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대회
"고교동문은 우형보다 호형이 더 많아"
경북고 재경동창회 경맥기우회 고수회를 찾아
2013-12-26 오후 1:56:22 입력 / 2013-12-27 오후 3:26:26 수정

▲ 대구 경북고 전경. 그리고 교가.
'팔공은 북녘에 가로놓이고 푸르른 낙동강물 감도는 벌에, 그대여 모르는가 화랑의 넋을 위국에 타는 홍안 높이 들고서 이룰지라.'
성탄절인 25일, 온 세상이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복하며 노래할 때 은발의 신사들이 모여 바둑 노래를 불렀다. 주인공은 바로 재경 경맥기우회 고수회. 서울에 거주중인 경북고 동문 중 고수중의 고수만 추려서 경맥기우회회 고수회를 발족했단다. 고수의 기준은 타이젬 7단.
터를 잡은 곳은 서울 양재동에 위치한 명인기원. 기자는 일전에 한번 들렀던 곳이다. 이곳은 지난 10월 분당기우회 백정훈(경북고 47기)회장과 재경경북고기우회 천경준(경북고 47기) 씨가 중심이 되어 분당기우회 서울지부로 오픈한 곳.

▲ 경북고 경맥기우회 고수회.
경북고 경맥기우회는 명인기원에서 활발한 모임을 갖지던 중, 타이젬 7단 이상의 '바생바사' 동문을 중심으로 고수회를 발족했고, 오늘 역사적인 첫 모임을 가졌다고 한다. 현재 고수회회원은 40여명이란다. 생각해보라. 타이젬 7단이상이 득실득실대는 모습을.
바둑 모임에 빠질 수 없는 것은 최고수를 겨루는 것. 경맥기우회 고수회는 치열한 예선을 미리 거쳤고, 크리스마스에 모두 모여 메인이벤트인 8강전을 치뤘다. 타이젬 9단 안에서도 명백한 기력차이가 존재하기에, 이번 매치는 치수제로 진행됐다. 치수제라고 해봐야 2점 안쪽.
▲ 시합이 끝나고도 옆에서는 연습대국이 계속 이어진다. '앗! 낯익은 맹장 박창규 김동섭씨도 경북고?' 그들은 뒷풀이 축하사절(?)이란다.
바둑시합에서는 본인의 승부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대회에서 제일 늦게 끝난 마지막 대국은 어디를 가나 관심의 대상이 된다. 공교롭게도 마지막 대국을 벌이는 이는 모임을 주관한 백정훈 회장. 관전자들은 각기 두던 연습바둑을 잠시 멈추고 자신의 방식대로 계가에 여념이 없다. 타이젬 9단도 대국자일 때보다 관전자일 때의 형세판단이 더 정확하는 것이 바둑계 정설.
"누가 유리하노?"
"흑이 한집 남는것 같은데..."
▲ 문제의 대국장면. 수가 나자, 분당기우회 백정훈 회장이 당황하고 있다.
마지막 한집 끝내기를 남겨놓고 기어코 백이 수를 내고야 말았다. 순간 기원에는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실수를 깨달은 백회장은 다음 수를 쉽게 두지 못한 채 자책만 한다. "거기에 한집을 줄이는 수가 있었나…"
결국 정선으로 진행된 이 대국은 빅으로 끝났다. 문제는 사전에 이런 상황에 대한 룰을 정해놓지 않았기에 대국자 및 관전자들은 설왕설래했다. 사실 이런 해프닝은 아마추어가 바둑두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나올 법한 상황.
"그럼 누가 이긴걸로 해야하노? 백빅승이가?"
"하수는 왜 손해봐야 되는데?"
"홀짝으로 결정하자!"
"우야노. 빅은 빅이다. 승부는 다음에 가리고 뒷풀이부터 가자!"(이 말이 정답이네요!)
▲ 뒷풀이 장면.
바둑이 좋아 모였지만 승부보다 그들에게는 동문 간 소통이 먼저다. 경맥회의 최고수를 가리는 것은 다음으로 미루고, 그들은 소통하기 위해 자리를 이동했다. 뒷풀이 속에서 한 해의 마무리와 건강을 비는 건배 제의와 더불어 동문들의 정은 한 잔의 술잔에 점점 더 깊어갔다.
경북고 경맥기우회를 주도하는 백정훈 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바둑은 세대를 뛰어넘어 소통할 수 있는 훌륭한 도구입니다. 맨 처음에는 텅빈 공간에 돌 한점이 놓이고 이후 한 수 한 수 착점을 하다보면 비로소 돌과 돌은 서로 관계를 맺게 됩니다. 인생살이도 마찬가지라 봅니다. 세상에 태어나 가족이라는 테두리에서 첫 관계를 맺지만 곧 학교에서 동창들을 만나게 되고 성장하면 사회에 나아가 더넓은 사람들과 교우합니다. 고교 동문은 우형보다는 호형이 훨씬 많습니다. 이해관계로 맺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같은 취미를 가진 경북고 경맥회는 평생가는 모임이 될 것 입니다." 힘주어 말하는 백정훈 회장의 이야기 속에서 경맥회의 존재이유가 선명해진다.
+ 그리고, 마지막 도전장 하나! 기자가 경남고 동문기우회를 취재하다보니 동호인도 많고 고수도 많다고 운을 띄웠더니, 경맥회에서는 숨도 안쉬고 여기저기서 바로 '한 판 하자'며 덤벼든다. <경남:경북 10:10 매치>를 당장 기획하자고 난리다. 패배한 동문회에서 저녁사기. '응답하라 경남고여!'
TYGEM / 강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