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이후 승부 일선에서 사실상 물러난 조남철 9단은 90년대 이후에는 고령과 신병이 겹쳐 공식대국에 거의 나서지 못했는데, 그 와중에도 1995년 최고령 본선 진출(71세)의 대기록을 세우게 된다. 당분간 깨지지 않을 진기록이다. "기사는 죽어서 기보를 남긴다"는 말이 있듯 그가 칠순에 남긴 당시의 명국 가운데 하이라이트를 소개한다. | 제18기 국기전 예선 <1995년 6월 21일> ○하찬석 8단 ●조남철 9단 | 장면 (노익장의 결정타) 흑1의 이단젖힘에 백2로 단수친 것은 일견 당연해보이지만, 실은 치명적인 실족이었다 (A가 정수). 노련한 조남철 9단이 이 찬스를 놓칠 리 없다. 흑3이 통렬한 뒤통수 일격! 일순 백이 난감해졌다. 왜일까?
참고도 (백 파탄) 백1로 나가면 어떻게 될까? ●의 기착점들을 이용해 흑2·4로 축처럼 몰아나가는 수가 있다. 뒤늦게 백17로 따내보아도 흑18이하로 몰면 꼼짝없이 회돌이축. 결국 백은 요석 △들을 살릴 수 없다는 결론이다. (백19…▲)
실진진행 (흑 승세확립) 응수가 막힌 백은 백1·3으로 전환했는데, 불문곡직 흑4로 따낸 것이 냉정침착한 승착이다. 이처럼 중앙에서 거북등 빵때림(이 말도 조남철 9단이 만든 용어다)를 해서는 일거에 승부가 기울었다. 결국 흑의 쾌승. 이 승리를 발판삼아 조남철 9단은 71세의 고령으로 본선무대에 진출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 조남철 선생 관련기사 ] - 한국바둑의 개척자 '조남철' 타계 - 조남철 선생의 7가지 업적 - '기도보국 '으로 일관한 '외길 60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