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죽했으면 대국실 미니홈피의 인사말을 보라.
[저으방에오신님들에게감사-언제나신으축복이함게하실바라며건강하세요-배팅에지도라도팔자려니생각하시고욕좀하지마세요욕먹어서기분좋은사람업어요9단일동으견]
맞춤법, 띄어쓰기를 완전 무시한 문장.
그의 사생활을 좀 아는 사람이라면 그의 타이젬 바둑에 관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에게 바둑은 생활이다. 공기다. 밥이고 운명이다.
▲ 어디서든 타이젬에 로그인하는 joonki.
특별한 일이 없으면 컴퓨터 앞에 앉고 본능처럼 바둑을 두기 시작한다.
처음에 준키는 타이젬을 만든 창업공신이었고 주주였으며 간판스타였다.
그래서 아마 투철한 의무감으로 흥행을 위해 전선을 누볐을 것이다.
바둑행사로 출장을 갔을 때도 준키는 시도 때도 없이 타이젬 바둑을 두곤 했다.
외국에서도 지방도시에서도 대회장에서도 호텔 로비에서도 틈만 나면 타이젬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다가 중독이 되었다.
바둑에 중독되고 타이젬 친구들에게 중독되었다.
무수한 대국 실 회원들이 친구 목록에 등록되었고 그에게 하나의 사회가 되었다.
타이젬 동호회 오프라인 모임에서 부르면 달려 나갔고 그러다 보니 프로기사들 중 아마추어 바둑 팬들과 가장 스킨십을 자주 나누는 스타로 떠올랐다.
언젠가 필자와 시니어 바둑대회를 함께 간 적 있는데 준키는 대회 직전에 타이젬 바둑으로 몸을 풀고 있었다.
그런데 판세가 완연히 기운 바둑을 상대가 던지지 않고 버티자 그도 오기로 초강수를 남발했다.
대회가 시작됐는데도 준키는 발을 떨면서 상대가 던져주기를 빌고 있었다.
관계자들이 준키9단을 계속 불렀다.
결국 준키는 돌을 던지고 대회장으로 들어갔다.
실전에서 준키는 가장 빨리 바둑을 두고 나와 다시 타이젬을 클릭했다.
그리고 아까 그 상대를 찾아 복수전을 감행했다.
“어디 맛 좀 봐라!”
준키는 시종일관 여의봉을 휘두르며 매너 나쁜 상대를 응징했다.
승리의 팡파르가 울리자 그가 씩 웃었다.
그러자 화면에 쪽지 몇 개가 휘릭 날아왔다.
“준키 사봄님 쵝오!”
영원한 자유인 준키 9단.
그를 만나면 그냥 기분이 좋다.
누구와도 격의 없이 어울리고 여과 없이 마음을 털어 놓는 사나이.
타이젬 승률이 과거처럼 산뜻하진 않지만 신예들과 난타전을 벌이면서 최신 정석을 흡수하므로 알고 보면 준키는 공부벌레인 셈이다.
▲ 타이젬에서는 joonki로 더 유명한 서능욱 9단. 그래서 대주 배를 먹었고 인터리그를 우승했으며 각종 이벤트 기전에서 제 몫을 해냈다.
자유롭기에 쓸쓸한 준키9단.
오늘 타이젬 회원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몇 마디 나눠볼까 싶어 전화를 했더니 통화정지 상태다.
핸드폰을 분실했다고 한다.
사모님께 연락했더니 당신도 밤에나 만날 것 같다며 웃는다.
늦더라도 통화하고 싶다 전했다.
새벽 3시 무렵 전화벨이 울렸다.
그 시각에 귀가했음을 추리한다.
▲ joonki의 단골 술집.
음성에서 알콜 기운이 느껴진다.
“1만 판 중 가장 기억나는 한 판은?”
물음표를 던졌더니 한참 동안 침묵이 흐른다.
옳은 인터뷰가 아니다.
나는 준키 사범의 밤을 읽을 수 있다.
사람을 좋아해 어디라도 가서 어울리고 노래도 불렀으리.
그 어딘가에서 택시를 타고 북악스카이웨이 초입 구기동 집까지 달려왔으리.
북악산 비탈진 산길의 가로등 불빛에 비친 준키 사범의 통통한 그림자.
유쾌한 사나이의 그림자가 자꾸 쓸쓸하게 연상되는 건 왜일까?
그와 만나면 늘 묻는 한 마디.
“바둑이 뭐죠?”
“걍 바둑이죠 뭐 하하하”
그에게 바둑은 인간 구원의 메시지일까?
아니면 평생 욕구불만에 시달리게 만든 지병일까?
준키 9단의 기보를 유심히 관찰해보자.
아마도 오늘 밤쯤 1만승이 새겨질 것 같기도 하다.
그때 축하 쪽지 세례를 퍼부어 줘도 괜찮지 않을까?
어떤 프로기사가 인터넷에서 1만승을 거둘 수 있단 말인가?
타이젬 1만승은 준키라는 아이디의 영혼이고 훈장이다.
나는 준키의 1승부터 1만승까지의 여정을 타이젬에서 함께 동행한 유목민으로서 긍지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