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인물
②한사코 서서 비를 맞는 그대 '김성동'
치열하지만 가치 있는 시간들
2018-08-07 오후 9:37:30 입력 / 2019-06-12 오후 8:42:15 수정
#②한사코 서서 비를 맞는 그대 '김성동' 인터뷰 기사는 1편에서 이어졌습니다 ▶1편 바로가기
수년전 교통사고로 뇌경색 전조 증상과 당뇨 등을 겪었던 그는 27년 만에 소설 ‘국수(國手)'를 탈고했다. 1991년 11월1일 문화일보 창간호부터 2년간 연재되었던 소설 ‘국수’를 7월 6권으로 출간했다. 육필이다.
미완으로 남을 뻔했던 소설을 매듭지으며 작가는 ‘아무도 물어보지 않는 일,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 일들을 혼자 신명이 나 해왔다’했다.
“우리 것을 내가 찾는다는 생각에 하는 동안 흥분됐다. 소설이지만 거짓말이 있으면 안 된다. 나만 알아듣게 꾸면서는 안 된다. 특히 역사적인 것은 논리와 정확성이 필요했다. 1백년 전의 언어와 풍속을 가능한 원형에 가깝게 재현 하려고 노력했다. 모든 것을 살려내기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헛수고 하지 말라고 하더라. 충청도에서 어떤 말을 했는지,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모두 검증해야 했다.”

대하소설 ‘국수’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명인’의 영향을 받았다. 일본 본인방 슈샤이와 기타니 미노루의 대국을 보고 가와바타가 관전기를 쓴 것으로 유명하다.
제한시간 40시간, 14번 동안 나누어 대국을 64회에 걸쳐 신문에 연재를 했다. 나중에 ‘명인’이라는 소설로 펴내는데 대국 시작부터 명인의 죽음까지 담아냈다. 일본 정신의 정수를 보여주는 수작으로 평가 되고 있다.
“민족적 의식도 있었지만 나는 ‘국수’를 쓰겠다고 생각했다. 바둑을 모티브로 삼았다. 노승과 14살의 유가가 바둑을 두는 것으로 시작한다. ‘국수’는 바둑만이 아니라 어느 분야에서든 예술적 재주가 뛰어난 이에게 민중이 바치는 꽃다발이었다. 의술이나 소리, 그림, 심지어는 싸움을 잘해도 ‘국수’라고 했는데, 지금은 바둑에만 이 말이 남아 있다. 바둑이 중요한 모티브이긴 하지만, 다른 분야에서 국수에 해당하는 뛰어난 이들이 많이 나온다.”
머리가 하얗게 세도록 검증에 검증을 거치며 시간을 쏟아 부은 대작 ‘국수’를 쓰면서 몸으로 느낀 것이 있다. 백과사전에 나온 우리말 모든 것들이 엉터리, 전부 가짜였다. 믿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작가는 ‘아름다운 조선말’을 모아 뜻풀이를 해놓은 단행본 ‘국수사전’을 펴냈다. 어휘뿐만 아니라 당대의 시대상을 반영하여 조선조 말기의 민중들의 언어와 문화, 풍속을 집대성했다.
애지중지 아름다운 조선말을 지키려는 노력은 온통 방을 둘러싸고 있는 고서적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국수’가 독보적으로 거둔 성취는 한국적 언어와 수사학의 복원에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했다.
“작가는 한 나라의 말과 정신을 지키는 사람들이다. 그런 생각을 갖고 글을 쓰는 사람들이 갈수록 줄고 있다. 지켜야 한다. 아름다운 우리 지명과 말투와 정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가 바둑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이데올로기가 없어서’다. 요즘은 기분이 이상하다며 질타가 이어진다. 유명한 프로기사가 광고에 나오고, 상금을 몇 억 벌었는지가 초점이 되는 것을 보면서 자본주의 상징을 바둑으로 세우고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적어도 광고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임하는 것인가 의문이 들었다.
“바둑 뿐 아니라 자본주의로 모든 것들이 경쟁체제에 돌입하면서 생명을 잃고 있다. 자본주의는 살육이고 죽음이다. 전에는 적어도 그 사람이 무엇을 어떻게 썼는가를 봤는데 지금은 상관이 없다. 천박하고 상스러워도 1위면 되는 것이다.”
바둑이 갑자기 대한체육회 산하가 되고, 스포츠로 됐는지에 대한 문제도 여전히 답답하다. 토론과 해명이 없으니 말이다.
“모든 것이 상품이 되어서 팔아먹으려는 세상이다. 분별력과 비판력이 없으니 그 것이 좋은지 나쁜지 구분할 수 없다. 누가 고민하겠는가.”
아쉬움도 가득했다. 최근 인공지능 바둑이 발전하면서 점차 ‘자신만의 바둑’이 사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지하철바둑, 우주류 등 ‘기풍’이라는 것이 존재했는데 지금은 모두 숨막히는 인공지능을 보면서 공부를 하고 있다. 이제 ‘기풍’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에 아쉬움이 남는다. 어쩔 수 없는 변화인가.
“바둑만이 아니다. 모든 것이 변했다. 개성으로 승부해야 하는 것이 문학인데 문학도 이제 일통이 되어 버렸다. 이름만 가리면 다 똑같다. 적어도 특유의 문체가 있는데 다 똑같다. 자신만의 문체를 갖는 것, 자신만의 바둑을 두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바둑을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이야기했고, 고수는 도를 깨친 성인으로 보기도 했었다. 그래서 의미 있는 바둑격언도 많았다. 이제 예전의 낭만은 사라진 것 같다. 온통 어지럽다.
“이제 바둑동네에는 어른이 없다. 어려움도 없고, 존경하는 사람, 두려운 존재가 사라졌다. 조선에서는 바둑을 하나의 도로 봤다. 단순한 오락 유희가 아닌 정신을 찾아가는 깨달음의 세계였다. 이제 바둑만 잘 두면 되는 ‘기능공 시대’가 됐다. 인격적인 뭔가가 있어야 ‘국수’라는 칭호를 주는 것인데 이제 그들은 ‘기능공’이다.
옛말에 바둑 한냥, 사람 서푼이라는 옛말이 있다. 이제 기술은 짱인데 인격은 꽝이다. 바둑도, 글도, 소리도 일인자라면 적어도 아우라가 있어야 하는데 과연 우리나라에 그런 것이 있는가. 갖춰야 할 품격이나 품의가 있는가. 승자 아니면 패자는 기억을 하지 못한다. 밥을 먹던 안 먹던 관심이 없다. 엄청난 부를 누리고 있는 그들에게 어떤 가치관이 있는지 묻고 싶다.”

칠순의 작가는 국수에서 손을 털고 나서 허탈하다. 40년이 넘게 소설가로 살아가는 글판이 여전히 두렵다면서도 언젠가 써볼 생각이라며 재미있는 일화도 보탠다.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진다.
뜨거운 목요일도 이제 마무리할 시간이 됐다. 작가는 이제 양평에서 떠날 때가 된 것 같다며 한번 익히면 없어지지 않은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바둑을 두며 세상을 돌아 다니려고 한다 했다.
객은 당부의 말을 전했다.
“다음에 꼭 찾아올게요. 선생님 다른 곳으로 훌쩍 떠나시려거든 미리 말씀해주세요.”
그 곳, 양평에서 미처 빠져 나오지 못했던 마음을 이제서야 불러세운다. 안도현 시인의 ‘모과나무’가 떠오르는 날이다.
모과나무는 한사코 서서 비를 맞는다 / 빗물이 어깨를 적시고 팔뚝을 적시고 아랫도리까지 / 번들거리며 흘러도 피할 생각도 하지 않고 / 비를 맞는다, 모과나무 / 저놈이 도대체 왜 저러나? / 갈아입을 팬티도 없는 것이 무얼 믿고 저러나? / 나는 처마 밑에서 비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 모과나무, 그가 가늘디가는 가지 끝으로 / 푸른 모과 몇 개를 움켜쥐고 있는 것을 보았다 / 끝까지, 바로 그것, 그 푸른 것만 아니었다면 / 그도 벌써 처마 밑으로 뛰어들어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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