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상이슈
한상대의 북한바둑행사 참관기⑦-3
8월 27일, 평양거리를 걷다
2006-09-27 오전 10:01:39 입력 / 2008-01-25 오후 4:29:50 수정
| 4월, 유럽각지의 바둑계 소식을 들려줬던 한상대 교수가 이번에는 북한 주최 '제2차 세계무도대회의 바둑 소식'을 전한다?[한상대의 지구촌 바둑 기행 바로가기].
"우리가 바라는 곳은 이런 곳이 아니지 않습니까?" 하고 내가 거절하자 안내가 "그럼, 대극장 식당으로 갑시다." 한다. 우리는 밖으로 나와서 일반 인민들이 온다는 대극장 식당을 향해 걸어갔다. 택시는 보낸 후였고 걸어서 15분 정도라고 해서 일부러 걸었다. 대극장 식당이 일요일이라 문을 닫았다. 다른 식당으로 걸어서 갔으나 그곳도 안열었다. 안내는 우리가 이렇게 헤매는 걸 "힘드시죠?" 하며 미안해했지만 나는 속으로 평양거리를 이런 식으로 걸어 다닐 수 있다는 사실이 횡재한 기분이다. 속으로 꿈이냐? 생시냐? 할 정도로 만족했다. 내가 신사장에게 "이런 경험이 웬 떡이야?" 하고 속삭이니까 그도 "이런 식으로 평양을 본 사람들은 우리가 처음이 아닐까요?" 한다. 거리에 다니는 사람들은 있었으나 남한 도시에 비하면 인적이 드물고 가게도 잘 안 보인다. 그러나 인도의 바닥, 겉으로 보이는 아파트 등 주위 건물들이 하드웨어는 수준급이다. 평양은 소프트웨어가 문제였다. 안내가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아리랑 식당은 열었습니다. 조총련이 하는 식당입니다" 한다. 지름길로 들어 와 그 곳을 향해 걷는데 밖이 어두워 지자 앞이 하나도 안 보인다. 거리에 가로등이 하나도 없어 완전히 캄캄하다. 앞에서 안내, 통역은 그 어둠 속을 잘도 걷는다. 그 뒤를 남자 3명이 더듬 더듬 쫓아 갔다. 몇 블록 지나서 어느 모퉁이를 도니까 갑자기 불 빛이 보이고 호텔이 나타난다. 안내가 "이 곳을 '평양호텔' 혹은 '청년호텔'이라고 합니다. 일본 동포들이 다 이 곳에서 묵지요" 한다. 내부를 들어 가 보니까 일본 동포가 경영해서 그런지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호텔 분위기다. 우리는 그 옆에 있는 아리랑 식당으로 갔다.
식사 후 호텔로 돌아 가려는데 택시가 없다. 일요일에는 택시가 운행을 안 한다고 한다. 안내는 우리가 하도 밤의 평양 거리를 보길 원하니까 "어떻게 해결하는 방법이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나온 걸 알았다. 그리고 보니까 시간이 흐르면서 안내가 우리에게 가드(guard - 방어자세)를 내리고 협조해 주는 걸 느끼겠다. 막강한 그녀가 호텔에 가서 교섭을 하더니 나에게 와서 "지금은 호텔 버스를 타고 가는 길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값을 스무달러(2만원)나 달라고 합니다" 하길래 내가 "갑시다" 했다. 버스가 숨어서 가느라고 그런지 뒷 길 작은 포장 도로를 택해 가는데 길과 주위가 완전히 암흑이다. 길의 노면도 안좋아 사람을 우울하게 만든다. 인공위성으로 밤에 찍은 한반도를 보면 남한 쪽은 불빛이 환한데 비해 북한 쪽은 완전히 암흑이라고 한다. 이 사진으로 만으론 마치 한반도에는 남한만 존재 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우리는 북한의 에너지 절약에 동참하는 의미로 전력을 사용 할 때는 최소로 했다. 밤에 잘 때에도 완전 소등을 하고 화장실도 더듬어 다녔다. 안내가 나에게 "우리가 쓰는 군사비의 10분의 1만 경제 발전을 위해 쓰면 어려움의 대부분이 해소 된다고 합니다" 한다. 학생 중 한명도 같은 말을 했다. 내가 "우리가 왜 같은 민족끼리 그 많은 군대를 갖고 대치하고 있어야 합니까? 통일의 첫 단계로 우선 군비축소를 과감히 해서 그 경비를 국가발전에 써야 합니다". 하니까 "미국 놈들이 한반도에서 철수부터 해야 가능합니다" 한다.
호텔로 돌아와 우리는 끝내기로 들어 가는 여행이 아쉬워서 카페로 들어가 자정이 넘도록 잡담을 했다. 안내가 나에게 왜 자기네가 김정일을 장군이라고 부르는지 설명 한다. "그 분이 군대에 작전 지시를 하는 걸 보면 천재 아니면 못 하는 생각만 하십니다. 1994년 미군 직승기(헬리콥터)를 추락 시킨 후에 우리나라의 갈 길을 '선군(先軍) 정치'밖에 없다고 하셨지요. 즉 모든 일에 군을 앞 세워 조국을 건설해 나가도록 지시하셨습니다. 그런 분을 당연히 장군님으로 불러야지요" 한다 카페에 앉아 있는데 신사장이 호주에 전화를 하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돌아온다. "12분 통화했는데 140불을 냈습니다. 북한에서는 그게 얼마나 큰 돈인데 이럴 수가 있습니까?" 한다. 국제화가 안 되어 있어 이런 일들이 일어나나 보다. 다른 나라 선수단도 전화를 하고 많이 놀래겠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진박사가 오더니 "50센트를 여기 돈으로 바꿔 달랬더니 3천원이 넘는 돈을 받았습니다". 한다. 안내는 우리에게 공정 환율로 1불이 28원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50센트는 14원이 라야한다.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세상인지 혼동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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