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경주박물관은 경주 용강동에서 발굴한 7세기 신라 귀족무덤인 '용강동 6호 돌방무덤' 특별전을 개최한다. 무덤에서 출토된 바둑돌. (사진출처=국립경주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은 경주 용강동 금강산 구릉에서 발굴한 7세기 신라 귀족무덤인 '용강동 6호 돌방무덤' 특별전을 다음달 26일까지 개최한다.
7세기 이후 신라의 왕과 귀족 무덤은 마립간기(5세기)의 대형 무덤(적석목곽묘)에 비해 널리 소개되지 않았다. 이는 현재까지 발굴된 자료가 부족한 원인도 있지만, 5세기 무덤에 비해 부장품이 화려하지 않다는 점도 작용했다.
또 6세기 중엽 이후 신라는 중앙집권화의 토대를 마련했고, 왕은 불교를 공인하고 새로운 장법인 돌방무덤(石室墓)을 도입했다. 이 무렵부터 장례는 간소화되고, 부장품의 양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1991년 발굴된 용강동 6호 돌방무덤은 봉분 지름이 14m이며, 봉분 둘레를 따라 둘레돌(護石)이 둘려 있다. 무덤 주인의 신분을 짐작케 하는 금동으로 감싼 관못과 금동대구(金銅帶鉤 허리띠 연결 걸쇠)가 있고, 관대 바깥에는 40여점의 토기류와 지석(誌石 주인의 인적사항을 기록한 돌)이 놓여 있다.
이번에 전시되는 지석의 글자는 대부분 소멸돼 판독이 거의 불가능하지만, 신라 무덤에서는 처음으로 출토된 중요한 자료다. 국내에서는 백제 무녕왕릉 지석 이후 두 번째로 출토됐다.
부장품은 6세기에 중국에서 생산된 것으로 추장되는 녹갈색 시유두귀항아리(施釉兩耳壺)와 비파형 금동대구 등이 전시된다.
바둑돌로 보이는 자갈돌도 선보인다. 신라사람들이 8세기 이전부터 바둑을 즐겼다는 기록에 비춰 무덤에서 출토된 바둑돌은 신라시대 바둑의 도입 시기가 기록보다 1세기 이상 앞선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이영훈 경주박물관장은 "용강동 6호 무덤은 7세기 초 신라 귀족의 무덤으로 무덤 구조와 부장품이 당시 문화의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귀중한 자료"라고 말했다.
영남일보 12일자 송종욱 기자의「'용강동 6호 돌방무덤'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을 옮겼습니다.
▲ 바둑알과 함께 무덤에서 출토된 무덤에서 출토된 지석, 시유두귀항아리. 우리나라 기사(棋士)로서 당조(唐朝)에 들어가서 바둑으로 이름을 떨친 사람이 있었다. 신라 헌강왕(憲康王 ?~886) 헌강왕 때 박구(朴球)라는 사람이 당 희종(僖宗)의 기대조(棋待詔:황제의 바둑비서)를 지내다가 귀국할 때 중국의 유명한 시인 장교(張喬)는 다음과 같은 전별시를 지어 박구의 고수를 찬양하고 있다.(삼국사기)
"바다 건너 저 나라에 그대 적수 뉘 있으리, 본국이라 기쁘지만 바둑수는 외로우리, 궁중 임 뫼신 자리엔 새로운 형세 전할 것이, 뱃전에서 판을 대하여도 옛날 기보 엎어 놓으리(海東誰敵手 歸去道應孤 闕下傳新勢 船中覆舊圖)." 당시 양국간의 바둑교류의 성황을 알 수 있는 말들이다. 이 바둑은 통일신라를 거쳐 그대로 고려·조선시대로 계승되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