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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만약 왕 리청이라면?

2002-03-21 입력

[ 바둑단신 ]

여러분이 만약 왕 리청이라면?

2승2패로 팽팽한 균형을 이룬 채 맞이한 기성 왕리청 9단과 도전자 류시훈 7단의 기성전 도전5국. 3승 2패와 2승 3패의 갈림길이 되는 이 바둑은 사실상 이번 기성전 7번승부의 분수령이라 할 만큼 중요한 한 판이었다.

이틀간의 열전이 막바지에 다다른 종반, 이미 자신의 3집반 승리를 확인한 류시훈 7단은 293수로 마지막 반패를 이은 뒤


왕 리청 9단에게 종국이 되었음을 알린다. 이에 패배를 감지하고 침통한 표정을 하고 있던 왕 리청 9단은 묵묵부답. 이제 공배를 메우고 계가에 들어가는 마무리 작업만이 남아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의 사건이 발생했다. 공배를 메우는 과정에서 왕9단이 298수로 류7단의 흑6점을 단수 쳤는데 다소 방심한 류7단이 그만 엉뚱한 공배를 메운 것.
그러자 천재일우의 기회를 잡은 왕9단은 입회인 이시다 9단에게 자신이 흑6점을 따내도 되는지 물었고 이후 서로 간에 이미 종국이 합의된 것인지 여부를 가리기 위해 1시간가량 비디오 판독의 복잡한 절차를 거쳤다.

결론은 류7단의 종국 합의 제의에 왕9단이 동의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 이시다 9단이 대국재개를 선언했다. 대국이 속개되자 왕 9단은 곧 흑6점을 따냈고 원망스러운 눈길로 왕9단을 바라보던 류7단은 여기서 돌을 거두었다. 여기까지가 대략적인 이 사건의 전말.

그런데 이 장면에서 만약 여러분이 왕 리청 9단의 입장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이러한 궁금증을 해결하고자 타이젬에서 회원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투표를 실시했다.
또한 직접 승부의 현장에서 뛰고 있는 프로기사들의 의견은 어떤지 알아보기 위해 직접 질문을 던져보기도 했다.

먼저 온라인 투표의 결과. 총 응답자 833중 39%인 325명은 “단수된 돌을 따내지 않는다.”라고 응답했고, 28%인 236명은 반대로 “당연히 따낸다.”고 응답했으며 “주저하지만 따낸다.”는 의견도 21%인 175명이 나와 결국 「따낸다」는 의견이 49%, 「따내지 않는다」는 의견이 39%로 집계되었다. (기타의견 12%)

이 결과를 놓고 볼 때 일반 아마추어 바둑팬들의 입장에서는 「따낸다」와 「따내지 않는다」로 의견이 엇갈리고 있으며 「따낸다」는 의견에서도 도의적인 측면을 고려, 갈등하는 입장과 그렇지 않은 입장으로 나뉘었다.

그러면 승부를 업으로 삼는 프로들의 대답은 어떨까?
문제의 장면을 NHK 생중계로 직접 보았다는 윤기현 9단 “아! 나 같으면 절대로 못 따내. 왕 리청은 내가 일본에서 공부할 때 동문수학한 사이였고 평소에 매너가 좋은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아니더군. 실망했어. 그리고 류시훈도 참 문제야, 왕 리청이야 어차피 포기하는 심정으로 공배를 막 메우는데 거기에 덩달아 보조를 맞추다가 실수를 하더군.”

그러나 야성의 승부사 서봉수 9단의 의견은 달랐다.

“바둑이 끝나는 최후의 순간까지 방심을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 승부사의 도리입니다. 물론 공배를 메울 때도 신중해야 하고 저 같아도 무조건 따냅니다.”

한편 속기의 명수 서능욱 9단은 이와는 또 다른 중용의 입장을 보여 눈길을 끈다.

“요즘에는 나중에 가일수 문제 등이 자꾸 발생해 공배도 한 수씩 메우는 것이 거의 상식화되어 있죠. 따라서 규정상으로 볼 때 왕 리청의 행동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그러나 바둑계 전체를 볼 때는 따내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설사 이 바둑을 왕리청이 져서 타이틀을 잃는다 해도 영원히 멋있는 승부사로 남을 것이고 일반 팬들의 눈에 비친 바둑은 과연 ‘도’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각인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듯 중견기사들의 의견이 여러 입장을 고려하며 분분한 것에 비해 신세대 기사들의 의견은 대부분 「따낸다 는 입장에 일치해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KAT배 대국을 마치고 나오는 최철한 4단에게 질문을 던지자 최4단은 웃으며 “쑥스러운 상황이니 일단 이렇게 머리를 긁적이고요…. 그리고 약간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단수인 줄 뻔히 알면서 다른 데 두는 것은 더 이상하지 않나요?” 라고 반문한다.

또한 평소 자신의 의견을 거리낌 없이 밝히기로 유명한 김성룡 7단은 “그거 전혀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저 같으면 무조건 따냅니다. 일본의 경우 기성 타이틀 보유자에 대한 예우는 각별합니다. 제1의 타이틀을 차지한다는 명예와 차후에 보장되는 이득을 무시할 수는 없죠.”

이에 덧붙여 한종진 4단 “신예들의 대답은 ‘따낸다’는 쪽으로 거의 일치할 겁니다. 아마 제 생각에는 아래로 갈수록(후배기사나 연구생을 가리키는 말) 그런 경향은 더욱 뚜렷할 걸요.”

물론 이런 설문을 한 것이 어떤 특정한 결론을 유도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다만 바둑과 승부에 관한 일반 바둑팬들과 프로기사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하나의 기회를 마련하고자 함이었다. 과연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어떤 결론을 준비하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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