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상이슈
한상대의 북한바둑행사 참관기②
8월 22일, 평양으로 출발
2006-09-19 오전 11:47:00 입력 / 2008-01-25 오후 4:32:06 수정
| 4월, 유럽각지의 바둑계 소식을 들려줬던 한상대 교수가 이번에는 북한 주최 '제2차 세계무도대회의 바둑 소식'을 전한다 [한상대의 지구촌 바둑 기행 바로가기]. 한상대 교수는 호주 팀 단장 겸 선수로 8월 22일에 북한에 들어가게 됐다. 29일까지 열리는 대회에 참가한 한교수. 과연 북한 바둑행사는 한국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타이젬에서는 한상대 교수의 북한 방문기를 차례로 연재한다. 북한 방문기는 타이젬 칼럼 '한상대의 지구촌 바둑 기행'에서 동시에 볼 수 있다. 8월 22일(화) 아침에 공항에 가니까 많은 외국인들이 동시에 북한에 입국하기 때문에 여객기 두대가 두 시간 간격으로 출발한다. 1967년 소련 수상 흐루시초프가 유엔에 연설하러 왔었다. 당시 제트 여객기가 없던 소련이 흐루시초프가 제트여객기를 타고 미국에 간다고 공표했다. 그러자 소련 전문 미국기관에서 소련이 제트여객기가 있다면 아마 한대뿐일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뉴욕 공항에 내리는 흐루시초프를 싣고 온 제트여객기는 그와 똑 같은 제트여객기 4대의 호위를 받으며 나타나서 미국을 놀라게 했다. 이 때 흐루시초프는 유엔 연설 도중 구두를 벗어서 책상을 두드리는 등 오만과 무례의 극치를 보여주고 돌아갔다.
내가 1989년 동경에서 모스크바로 갈 때다. 이 기종을 탔는데 보통 제트기는 약 1천Km로 나르는데 이 기종은 두 배인 2천Km로 나른다. 전투기를 겸해서 만든 거라고 한다. 때 마침 시베리아 벌판에 황혼이 찾아와 하늘이 붉게 물들었는데 해와 같은 방향인 서 쪽으로 날아가는 이 비행기의 속력 때문에 석양이 한 없이 계속 된다. 나는 비행기 창문으로 밖의 노을 경치를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었던 기억이 새롭다. 지금은 옛 사회주의 국가들까지도 이 기종을 다 바꾸었는데 세계에서 북한만 아직도 사용한다고 들었다. 비행기 안전이 마음에 약간 걸렸지만 오랜만에 이 비행기를 타니 한편으로는 반가웠다. 입국 카드에 생년월일을 '난 날'이라고 써 있고 핸드캐리(Hand carry)는 '손 짐'이라고 되어 있어 북한 비행기임을 실감나게 한다.
평양공항은 우리나라 시골역 수준이었다. 2층 건물인데 독일 제 스캐너 한대로 모든 짐을 검사한다. 사람이 많으니까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국제적으로 고립되어있어 드나드는 사람이 적어서 일까. 유니폼을 입은 공항 직원들도 방문자에게 불친절 했다. 오랜 입국 절차 끝에 밖으로 나오니까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그걸 타고 평양 외곽에 자리 잡고 있는 선수 촌으로 갔다.
외곽도로를 거쳐 선수촌으로 가는 길은 양 옆이 숲이고 가끔 아파트가 보이는데 외장 관리가 잘 안 되어 나는 처음엔 입주자가 없는 곳인 줄 알았다. 길도 노면이 울퉁불퉁한 곳이 많았다. 먼저 서산호텔에 가서 사진을 찍어 목에 메는 선수 촌 출입증(ID)을 받고 8일간 숙식비를 지불 했다. 28만원이다. 평양에서 고급호텔에서 묵고 하루 식사 세 끼를 포함한 돈이니까 엄청 싸다. 교통 편과 관광 입장료는 주최측이 무료로 제공 한다. 수속이 끝난 후 호주 팀은 그 근처 량강 호텔로 배정 받았다. 나는 5층 독방에 전화와 에어컨 시설이 잘 된 곳에서 묵었다. 여권은 다 걷어 간다.
호주선수단에 안내원과 통역이 4명이 배정 되었는데 그 중 두 명은 한국 동포 세명 담당이다. 김금순씨(50대 중반?)는 원호회(해외동포 담당기관) 오세아니아 담당이라고 자기를 소개한다. 평양 외국어대생 김순영(86년생) 양은 통역으로 나왔는데 우리가 한국말을 다 하니까 자기 할 일이 없다고 하여 우리가 자주 영어로 애기를 해주며 다녔다.
새로운 단어는 열심히 적어가며 영어 공부를 게을리 하질 않는다. 호텔 방에 TV가 나오나 격앙된 어조로 김일성 부자 우상화, 국가에 충성, 사회주의 선전, 미국과 일본에 대한 적개심으로 찬 획일적인 내용이 대부분이라 처음에는 신기해서 좀 봤으나 곧 실증을 느끼게 만든다. 한번은 TV에서 귀에 익은 멜로디가 나와 들어보니 흘러간 옛 노래 '홍도야 우지 마라'다. 알고 보니 이 노래가 주제곡인 연속극이 이 곳에서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첫 날 저녁 그 곳에 내려가 우리 안내원들과 얘기하고 있는데 조선 바둑협회 서기장 전시환 씨가 와서 인사를 한다. 한국기원 총재나 이사장에 해당되는 사람이다. 북한의 조선바둑협회는 1989년 3월에 국가체육위원회 (체육성) 산하기구로 '민족문화유산의 계승, 발전'이라는 명분하에 결성됐다. 바둑인구는 약 만명. 현재 북한은 바둑을 두뇌 스포츠로 규정하고 적극 권장하고 있으며, 90년대 들어 양강도를 제외한 17개 시, 도에 지부가 조직됐다. 각 학교와 지역에는 바둑소조가 결성됐고, 평양 청춘거리에는 바둑회관이 건설됐다.
국가에서 훈련 시키고 있는 선수가 약 25명 이라는 것을 전서기장과 대화 도중 알아냈다. 내 마음이 들 떠 있었음인지 졸리지가 않아 자정이 넘어서야 방에 들어가 북한의 첫 날밤을 보냈다. 침구에서 약간 빨래 냄새가 났으나 나는 아주 달게 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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