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상이슈
한상대의 북한바둑행사 참관기⑥-2
8월 26일, 대회가 끝내기에 접어들었다
2006-09-25 오전 10:41:08 입력 / 2008-01-25 오후 4:31:15 수정
| 4월, 유럽각지의 바둑계 소식을 들려줬던 한상대 교수가 이번에는 북한 주최 '제2차 세계무도대회의 바둑 소식'을 전한다?[한상대의 지구촌 바둑 기행 바로가기]. 한상대 교수는 호주 팀 단장 겸 선수로 8월 22일에 북한에 들어가게 됐다. 29일까지 열리는 대회에 참가한 한교수. 과연 북한 바둑행사는 한국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타이젬에서는 한상대 교수의 북한 방문기를 차례로 연재한다. 북한 방문기는 타이젬 칼럼 '한상대의 지구촌 바둑 기행'에서 동시에 볼 수 있다. 8월 26일(토)-2 모든 경기가 끝난 후 시상식이 거행되었다. 우승 조새별, 준우승 푸리(Fu Li - 중국), 3위 리광혁 선수가 차지했다. 조새별 선수가 기뻐하는 것은 당연한데 준우승의 푸리도 너무 좋아한다. 나는 도자기 하나를 선물로 받았다. 나머지 모든 선수에게는 참가증이 수여되었다. 우리 팀은 18명 성적 중 제일 바닥 세 자리를 차지하고 말았다. 그러나 우리끼리 서로 위로한 말이 있다. 이번 대회는 개인전이지 국가 대항전이 아닌데도 우리는 끝까지 치사했다. “국가별로는 3위 아냐? 동메달이라고” ㅎㅎㅎ
시상식 후 중국 팀 7 명만 빼고 북한 선수단 전체가 우리와 같이 호텔로 왔다. 그 때가 5시 30분인데 식당이 6시에 문을 여니까 30분쯤 후에 오라고 한다. 나는 선수들만 로비에 모이게 해서 호주, 남한바둑에 대한 얘기를 30분 동안 해 주었다. 모두 총명한 눈빛으로 경청한다. 식사 테이블은 네군대로 나누어 앉았는데 첫 테이블에는 바둑회 간부, 안내와 우리 세명이, 그 다음 테이블에는 바둑회 관계자들, 세번째 테이블은 선수 중 나이 먹은 그룹과 통역이, 나머지가 어린 선수들이 앉아 서열이 뚜렷함을 보여 준다. 신사장이 누구를 데리고 나가더니 위스키 두병과 맥주 20병쯤을 갖고 들어온다. 나의 건배 제안으로 식사가 시작되었다. 식사 도중에 권미현과 조새별이 나에게 와서 술잔을 채워 주고 간다. 식당에서 서비스로 선수들에게 음식이 더 나온다. 저녁 식사 중에 누가 나에게 “혹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읽으셨습니까?” 한다. 내가 “그 책에 나오는 이용후 박사의 실명은 이휘소 박사인데 1974년에 내 사무실을 찾아 와 한참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나는 한국인 중 몇 안 되는 이휘소(미국이름 Benjamin Lee) 박사를 만난 사람이죠. 그리고 작가 김진명 씨(아마 5단)는 우리와 같은 바둑쟁이 입니다. 나와 친한 허윤 원장 기원에 매일 나와 바둑을 두던 사람이죠. 그는 제천에 있는 세명대학 교수인데 내가 지난 번 유럽에 간 동안 우리 집 사람이 그와 친한 공한성사범과 같이 제천에 내 차로 내려가서 김진명 작가와 시간을 보내다 오기도 했습니다.” 이어서 리세충 원장이 나에게 “호주에서 있었던 여자 축구대회에서 일어난 오판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고 묻는다. 내가 “나도 그 경기를 TV로 구경했는데 호주 여자 심판이 패널티 지역에서 중국 선수 핸들링을 못 본 건 사실이에요. 나중에 느린 그림으로도 증명이 되었죠. 물론 우승이 걸린 판이었지만 그렇다고 심판을 때리고 관중석에서 날라 온 병을 도로 집어던진 건 선수로서 지나친 행동입니다” 했더니 그가 웃으면서 “우리 조선 여자들이 성질이 아주 세단 말입니다” 하니까 다들 웃는다.
식사 후 우리가 카페에 앉아 잡담을 하고 있는데 밤 11시가 넘어 늦은 시간에 누가 들어서니까 우리 안내가 절을 하며 공손하게 맞는다. 나에게 인사를 시켜주는데 이름은 조경화 씨고 원조회 부위원장으로 차관급 인사라고 한다. 그는 운전수가 달린 신형 벤츠 230을 타고 다니는 내가 만난 유일한 북한 사람이었다. 그는 “해외동포 담당자로서 선생님들을 지금에서야 찾아와 인사를 드려 미안합니다”고 말문을 연다. 바빠서 지금에서야 시간을 낼 수 있었다고 한다. 내가 “내 여자 제자 중 조경화가 있습니다” 하니까 “제 이름이 여자 같다고 놀림을 가끔 받는데 교수님이 정확히 제 약점을 찌르셨습니다” 하며 웃는다. 그는 나에게 “해외동포 담당자로서 부탁합니다. 교수님이니까 강의 할 때나 언론에 글을 쓸 때 북조선을 나쁘게 소개하지 말고 선의를 갖고 잘 소개해 주십시오” 하며 부탁한다. 내가 “북한은 같은 핏줄이란 이유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선의를 갖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이념보다는 민족이 우선입니다. 북한에 와서 보니 우리가 아직도 통일을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화가 납니다. 어서 통일이 되어서 남한의 자본과 기술, 북한의 양질의 노동력이 합해 경제 발전을 이루면 우리 민족이 한번 더 도약을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니까 “교수님 말씀을 들으니까 우리가 통일이 될 것 같습니다” 한다. 그가 내일 와서 우리에게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떠났다. 우리는 “우리 북한 방문이 벌써 끝내기로 들어가네” 하고 아쉬워하며 각자 방으로 돌아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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