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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즈음, 앎에 희열을 느꼈습니다!"

17연승으로 3개 기전 본선에 진입한 이희성

2013-04-20 오후 4:53:38 입력 / 2013-04-21 오후 10:07:57 수정

▲ 30대에 전성기를 맞는 입단 18년차 이희성.


“1996년 이후 인터뷰한 게 첨이에요. 그때 서(봉수)명인님을 이기고 처음 본선에 올랐을 때였거든요.”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대뜸 필자와의 인연부터 건넨다. 필자는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별 걸' 다 기억하고 있었다. 하긴 당대 고수였던 서봉수를 이기고 처음으로 본선물고기가 되었으니 평생 잊지못할 정도로 강렬하게 남아있을 터.

오며 가며 눈인사 정도는 하고 살았지만, 이렇게 인터뷰라는 형식을 빈 지 17년이라면 프로에게는 마치 겁(劫)에 비할 만한 긴 시간이다. 누구처럼 타이틀을 딴 것도 아니고, 미래의 주역으로서 촉망받는 것도 아니다. 감히 겁에 비유할 만한 세월동안 끊임없이 자신을 담금질해온 이희성(31)을 기분 좋게 만났다.

“이상해요. 요즘 미치도록 공부가 하고 싶어져요. 제가 타이틀을 딸 것도 아닌데, 왜 이런지 저도 궁금해요.”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었다. 최근 소리 소문 없이 17연승을 기록했다. 또 2개월 사이에 랭킹이 무려 10계단씩 두 번씩이나 뛰어서 한국랭킹 49위에 올랐다. 그는 최근 상승세에 대해 자신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겸손일까? 목표를 잃어버리기 쉬운 30대 프로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겠다 싶어서 대화를 이어갔다.

-요즘 왜 이렇게 잘 두는 거죠?
“잘 할 때도 있고 또 연패 빠질 때도 있고…. 소소회 연구회에 참여하는 정도? 10년 전까지 연구회에 참여한 후 다시 올 초부터 나가고 있어요. 잘 두는 어린 친구들과 같이 연구를 하다 보니 아마 좀 늘었나 봅니다.”

17연승은 입단 후 최고기록이다. 이 기간 동안 4개 기전이 예선을 벌였는데 바둑왕전 바둑리그 국수전 등 3개 기전에서 본선에 진출했다.

바둑리그 얘기가 나오니까 작년 생각이 난다. 이희성은 작년에 락스타리그 선수로 뛰었다. 리그가 한창이던 여름 어느 날 필자가 이희성을 불러서 조용히 물어보았다. “이 사범! 9단에다가 나이 30줄에 어린 친구들과 2군 리그에서 뛰는 게 부담스럽지 않아? (어린 친구들에게 질 가능성이 크다는 뜻으로) 주말마다 시합해야 하고 대국료도 적고…." 

이희성은 정색을 하며 답했다.“프로에게 경기가 있다는 게 반갑고도 고맙죠. 대국료는 비록 적지만 어린 친구들과 부대껴 본다는 것은 저로서는 굉장히 유익한 시간이죠. 지금 제가 어디쯤 위치해있는 지도 살펴볼 수 있고….”

▲ 작년 락스타리거였다가 올해 바둑리그에 진출한 이희성. 첫 경기에서 상대팀 2지명 홍성지를 꺾었다.

▲ 2004년 신예연승최강전에서 고근태(왼쪽)을 꺾고 이희성은 첫 우승을 차지했다.


프로로서는 전성기를 지나가는 나이에 락스타리그에서 발군의 기량을 보여준 것이 작년. 포스코LED는 7라운드까지 꼴찌에 머물다가 8라운드부터 놀라운 상승세를 보여주면서 만화 같은 역전 우승을 일군 것. 그 중심에는 기대하지 않았던 '30대의 기수' 이희성(12승6패)이 있었다.

집념의 소산일까. 그의 오랜 별명처럼 '찐드기 정신’을 발휘하며 올해 꿈에도 몽매하던 바둑리거로 전격 복귀했다. 40명의 바둑리거 가운데 30대는 이세돌 이창호 조한승 등 톱클래스를 제외하고는 안조영 목진석 류재형 이희성 밖에 없다. 이희성은 올해 Kixx의 5지명으로 선발된 후 어제(19일) 첫 경기에서 정관장 2지명 홍성지를 제압하며‘이변 아닌 이변’을 연출했다.

-소소회에서 한참 후배들과 어울려 공부하는 게….
"회장이 25세 류동완이니까 조금 어색하긴 하죠. 그러나 최명훈(38) 안조영(34) 선배도 있어요. 얘들이 대국을 복기하면 끼어들어서 물어보곤 하죠. 요즘 와서 그냥 미치도록 공부를 하고 싶어지는 거예요. 잡념이 하나도 없어요."

-그래도 뭔가 특별한 계기는 있을 것 같은데요?
“철이 든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다시 어릴 때처럼 공부를 해보고자 하는 맘은 있었어요. 실행에 옮기기는 못하다가 작년 말부터 좀 열심히 했죠. (좀 생각하다가) 어릴 때는 정말 제가 잘 두는 줄 알았어요. 약간 오만이 생겨나기도 했죠. 어느 순간 나이가 들어버렸고 잘나가는 후배들이 앞서 가는 거예요. 2년 전부터 연애도 끊었어요(웃음).”

짧지 않은 승부사의 길을 잠깐 반추해보면, 그의 전성기는 04~05년 무렵이다. 이희성은 당시 후지쯔배를 우승하고 돌아온 박영훈과 자신보다 윗길이던 허영호 고근태를 연달아 꺾고 오스람코리아배 신예연승최강전에서 생애 첫 우승을 달성했다. 당시 이희성의‘근거 없는’자신감은 과거 인터뷰에서도 목격된다. 목표는 몇 승정도(기전에 연승전이 포함되어 있었다)?-원래 대국 할 때 "질 것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두는 판은 다 이겼으면 좋겠어요. -2005년 마스터스 삼국지 타이젬 대표팀 인터뷰에서.

▲ 서른즈음에 앎에 희열을 느끼고 있다는 이희성.

-17연승이 깨졌는데 아깝지 않나요?
“물가정보배 예선 준결승이었는데 너무 못 두어서 상대 이태현에게 오히려 미안해요. 예선이어서 기보가 남아있지 않은 것이 다행이죠. 연승을 의식하긴 했지만 그 때문에 패한 것은 아니에요. 오히려 연승이 깨지고 나니 편안해서 좋아요. 진짜 실력은 지금부터가 아닐까 해요.”

그렇다. 연승이 깨지고 나서 오히려 다시 호성적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 진짜 실력이다. 이희성은 우직한 끈기로 신예 대표주자 이동훈을 제압하고 국수전 본선에 진입했고 LG배 통합예선에서도 일단 순항 중이다(3라운드 진출). 올해 전적이 20승1패(4/19 현재).

“목표는 없어요. 다만, 제가 얼마나 바둑을 잘 둘 수 있는 지 시험해보고 싶어요. 공부하다가 죽은 사람은 없다고 하잖아요. 과거엔 느끼지 못했던 앎에 대한 희열이랄까, 새삼 느끼고 있어요.”

“대림동이나 산본이나 가까이 들리시면 꼭 놀러 오세요!”

(서울)대림동에서는 이희성의 부친이, 산본에서는 모친이 20년 넘게 기원을 운영하고 있단다. 남들은 힘들다고 하는 기원인데 성업 중에 있다는 걸 보면, 이희성이나 그의 부모님이나 길게 보는 안목은 닮아있다.

승부에서는 환갑이라고 할 나이 30줄에 들어서도 더 잘할 수 있다는 선례를 보여준 이희성에게 타이젬 유저들도 큰 박수를 보내주시라!
TYGEM / 진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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