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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의 재활, 영혼의 합창

‘울산 장애인 바둑협회’ 정준성 회장

2013-08-10 오후 12:44:44 입력 / 2013-08-10 오후 1:31:35 수정

▲ 울주군 장애인복지관 바둑교실에서 바둑강의하는 정준성 회장

"…아, 내가 바둑을 안 배웠으면 어쩔 뻔했나, 요즘 특히 그런 생각이 자주 듭니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바둑 말고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보면, 없는 것 같아요."

울산은 꽤 먼 곳 같았다. KTX를 타도 서너 시간은 걸리지 싶었는데, 오후 3시55분에 출발한 KTX는 6시 11분에 울산역에 도착했다. 2시간16분. 역시 세상은 내 생각보다 앞서가고 있다. 정준성을 만나러가는 길이었다.

때와 장소의 기억이 확실치 않다. 2~3년 전이고, 지방의 어느 바둑대회장이었다. 누가, 장애인 한 사람을 소개했다. 휠체어를 타고 있었던 것 같다.

"몸이 좀 불편하시긴 하지만, 바둑으로 좋은 일 많이 하시는 분입니다. 언제 기회 되면 한번 소개해 주셨으면 합니다. 좋은 일은 자꾸 알려야 하잖아요." 소개 받은 사람이 정준성이었다. 몸의 오른편이 불편해 보였다. 곱슬머리에 피부는 검은 편이었고 눈빛이 날카로웠다.

울산에 갈 기회는 잘 생기지 않았다. 대신 지방 바둑대회장에서 한두 번 더 정준성을 만났다. 미안했다. 그는 그냥 편하게 한번 놀러오라면서 웃곤 했는데, 그게 마음의 빚이 되었다.

울산역에서 사람이 많이 내렸다. 정준성이 마중 나와 있었다. 휠체어를 타고 있지 않았다. 아, 내가 잘못 기억하고 있었나? 아니, 그동안 좋아진 건가? 오른편이 불편한 것은 맞는데, 그는 운전을 했다.

▲ 울주군 장애인복지관

"울산이 커요. 울주군과 합해지면서 울산광역시가 되었잖아요. 인구가 120만입니다. 울산역을 설계할 때 하루 이용객 1만 명을 기준으로 했다는데, 지금 이용객이 2만이 넘습니다."

정준성은 1954년생. 교동국민학교(초등학교), 중동고, 중앙대를 나온 서울 토박이다. 현재 바둑강사 일을 하고 있는데, 알고 보니 직함이 참 많다. '울산 장애인바둑협회 회장'이자 '울산바둑협회 이사''울주군 바둑협회 회장'‘울주군 장애인바둑협회 회장'을 겸하고 있다. 또 '울주군 체육회 이사'이며, '농소농협 운영위원'이다. 이밖에도 더 있는데, 여기까지.

이름만 걸어놓은 게 아니다. 그가 바둑강의를 나가는 단체들인데, 스케줄이 기막히다. 월요일은 화요일부터 시작되는 바둑강의 강행군을 위해 자료 준비, 관계자 연락 등으로 준비운동을 하는 날이다. 화요일 아침 10~12시, 울산 장애인 종합복지관 바둑교실에 나간다. 또 화요일과 수요일 오후에는 2시간씩 중학교 스포츠교실에서 바둑강의를 한다. 수요일과 목요일, 아침 10부터 12시까지는 울주군 장애인복지관 바둑교실에서, 저녁 7시부터 9시까지는 울산 양육원 바둑교실에서 아이들에게 바둑을 가르친다. 토요일 아침 10~12시에는 '울주군 장애인복지관 다문화가정 바둑교실'에서 강의하고 점심 식사 후에는 자동차로 40분 거리인 인근 경남 양산시의 '웅상 종합사회복지관 다문화가정 바둑교실'로 달려가 2시부터 4시까지 동남아 여러 나라에서 온 엄마와 아이들을 가르친다. 웅상은 양산시에 있던 지명이다. 동네는 없어지고 이름만 남았다. 양산의 인구는 27만.

그리고 4~7월에는 일주일에 이틀, 하루에 2시간씩 울산시 생활체육 바둑교실과 울주군 생활체육 바둑교실에 나간다. 그러고 보니 그가 바둑강의를 하는 대상은 주로 장애인과 다문화가정의구성원들이다.

▲ 수업 전경

그를 찾아간 날은 8월2일 금요일. 강의가 없는 하루다. 내일, 토요일은 다문화가정 바둑교실의 날이다. 방금 말했듯 오전엔 울주군 장애인 복지관에서 강의하고, 오후엔 웅상 종합사회복지관으로 넘어간다.

"바둑은 초등학교 5학년 땐가, 형들이 두는 걸 어깨너머로 보고 배웠습니다. 배우자마자 형들을 이겼어요. 형들이 워낙 하수였던 거지요. 그 후로도 계속 두었고, 대학에 가서 1급 행세를 한 것 같아요. 요즘은 아마 5단, 6단 그러지만 옛날에는 그냥 1급이었잖습니까. 졸업하고 사회생활 시작하면서 바둑과 멀어졌던 건데, 잘 나가던 시절 다 지나가고 몸이 아프게 되니까 바둑과 다시 만난 겁니다. 인연이라는 게 참 묘하지요."

그렇다. 묘했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 2006년의 어느 날 아침이었다. 눈을 떴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중풍이었다. 병원에서는 얼마 못 살 것이라고 했고, 살더라도 몸을 움직이지는 못할 것이라고 했다.

“술이요? 좋아하지요. 그러나 그 날은 아침 일찍 일이 있어서 전 날 별로 마시지 않았거든요…. 물론 평소 많이 마신게 쌓여서 그렇게 된 건지모르지만….”병원에서 하는 얘기를 그는 믿을 수가 없었다. 움직이지 못한다니, 그런 게 어디 있어. 내가 열심히 노력하면 좋아지겠지, 그렇게 믿으면서 낙망하지 않았다. 8개월을 입원했는데, 아침 6시부터 밤 11시까지 침대 난간을 붙잡고 일어났다 앉았다를 수없이 반복했다. 처음엔 너무 힘이 들었다. 안 되는 것 같았더니만, 어느 날, 거짓말처럼, 왼손과 왼다리가 움직이더란다. 움직이지 못할 것이라는 진단을 받고, 혼자서 8개월 동안 하루 17시간 땀 흘려 몸의 절반을 살려낸 기적이었다.

"모두들 저에게 지독한 사람이라고 하면서, 기적이라고 놀라워들 했지요. 제가 평소엔 순한 편인데, 독할 땐 좀 독한가 봅니다…” 운명이 모든 사람에게 다 이기는 것은 아니다. 운명을 믿는 것도 운명, 운명을 믿지 않는 것도 운명이다. 정준성의 첫 직장은 미용기구 회사였다.

"재미있었습니다. 요즘과 달리 그때만 해도 미용업 종사자들이 별로 대우를 받지 못하던 시절이었지요. 미용사협회 같은 것도 없었고. 근래에 미용 쪽에 유명한 분들이 많은데, 그 양반들이 옛날에는 우리한테 선생님, 선생님 했어요. 그리고 업무로 만나는 사람이 90%는 20대 여성이었거든요."그러다가 1990년대 중반에 사업을 시작했다. 친구가 알려준 사설경마장이었다. 떼돈을 벌었다. 금-토-일, 일주일에 사흘 문을 열었는데, 그 사흘 동안 수천만 원씩 긁어모았다.

"아시다시피 사설경마장은 불법이잖아요. 걸렸죠. IMF 전후였어요. 경마장을 접고 1997년경에 울산으로 내려왔고, 내려와서는 건강식품 사업을 했습니다. 그 사업도 잘 하다가 사고를 당한 거지요. 사고를 당했으니 이렇게 말하면 이상할지 모르지만, 사고 전까지는 운이 좋았습니다. 경마장도 저는 초창기에 시작한 것이고, 그래서 큰돈을 벌었는데, 제가 그만 둔 다음에는 별로가 되었거든요.”

퇴원 후에는 재활센터에 나가 운동하는 것이 주된 일과였다. 거기서 30년 만에 다시 바둑을 만났다. 재활센터에서 바둑을 두는 사람들이 있었다. 구경하다 보니 두 자리 급수들 같았다. 훈수를 좀 해 주었다. 바둑 고수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군청 직원이 찾아왔다. 장애인복지회관에서 바둑을 가르칠 생각이 없느냐는 것이었다.

"기뻤습니다. 아, 내가 할 일이 생겼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구나. 조건을 달았지요. 3개월 동안은 교재 선정이나 강의 방식 등 일체를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 오케이 하더라구요.”어른들을 대상으로 시작한 바둑교실은 시간이 지나면서 범위가 빠른 속도로 넓어졌다. 아이들이 왔고, 노인들이 왔고, 양육원에서도 강의 요청이 왔다. 그리고 1년 반 전부터는 다문화센터에도 바둑교실이 생겼다. 동분서주한 보람이 있었다.

"저는 뇌병변장애 3급입니다. 장애도 여러 종류인데, 가령 지적 장애 어린이의 경우, 바둑돌을 교차점에 놓는 데까지 2년이 걸리더군요. 야아~ 무슨 바둑돌 하나 제대로 놓는데 2년씩이나 걸리냐, 그래 갖고 어떻게 바둑을 가르치고, 배우냐,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고, 시간이 걸려도 해낸다는 것이지요.”

▲ 울주군 장애인복지관 다문화가정 바둑교재. 중국 일본 러시아 몽고 베트남 필리핀 등 6개 국어로 되어 있다.

중학교 스포츠교실 바둑강의는 초등학교의 '방과 후 바둑'과 비슷한데, 시행하고 있는 학교가 전국적으로 많지 않다. 대한바둑협회 같은 기관에서 신경 써야 할 부분이다. 다문화가정 바둑보급 사업은 한국기원에서 시작했다가 지금은 대한바둑협회로 업무가 이관되어 있다. 4월부터 11월까지 8개월 동안 매월 80만 원의 강사료와 교재, 설비 등을 지원한다. 1주일에 이틀, 한 번에 1~2시간 강의하는 것이니 '타임 당' 10만 원 꼴이다.

그가 돈을 받는 강의는 이 두 가지다. 나머지는 실비지원-자원봉사다. 요즘은 문화센터 같은 곳에서 강의 섭외가 들어오기도 한다. 중학교와 다문화, 기타 이것저것 합해 그의 한 달 수입은 300만 원 정도지만, 대한바둑협회가 지원하는 교재 이외의 교재와 기자재는 그가 구입하고, 아이들 간식비도 그가 부담하니 실제로는 그것보다 많이 적은 건데, 처음부터 돈을 바라고 시작한 것은 아니니, 내 돈을 쓰는 것도 흔쾌하다. 얼마 전에는 보다 효율적인 강의를 위해 노트북과 빔 프로젝트를 장만했다. 240만 원이 들었다. 다문화가정 바둑교실도, 지원은 8개월, 640만 원 한정이지만, 그는 1년 내내 강의한다.

수강생은 중학교 스포츠 바둑교실이 제일 많아 약 70명이고, 장애인센터 복지관 양육원 등은 20~40명, 여기에다 생활체육회에서 1년에 3~4개월 진행하는 바둑교실 수강생까지 하면 월 평균 500~700명이 그에게 바둑을 배우고 있다.

토요일에 문을 여는 다문화가정 바둑교실에 들어가 보았다. 중국 일본 대만 홍콩 몽고 필리핀 베트남 등지의 여성들과 아이들이다. 한국인과 결혼해 건너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국 여성, 재중동포(조선족) 여성은 온 지도 꽤 되었고 생활도 웬만큼 자리를 잡아 엄마와 아이들이 같이 나오는데, 다른 지역은 부모가 모두 일을 나가야 하기 때문에 아이들끼리 온다.

▲ 또 한 분, 바둑선생님 박덕용 씨

바둑교실에는 정준성 회장 말고도 선생님이 둘 더 있다. 박덕용(61)씨와 남현숙(58)씨다. 박덕용 씨는 예전에 안양에서 기원을 운영했었다. 몸이 좀 불편한 분이다. 바둑 실력은 아마5단. 남현숙 씨는, 한 살 터울의, 친구 같은 부인이다. 정 회장이 가는 곳에 남현숙 씨가 있다. 바둑은 몰랐는데, 6~7년 남편을 따라다니며 뒷바라지를 하는 동안, 정 회장 말에 따르면 “20급쯤은 되었다”고 한다. 정 회장은 “어린이 입문자는 저보다 더 잘 가르치고 무엇보다 힘이 저보다 세서 무거운 것은 저 사람 혼자 다 들고 다닌다”면서 웃는다. 무거운 물건 들고 다니는 것뿐만 아니라 힘든 일은 모두 부인의 몫이다.

마침 휴가철이라 군데군데 자리가 비어 있다. 그런 중에도 중국에서 온 엄마들은 여섯 사람이나 보인다. 순치잉(孫卮英, 36)씨는 우루무치(Urumqi)에서 왔다. 우루무치에 있을 때는 중고등학교 영어 교사였다. "실크로드의 도시!"라고 했더니 눈을 동그랗게 뜬다. 중국 지도를 그리고는 신장(新彊)성, 위구르(Uighr) 자치구, 칭하이(靑海), 시안(西安) 등을 표시하며 "5000킬로가 넘으니까. 한국에서는 아주 멀다"면서 웃는다. 리춘밍(李春明, 34) 씨와 왕시얀(王詩嫣, 30) 씨는 하얼빈(哈爾濱), 지위안주안(支元娟, 32) 씨는 내몽고, 진홍메이(金紅梅, 40)씨는 선양(沈陽), 수지잉(徐智英, 35) 씨는 지린(吉林)에서 왔다. 엄마들도 밝고, 아이들도 구김살이 없다.

▲ 왼쪽부터 순치잉 지위안주안 리춘밍 씨

"왜 고생을 사서 하느냐. 하더라도 적당히 해라. 주변에서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내가 좋아서 합니다. 즐겁고 보람도 있습니다. 저에게 바둑을 배우는 분들, 어린이들에게 제가 오히려 감사해야 합니다."

어려운 일이 왜 없으랴. 복지관은 시설관리공단 관할인데, 저번에 한번은 공단 측에서 장 회장에게 장소를 올해까지만 빌려주고 내년부터는 안 된다고 통보한 적이 있었다. 장 회장은 사정을 했다. 잘 통하지 않았다. 수강생 100여 명을 동원해 시위를 했다. 장소를 계속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문제를 그런 식으로 해결하기는 싫었지만, 도리가 없었다.

울주군 복지관에서 양산시 웅상복지관으로 가는 길은 아름다웠다. 부인 남현숙 씨가 “덕분에 우리는 매주 토요일이면 드라이브를 즐긴다”면서 자랑한다. 자랑할 만하다. 그러나 마음 한 켠이 조금은 아리고 서늘하다.

▲ 웅상 종합사회복지관 김완규 관장

웅상복지관에는 김완규(52) 관장과 직원들이 나와 있었다. "토요일이지만 진행되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직원들도 근무를 한다"는 것이다.

"장 회장님, 정말 열심히 하십니다. 우리도 감동을 받곤 합니다. 더 좀 도와드리지 못하는 것이 아쉽습니다. 올해는 미리 기안해 내년에는 예산에 반영되도록 해 보려고 합니다. 예산에 잡혀 있지 않으면 도와드리고 싶어도 방법이 없습니다. 바둑 전용교실이라도 할당이 되면 강의하시는데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장애인 바둑교실과 다문화가정 바둑교실은 우리 사회의 문화적 성숙과 우리 바둑의 외연 확대에 기여하는 바가 큽니다. 저부터도 보다 적극적인 홍보와 지원이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김 관장의 말이다.

▲ 수업이 끝나면 과자를 나누어준다.

오후 4시. 숙제를 잘 해오고, 오늘 열심히 공부한 아이들에게 초코파이를 나누어 주는 것으로 강의는 끝났다. 그는 집이 먼 엄마와 아이들, 혼자 나오는 아이들을 데려오고 데려다준다. 그는 한 손으로 운전도 잘 한다.

"결혼해서 한국에 왔다가, 이혼한 가정의 아이들도 있습니다. 초혼인 경우에는 그래도 여기서 태어나고 자랐으니까 좀 덜한데 재혼해서 아이와 함께 왔다가 다시 이혼하는 바람에 위탁가정으로 보내진 아이들이 풀 죽어 있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바둑을 배우는 시간만큼은 즐겁게 해 주려고 제 나름으로는 연구를 많이 합니다. 바둑 실력 늘고, 안 늘고 하는 것은 다음다음 문제지요. 늘지 않으면 어때요. 누구나 다 바둑 잘 두라는 법은 없는 거잖아요. 즐겁게 같이 어울리고, 그래서 행복하고, 그러면 더 바랄 게 없습니다."

강의하는 것 말고도, 가령 장애인 바둑대회 같은 것이 열리면 거기가 어디든 정 회장은 버스를 동원해 선수들을 이끌고 단체로 출전한다. 버스는 울산시가 정 회장의 요구와 설득에 응해준 것. 바둑대회 나간다고 버스를 내 주는 지자체는 전국에서 울산시가 유일하다. 울산시에서 대회가 열리든, 다른 지방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하러 가든 경비도 지원이 된다. 그러나 그 비용이 넉넉할 리 없어, 정 회장은 그때도 사비를 보탠다. 헤어지면서 그가 다시 씩 웃는다.

"대장 노릇 하기가 쉽나요. 하하하. 아, 그리고 제 공인 봉사시간이 얼만지 아십니까?… 2500시간이에요. 그런데 그건 기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이른바 '공인 시간'이고, 실제로는 4000시간이 넘는다고 하네요." 매일 같이, 하루에 1시간 씩 봉사한다면 4000일. 10여 년이 걸린다. 2시간씩이면 5년 여. 하루에 1~2시간 봉사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10년을 하루 같이, 5년을 하루 같이, 매일 1~2시간 봉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분명 아니다.

바둑에 대한 인식 수준이 높아지면서 바둑의 공적 기능, 사회적 역할에 대한 논의가 확산되는 것과 맞물려 이른바 사회 취약층에 바둑을 보급하는 일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요즘, 정 회장은 그 실천 현장의 선발주자다. 정 회장이 처음에 했던 말을 반복한다.

"…아, 내가 바둑을 안 배웠으면 어쩔 뻔했나, 요즘 특히 그런 생각이 자주 듭니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바둑 말고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보면, 없는 것 같아요."
TYGEM / 이광구 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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