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덕영배 시니어부 대국을 관전 중인 이재윤 원장(사진 중앙). 애기가인 그는 대회 내내 자리를 지키며 그 자체를 즐긴다. 기자는 그와 안면을 튼 지 20년 가까이 되지만 치과의사인 그가 가운을 입은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늘 그는 바둑판 앞에 있었기에 그에게 '이회장님'이라고는 불러도 '이원장님'이라는 직함은 불러본 적이 없다. 흔히 대회 후원사의 어른이고 보면 '사진 찍는' 개막식과 시상식에만 슬쩍 얼굴을 내미는 것이 보통일진대, 그는 덕영배가 진행되는 이틀 동안 단 1시간도 대회장을 벗어난 적이 없는 지독한 바둑광이다.
대통령자문 통일고문, 우먼라이프 발행인, 대구바둑협회 회장…. 현재 그의 명함은 21개다. 이렇게 공사다망함에도 불구하고 그가 가진 취미생활의 전부는 바둑이다. 그 흔한 골프도 안친다. 오로지 바둑이다. 취미생활이라는 표현보다는 그냥 '생활'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덕영치과병원장 이재윤이 아니라 대구바둑협회장 이재윤 회장이 후원하는 덕영배 아마대왕전이 이립(而立) 30년을 맞았단다. 수도 없이 바둑언론과 인터뷰를 했지만 워낙 각별한 날이라서 또 한 번 그를 만났다.
▲인터뷰에 응하는 이재윤 원장-덕영배 아마대왕전 30년을 반추해 보신다면?
아마대왕전과 덕영배는 원래 따로 대회가 있었죠. 5년 전부터 양 대회를 통합해서 치르게 되었으니 엄밀히 말하면 전신인 아마대왕전이 30년 생일을 맞은 것이죠. 아마대회로는 아마국수전 롯데배최고위전 학초배 세실배 등등이 있었는데, 지금은 아마국수전과 함께 전통의 기전이 되었군요. 아마대회가 사라지는 것이 맘이 아플 뿐이죠.
-덕영배 이외에도 많은 대회를 후원하는 것으로 압니다만, 오랫동안 후원한 계기는?
전 골프도 전혀 치지 않습니다. 대학시절 이후 바둑은 제 유일한 취미입니다. 처음엔 한국기원의 요청에 의해 바둑본부를 만들었고 그 이후 바둑협회를 맡았습니다. 나중에는 바둑학회장까지도 도맡았지만요. 사실 처음에 대구본부를 맡았을 때 계시던 분들 중 저만 빼고 모두 바뀌었더군요. 하하.
27년 전 대구기우회를 맡은 게 인연이 되었습니다. 후쿠오카, 히로시마와의 교류전, 중국 칭다오, 청두와의 교류전도 매년 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바둑 즐길 시간에 외국어 공부를 했더라면 5개국 언어를 마스터했을 거라 하더군요. 가능성 있는 얘기일 겁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건강하게 살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바둑은 제게 가장 큰 즐거움입니다. 컴퓨터의 계산력도 이기지 못하는 것이 바둑입니다.
-내침 김에 바둑예찬론까지 펼쳐주시죠?
(기다렸다는 듯) 다섯 가지로 정리됩니다. 첫째 심플합니다. 한 판 하는 게 복잡하지 않아요. 게임은 단순해야 재미있습니다. 둘째 민주주의입니다. 장기나 체스는 왕이 잡히면 끝나잖아요. 바둑에선 한 수 한 수를 교대로 두니까 두는 가치는 동일합니다. 셋째 불확실한 상황에서 최선의 수를 찾는 과정은 과학과 같습니다. 그래서 최선의 수를 찾는 과정은 TV나 인터넷으로 보기만 해도 흥미로운 것이죠. 넷째 집중력을 키워준다는 것이고, 다섯째는 두는 사람들이 다함께 하며 정을 나누는 것이 되겠죠.
-작년부터 대회에 덤을 7집반으로 책정한 이유가 있나요?
프로들에게는 6집반이 맞는지 모르지만 아마추어에게는 7집반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일단 속기이며 공격적이잖아요? 응창기배도 7집반입니다만, 작년에 한번 시행했더니 승률이 5;5로 나왔습니다. 아직은 표본이 적긴 하지만 올해는 어떻게 나올 지 궁금하네요. (대회 경과 백이 6-4정도로 우세했다.) 저도 개인적으로는 7집반이라도 흑을 선호합니다.
▲지난 8월 이재윤 원장은 대구 출신 양우석 초단과 2012 내셔널리그 대구덕영치과 소속 선수 출신인 김신영 초단에게 격려금을 전달했다.-대구에 프로기사가 배출이 더디다는 것을 늘 안타까워하셨는데…
요즘은 즐겁습니다. 최근 2년 동안 김원 사범이 대구에 온 이후 2~3명이 연이어 입단을 했어요(양우석 강태훈에다 내셔널리그 대구덕영치과팀의 김신영 선수를 지칭하는 듯).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 매년 1~2명의 프로를 광역협회에서 뽑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프로의 문을 넓혀 바둑 붐을 일으켜야 하지 않겠어요.
-회장님에게 바둑이란 무엇인가요?
일전에 모 프로기사가 '아마추어들은 가버리면 그만이지만 프로는 계속 남는다.'는 말을 하더군요. 그러나 아마추어 중에 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여기 오늘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 중 떠난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저는 밥 먹기 위해 바둑을 둔 것도 아니며 일하기 위해서 바둑을 둔 것도 아닙니다. 프로들은 쉬는 시간엔 바둑을 두지 않지만 아마는 쉬는 시간에 바둑을 둡니다. 그래서 더 좋아하고 평생을 같이 가는 겁니다. 제가 이렇게 좋아하기 때문에 이 자리에 이렇게 있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