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기타
올드보이, 항구의 추억을 노래하라
부산에서 부경 바둑교류전 열려
2006-08-29 오후 6:31:42 입력
▲ 대국이 열린 부산 중앙동 흥우빌딩에서 본 부산항. 추억은 감미로운 것, 어둡고 황량하며 쓸쓸한 추억일수록 더욱 달콤한 것. 추억은 편리한 것, 불행에 가까운 기억은 망각하고 찬란했던 청춘의 파편만 주워 모아 황홀한 모자이크로 맞추는 것. 8월의 끝자락인 26일 부산 앞바다는 상쾌한 바람에 출렁거리고 있었다. 아직 기운이 남아있는 폭염의 세례 아래 바다는 은빛으로 부서지고 있었다. 무수히 쌓여있는 컨테이너와 기하학적 구도로 배치된 크레인, 그리고 들쑥날쑥한 항구의 해안선을 따라 정박한 화물선들. 항구와 철도가 만나는 부산 중앙동 흥우빌딩 14층 유리창에 부산항은 그렇게 한 폭의 풍경화로 걸려 있었다. 유리창 안쪽으로 전망 좋은 방에 그들은 나란히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째깍거리는 초침 소리와 헛기침 소리 뿐. 석고상처럼 무표정한 얼굴들이었지만 찬찬이 살펴보니 너무나 낯익은 스타들이다. 서능욱, 정수현, 양상국, 백성호, 김수장, 김덕규, 김일환, 조대현, 차수권-
한국바둑계의 허리를 맡고 있는 중견 미드필더들이 총집합한 장면. 제15회 부경 바둑교류전이 벌어지고 있는 대국 장이다. 최근에는 무서운 신예 기사들의 기세에 밀려 한 걸음 뒷전으로 물러나있는 형편이지만 십여 년 전만 해도 조,서의 아성을 꾸준히 공략했던 도전세력들 아니었던가. 그리고 부산에 거주하는 프로기사 김준영, 김종준, 이기섭. 선배들과 함께 내려온 신예들 김영환, 서무상, 이현욱, 박병규, 안영길. 그들은 서울 팀과 부산 팀으로 편을 갈라 오전과 오후 2국씩 단체전을 벌였다. 성적지상주의 풍토 속에서 좀처럼 서로 대면하기 힘든 중견기사들의 대국이다. 대회 타이틀이 부경 교류전이니 서울과 지방이 융합하는 현장이며, OB와 YB가 섞였으니 세대 간 격차를 허무는 마당인 셈이다.
예상외의 압승을 거둔 부산 팀은 승리수당을 받고 감격의 하이파이브를 나누면서 승리의 요인을 복기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매년 반복해 서울 팀의 들러리를 설 수 없다는 정신무장과 필승을 위해 절묘하게 오더를 짠 것이 주효했다는 결론이었다. 그러나 서울 팀 멤버들은 승자들에게 기꺼이 박수를 보내면서도 뭔가 석연찮은 표정으로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전날 자갈치 시장의 횟집에서 치른 전야제 때, 부경바둑대회를 주관한 부산바둑협회 이철승 회장이 건배 제의를 하면서 부산 팀에 일갈한 협박성 당부가 승부에 영향을 끼쳤다는 하소연이었다. 그 말을 액면 그대로 싣자면, “와 부산 대표들은 해마다 깨지기만 하능교? 올해는 마 시원하게 좀 이겨뿌이소. 만약 올해도 전적표가 너덜너덜하믄 모다 삭발하능깁니더. 내 책상 위에 바리깡 올려놓았다는 거 명심하이소.” 이런 살벌한 판국에 어찌 그리운 동료의 파르라니 깎은 머리를 볼 수 있겠느냐는 변명이었다. 그렇지만 왕년의 검객들이 한 자리에 모여 모처럼 내공을 끌어 모아 한바탕 휘둘러대는 검무는 불꽃이 튀었다. 그러나 복기는 훈훈했다. 중견과 신예들이 머리를 맞대고 최신 유행정석과 중국식 계가 법에 관한 의견들을 주고받았다. 숙소인 코모도 호텔에서도 참가자들은 모두 한 방에 모여 밤이 이슥하도록 이야기꽃을 피웠다. 너무 아깝게 세상을 떠난 임선근 한국기원 사무총장의 부재를 아쉬워했고, 16년 동안 부산을 오가며 쌓아올렸던 바둑 인들의 꿈과 추억을 길어 올렸다. 한반도의 우하귀 모퉁이 부산항. 대지의 끝이지만 돌아서면 출발점이 되는 곳. 그 곳에 모인 올드보이들은 추억을 노래하며 또 다른 시작을 다짐하고 있었다.
[ 부산바둑협회 이철승 회장과 인터뷰 ] Q : 부경교류전에 대해서 설명 좀 해주시죠. Q : 8월에는 바둑행사 때문에 바쁘셨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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