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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원 경기 규정, 이제는 손을 좀 봐야하지 않을까?

AI 등장, 인터넷 대국, 방송 대국 등 대국 환경에 맞는 규정 마련 필요

2024-07-12 오전 9:55:30 입력 / 2024-07-12 오후 3:06:09 수정

▲ 2024년 6월 11일, 최규병vs조혜연 지지옥션배에서 최규병의 반칙패 모습. [사진=바둑TV]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바둑 경기규정이 있다. 동네바둑에서는 착수를 했다가 한 수를 무르기도 하고 착수를 했다가 다시 바둑알을 집어 들어 싸움으로까지 번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지금이야 인터넷 바둑으로 인해 그런 일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동네 어르신들 바둑에서는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동네바둑에서는 웃으면서 넘길 수 있는 일들이 프로 세계에서는 절대 용납이 되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다. 프로바둑의 규정은 엄격하면서도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프로바둑에서 참가 선수들의 부주의 등으로 특별한 돌발 상황이 종종 발생하면서 명확한 규정 부재와 두리뭉실한 애매모호성 등으로 인해 심판조차도 헷갈리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 2024년 6월 11일, 최규병vs조혜연 지지옥션배에서 최규병의 반칙패 모습. [사진=바둑TV]

 

반칙패 등과 관련된 해프닝의 몇몇 사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최근 지지옥션배 대국에서 양건과 김혜민의 대국에서 양건이 20집 가까이 이기고 있는 대국에서 돌을 따내는 과정에서 반칙패가 나왔다. 양건은 사석 6개를 급하게 들어내다가 돌 1개를 들어내지 않고 기존에 놓여있던 자신의 돌까지 들어내고 계시기 버튼을 눌렀다. 이에 박상돈 심판은 일시 정지를 누르고 사석을 드러냈어야 했다며 반칙패를 선언했고 양건도 받아들였다. 제18조 반칙 2항 '따낼 수 없는 돌을 들어낸 경우'다. 

 

착수 완료란 착수자가 모든 정상적인 착수를 완료하고 계시를 누른 것으로 이후 상대가 정상적인 환경에서 다음 착수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만약 착수를 하다가 ...6,7,8에 착수를 하면서 상대방의 다른 돌을 건드려 다른 곳으로 이동시켰다면 계시기를 누르기 전에 원래 위치로 복원시켜 놓고 계시기를 눌러야 한다. 착수가 완료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시간이 부족하다고 하여 착수한 뒤 이동한 돌을 원래 위치로 복원시켜 놓지 않고 계시기를 누른다면 반칙패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사례를 보면 2024년 6월 11일, 최규병vs조혜연 지지옥션배에서 초읽기에 몰린 최규병이 교차점에 착수하지 않는 착수로 반칙패를 당했다. 당시 초읽기에 몰렸던 최규병은 바둑알을 떨어뜨리듯 착수하면서 교차점이 아닌 곳에 착수함과 동시에 착수 과정 중 상대의 돌이 밀려서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당시 심판은 이를 반칙패로 판정했다.

 

착수한 돌이 애매모호한 위치에 착수를 한 경우 가장 가까운 곳에 착수한 것으로 본다는 말도 있다고는 하지만 한국기원 경기규정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반칙패는 꼭 공교롭게도 유리할 때 많이 나온다. 그래서 일부 동정론도 일어 반칙패는 너무 심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규정은 규정이다. 바둑계에서 똘똘하기로 소문난 조혜연 조차도 "방송 대국이어서 이렇게 된 것 같은데 방송 대국이 아니었으면 (제가 그냥 계속 두면)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상황이였다"라고 말할 정도로 프로기사들의 바둑규정에 대한 인식도 애메모호하다. 

 

▲농심백산수에서 요다노리모토가 녜웨이핑과 대국을 위해 돌가리기 전에 스스로 자신의 왼손에 테이핑을 한 모습. 

 

계시기 위치에 관한 규정도 돌아와야 할 부분이다. 착수한 손으로 계시기를 눌러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농심백산수배에서 요다노리모토는 손에 투명 테이프로 묶고 대국하는 해프닝을 연출했다. 그는 또 월드바둑챔피언십에서는 최명훈과의 대국에서 착수하지 않은 손으로 계시기를 눌러 경고 끝에 결국 요다노리모토는 반칙패를 당했다. 과거 흑을 잡는 사람이 유리하니까 형평성을 고려해 백을 잡은 사람이 오른손으로 착수 후 계시기를 누르기 편한 쪽에 계시기를 놔뒀다. 하지만 덤이 6집반, 7집반이 되면서 그에 대한 규정도 되돌아야 할 듯하다. 

 

▲이창호는 자신의 스승 조훈현을 꺾고 8강전에 올라온 고바야시고이치를 꺾고 준결승전에 진출했다.

 

지난 6월 신안에서 열린 제5회 월드바둑챔피언십에서 고바야시고이치는 이창호와의 대국에서 착수 후 계시기를 눌렀으나 계시기가 멈추지 않는 상황이 발생했다. 상대인 이창호도 고바아시고이치가 착수 후 시간 내에 계시기 누른 것을 인정하여 심판은 계시기의 오류로 보고 계시기를 교체한 뒤 시합을 재개했다. 하지만 진행자가 확인한 결과 계시기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고, 고바야시고이치가 가볍게 눌렀기 때문에 제대로 작동이 안 된 것으로 보인다. 국내 젊은 기사들은 이런 상황이 종종 발생하는 것을 잘 알기에 초읽기에 몰렸을 때 계시기를 한 번에 여러 차례 누르는 진풍경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최근 신설된 어린이 바둑대회 청호나이스배에서 초읽기에 몰린 한 어린이 선수가 돌을 떨어뜨리듯 착수를 하면서 기존에 놓여있던 돌을 2~3개 움직여서 모양이 흐트러졌는데 착수를 한 후 이미 계시기를 누른 상황이었다. 이때 상대의 시간은 가고 모양이 흐트러진 상황에서 이동된 바둑돌을 원래 위치로 복원시켜 놓고 경기를 계속 진행한 사례도 있다. 어린이 바둑대회이다 보니 큰 문제를 삼지 않고 넘어갔지만 비중있는 경기에 심판이 있었다면 반칙패다. 

 

2018 한국기원총재배 시니어바둑리그 4라운드 1경기에서 차민수가 박상돈과의 대국에서 바둑판에 닿은 돌을 옮기면서 반칙패를 당했다. 규정에 따르면 돌이 바둑판에 닿거나 돌을 잡은 손이 바둑판에 닿으면 착점으로 간주하고, 그 돌을 다른 곳에 옮기면 반칙패가 된다(손에서 떨어지지 않은 돌을 들어낸 후에 다시 같은 곳을 두면 경고를 받는다).

 

▲ 양카이원(오른쪽)이 변상일과의 대국 중 시간에 쫓겨 사석을 들어내는 과정에서 사석을 모두 들어내지 않은 채 계시기를 누르는 반칙을 범해 유리했던 바둑에서 패했다. 상황 설명을 듣고 있는 양카이원. 

 

2024년 3월 31일, 2023-2024 KB국민은행 바둑리그 13라운드 4경기 정관장 천녹과 바둑 메카 의정부 경기에서 의정부의 양카이원이 변상일과의 대국 중 유리한 상황에서 ...여덟, 아홉에 착수를 하고 돌을 들어냈다. 당시 이용찬 심판은 “지금 사석을 들어내다가, 다 안 들어내고 시계를 눌렀거든요. 반칙패입니다”라고 판정했다. 이런 경우 잠시 시계를 멈춰놓고 사석을 드러내야 했던 것인지 규정집에서는 찾기 어렵다. 변상일은 그냥 계속해서 두겠다는 의사를 표명했으나 최종 반칙패로 결론.

 

2021년 3월 3일, 제8기 대주배 남녀프로시니어최강전 권갑용과 박영찬의 대국에서 권갑용이 상대의 백4점을 따내고 사석을 드러내는 중에 엄청난 속기파로 알려진 박영찬이 돌을 다 들어내기도 전에 착수를 해서 반칙패를 당했다. 착수는 상대가 사석을 모두 들어낸 후에 착수를 해야 한다. 2021년3월 7일,  2021대방건설배 시니어vs여자 바둑리그 챔피언스컵 2차전에서 박소율1단 대 김기헌 7단의 대국에서 박소율이 상대 돌 1개를 따내는 과정에서 돌을 들어내지 않아 반칙패를 당한 경우도 있다.

 

▲  2023년 10월 전남 신안에서 열린 제104회 전국체전 바둑종목 혼성페어 결승전 대국장면. 홍근영-김지은의 경기도가 정상에 올랐으나 금지약물 복용으로 금메달을 박탈당했다. 

 

지난해 전국체전 혼합부문에서 경기도 팀의 일원이 감기약을 먹은 것이 화근이 돼서 금메달을 박탈당했다. 감기약에 금지약물 성분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두뇌스포츠인 바둑이 약물의 영향을 받을까라는 원초적인 문제에서부터 약물에 관한 규정이나 처벌 등에 관한 것도 논의할 시점이 됐다. 최근 프로야구 선수들이 향정신성의약품인 스틸녹스정, 자낙스정 등을 복용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은 경우가 있다. 감기약도 함부로 먹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가깝게는 박카스나 젊은 프로기사를 대국 중 즐겨 마시는 아이스아메리카노, 중국기사들이 애용하는 호랑이 연고 등에 대해서도 논의를 해봐야 하지 않을까. 프로기사 원성진은 "박카스 먹고 효과를 보려면 1,000병은 먹어야 할 것 같은데요"라며 농담을 던졌다.

 

육체적인 부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약물과 두뇌 회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성분은 분명 다를 것이다. 바둑과 함께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체스는 오래전부터 금지약물에 관해 명시하고 있다. 체스는 피로와 식욕을 낮추고 기민성을 증가시키는 애더럴(Adderall), 리탈린(,Ritalin) 등의 암페타민 (Amphetamine)과 WADA(세계반도핑기구)이 금지하고 있는 에페드린(Ephedrine)과 메틸에페드린(Methylephedrine) 등을 금지하고 있다. 

 

이제는 경기 중 발생할 수 있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어느 정보 포괄할 수 있는 규정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

-화장실을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다 실수로 판을 엎어 모양의 상당 부분이 흐트러졌을 때
-초읽기 ...6,7,8에 착수를 하면서 상대방의 다른 돌을 건드려 다른 위치로 이동시키면서 계시기를 눌렀을 경우
-초읽기 ...8,9에 계시기를 눌렀는데 시간이 멈추지 않았을 때
-국내 개최 세계대회는 대국 중 다른 이의 경기를 관전해서는 안된다는 등의 규정은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생리 현상에 의한 돌발상황
-인터넷 대국시 정전, 전송 딜레이, 마우스 고장 등이 발생한 경우 
-착수자가 착수 중 기존의 착수 된 돌을 건드려 다른 곳으로 이동하자 상대가 그 돌을 원래 위치로 복귀 시킨 경우
-오프라인 대국에서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분쟁이 생겼을 경우 등등 많은 사례가 있을 수 있다. 

 

바둑경기 중에 예기치 못한 특별한 상황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고, 그와 같은 것들을 일일이 하나하나 규정에 명문화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AI의 등장과 금지 약물 복용 관련 대한체육회의 최종 판결, 인터넷 대국, 방송 대국, 속기 대국, 치열한 경쟁 등 바둑 경기 환경이 댜양해지고 복잡해 짐에 따라 그에 맞는 바둑규정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수십년의 역사를 가진 프로야구도 최근의 경기의 환경 변화에 따라 비디오판독, AI의 볼 판정 등다양한 경기규정을 새로 도입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지금 한국기원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경기규정을 보면 A4용지 6~7장 분량으로 6230자(공백포함)밖에 안된다. 반칙에 관한 규정은 착수 교대의 원칙을 어긴 경우, 따낼 수 없는 돌을 들어낸 경우, 반상에서 들어낼 돌을 놓아둔 경우, 착수금지 점에 둔 경우 등 고작 8가지로 일반적인 사례들만 명문화하고 있다. 부칙에 따르면 현재 바둑규정은 2018년 3월 5일 개정 후 시행한 것이다. 현재 바둑규정은 애매모호한 경우 대부분 심판의 재량에 맡기는 경우가 많고, 표현이나 정도 등이 구체적이지 않아 규정의 유권해석에 따른 시비 거리를 항상 안고 있다. 

TYGEM / 김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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