 두 신예의 활약으로 한 차례 우승컵을 내주기도 했지만 8회와 9회 연속으로 우승하며 또 다시 단체전에서 한국여자바둑의 위상을 드높인다. 또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여자단체전과 혼성페어전 모두 금메달을 휩쓸며 질적-양적으로 세계여자바둑계를 평정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2007년 대리배 결승전. 한국의 박지은과 김혜민이 우승컵을 다퉜다.
개인전 역시 이미 2003년 우승컵을 안은 바 있는 박지은이 2007년 대리배, 2008년 원양부동산배, 2010~2011 1~2회 궁륭산병성배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루이나이웨이의 시대에서 박지은의 시대가 왔음을 선포했다.
이민진, 박지은 외에도 김혜민이 2007년 대리배 준우승을, 2010년 박지연이 삼성화재배 16강전에, 문도원이 2010년 정관장배 7연승 등 세계여자바둑계에서 태극낭자들의 고른 활약이 이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점점 성적이 좋아지는 여자기사들이 국내 여자대회에서는 루이나이웨이의 철권통치에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서도 박지은(2008-여류국수), 조혜연(2005-여류명인), 김윤영(여류명인-2010) 등이 틈틈이 타이틀을 차지했다.
물론 이 같은 여자기사들의 활약 뒷면에는 상비군제도 등을 후원한 한국기원, 대한바둑협회 등 기관들의 협조와 조한승을 비롯한 많은 기사들의 도움 역시 적지 않지만 근본적으로는 자신감을 얻은 여자기사들이 바둑공부에 더욱 매진한 끝에 얻은 값진 결과일 것이다.

프로바둑계 외 이슈로는 여성바둑인의 바둑보급 선두와 지상파 진출을 빼놓을 수 없다. 2009년 3월 김효정, 이다혜를 주축으로 한 여자기사들이 육군 65사단에 병영바둑교실을 시작으로 군부대 바둑보급에 앞장섰고, 이다혜-백지희가 군부대 바둑보급을 위한 입문서를 내는 등 현재까지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 2007년 한해원이 KBS 폭소클럽에, 아시안게임 ‘국민 바둑돌’로 스타덤에 오른 이슬아가 맥심 화보촬영을 비롯해 2011년 댄싱위드더스타에, 바둑TV 인기 진행자 최유진이 2011년 SBS 스타킹에, 일반인들에게 바둑을 알리기도 한 몫 하기도 했다.
2012, 춘추전국시대 예상되는 국내여자바둑계
루이나이웨이는 한국에서 활동한 1999년부터 2011년까지 여류국수전, 여류명인전, 여류기성전 등 자신이 출전한 29번의 여자 3대 기전에서 무려 22차례 우승을 차지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지난해 12월 여제 루이나이웨이가 오랜 한국생활을 접고 고향 중국으로 향했고 2012년 한해가 밝았다. '루이'없는 오랜만의 국내여자바둑계는 어떤 모습일지.

▲진행 중인 여류명인전 결승. 최정(오른쪽)이 1-0으로 앞서고 있다.
적지 않은 이들은 기존강자들과 당찬 신예들의 격돌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다. 우선 2012년 초반을 뜨겁게 달굴 여류명인전과 여류국수전 결승이 기대된다. 3번기로 열리는 여류명인전 결승에 올라있는 이는 최정과 김미리로 최정이 1-0으로 앞선 상황이다. 결승에 임하는 최정과 김미리 모두 토종투톱으로 꼽히던 박지은, 조혜연을 꺾고 올라 온 바 있어 더욱 바둑팬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2010년 만 13세의 어린 나이에 입단해 주목을 받은 최정은 입단한 지 만 2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벌써 여류랭킹 3위에 이름을 올렸을 만큼 쑥쑥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지지옥션배 8연승, 명인전 본선진출, 그리고 이번 결승까지 질적인 승리 또한 적지 않다.
지난해 조금 주춤했지만 2009년 삼성화재배와 한국바둑리그 본선에 이름을 올린 김미리 역시 만만치 않은 강타자다. 이 둘의 타이틀 혈전은 2012년 여자바둑계의 주축이 될 샛별들의 대결 의미 외에도 또 다른 여왕탄생을 암시한다.
▲ 박지은(왼쪽)vs박지연.
뒤를 이어 바둑퀸 박지은이 후배 박지연과 여류국수전 결승에서 대결한다. 정관장배를 비롯해 지난해 궁륭산병성배까지 이제 세계여자바둑대회에서는 훨훨 날았지만 국내여자대회에서 아쉬웠던 박지은. 2010년 삼성화재배 16강, 지난해 궁륭산병성배에서 생애 첫 세계여자대회 4강 진출의 기쁨을 맛본 기세의 박지연.
이른바 '쌍박'의 격돌에서 우승컵을 쥐는 기사에 따라 기존강자의 강세 지속이냐, 춘추전국시대의 개막이냐의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여류명인전, 여류국수전 결승에 진출하지 못한 여자기사들 중에서도 활약이 기대되는 기사들은 많다. 루이에게 많은 눈물을 삼켜온 조혜연, 2010 여류기성 김윤영,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이슬아, 정관장배 7연승 문도원,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인 이민진·김혜민 등 역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1960년대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대학 동아리 활동으로 불이 지펴진 이후, 여자프로제도 신설을 통한 수많은 샛별들의 탄생, 세계여자무대 맹활약. 보급, 지상파 방송진출 등 많은 활동을 보인 여성바둑인들. 그들의 꾸준한 바둑계 행보에 박수를 보내며 흑룡해, 아니 앞으로도 바둑계에서 펼칠 활약을 기대해본다.
TYGEM / 김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