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에도 숨막히는 멋진 명승부들이 많이 연출되
었다.
전세계 바둑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명승부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10국을 뽑아
정리해본다.
지면 관계상 5국을 이곳에 선보이며 전체 명승부는 타이
젬홈페이지/이벤트/연말연시특집/명승부10(여기
클릭)을 통해 모두 감상할 수 있다.
이창호와 이세돌 양웅이 용호상박의 접전을 벌인 LG배 결승5번기는 단연 2003년
명승부 TOP감이다. 이세돌이
난공불락의 '이창호 아성'을 뛰어넘어 세계최강의 반열에 이창호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는 점에서 바둑사적인 의미가 깊은 명승부였다.
그동안 '세계대회 결승불패'를 자랑하던 이창호 9단이 사상 처음으로 패배한 것도
큰 뉴스거리. '부동심'의 표상으로 불렸던
이창호 9단은 지나치게 상대를 의식한 나머지 승부처에서 실책을 연발하며 무너졌다.
반면, 찰나의 틈을 놓치지 않고 승리와
연결시킨 이세돌 9단의 결정력은 단연 돋보였다.
장면(이창호의
덜컥수)
결정국이 된 결승4국의 승부처.
지금 상황은 흑이 꽤 우세하다. 종반에 강한 이창호를 감안할 때 이번 결승
시리즈는 5국까지 갈 것이라 예상할
무렵, 불의의 사고가 발생한다.
백1·5의 응수타진성 끝내기에 흑6으로 꽉받은 것이 역전패를 부른 과
수. 백7로 끊자 A의 뒷맛이
크게 부각되었고, 그 뒷맛을 이용해 죽었던 백대마(○)가 살아가는 역전
극이 일어났다. (☞ 2003 한국바둑 진기명기 참조)
참
고도(흑이
놓친 승리코스)
흑1로 물러섰으면 안전한 흑승이었다.
이랬으면 결승5국까지 갈 가능성이 높았으며, 최종 우승의 향방은 오리무중이
었리라.
한국바둑의 마지막 보루로 남은 조9단은 필마단기(匹馬單騎)로 거센 중국돌풍을 정면
돌파하는 괴력을 보여주며 한국바둑의 자존심을
지켰다. 그것도 2년 연속 적지에서 중국 최강을 연파하며 이뤄낸 쾌거여서 더욱 값졌
다.
장면(2003
최장수수의 혈전)
세계대회 결승사상 최장수수, 2003년 공식대국 최장수수…. 이런 기록들이
말해주듯, 쌍방의 기세가 정면충돌한
이 바둑은 역전에 역전을 거듭한 혈전이었다.
마지막 승부처가 된 우변 패싸움. 백1로 끊자 흑은 '당연히' 2로 패를
따냈는데, 이 수가 패착!
패를 따낼 차례에서 따낸 것이 패착이 되었다는 점에서 진기명기감이다.
백5가 급소! 이 수가 놓이자 흑에겐 A의 약점이 노출되어 물러설 수밖에
없었고 그 틈에 백은 패를
이겨 승리를 결정지었다.
참
고도(흑이
놓친 찬스)
백1 때 먼저 흑2로 치받는 것이 승리의 길.
이랬으면 A의 약점은 사라진 채 B의 자체 팻감이 보장되어 흑이 지는 일은 없
었다.
조훈현 9단은 파란만장한 이 바둑을 건진 여세를 몰아 2대0으로 완봉승으
로 우승을 확정지었다.
④세돌-태곤, 열도 한복판에서 형제대결
제16회 후지쯔배 세계선수권 결승
○이세돌 7단 ●송태곤 4단
[2003. 7. 7, 204수 끝, 백 불계승]
열도의 한복판에서 한국의 젊은이들끼리 벌인 '형제결승전'은 다시 한번 세계최
강 한국바둑의 위용을 세계만방에 알린
명승부였다.
특히 그 얼굴이 조훈현, 이창호, 유창혁이 아닌 신세대 이세돌-송태곤이어서 신선한 충
격을 주었다.
두 기사는 젊음의 열기를
분출하듯 처음부터 처절한 대마상전을 벌여 한여름의 청량제가 되었다. 결국 우승
은 '형님' 이세돌의 차지. 이세돌 9단은 이로써
'후지쯔배 2연패'라는 기쁨 두 배를 누렸다.
장면(송태곤의
천려일실)
하변 흑진에 뛰어든 백의 사활을 둘러싸고 난해한 대형 묘수풀이가 등장했
다.
자체로는 살지 못하므로 외곽의 단점을 도모하고자 백1·3으로 응수를
물었는데, 이때 무심코 받은 흑4가
패착. (A가 정답)
실전은 복잡한 수순을 거쳐 패가 났는데, 이 패는 백의 자체팻감이 워낙
많은 데다 흑도 부담이 커서
결국 백이 승기를 잡았다.
참
고도(약점을
남긴 패착)
백1 때 흑2로 이어 잡으러가고 싶지만, 흑▲의 실착 탓에 그게 안된다. A의
약점이 남아 촉촉수 아닌가.
만약 흑▲가 A에 있었다면 이같은 약점이 없어 백대마를 진짜로 궁지에 몰아
넣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